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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 어마어마한 대형 시장이 되기까지
2000년대 들어 급격하게 기울기 시작한 한국만화계에서 웹툰을 바라보는 시선은 포털 사이트의 트래픽을 위해 내세운 ‘대형마트 시식대’ 수준의 공짜 콘텐츠였다. 그러나 스마트폰이 등장한 이후 이용자수가 폭발적으로 늘기 시작했고, 이에 따른 직·간접적 매출 또한 무시 못할 수준으로 성장했다. 이제 웹툰은 가장 핫한 콘텐츠다.
본디 웹툰은 ‘웹에서 보기 위하여 제작된 인터넷 만화’를 일컫는 말로, 기존의 출판만화와 구분하기 위해 쓰이던 개념이었다. 그러나 십수 년 전 그림을 그리는 학생은 만화가를 꿈꿨지만, 몇 년 전부터는 게임 원화가가 희망직업이었고, 최근에는 웹툰 작가 지망생이 대부분이라는 학교 관계자의 이야기는 웹툰의 바뀐 위상을 짐작게 한다.
초기 웹툰은 유저 유입을 위해 콘텐츠를 무료로 제공하여 콘텐츠의 가치를 떨어뜨렸다는 비판도 있지만, 웹상에 흩어져있던 작품들을 모아 생태계를 구축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무시할 수 없다. 포털을 위시한 웹툰 플랫폼은 전세계 유례없는 한국 고유의 생태계 모델로, 만화 콘텐츠 유통뿐만 아니라 2차 저작권 판매와 해외진출, 연관 콘텐츠 및 부가상품 마켓 구축 등 의미 있는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지금까지 웹툰 시장의 발전을 이끈 플랫폼과 명작들의 역사를 정리해 보았다.
1998년: 가능성의 시작, 스노우캣
기존 출판만화는 대개 흑백만화였다. 칼라만화는 대개 학습만화이거나, 스포츠신문을 중심으로 한 일간지의 연재만화였다. 일간지에 연재되던 칼라만화로는 <광수생각>이 대표적인데, 이는 컴퓨터그래픽을 활용한 디지털만화의 초기 형태이자, 기존 스토리만화와 상반되는 에세이툰의 시초로 이후 웹툰에 영향을 준다. 하지만 여러가지 의미에서 웹툰의 시초를 따지자면 <스노우캣>이라 할 수 있다. 1998년부터 웹에 연재하기 시작한 <스노우캣>은 귀여운 캐릭터로 큰 인기를 끌었을 뿐 아니라, 출판만화와는 다른 몇 가지 지점을 보여준다.
먼저 세로 스크롤에 적합한 1칼럼 형식이다. 지금에서야 이 형식을 활용해 다양한 표현을 시도하고 있으나, 이전까지 웹에서 연재된 만화들은 출판만화를 그대로 옮기거나 웹에서도 기존의 종이 양식에 맞춰 그리곤 했었다.
또한 스노우캣은 서사를 중심으로 한 기성 출판만화와 달리, 짧은 내용 안에 일상을 담은 생활툰 형식을 만들어냈다. 웹툰이라는 양식에 걸맞는 내용에 대한 답을 제시한 것이다. 개인 홈페이지와 귀여운 캐릭터 활용, 일상툰 등의 형식은 이후 <마린블루스>의 대박으로 이어진다.
2000년: 엽기토끼의 등장과 온라인 유료만화의 대두
2000년 한국의 온라인을 강타한 콘텐츠는 단연 N4에 연재된 <마시마로>였다. 플래시 애니메이션으로 제공되는 귀여운 캐릭터의 이야기는, 이후 한국의 플래시 애니메이션에 많은 영감을 준다. 요즘이야 어른들의 추억으로만 기억되는 캐릭터이지만, 해외에 엄청나게 수출되며 연 2000억 이상의 수익을 얻고 있다. <마시마로>는 비록 웹툰의 형태가 아닌 플래시였으나, 디지털의 멀티미디어 요소를 통한 캐릭터 스토리텔링 산업에 큰 영향을 준다. 또한 플랫폼 N4는 미국 코믹북을 온라인 서비스하는 등 시대를 앞선 시도도 보여준다.
하지만 수익은 과히 좋지 않아서, 2004년 코믹스투데이는 코믹플러스에 인수된다. 코믹플러스는 2014년 폐간하기까지 나름 새로운 시도를 많이 선보였다. 성인만화 <가면>에서는 부분적으로 동영상을 삽입했으며, 등에서는 등장인물과 사물에 간단한 움직임을 부여하며, 혁신적인 움직임을 계속해 왔다.
위에서 언급한 세 플랫폼은 콘텐츠, 회원, 가격정책, 파트너십 등에서 현재 웹툰플랫폼의 초기적 시도를 했다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이 분야에서는 현재 ‘미스터블루’ 등이 인기를 끌고 있는데, 결국 발빠르게 혁신하는 이보다 수익화에 집중하는 게, 좋음을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2001년: 스포츠신문의 성장과 함께 한 초기 시장
90년대 말까지 폭발적인 성장을 기록하던 스포츠신문은 (90년대까지 스포츠신문 연봉은 웬만한 메이저 신문보다 높았다) 인터넷의 등장으로 갑작스러운 매출 저하 문제에 부딪힌다. 이에 스포츠신문은 인터넷에서 트래픽을 올리고 젊은 독자층을 끌어들이기 위해 좀 더 젊은 감성의 만화를 연재하기 시작한다.
당시 한국의 웹 서비스는 여전히 초기 단계였다. 그래서 신문사의 가로 성격을 무시하고 만화를 무조건적으로 일렬로 배열한다. 사실 신문만화의 패턴을 무시하고 ‘대충대충’ 옮겨붙인 것에 불과하지만, 이는 만화를 인터넷에서 스크롤해서 볼 수 있다는 생각의 초석이 된다. 실제 스포츠신문은 몇몇 웹 연재물을 자사에서 서비스하기도 했다.
