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근혜정부의 세제개편안 – 저성장 고령화 시기의 한국경제 구조개혁
앞선 글에서 확인했듯이, 한국은 경제개발 시기 공급측면의 성장을 위해 노동자의 임금인상을 억제하고 반대급부로 ‘저부담 조세체계’를 설계했다. 조세부담률이 낮았기 때문에 당연히 재정규모도 작았고 복지서비스는 미미했다. 이른바 ‘저부담 저복지’ 시대였다. 고성장 베이비붐 시기에는 조세부담률을 낮게 유지하고 복지서비스가 미미하더라도 별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2013년의 한국경제는 “저성장 고령화” 시기이다. 1970년대처럼 대기업의 수출이 이끄는 고도성장은 기대하기 힘들다. 경제성장을 통한 세금수입 증가를 기대하기 힘들고, 고령화에 따른 복지지출수요는 늘어만간다. 어떻게 해야할까? 세금을 더 걷는 수 밖에 없다. 1970년대에 설계된 ‘저부담 조세체계’를 바꿔야 한다. ‘저부담 저복지’에서 ‘고부담 고복지’로 가야한다. 박근혜정부의 세제개편안은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지난 8월 8일, 박근혜정부는 연소득 3,450 만원이 넘는 근로자가 더 많은 세금을 내는 세제개편안을 내놓았다. 첨부한 인포그래픽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이번 세제개편안은 누진적 성격이 강하다. 연소득 3,450 만원 미만인 근로자의 세부담을 줄어들고, 연소득 8,000 만원 이상인 근로자의 세부담은 급격히 늘어난다.
고소득 근로자에게 세금을 더 거두어서 복지지출에 쓰겠다는 것이 세제개편안의 목적이었으나 “왜 법인세 등을 놔두고 소득세를 건드리느냐” 등 많은 비판이 쏟아졌다. 비판의 초점은 하지만 위에서 살펴봤듯이, 한국은 소득세가 GDP 대비 세수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OECD 평균에 비해 작다.
그리고 각종 공제제도로 인해 소득세 실효세율 자체도 낮은 상황이다. 양재진은 <한국 복지국가의 저부담 조세체제의 기원과 복지 증세에 관한 연구>(2013) 에서 “2009년 근로소득자가 받은 급여총계는 369조 원이다. 그런데 정부는 근로소득공제를 통해 이 중 121조를 소득으로 간주하지 않고, 이후 다양한 소득공제를 통해 총 118조를 추가로 소득에서 제외시켰다. 여기에 세액 공제와 세액 감면으로 2.4조 원 등을 또 추가적으로 감면시켜, 결국 과세 대상 소득(즉, 과세표준액)은 121.3조 원에 불과했다. 이에 과세구간별 세율을 적용한 결과, 총 소득과세액(즉, 결정세액)은 12조 8,500억 원으로 급여총계 대비 3.4%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라고 지적한다.
“단순히 외국에 비해 소득세의 비중이 작다고 해서, 외국수준 만큼 올린다는 논리가 타당하냐?” 라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법인세 인상은 여러가지 문제를 가지고 있다.
※ 자본이동이 활발한 세계화 시대. 법인세 인상은 힘들다 ???
오늘날 다국적 기업들은 법인세율이 낮은 곳에 페이퍼 컴퍼니를 차려놓고 수익을 이전하여 세금을 과소납부 한다. 특히나 무형의 제품을 생산하는 IT 기업들이 이런 방법을 많이 쓰는데, 애플은 조세회피처에 1,020 억 달러의 이익을 이전하고 “아일랜드 자회사에 잠겨 있는 1천억 달러가 넘는 자산을 환수하는 문제에 대해서 35%인 현행 법인세율하에서는 아일랜드에 누적된 이익을 미국으로 가져올 의사가 없다” 라고 발언하여 논란이 됐었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소속의 안종석은 <다국적 IT 기업의 조세회피 행태와 시사점: 애플·구글의 사례를 중심으로>(2013.07) 보고서를 통해, “거대 다국적기업의 조세회피 사례가 주는 가장 중요한 시사점은 세계 각국이 세법의 차별화를 통해 과세베이스 경쟁을 한다” 라고 말한다.
