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언론이 뭔지 궁금했다. ‘좋은 언론’에 대한 정의부터 필요했다. 마침 해직 기자들이 전하는 이야기가 있다.
영화는 꽤 감정적이었다. 해직 이후 별거 아닌 일에도 화가 난다는 조승호 YTN 해직 기자, “지금 오디오 체크하고 데스크에서 뛰어다녀야 할 너희들이…”라고 집회 현장에 모인 후배들을 보고 눈시울을 붉히는 최일구 MBC 아나운서, 해직 분노를 삭이기 위해 무박 2일 마라톤을 3번이나 완주한 노종면 YTN 해직 기자까지. 영화는 ‘좋은 언론’에 대한 명확한 정의보다 감정으로 먼저 다가왔다.
다큐멘터리영화 <7년-그들이 없는 언론>은 2008년 YTN, 2010년 MBC에서 해직된 언론인 21명의 해직 원인과 과정, 투쟁기를 그린 영화다. <지식채널e> 등을 연출한 김진혁 전 EBS PD가 감독을 맡았고 시민들이 참여한 크라우드 펀딩으로 제작됐다. ‘사회 고발형 다큐멘터리 영화’로 출연진부터 연출, 제작이 화제인 영화다.
언론사 통폐합 사태 이후 최대 해직사건
영화는 20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명박 정부는 그해 8월 YTN에 대선 당시 특보를 지낸 구본홍을 사장으로 선임한다. 정치 경력의 사장선임을 반대하는 내부의 강력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사장 임명을 강행하자 노조는 파업으로 대항했고, 파업에 참여한 13명을 무더기로 해임하기에 이른다.
2년 뒤 2010년엔 MBC에 칼날이 들이닥친다. 대통령이 한나라당 의원 당시 각별한 친분관계였던 김재철을 사장으로 선임한 것이다. 낙하산 인사라는 거센 비판이 일었고 MBC 파업이 시작됐다. 6개월간의 파업 끝에 8명이 해고됐고, 이후 모두 21명의 언론인이 대량 해고됐다. 1980년대 전두환 정권 이후 처음 있는 대량 해직사태였다.
해직 320일이 지난 2009년, YTN 기자들의 해고 무효 소송 1심 판결이 났다. 권석재, 노종면, 우장균, 정유신, 조승호, 현덕수 기자 6명이 모두 해고 무효 판결을 받았다. 법원의 판결에 따라 복직한다는 내용의 ‘4.1 노사 합의’를 이끌어 냈지만 사측은 이를 파기하고 항소했다. 2011년 2심 재판에선 권석재, 우장균, 정유신 3명은 해고 무효, 노종면, 조승호, 현덕수 기자 해고는 정당하다는 판결이 났다. 2014년 열린 3심에선 2심 확정판결이 난다. 해직 2000일이 넘어가는 시점이었다.
영화는 MBC 해직 언론인 최승호, 이용마, 권성민 PD, 박성제 기자의 싸움도 그려낸다. <PD수첩>의 최승호 PD는 이명박 정부 시절 국정원의 간첩 조작 사건을 다루다 해고 됐고, <무릎팍 도사> 등을 연출한 권성민 PD는 내부 고발 명목으로 고소를 당했다. 모두 MBC 김재철 사장 취임 이후 벌어진 일이다. MBC의 간판 앵커였던 최일구 앵커는 파업에 동참했다는 이유로 ‘신천교육대’에서 교양 교육을 받는 수모를 당했다.
이외에도 MBC 파업에 동참한 기자, 피디, 아나운서 200여 명이 제작부서가 아닌 비제작부서로 발령이 났고 해직, 정직 처분을 받았다. 이 중 109명은 아직 돌아오지 못했다.
해고는 ‘기레기’ 양산과 공영방송 조직파괴로 이어져
언론인 대량 해고 사태는 ‘세월호 전원 구조’ 오보와 기레기 양산으로 어어졌다. 박성제 MBC 해직 기자는 영화에서 말한다. ‘세월호 전원 구조’ 오보와 기자가 ‘기레기’ 소리를 듣는 현실은 공영방송 MBC와 YTN에 권력에 대해 바른말을 하고, 현장의 돌발 상황에 ‘이렇게 해라’라고 가르칠 중견 언론인이 사라졌기 때문이라고. 사태의 본질을 파악하고 위기 대처 능력 경험이 부족한 젊은 기자들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고 갈 중견 기자들이 모두 현장에서 쫓겨났다는 말이다.
방송은 세상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지 못했고, 당연히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잃었다. 세월호 사고 당시 현장에서 리포팅을 하던 KBS 젊은 여기자는 지나가던 시민에게 “X년아, 헛소리 하지 마, 거짓말 치지 마”라는 비난마저 들었다. 이 장면은 방송에 그대로 생중계되기도 했다.