이 중 1999년부터 연재됐던 <시민쾌걸>은 비록 종이신문의 문법을 그대로 따르고 있지만, 패러디 코드와 빠른 전개 기법 등으로 이후 웹툰에 영향을 준다. 이후 더욱 큰 유산을 남긴 만화는 현재 <덴마>로 전성기에 올라선 양영순의 <아색기가>(2001)이다. 한 화 안에서의 빠르고 경쾌한 호흡이 웹에 적합했던 <아색기가>는 노출이 크지 않음에도 성인향 만화를 그릴 수 있는 선례를 남기기도 했다.
<아색기가>를 이어받은 대표적인 만화로는 현재 <꽃가족>을 연재하고 있는 이상신, 국중록 콤비의 <츄리닝>과 <가우스전자>로 인기를 얻고 있는 곽백수의 <트라우마>를 꼽을 수 있다. 지면에 연재되었기에 아직 1칼럼 형식이 등장하지는 않았으나, 문법적으로는 큰 영향을 미쳤다.
<스노우캣>이 디지털의 흐름을 웹으로 이었다면, <파페포포 메모리즈>는 에세이의 흐름을 감성툰으로 받은 대표작이다. 파페와 포포라는 남녀 캐릭터를 통해 감성을 울리는 이 작품은 사실 출판을 목적으로 홍보용으로 다음 카페에 일부가 올라왔다. 그런데 그 반응이 폭발적이어서 출간 직후 단숨에 베스트셀러가 됐다. 최근 웹툰이 홍보용으로 쓰이는 걸 생각하면, 굉장히 앞선 시도로도 해석될 수 있다. 결국, 2009년 다음에 연재된 후, 한참을 지난 2014년에는 애니메이션으로까지 개봉되는 스테디셀러가 됐다.
2002~2003년: 포털 만화의 시작, 다음 만화 속 세상
2000년 즈음부터 한국 포털들은 빠르게 성장한다. 2002년은 야후가 만화 서비스를 런칭한 해이기도 하다. 웹툰은 아니고, 출판만화를 그대로 옮긴 수준이었으나, 포털이 처음 만화를 담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 다음 바톤은 다음이 받는다. 지금은 네이버 천하이지만 2000년만 해도 다음이 한메일 서비스를 통해 야후코리아를 꺾으며 한국 최대 포털(이래봐야 지금과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작은 서비스였다)의 지위를 구축한다. 그 기세를 몰아 다음이 내놓은 서비스가 ‘만화 속 세상’이었다.
하지만 웹툰 개념이 정착되지 않은 시기였기에, 초기 ‘만화 속 세상’은 말 그대로 세상의 모든 만화를 담고, 또 만화를 통해 세상을 보여주려는 방대한 서비스였다. 여느 포털과 마찬가지로 출판 만화를 디지털화했음은 물론, 신문사 만평 코너까지도 모두 넣는 등 체계성은 떨어졌다. 이때 방향성을 확실하게 잡게 한 작품이 강풀의 <순정만화>였다.
이전까지 옴니버스 개그물로 이름을 날리던 강풀의 <순정만화>는 웹툰사에 또다른 획을 그었다. 한 화마다 이야기가 끊어지는 기존의 웹툰과 달리 과감하게 드라마 형식을 채택한 <순정만화>는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며 출간까지 이어졌다. 웹에서도 장기연재물이 성공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이후 강풀은 내놓는 작품마다 영화화에 성공하며 웹툰이 원 소스 멀티 유즈의 좋은 소재로 발전하는 데도 큰 공헌을 한다.
2004년: 파란과 엠파스의 선두권 진입을 위한 노력
2004년, 파란은 네이버, 다음, 네이트, 야후에 이어 5위권 싸움을 치열하게 하고 있었다. 그리고 만화 서비스를 통해 3위권 안으로 진입하고자 했다. 파란닷컴은 만화 서비스에 파격적으로 투자, 많은 가짓수의 만화를 확보한다. 그리고 연재되기 시작한 양영순의 은 수직으로 이동하게 하는 화면 구성을 자리잡게 한다. 여전히 수평으로 여러 컷이 배치되는 경우도 있었으나, 위에서부터 아래로 주욱 내려봐야 의미를 파악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또한 파란과 함께 스스로가 5위라 우기던 경쟁업체(…) 엠파스 역시 만화 서비스를 시작한다. 엠파스 연재작 중 가장 인기를 끈 작품은 강도하의 <위대한 캣츠비>였다. 이 작품은 본격적으로 ‘성인지향적인 드라마’ 웹툰의 시대를 열었을 뿐 아니라, 출판만화 이상의 섬세한 심리묘사와 정교한 펜선 연출을 선보이며 웹툰의 품격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한다. 특히 양영순이 시작한 수직 화면구성을 더욱 세련된 연출로 발전시켰다는 의미도 있다.
2005년: 네이버 웹툰의 태동
네이버는 2004년, 지식인 서비스를 통해 다음으로부터 1위 자리를 빼앗아 온다. 이후 트래픽은 계속해서 네이버로 몰렸는데, 이를 기회 삼아 네이버는 만화 서비스를 확장하고자 한다. 2000년 천리안에서 ‘웹툰’이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했을 적에는 대중화되지 않던 용어가 네이버 웹툰 서비스 런칭 이후 빠른 속도로 정착되기 시작하는데, 1위라는 지위가 진짜 깡패…
네이버는 이미 ‘네이버 웹툰’ 서비스를 내놓기 전부터 시험적으로 만화 서비스를 갖추고 있었다. 여기에서 활동하며 인기를 끌고 있던 만화가들이 그대로 유입되며 네이버 웹툰은 후발주자였음에도 빠르게 세를 모은다. 이 중 워니와 심윤수가 함께 작업한 <골방환상곡>은 최고의 인기작으로 등극하며 많은 팬층을 형성했다.