그리고 “1980년대 경제활동의 세계화가 급속하게 진전되면서 세계각국은 기업에 대한 과세에서 세율인하 경쟁을 벌였다. 약 20년에 걸친 세율인하 경쟁을 통해서 세계 각국의 법인세율은 주요 선진국의 30% 내외, 20~25% 수준, 20% 미만의 세 그룹으로 수렴하는 결과가 나타났다” 라고 말한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소속 안종석의 또 다른 보고서 <중장기 조세정책 방향에 대한 제언>(2013.07)을 보면, 2008 금융위기 이후에 세계 각국은 재정부담을 덜기 위해 소득세 · 부가가치세 인상을 단행했다. 그럼에도 법인세율은 오히려 내려가는 모습을 보였다.
물론, “기업들의 자본이동과 세계각국의 세율인하 경쟁 때문에 법인세 인하는 어렵다” 라는 주장에 대한 반박도 있다. 윤홍식은 <복지국가의 조세체계와 함의-보편적 복지국가 친화적인 조세구조는 있는 것일까>(2011) 논문을 통해, “지난 반세기 동안 유동성이 큰 법인세가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오히려 증가했다. (…) 이론적 논의와 달리 세율을 끊임없이 낮추는 조세경쟁은 현실세계에서는 일어나고 있지 않다.” 라고 비판한다.
그는 이어서 “만약 법인세가 자본의 위치선정에 결정적 영향력을 미친다면 유효한계법인세율이 3%에 불과한 사우디아라비아에 자본이 몰려야 하지 않나? 이러한 일이 현실화되지 않는 이유는 외국자본의 직접투자(FDI)가 법인세율에 민감하기는 하지만 세율보단 해당 국가의 임금수준과 다른 사회경제적 요인들이 다국적기업의 위치선정에 더 큰 영향을 주기 때문” 이라고 설명한다.
※ 중요한 건 세금의 “경제적 부담” – 조세귀착의 문제
윤홍식의 주장이 옳더라도 법인세 인상은 또 다른 문제가 있다. 바로 “조세귀착”의 문제이다. 예를 들어, 과세당국이 물품판매자에게 더 많은 세금부담을 지우기위해, 물건을 팔때마다 판매자가 100원의 세금을 내는 정책을 내놓았다고 가정하자. 이때 물품판매자 혼자 100원의 추가세금부담을 지게될까? 아니다. 판매자는 물건값을 100원 올려서 세금부담을 피할 것이다. 즉, 세금의 법적부담자와 경제적부담자가 다른 현상이 자연스레 나타날 수 밖에 없다.
1994년 재무부 세제실장으로 법인세 인하를 주도했던 강만수는 『현장에서 본 한국경제 30년』(2005) 를 통해 “법인세 폐지가 처음으로 논의된 것은 1974년 부가가치세 도입을 검토할 때 제기되었던 ‘3세론(三稅論)’이었다. 돈을 벌 때 소득세를 내고, 돈을 쓸 때 소비세를 매기며, 쓰고 남은 돈에는 재산세를 물리는 세 가지 세금만 두자는 것이다.
법인세와 관세는 기업에 대한 과세로서 사실상 소비자에게 전가되기 때문에 소비세인 부가가치세에 통합하고, 상속세도 재산세에 통합하자는 것(92)” 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주석을 통해 “이론적인 측면에서 법인세는 ‘경제적 이중과세’이고 또한 실증적으로 법인세도 소비자에게 전가된다(105)” 라고 말한다.
법인세의 조세귀착에 관한 좀 더 구체적인 자료는 없을까? 하버드 경제학과의 Mihir A. Desai 등은 <Labor and Capital Shares of the Corporate Tax Burden: International Evidence>(2007) 라는 논문을 통해 법인세의 조세귀착 문제를 다루었다. 이들은 1989년-2004년 사이, 미국의 다국적 기업들을 대상으로 “(단순히 나누어) ‘노동Labor과 자본Capital’ 중 법인세 부담을 많이 지는 쪽은 어디인가?”를 연구했다.