공영방송 내부 조직의 소통 구조 파괴도 문제다. 최승호 PD와 <PD수첩>을 함께 연출한 이춘근 PD는 “세월호 같은 크고 중요한 이슈가 터져 다른 언론 매체가 모두 사건을 다룰 때는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조용히 있자’고 하고, 이슈가 지나가면 ‘지나갔으니 다룰 필요가 있냐’며 아이템을 막았다”고 내부 사정을 전했다. 방송의 저널리즘 역할은 아예 사라졌다. 그는 “민영 언론은 최소한 자신의 조직을 망가뜨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명박, 박근혜 정부는 이사회와 경영진을 장악하고 공영방송이 스스로 갉아먹는 구조를 만들고 있다”라고 비판한다.
무너진 조직의 복구와 와해된 신뢰회복은 이제 화두가 됐다. 권성민 MBC 예능 피디는 2014년 5월 ‘오늘의 유머’ 사이트에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문화방송의 보도 내용을 비판하고 시청자한테 사과하는 글을 올렸다가 정직 6개월의 징계를 받았다. 대량 발령에 ‘이건 아니지’ 하는 내부 분위기도 전했다. ‘엠빙신 PD입니다’라고 올린 글로 그는 내부 고발과 회사를 향한 근거 없는 비방으로 고소당했다.
그는 “저 같은 경우는 한국 언론을 진단하는 리트머스지 같은 사례라고 본다”며 “정권의 입맛에 좌우되는 한국 언론의 현 주소를 보여주는 것이다”라고 증언한다.
지난한 해고자의 삶과 투쟁
우리 언론에게 희망은 있을까. 영화는 해고자들의 지난한 삶과 투쟁의 모습을 그려낸다.
조승호 YTN 해직 기자는 해직 2000일이 될 즈음 YTN 신사옥 이전으로 혼란스러운 틈을 타, 자신이 일을 하던 YTN 19층 보도국으로 들어선다. 옛 동료를 만나고 ‘여긴 그대로네’ 말하며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을 짓는다. YTN 보도국 점퍼를 입어보며 자랑스레 카메라를 바라보며 어깨를 쫙 펴는 순간도 잠시, 15층 노조 활동 방에서 바닥에 널브러진 ‘혁명의 깃발이 나부껴라’, ‘해직기자 파이팅’ 등 농성 순간의 흔적이 담긴 피켓을 안타깝게 어루만지는 모습이 비춰진다.
그렇게 돌아가고 싶었지만 출입증이 없어 들어가지 못하는 옛 일터, 막상 들어갔지만 어색해하는 모습에 그의 일터에 대한 간절함이 절절하다.
최승호 PD는 현재 대안 언론인 <뉴스타파>에서 해직 사유가 된 ‘공정 방송’을 이어가고 있다. 이용마 PD는 대학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스피커 제작이라는 취미를 업으로 삼은 박성제 기자는 한겨레 TV와 <김어준의 파파이스>에 출연하며 해고의 부당함과 좋은 언론인의 자세를 꾸준히 전하고 있다.
엔딩 크래딧이 올라간 후 정영하 당시 MBC 노조 위원장은 복직된 후 가장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는 감독의 질문에 “언젠간 그 날이 올 것이다. 그날이 오면 가장 먼저 노조원을 최대한 많이 부를 것이다. 그리고 국민 앞에 큰절을 올릴 것이다”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해직 언론인의 싸움은 지금도 진행형이다.
커져가는 언론개혁의 목소리
해고자들은 방송이 권력이 아니라 시민들을 위한 방송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사적 영리보다 공익을 우선시하는, 공정하고 사회정의를 추구하는 방송 가치 실현을 꿈꾼다. 최승호 PD는 “권력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언론을 만들기 위해 시민들의 참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시대가 요구하는 언론개혁에 시민들의 언론에 대한 관심과 참여가 절대적이라는 의미다.
실제 이 영화는 제작, 투자의 기피로 시민들이 투자자로 나서는 ‘크라우드 펀딩’으로 제작됐다. 해직 기자들이 직접 농성 현장을 찾아 촬영한 영상을 편집해 영화를 만들었다. 연출을 맡은 김진혁 전 EBS PD는 “영화에 출연하는 기자, 피디, 시민 모두가 연출자”라고 밝히기도 했다.
영화가 개봉된 지난 12일 JTBC 뉴스룸에서 손석희 앵커는 <7년- 그들이 없는 언론>을 소개하며, 지상파가 권력의 애완견 ‘랩독(lapdog)’으로 전락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방송이 “누구의 지배도 받지 않고 아무도 지배하지 않는 것. 요는 살아 있을 것이냐, 살아 있지 않을 것이냐”를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서 있다고 말했다. 감시견으로서의 언론인 역할을 다시 한번 강조하며 공정, 신뢰, 약자 보호 등 민주주의 가치를 주창한 것이다.
영화는 ‘좋은 언론’이 무엇인가에 대한 답은 간단하다고 말한다. 민주주의 가치를 지키고 실현하기 위해 눈을 똑바로 뜨고 현실을 바라보는 것, 언론인이 자신이 있는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 무엇이 옳고 그른지 자기중심을 잘 지키는 것. <7년>은 언론인을 꿈꾸는 언론학도로서 ‘좋은 언론’이 무엇인지 돌아보게 한 영화였다.
원문 : 단비뉴스 / 작성 : 고륜형 기자 / 편집 : 곽호룡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