하지만 네이버 웹툰은 물론, 한국 웹툰 산업에 있어 가장 큰 획을 그은 이는 그 어느 작가도 아닌 김준구 이사다. 현재 분사한 ‘네이버웹툰&웹소설’의 대표를 맡고 있는 그는 회사 내에서 가장 만화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프로그래머에서 웹툰 담당자가 됐다. 그는 이후 네이버뿐 아니라 웹툰 서비스 전체의 시스템을 마련했으며, 덕력을 발휘하며 주변 작가들과의 관계까지 잘 조율하며 웹툰 시장을 하드캐리했다. (참조 링크: 아이즈 인터뷰)
한편, 강풀 작가는 <타이밍>으로 큰 인기몰이를 한다. 이 작품은 가장 영화로 보고 싶은 웹툰 1위에 선정되며 2015년 웹툰 최초로 극장판 애니메이션 개봉을 앞두고 있다. 묘하게 주인공들이 더 잘생겨져서 많은 이들의 기대를 받고 있다.
2006년: 마음의 소리 & 베도의 탄생, 그리고 영화화
조석. 이 한마디로 더 보탤 게 없다. <마음의 소리> 연재는 그야말로 전설의 시작이었다. ‘네이버 공무원’이란 비꼬는 이야기도 듣지만, 조석이 10년째 최고 인기작가의 자리를 놓치고 있지 않다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옴니버스 개그물은 항상 아이디어 고갈과 싸워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의 업적은 더욱 대단하다.
이미 900화를 넘은 <마음의 소리>는 2015년 기준으로만 누적 조회수가 23억 건을 상회한다. 주먹구구식으로 따져도 회당 250만 조회, 이미 수백만 명이 보고 있다. 그 어느 연예인 못지 않은 주목을 받고 있는 셈. 과거 50만 부를 넘은 주간만화는 물론, 웹툰이 그 어떤 콘텐츠보다 파급력이 있음을 증명한 기념비적인 작품이기도 하다.
또한 ‘베도’라 불리는 네이버의 ‘베스트 도전’ 코너 역시 이때부터 등장했다. 돈도 안 주고 트래픽 장사 하느냐는 비판을 받기도 했으나, 이를 통해 많은 웹툰 작가가 데뷔하며 시장을 넓히는 데 크게 일조했다. 레진코믹스 등의 다양한 플랫폼 등장 역시 ‘베스트 도전’이 그 기반에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또한 2006년은 웹툰의 영화화가 시작된 해이기도 하다. 연극, 드라마, 영화까지 진출하지 않은 분야가 없는 강풀 작가의 <아파트>가 그 첫 걸음이었지만, 아쉽게도 평과 인기는 좋지 않았다. 하지만 이 좋지 않았던 평은 한 달 뒤 나온 <다세포소녀>의 더욱 좋지 않았던 평 덕분에 적당히 묻혔다고 한다(…)
보너스: 웹툰을 원 소스로 한 영화들의 결과는 어떠할까?
초기 웹툰의 영화화가 실패한 이유는 웹툰에 담긴 모습을 그대로 영화에 담으려 했기 때문이다. 만화와 영화의 문법은 완전히 다르다. 만화는 컷과 컷 사이 공백을 전제로 하지만 영화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아파트>와 <절벽귀>는 좋은 공포 웹툰이었으나, 그걸 그대로 옮겨 영화화한 작품은 좋은 영화는 아니었다. (참조 링크: 영화화된 웹툰이 원작보다 재미 없는 이유)
하지만 누구나 시행 착오를 거치면서 적응하는 법. 차차 영화계는 웹툰을 영화로 바꾸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영화 문법에 맞춰 재창작하는 쪽으로 방향을 튼다. 강우석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이끼>가 성공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끼>는 원작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캐릭터를 변화시키는 등 영화에 맞게 개입하는 일을 서슴지않는다. 이러한 시도는 일부 원작 팬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으나, ‘재미’에 충실한 강우석 감독다운 선택이었다는 평을 받았다. 그리고 이는 340만 관객으로 보상 받는다.
이후에도 강풀 작가 원작의 <그대를 사랑합니다>, <26년>, <이웃사람> 모두 100만 이상의 관객을 모으며 웹툰의 영화화는 지속적으로 성공을 거둔다. 그러나 웹툰의 포텐셜이 폭발한 작품은 바로 HUN 작가의 원작을 토대로 한 <은밀하게 위대하게>다. 장철수 감독은 BL 코드를 적절히 삽입하고 액션뿐 아니라 등장인물들의 섹시한 비주얼을 극대화하며 원작의 매력을 배가시키는 데 성공한다. 그 결과는 700만 관객이었고, 2015년 현재에는 장사가 좀 된다 싶은 웹툰이면 일단 시나리오 판권부터 사들이는 일도 적지 않다고 한다. 웹툰의 원 소스 멀티 유즈 붐이다.
2007년: 디시인사이드 카연갤 부활과 윤태호의 등장
디시인사이드에 관해서는 아래 짤방 하나로 설명이 가능하다. 우리의 인터넷 문화는 디시에서부터 많은 것이 시작됐다. 그것은 만화 역시 마찬가지였다. 특히 디시인사이드가 가진 덕후적 느낌에 걸맞게 기존 만화의 문법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움이 펼쳐졌다. 이 중 <카툰연재갤러리>는 지금 예능에서 맹활약하고 있는 김풍의 <폐인의 세계>를 비롯해 마인드C, 메가쇼킹 등의 작가를 탄생시킨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중 가장 흥했던 만화로는 2007년 연재를 시작한 굽시니스트의 <본격 제2차 세계대전 만화>이다. 타 작품은 오덕성을 재미를 위한 코드로 끼워넣는 수준이었지만, 이 작품은 그야말로 오덕을 위한, 오덕에 의한, 오덕의 만화였다. 결국, 출간에까지 성공하며 이후 <본격 시사인 만화>로까지 진출, 서브컬처 코드가 강한 만화도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
또한 2007년은 윤태호 작가가 웹툰계에서 처음 이름을 떨친 해이기도 하다. 지금은 <미생>으로 전국구 유명인이 됐지만, 당시의 윤태호는 <야후>와 같은 걸작을 내놓았음에도 그리 알려진 작가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끼>가 다음에서 큰 히트를 친 것은 물론, 영화마저 인기를 끌며 기존 출판 작가도 웹툰 시장에서 재기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정확히 말하면 양영순도 출판만화 출신이지만, 웹에 워낙 빠르게 자리잡은 데다 물론 선구자 급이라 웹툰계에서의 그의 활동을 ‘재기’라 부르기는 힘들다.)