연구의 결론은 “노동Labor 쪽이 법인세부담의 57%를 지게된다.” 이다. 법률상 법인세는 기업에게 부과하는 것이지만, 증가한 세부담은 노동자의 실질임금과 자본가의 자본소득 모두를 압박하게 되고, 그 결과 노동쪽이 57%의 부담을 지게 된다는 것이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소속의 안종석이 <중장기 조세정책 방향에 대한 제언>(2013.07) 에서 “효율성의 관점에서 법인세가 가장 열등한 위치에 있으며, 법인세는 형평성 제고에 전혀 기여하지 못함” 이라고 말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 역진적 성격을 가진 부가가치세를 인상하면 소득재분배가 악화될까?
위에 첨부한 그림-3 세수입 구성의 발전방향-에서 눈에 들어오는 또 다른 부분은 “소득세와 사회보장기여금, 부가가치세 수입을 증대시키고 법인세 부담은 완화하는 것이 바람직” 이라는 것이다. 부가가치세 수입을 증대시키자고? 누진적 성격의 소득세와는 달리, 역진적 성격을 가진 부가가치세를? 복지서비스 확충을 위해 (사실상) 증세를 하는 것인데 역진적 성격을 가진 세금을 올리자니, 이게 무슨 말인가?
그러고보니 김종인 또한 “물가 인상의 부담은 있지만 현실적 대안은 부가가치세 인상이다. 간접세가 복지 재원을 조달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물론 대통령이 정치적인 부담을 지고 국민을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라고 말한바 있다. 부가가치세율 인상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를 알아보자.
다시 한번 ‘집단별 세목별 세수입의 대 GDP 비율(2010년)’ 도표를 보면, (앞서 언급한 소득세 뿐 아니라) 일반소비세(부가가치세)의 비중이 OECD 다른 국가에 비해 낮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다른 국가에 비해 낮다는 이유로 부가가치세 세율을 올리자고? 이해가 안가는데?
윤홍식은 <복지국가의 조세체계와 함의-보편적 복지국가 친화적인 조세구조는 있는 것일까>(2011) 에서 “세금의 역진성이 곧 현실에서 불평등을 확대하는 것은 아니다. 비록 역진적 세금을 통해 재원을 확대해도, 정부지출이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해 쓰인다면, 역진적 세원은 크게 우려할 바가 되지 못한다.” 라고 지적한다.
위에 첨부한 ‘누진세와 역진세의 구성 변화: 1965-2008’ 도표를 보자. 우리가 복지국가라고 알고 있는 스웨덴은 그동안 역진적 성격을 가진 세금비중을 늘려왔다. 그리고 OECD 전체적으로도 “역진세의 증가율이 누진세의 증가율 보다 높았다. (…) 주목할 변화는 GDP대비 누진세의 비중은 1975년 이후 거의 변화가 없는데 반해 역진세의 비율은 2005년까지 꾸준히 증가” 했다.
윤홍식은 영국과 스웨덴을 비교한다. “영국과 미국 등 자유주의 복지국가에서 역진적 조세의 도입(확대)은 보편적 복지급여를 확대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재정적자를 메우거나 경제적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도입 · 인상 · 검토되었다. (…) 영국은 누진세 비중의 증가율보다 역진세 비중의 증가율이 훨씬 컸지만 영국을 보편주의 복지국가라고는 하지는 않는다.”
즉, 윤홍식의 핵심주장은 “결국 누진세와 역진세 논란에서 중요한 사실은 보편주의 복지국가에 조응하는 조세가 역진적이어야 하느냐, 누진적이어야 하느냐와 같은 이분법적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핵심은 어떻게 한 나라의 세금의 크기를 늘릴 것인가와 그 세금을 어디에 쓸 것인가에 달려 있는 것” 이다.
그렇다면 스웨덴이라는 단지 한 국가의 사례 뿐 아니라, 부가가치세 인상이 복지에 도움이 된다는 좀 더 실증적인 자료는 없을까? 한국조세연구원 소속 성명재의 <부가가치세율 조정의 소득재분배 효과: 복지지출 확대와의 연계 가능성>(2012.10) 보고서가 있다.
