소고기 등급제의 탄생
고기장사를 하다 보면 느끼는 것이 있습니다. 손님들은 소고기에서 육색, 육향, 육질, 풍미 이런 것을 다 떠나 질기면 싫어합니다. 고기가 질기다면 욕먹어도 아무 말 못 하게 됩니다. 물론 연도 말고 풍미 같은 것을 즐기는 손님도 계시긴 하지만 매우 소수입니다.
1970~1980년대부터 축산업에 종사해 오신 분들께 여쭤 보았습니다. 예전부터 부드러운 소고기, 즉 마블링 있는 소고기에는 값을 더 쳐줬다고 하더군요. 그것에 명확한 기준이 없이 가격이 결정되니 정부는 그것에 대해 교통정리를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렇게 전 국민의 압도적인 취향 편향으로 탄생한 것이 1992년부터 시행된 소고기 등급제입니다. 마침 우루과이라운드로 축산물 시장 개방을 앞두고 한우의 경쟁력 강화가 필요했기에 시기도 맞아떨어졌죠. 미국의 등급제와 일본의 등급제를 참고하여 만들었습니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 실정과 맞지 않는다는 주장을 하는 분들이 있긴 합니다만 우리나라 소비자들의 선호를 바탕으로 만든 제도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질긴 고기를 싫어합니다.
한국인이 고마블링 소고기를 좋아하는 이유
우리나라에서는 고기를 불판에 직접 구워 먹습니다. 불판 한가운데 고기를 올려놓고 굽는 동안 소주도 따라야 하고 상추쌈도 싸야 하고 이야기도 하며 잔도 부딪쳐야 합니다. 바쁘죠.
그러다 보면 고기를 필요 이상으로 굽게 됩니다. 이때 마블링이 없으면 고기가 엄청 질깁니다. 그래도 마블링이 많으면 조금 많이 익혀도 고기가 부드럽게 씹히는데 말이죠. 우리나라 사람들이 고마블링 소고기를 좋아하게 된 이유가 바로 이 식문화의 영향이 큽니다.
지방의 누명
그러다가 소고기를 부드럽게 만들어 주었던 일등공신인 마블링이 이제는 지방 덩어리라는 공격을 받습니다. 심지어 ‘나쁜 고기’라고 까지 불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주장은 몇몇 관심 받고 싶은 지식인들 이야기고 시장에서는 여전히 부드러운 고기, 즉 마블링 있는 고기를 더 높게 칩니다.
큰맘 먹고 한우를 사서 먹었는데 타이어 씹듯 질긴 고기 먹고 싶지 않다고 모두가 생각합니다. 애초에 비싸서 한우에 있는 지방을 건강이 나빠질 정도로 먹을 수도 없다고 여깁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지방이 건강에 안 좋다는 누명이 벗겨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누명은 모두 안셀 키즈라는 희대의 사기꾼이 논문을 조작해서 퍼진 불량지식 때문이었습니다. 포화지방산이 건강, 특히 심혈관질환에 안 좋다는 일반적인 상식 자체도 조작된 겁니다. 희대의 지적사기극이죠.
고마블링 소는 어떻게 키우나
갓 태어난 송아지는 어미젖을 먹입니다. 젖을 떼고 나면 송아지의 위장을 크고 튼튼하게 만들기 위해 건초 위주로 먹입니다. 수송아지의 경우 씨소로 쓸 녀석을 제외하고는 3~8개월령 정도에 거세를 하고, 암송아지는 그대로 키웁니다.
번식용 소는 너무 살이 찌면 번식이 안 되기 때문에 적당히 체중관리를 하면서 먹이고, 비육우는 고열량으로 살이 많이 찌도록 먹입니다. 사료를 먹인다 해도 후식으로 풀은 계속 줘야 합니다. 소는 반추동물이기 때문입니다.
키우면서 소가 스트레스받지 않도록 신경을 곤두세웁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밥을 안 먹고, 밥을 안 먹으면 살이 안 찌고, 살이 안 찌면 등급이 안 나옵니다. 소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 있는데 PSE(Pale, Soft, Exudative)와 DFD(Dark, Firm, Dry)입니다.
이 현상들이 일어나면 고기의 맛이 없어지다 못해 등급이 떨어집니다. PSE육의 특징은 육색이 창백하고(Pale), 흐물거리며(Soft), 보수력이 약해 육즙이 심하게 빠져나갑니다(Exudative). DFD육의 특징은 육색이 검고(Dark), 끈적끈적하며(Firm), 말랐습니다(Dry). 세균이 번식하기에 적합한 환경이라 저장성이 떨어집니다.