아쉽게도 이끼를 전후로 기존 유명 출판만화 작가들의 웹툰시장 진출은 계속됐으나 크게 인기를 끈 작품은 많지 않다. 그 중에 하나 의미 있는 성공은 인기 순정만화 작가 천계영의 2011년 작 <드레스 코드>일 것이다. 2009년부터 <예쁜 남자>를 통해 웹으로 거처를 옮긴 천계영은 이후 <드레스 코드>와 <좋아하면 울리는>을 연거푸 성공시키며, 순정만화도 얼마든지 웹에서 사랑 받을 수 있음을 증명했다.
‘만끽’에 약간의 부연설명을 하자면, 윤태호 작가의 섭외에서 알 수 있듯 출판 작가의 다리를 놓는 데에서는 원조격인 존재이다. 또한 <다세포소녀>의 작가 B급달궁을 프로데뷔시키는 등, 아마추어의 프로화에도 발빠르게 나섰다. 이들은 온라인 만화잡지를 내놓으며 만화잡지의 영광 시대를 다시 한 번 꿈꿨으나, 이미 작품별로 소비되던 시대를 이겨내지 못하고 1년 뒤 폐간된다.
그렇다고 만끽이 남긴 유산이 없는 건 아니다. 만끽은 마지막까지 잡지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있지 않을 정도로, 편집 시스템이 확립된 곳이었다. 당시 서울문화사 출신 황남용 만끽 편집장은 현재 만화가 에이전시 사업을 주도하는 ‘재담미디어’ 대표로 있다. 에이전시 사업은 만화가와 연재처 사이에서 만화의 완성도를 높이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 이는 작가 1인에게 큰 짐을 지우는 웹툰 시대에서도 큰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2008년: 충격과 공포, 야후의 등장
야후는 이미 2000년대 초반부터 그 영향력이 서서히 떨어지고 있었으며, 습관을 바꾸기 힘든 나이 든 분들이나 사용하는 서비스로 남아있었다. 하지만 야후코리아는 자회사인 오버추어가 돈을 충분히 벌어주고 있었기에, 언제든 재기를 꿈꿔왔다. 그리고 2008년, 웹툰을 통해 분위기를 반전시켜보고자 <야후! 카툰세상>을 런칭한다.
대개 후발주자들은 인기작이 없기에 고민에 빠진다. 여기에서 야후는 과감한 선택을 한다. 기존 웹툰 플랫폼에서는 담기 힘든 작품/작가들을 대거 영입한 것이다. 여기에는 당시 야후 웹툰 기획을 맡았고, 현재는 피키툰을 서비스하고 있는 ‘만화가족’ 김동우 대표의 덕력이 한몫 했다. 리스트만 들어도 무시무시한데, 무려 이말년 작가의 <이말년씨리즈>, 귀귀 작가의 <열혈초등학교>, 기안84의 <노병가>가 그 대표작이었다.
<이말년씨리즈>는 기승전병 구조를 통해 ‘병맛’이라는 컨셉을 전면에 내세운 입지전적인 작품으로, 이후 병맛 만화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기안84의 <노병가>는 암울한 군생활을 그대로 보여준 성인지향적 작품이었는데, 카연갤 연재 작품을 옮겼다는 데도 큰 의미가 있다.
하지만 야후 멸망 이전까지 한국 웹툰사에 가장 큰 임팩트를 남긴 작품은 역시 <열혈초등학교>라 해야 할 것이다. 대문짝하게 조선일보 1면을 장식한 바 있다. 물론 이는 웹툰을 문화콘텐츠로 받아들이지 않는 구시대적 시각이기도 했으나, 사실 학교 폭력을 희화화했다는 점에서, 더군다나 그 주 독자층이 초등학생이었다는 점에서(…) 이를 성인용으로 돌리지 않은 건 야후측에 책임을 물을 만 하다. 아무튼 야후 이야기 계속하면 슬프니 여기까지만.
2008년에 기념비적인 작품으로는 지강민 작가의 <와라! 편의점>이 있다. 작품 자체의 인기도 있었지만, 2009년 네이버에서 시작한 애니화는 이후 투니버스와 MBC 방영으로 이어졌다. 또한 2012년에는 네이버 앱스에서 소프트맥스를 통해 게임화되기도 했다. 이는 웹툰의 본격적 미디어믹스를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기타 이 해 출시된 웹툰 중 의미가 있는 작품이라면, wanan1 작가의 <어서오세요 305호에!>가 있다. 작품 자체도 좋지만, 성 소수자의 이야기가 대한민국 최대 포털 사이트에서 연재됐다는 사실만으로도 웹툰 시장에 다양성을 더했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그밖에 2008년에는 게임 <반지의 제왕>의 흥행을 위해 홍보성 웹툰이 네이버에 올랐었는데, 반응이 좋지는 못했다.
보너스2 : 네이버는 어떻게 다음을 눌렀나?