윤홍식의 주장과 비슷하게, 성명재 또한 “서구 선진국에서는 부가가치세 부담이 역진적임에도 불구하고 재정건전화 또는 복지재원 마련 등을 목적으로 부가가치세의 세율을 인상하는 경향이 짙다. 그 배경에는 부가가치세 증세를 통한 재정지출 효과까지 함께 고려할 경우 부가가치 증세의 결과가 결코 역진적이지는 않다” 라고 강조한다.
게다가 윗 그림을 보면 알 수 있듯이, “2010년 현재 부가가치세의 소비지출 대비 실효세부담률은 고소득층으로 갈수록 완만하게 상승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성명재는 “비록 최고소득층인 10분위의 경우 총소득 대비 실효세부담률이 3.1%여서 다른 분위보다 상당히 낮기 때문에 이 부분만을 보면 부분적으로 세부담의 역진성이 관찰되지만, 전체 가구를 대상으로 하는 경우에는 대체로 소득에 대해 비례적인 모습을 보인다” 라고 덧붙이고 있다. 즉, “부가가치세 부담이 막연히 역진적일 것이라는 인식과 정면으로 배치” 된다는 것이다.
더 흥미로운 것은 부가가치세의 세율인상 문제를 복지지출과 결합했을 때 나오는 결과이다. 성명재는 부가가치세를 1조원 증액하는 경우와, 지출 측면에서 교육 또는 보육, 주택 급여를 1조원 확대하는 경우의 수혜분포를 추정한 값을 내놓았다. 그 결과는 “부가가치세 증세 및 복지지출 확대 시 순부담이 음(-)의 값을 가지는 범위는 주로 중 · 저소득층에 집중되어 있고, 고소득분위는 순부담을 지는 것” 으로 나왔다.
성명재는 “‘부가가치세 부담이 역진적이기 때문에 부가가치세율을 인상하면 형평성 차원에서 부정적인 효과가 클 것’ 이라는 우려는 사실과 다르다” 라고 강조한다. 따라서, 성명재는 “장차 부가가치세 부담의 역진도가 커지더라도 세원이 매우 넓기 때문에 추가재원을 복지지출에 충당할 경우 정책조합의 순효과는 정(+)의 소득재분배 효과를 나타낼 수 있으므로 장기적으로 부가가치세 세율인상 방안에 대해 전향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라고 결론내린다.
(사족) ※ 과세왜곡이 적은 부가가치세
부가가치세 세율인상을 통한 세입확보 방안이 더 매력적(?)으로 보이는 이유는 다른 세금에 비해 자원배분의 왜곡이 적고 세원분포가 넓다는 점 때문이다. 성명재는 “지나치게 높은 법인세 등의 과중한 부담이 근로의욕(work incentive)을 저해하는 효과가 크기 때문에 이와 같은 왜곡현상을 완화하여 경제활성화를 도모하고자 법인세율을 인하하는 한편 부가가치세율을 인상하기도 한다. 아울러 인구고령화 진전에 따라 소득세의 세원분포가 협소해지므로 누진과세에 따른 자원배분 왜곡 현상을 완화하고 보다 넓은 세원을 확보하여 복지재정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한 목적도 크게 작용”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부가가치세 세율을 상향조정하는 것을 무조건 부정적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긍정적으로 검토할 필요도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왜냐하면 소득과세 · 재산과세 강화만으로는 세원확충에 한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인구고령화가 진전될수록 소득과세의 세원분포가 협소해지면서 재정세입 기반 역시 위축된다. 반면에 소비과세의 경우에는 세원분포가 넓고 조세왜곡이 작으므로 자원배분의 왜곡으로 인해 초래되는 경제적 비용을 최소화하면서도 소기의 세원확보 빛 지속가능성을 보장 할 수 있다” 라고 덧붙인다.
윤홍식 또한 “소비에 대한 세금은 현재 근로계층에게만 세금 부담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비근로소득으로 생활하는 사람에게도 세 부담을 지움으로써 복지에 대한 왜곡이 가장 낮은 세원”, “높은 소비세는 사회적 이전급여-실업급여 등-로 생활하는 사람들의 도덕적 해이와 비자발적 실업을 낮춘다. 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