스트레스를 덜 받게 하기 위한 우사의 최소 넓이가 연구되어 알려져 있고, 한 칸에서 최대 몇 마리까지 키울 수 있는지까지도 연구되어 있습니다. 그 이상으로 가둬져 살면 소가 스트레스를 받아 육질이 떨어집니다. 소는 마블링을 키우고 싶다고 해서 푸아그라처럼 사료를 억지로 먹일 수 없습니다. 물리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스스로 먹고 싶어서 먹게 해야 합니다.
소가 사료를 맛있게 먹어야 하니까 사료도 맛있게 만듭니다. 생각보다 많은 것을 고려하며 사육하는 셈입니다. 언론이 ‘자유를 구속당한 채 살만 찌우는 불쌍한 녀석들’이라는 이미지를 만들어서 그런 것이지, 그냥 편하게 앉아서 주는 밥 먹고 뒹굴뒹굴하면서 살찌우는 팔자 편한 녀석들이라고 생각하고 보면 또 느낌이 다를 것입니다.
방목에 대한 환상
저 푸른 초원 위에 뛰노는 소의 그림입니다. 얼마나 예쁩니까? 마치 저기서 자란 소는 고기가 맛있을 것만 같습니다. 소고기에 대자연의 기운을 듬뿍 담아 맛있을 것 같지 않습니까? 정작 방목소는 고기가 질깁니다.
방목하면 소들이 뛰놀면서 운동을 하게 됩니다. 운동을 하면 근육이 발달합니다. 근육 발달이라는 건 근섬유 자체가 두꺼워지고 콜라겐 등의 섬유질이 많아지는 것인데 그게 바로 고기가 질겨진다는 의미가 됩니다.
그래서 연한 고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방목은 안 하는 게 오히려 낫습니다. 다만 스트레스 관리 차원에서 산책 정도는 좋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그런 환경을 갖추기란 쉬운 게 아닙니다.
우사를 지을 수 있는 땅이 있는데 그것을 포기하고 방목 용지를 두기는 힘이 듭니다. 기회 비용이 너무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 있는 방목 초지는 전부 산비탈이나 언덕에 있습니다.
가진 부동산이 산이라면 그걸 깎아서 우사를 짓기에는 너무 비싸기 때문에 우사를 한쪽에 작게 짓고 풀어서 키우는 것이 더 싼 경우에만 방목을 할 수 있습니다. 방목을 하고 싶어서 한다기보다 어쩌다 방목할 여건이 되니까 하는 것인 셈입니다.
마블링의 대안이 저지방숙성육인것 같은 착각
우리나라에서 드라이에이징을 처음 시도한 업체들이 차별화를 두기 위해 내세운 전략이 마블링을 디스하는 것입니다. 워낙 지방에 대한 이미지가 안 좋으니 그 분위기를 타고 마블링을 비판하며 ‘저등급 소고기를 숙성하면 투쁠보다 맛있다’고 주장하는 전략이었죠.
웰빙 이미지와 고급 이미지, 그리고 싼 고기를 비싸게 만들어 파는 부가가치까지 한 번에 잡은 탁월한 전략입니다. 이 전략은 굉장한 성공을 거두었고 지금 드라이에이징 소고기는 투쁠한우의 대항마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마치 마블링의 반대말이 숙성처럼 되어버렸습니다. 이 둘은 전혀 별개인데 말이죠.
투쁠한우로 드라이에이징 물론 가능합니다. 무척 맛있습니다. 다만 호불호가 갈리고 원가가 너무 비싸므로 팔 자신이 없어서 투쁠로는 드라이에이징을 안 하는 겁니다. 게다가 원래 맛있는 투쁠한우로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마음도 있을 겁니다.
취향존중을 부탁하며
투쁠 한우는 맛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대체로 저등급 소고기보다는 고등급 소고기가 더 알맞습니다. 그렇다고 오직 투쁠한우만이 최고라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사람의 취향은 다양한 것이고 모두 다릅니다. 누군가는 기름기 전혀 없는 뻑뻑한 고기를 좋아하기도 하고 누구는 부드러운 고기를 선호합니다.
그런데 왜 자꾸 전문가라는 사람이 나와 마블링은 나쁜 거라느니, 지방 맛을 착각하는 거라느니, 후천적으로 학습돼서 이것이 맛있는 것이라고 착각하는 것일 뿐이라는 궤변을 늘어놓는지 모르겠습니다. 먹는 것을 왜 그렇게까지 생각하고 먹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전문가도 아닌데 그냥 자기 취향에 맞는 것을 맛있게 먹으면 되는 게 아닐까요? 취향 좀 존중해 줬으면 합니다. 취향을 자기 방식대로 알려주며 강요하는 사람. 그런 사람을 저는 꼰대라고 부릅니다.
원문: 미트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