사실 2008년까지만 해도 다음 웹툰이 네이버에 밀리지 않았다. 물론 네이버도 <골방환상곡>이나 <마음의 소리>와 같은 인기작이 있었으나, 다음의 강풀 작가에 비하면 작품성은 물론 화제도에서도 크게 밀렸다. 그만큼 강풀은 웹툰을 상징하는 인물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다음을 네이버가 누를 수 있었던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먼저 검색을 통해 점유율을 확보했다. 2004년 지식인 서비스를 통해 처음 다음을 앞지른 네이버는 이후에도 카페 서비스, 검색 서비스 강화 등으로 다음과의 격차를 크게 벌렸고, 이는 고스란히 웹툰 트래픽으로도 이어졌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네이버 웹툰의 성공을 평가하기는 힘들다. 가장 큰 이유는 다음이 네이버에 비해 신경을 덜 썼기 때문이라 해야 할 것이다. 2008년까지도 다음 웹툰은 미디어다음 아래 ‘다음 만화속세상’이라는 카테고리에 속해 있던 반면, 네이버는 ‘네이버 웹툰’으로 서비스됐다. 이러한 인식의 차이는 도메인(cartoon.naver.com/cartoon.media.daum.net의 차이)에서도 드러난다.
뿐 아니라 다음은 앞서 좋은 시스템을 갖춰 놓고도 이를 제대로 발전시키지 못한 반면, 네이버는 오히려 다음이 구축해놓은 시스템을 받아들이는 한편 계속해서 발전시켜 이를 계승하는 데 성공했다. 흔히 네이버가 요일제를 정착시킨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 시작은 다음이었다. 웹툰을 좀 더 쉽게 보게끔 하는 리모콘도 마찬가지다. 차이가 있다면 다음은 그것을 만들어두고도 사람들이 찾기 힘들게 배치한 반면, 네이버는 이를 깨끗하게 해결했다.
편집자들 또한 다르게 움직였다. 다음은 넥스트 강풀을 찾고자 했다. 강도하는 한때 그 지위를 위협했으나 롱런하지는 못했다. 윤태호는 이미 대세가 네이버로 흐르고 난 후에 이름을 떨쳤다. 반면 네이버의 편집자들은 특정 작가에 의존하지 않고 고객성향 메트릭스를 정확히 그려 매일 다양한 소비자를 만족시킬 수 있도록 하는 데 힘을 쏟았다.
마지막으로 네이버의 ‘계량화’ 역시 이 싸움에 큰 영향을 미쳤다. 다음은 기성작가, 긴 스토리 만화, 여성독자가 많은 상황이었다. 이에 네이버는 다음의 우위를 인정하고 맞불전략을 피하고 틈새전략을 핀다. 신예작가, 에피소드 만화, 10대 타겟 등 기존에 비어 있던 영역을 개척하며 시장을 넓혀나간다. 지금도 네이버는 자신들에게 비어 있는 영역의 작가를 우선 섭외하는 전략을 고수하고 있다.
결국 이런 격차는 네이버와 다음의 격차를 계속해서 벌어지게 했고, 지금까지도 그 차이는 좁혀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소수 작품의 작품성에 있어서는 ‘여전히 다음’이라는 말을 듣고 있기에 아직 승부가 끝났다고 보기는 힘든 상황이다.
2009년: SK 툰도시의 등장, 그리고 네이트
2009년에는 SK에서 <툰도시>라는 서비스를 내놓았다. 오프라인 잡지를 온라인에서 고화질로 제공하는 데 초점을 맞췄으나, 남들이 ‘웹’과 ‘무료’에 초점을 맞추는 상황에서 ‘오프라인을 웹으로 옮기는 작업’은 그다지 성공적이지 않았다. 네이버, 다음 등은 이미 두 가지 모델을 병행하다 시장 상황에 맞춰 웹툰으로 무게중심을 옮긴 상태였다. 또한 오프라인 서적은 미스터블루 등이 성공적으로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상태였다.
SK는 이후에도 계속해서 좀 삽질을 하는데 2009년에는 <비트>, <민트>라는 온라인 만화잡지를 창간한다. SK는 이를 활성화하기 위해 휴대전화, IPTV 등으로도 만화를 볼 수 있게 하는 등 자사가 보유한 플랫폼을 활용하고자 했으나, IPTV 유료결제는 물론 스마트폰조차 대중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는 효과를 보지 못했다. 일본의 경우 휴대폰으로 보는 만화가 어느 정도 자리잡혔었다고 하나, 일본 휴대폰의 화면이 타 국가들에 비해 훨씬 컸기에 가능했다. 그리고 사실 일본조차도 온라인 만화 시장은 출판만화 시장에 비할 바가 못 됐다.
SK가 웹으로 그 중심을 옮긴 것은 이미 네이버와 다음이 완전히 시장을 장악한 2012년이었다. 그러나 이미 많은 인기 작가들이 네이버와 다음에 둥지를 트고 있었으며, 야후처럼 새로운 웹툰 작가를 인기작가로 발굴하는 데도 실패했다. 심지어 계약사항이 어떻게 됐는지, 다수의 종료 만화가 “서비스가 종료된 만화입니다”라는 메시지가 뜰 뿐이다.
그래도 웹툰사에 SK가 가지는 의의가 있다면, 마사토끼의 웹툰 진출이다. 마사토끼는 미스터리와 스릴러를 흥미진진하게 구성하는 능력을 바탕으로 블로그에 콘티처럼 짜둔 <킬더킹>이 독자만화대상 온라인만화상을 수상하며, 이를 바탕으로 <누가 울새를 죽였나>와 <카스텔라 레시피>를 ‘부킹’에 연재한 적이 있었지만, 웹툰 진출은 네이트의 <2인실>이 최초였다. 이를 통해 마사토끼는 스토리 작가도 웹툰을 이끌어나갈 수 있음을 보여줬다.
또한 2009년은 웹툰 작가들의 조합 ‘누룩미디어’가 탄생한 해이기도 하다. 만화 에이전시는 이미 출판물 시대부터 존재했고 웹툰 시대에는 한국데이터하우스, Y랩 등이 대표적이었다. 하지만 누룩미디어는 강풀, 윤태호, 주호민 등 기존 인기 작가들이 직접 주도해 시작했다는 의미가 있다. 비인기 작가들은 조합을 만들더라도 실질적으로 판권계약 등에서 불리한 조건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처지였으나, 인기 작가들은 공정계약을 이끌어내기 쉬웠기 때문이다. 이런 시스템의 등장은 연재처에는 작가관리와 품질보증을, 작가에게는 협상력과 기획력을 가져다주며 웹툰 시장을 점점 더 안정적으로 꾸려가는 데 기여했다.
2010년~2011년: 더욱 깊어지고 다양해지는 웹툰의 세계
2010년과 2011년은 큰 의미가 있는 플랫폼이 등장한 해는 아니다. 하지만 커지고 있는 웹툰 시장에 걸맞게 장르가 더욱 다양해지고 내용에도 깊이가 생겨나기 시작한 해였다. 이를 대표하는 네 개의 작품이 순끼 작가의 <치즈인더트랩>과 주호민 작가의 <신과 함께>, 곽백수 작가의 <가우스 전자>, 네온비&캐러멜 작가의 <다이어터>다.
흔히 ‘치인트’라 불리는 <치즈인더트랩>은, 웹툰 영역에서 순정 밀땅물로 메가히트를 쳤다는 것만으로도 그 가치를 높게 평가할만 하다. 고전적인 캐릭터의 대립과 장르적 클리셰로 웹툰에서도 성공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달달한 연출과 더불어 현실적 묘사를 극한으로 보여준 순끼 작가의 역량이 한몫 했다.
주호민 작가의 <신과 함께>는 많은 역사적, 문헌적 고증을 거친 작품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무한동력>으로 이미 휴머니즘적인 작품세계를 보여준 바 있는 주호민은 <신과 함께>에서 한국의 설화들을 웹툰으로 풀어내며 웹툰도 얼마든지 깊이를 갖출 수 있음을 보여주는 데 성공했다.
곽백수 작가의 <가우스 전자>는 직장인의 삶을 굉장히 잘 드러낸 만화라는 점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물론 이전에도 강주배 작가의 <무대리>와 박성훈 작가의 <괜찮아! 달마과장>과 같은 직장 일상물은 존재했지만, 직장인이 겪는 애환을 시대에 잘 맞는 에피소드로 풀어내며 웹툰의 형태로 도입시켰다는 점에서 가치가 높다.
<다이어터>는 웹툰과 실용서를 접목시키는 데 성공한 작품이다. 물론 다이어트와 만화를 접목시킨 케이스는 많았으나, 웹툰을 통해 지식과 스토리를 유기적으로 결합시켜 대히트 시킨 사례는 사실상 처음이라 할 만하다. 실용적 지식을 엮은 만큼 ‘웹툰은 출판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공식을 깨고, 10만 부 이상의 단행본 판매량을 기록하기도 했다.
또한 <마조앤새디>의 연재 역시 의미를 갖는다. 과거에도 기업들이 작가에게 의뢰하여 브랜드 웹툰을 그리는 경우는 있었으나, 주로 직접적인 기업 홍보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고 단타성 기획인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인텔에서 <마린블루스>로 이름을 떨친 정철연 작가를 영입, 자사 페이지에서 후원 형식으로 연재하도록 했던 <마조앤새디>의 경우, 기업과 작가의 콜라보레이션 장을 열어냈다는 점이 평가할 만하다.
2012년: 부분유료화의 시작과 해외진출의 시작
여기서부터는 개별 작품을 언급하기가 무척이나 힘들어진다. 훌륭한 작품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야말로 웹툰이 쏟아져나오는 시대로 진입하기 때문이다. 카카오톡이 <오늘의 웹툰> 서비스를 시작했으나, 기존 작품을 그대로 가져오는 게 많아 큰 재미는 보지 못했다. 하지만 카카오페이지 전면 개편 후에는 돈을 쓸어담고 있는 걸 볼 때, 역시 플랫폼이 깡패라는 인터넷 격언은 거짓이 아닌 듯하다.
이 해에 있었던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는 유료화이다. 그간 웹툰은 계속해서 무료로 공급됐다. 물론 유료 사이트도 있었지만 규모상 포털과 비할 바가 아니었고, 다수의 작가들은 드라마∙영화화 등으로 2차 판권 수익을 기대하는 것 외에는 별 다른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다음에서 연재 종료 후 작가와의 협의에 따라 작품을 유료화했고, 구매 수익의 90%를 작가에게 돌려주는 방식을 채택했다.
사실 초기에 무료로 풀다가 일정 시간이 지나면 유료로 전환하는 모델의 시작은 2010년 툰도시였다. 툰도시에서는 이현세 작가의 <비정시공>과 <레드파탈>로 유료 전환 전에 무료로 볼 수 있게 하는 모델을 도입했다. 심지어 유료 전환이 1주일 단위였으니 레진코믹스보다도 앞선 결과물이다. 하지만 플랫폼이 워낙 알려지지 않아 조용히 묻혔다. (…) 여기서도 플랫폼이 깡패라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심지어 다음에서도 2011년 이미 허영만 작가의 <말에서 내리지 않는 무사>를 연재종료 후 유료전환한 바 있다. 이후에도 다음은 몇몇 작품을 유료화했는데, 이것이 2012년으로 알려진 이유는 강풀 작가 덕택이다(…) 앞서 언급한 작품들은 웹에서 큰 인기를 끌지 못했기에 유료화가 큰 이슈가 되지 않았으나, 인기 작가 강풀의 <조명가게>를 비롯한 이전 모든 작품들이 유료화되며 유료화 모델이 본격적으로 시험대에 올랐다. 결과는 성공적이었고, 유료화도 돈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이 잡히기 시작했다.
그밖에도 2012년에는 몇 가지 기억할 만한 사건이 있었는데, 먼저 타파스미디어의 발족이다. 타파스미디어는 무료 웹툰 플랫폼으로 해외 시장부터 공략한 첫 번째 사례다. 태터앤컴퍼니를 구글에 매각하는 데 성공한 김창원 대표가 SK플래닛, 500 Startups, 스트롱 벤처스 등의 투자를 받으며 주목을 받았다.
또 하나 주목을 받은 작품은 <한복이 너무해>다. 이 작품은 공식 트위터 계정 중 높은 드립력을 보유한 한국민속촌과 대검찰청 대변인을 엮은 만화로, 순수하게 팬들에 의해 창작이 시작돼 연재로까지 이어졌다는 의미가 있다. 물론 그 엄청난 의미에 비해 만화는 별로 인기가 없는 것 같다.
2013년: 웹툰 플랫폼의 군웅할거
수년 전부터 조짐을 보였던 웹툰 시장은 2013년 들어 폭발적인 성장을 기록한다. 이때는 대형 플랫폼만 3개가 등장했는데 티스토어 웹툰, 올레 웹툰, 레진코믹스가 그것이다. 이 중 티스토어 웹툰은 그다지 큰 인기를 끌지 못하고, 2015년 말 현재 일 3개의 웹툰만이 업데이트 되는 상태다. 하지만 나머지 둘은 어느 정도 반향을 일으키는데 성공한다.
올레 웹툰은 처음부터 포털과는 경쟁이 되지 않을 거라 생각, 자사의 플랫폼 파워를 활용하여 2차 판권을 염두하고 작품을 배치한다. 이 중 <냄새를 보는 소녀>는 드라마화에 성공했으며, <바람소리>, <모범택시>, <당신의 하우스 헬퍼> 역시 영상화가 추진 중이다. 다만, 최근 웹툰 영상화 경향을 볼 때 원 소스 멀티 유즈의 가능성이 있어보이는 작품의 경우 연재 초기에 시나리오 판권 계약이 이뤄지는지라 그렇지 못했던 저 작품들의 영상화를 확신하기는 힘들다.
큰 관심을 받지는 못했지만, 올레웹툰 담당자 서승진 차장이 드라이브를 걸며 작품성과 개성을 내세운 매력적인 작품들로 어필하는 데도 성공한다. 암환자의 고통을 묘사한 김보통 작가의 <아만자>, 생활툰 중에서도 평범한 2030 세대의 경험을 잘 표현해낸 <즐거우리 우리네인생>, 피터팬의 설정을 빌려 피해자와 가해자의 상황을 뒤집은 <팬피터>, 주호민의 육아만화 <셋이서 쑥!> 등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레진코믹스의 등장은 웹툰계에 큰 활력을 불어넣는다. 만화는 돈을 주고 봐야 한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던 한희성 대표는 SK가 말아먹었던(…) 부분유료화를 적용시키는 데 성공한다. 웹툰은 무료라는 인식이 강고하지만, ‘사용자에게 편의와 프리미엄급 가치를 제공할 수 있다면 이용자들의 지갑을 여는 일이 불가능하지 않으리’란 예상이 적중했던 것이다.
그밖에도 레진은 포털 웹툰에선 많은 이용자를 상대하는 탓에 자제할 수밖에 없었던 표현의 수위를 높이며 SNS를 활발히 사용해 작가와 독자를 동시에 공략하는 등 의미있는 결과 역시 끌어냈다. 덕택에 그간 네이버 베스트도전 코너에 인기작들을 연재하던 작가들을 대거 섭외, 수익모델까지 연결시키는 데 성공했다.
레진코믹스와 함께 등장한 웹툰사의 의미 있는 작품이 둘 있다. 하나는 네온비 작가의 <나쁜 상사>다. <나쁜 상사>는 기존 웹툰 작가들이 자신의 능력을 통해 성인물에서도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음을 보여준 작품이다. 현재까지 작가가 가져간 수익만 약 4억에 달한다. 포털 이외의 플랫폼에서도 얼마든지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킨 기념비적인 웹툰이다.
하지만 더욱 기념비적인 작품은 은야 작가의 <나인틴>이다. 그간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돌아다니는 이야기를 만화화하며 엄청난 인기를 끌며 ‘썰만화’로 불리던 이 작품은, 엄청난 몰입도의 ‘꼴릿함’을 선사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작가의 일베 활동이 문제가 되기도 했으나, 연재 후 단 6개월만에 3억 매출을 기록하며 화제가 됐다. 뿐만 아니라 이후 생겨나는 타 웹툰 사이트에 ‘썰만화’라는 장르를 마구잡이로 양산하며, 사실상 성인웹툰 수입에 의존하는 많은 유료 웹툰 사이트들의 아버지가 되기도 했다.
이에 앞서 네이버는 작가들의 수익강화를 위해 창작자 수익 다각화 모델인 PPS를 내민다. 이는 다음에 이어 웹툰 유료화 전환은 물론, 웹툰 페이지 내 배너, 웹툰을 기반으로 한 캐릭터 상품 판매 등을 연계하는 프로그램으로 인기작가의 수익을 올리는데 큰 도움이 됐다. 또한 네이버는 한화케미컬의 의뢰 하 <연봉신>이라는 브랜드 웹툰을 연재함으로, 웹툰이 포털과 기업을 잇는 홍보 아이템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기도 했다.
보너스 3: 빠른 성장의 부작용: 팝픽 사태와 키위툰
2000년대 중반부터 인기 웹툰 작가는 아이들의 롤 모델이 됐다. 이렇게 성공적으로 나아가는 듯한 웹툰계였으나, 빠른 성장은 문제를 낳기도 했다. 플랫폼과 작가는 늘어났지만 ‘현금화’를 이룬 곳은 많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양이 질로 전환되지 못하며 일종의 과도기가 펼쳐졌다. 실제, 2010년대 초반까지도 일부 작품을 제외하면 원고료가 높지 않았다.
이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두 가지 사건이 2013년에 일어난 팝픽 사태와 키위툰 사태이다. 팝픽 사태는 엄밀히 말하면 웹툰이 아닌 일러스트 쪽에서 일어난 일이다. 웹툰이야 한국에서 시작하고 세계로 뻗어가지 못한 상태였으나, 한국의 일러스트는 온라인 게임 등을 통해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었다. 하지만 팝픽은 이를 악용, 아카데미라는 이름 하에 배우는 학생들에게 돈을 받고 노동력으로 사용하는 것은 물론, 전문가가 해야 할 일을 학생에게 맡기는 방식으로 부당 이익을 취했다.
키위툰은 웹툰 작가와의 불공정 계약으로 이슈가 됐다. 작품의 저작권을 작가가 아닌 회사가 가져가며, 광고 수익도 회사가 가져가고, 심지어 연재를 중단할 경우 고료를 받지 않는다는 조건 하 완결을 내야만 했다. 이에 작가들은 항의 성명서를 발표했고, 기존 작가들과 팬들의 도움 하에 계약해지까지 갈 수 있었다.
이런 사태를 계기로 메이저 연재처의 최저 수당이 상당히 올랐으며, 신규 사업자들 역시 무조건 후려치지 않고 어느 정도 생활이 가능한 수준의 원고료를 제시하게 됐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만화계의 수급 불균형 문제는 여전하여 이를 악용한 일들이 암암리에 자행되고 있다.
2014년: 플랫폼의 난립, 본격 해외로의 도전
레진코믹스의 성공은 엄청나게 많은 웹툰 플랫폼을 낳게 했다. 그리고 그들은 레진코믹스의 상당 수익이 성인물에서 나는 데에 착안, 성인만화를 확보∙발행하는 데 주력했다. 하지만 그 중 최고의 승자로 남은 회사는 단연 ‘탑툰’이다.
초기 탑툰은 초기 엄청난 노이즈 마케팅으로 문제가 됐다. 게시글 도매, 검색어 조작, 댓글 동원(국정원이냐…) 등으로 많은 비판을 받았다. 어쨌거나 그들은 살아남았다. 원래 웹하드 업체를 모태로 한 이들에게는 크게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일찍부터 웹하드는 욕을 먹더라도 성인만화와 에로영화에 돈을 쓰는, IT와 친하지 않은 이들을 주 타겟으로 수익을 올려 왔다. 이제 그 대상과 콘텐츠가 모바일과 성인 웹툰으로 옮겨온 것뿐이다.
탑툰은 레진코믹스의 성공 요인 중 하나였던 성애 만화에 집중해 엄청난 매출을 올리는 한편 웹툰 플랫폼의 새로운 길을 제시했다. 비록 댓글 마케팅 논란과 성인 만화로 인해 여러 부정적 이미지를 쌓았지만, “작가가 우리는 못 믿지만 우리가 주는 돈은 믿더라”는 대표 인터뷰는 타 웹툰 플랫폼이 가져야 할 자세(…)에 대해 일깨워 주기도 했다.
2014년은 또한 웹툰 글로벌화가 적극 진행된 원년이기도 하다. 이미 이전부터 한국의 웹툰은 에이전시를 통해, 더 크게는 불법 번역을 통해(…) 해외에서 어느 정도 인지도를 얻고 있었다. 이에 두 개의 대형 사업자가 나서는데 네이버와 NHN엔터테인먼트가 그들이다.
네이버는 일본을 비롯해 세계적으로 성공한 라인을 기반으로 ‘라인 웹툰’을 선보였다. 현재 연재되고 있는 작품은 물론, 연재종료한 작품들도 외국어로 번역되어 해외에서 인기를 누리고 있다. 영어뿐 아니라 인도네시아어, 중국어로도 제공되는 라인 웹툰은 최근 뷰티 전문 유투버 미셸 판의 웹툰을 유치하고, 마블의 만화가 스탠 리가 운영하는 ‘파우! 엔터테인먼트’와 제휴를 맺으며 시장 확대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NHN엔터테인먼트는 네이버와는 다른 방식에서 접근한다. 트래픽을 끌고 오기 위해 무료로 웹툰을 시작한 네이버와 달리, 한게임을 운영하던 NHN 엔터테인먼트는 부분 유료화를 내세운다. 또 기존 한국 웹툰을 활용하기보다 일본에서 현지화를 진행, 작가는 물론 편집진들도 일본 현업에서 일하는 이들로 구성하여 일본에서 1천만 이상 다운로드와 유료화를 이뤄내는 데 성공한다. 이 중 <리라이프>는 단행본으로만 100만 권이 나갈 정도의 인기를 누렸다.
한편, 2014년은 모바일과 기술의 진화에 걸맞게 다양한 웹툰의 진화가 시작된 한해이기도 하다. 네이버에서는 피키캐스트의 흐름을 본따 ‘컷툰’을 선보였다. 기존 ‘스마트툰’에서도 각 컷마다 줌인, 줌아웃, 소리 등 연출이 가능했으나, 컷툰에서는 각 컷당 댓글을 달 수 있는 기능이 추가됐다. 하지만 정작 다음 컷을 스포일러하는 용도로 주로 쓰이고 있다(…)
다음에서는 스토리볼을 통해 ‘무빙툰’ 을 선보였다. 기존 웹툰에서도 어느 정도 움직임은 들어갔으나, 는 마치 애니메이션처럼 효과음, 음성 등을 넣어 영상화, 생동감을 더했다. 공포물에 아주 잘 어울리는 연출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2015년: 어마어마한 팽창, 버블인가 성장인가?
2015년 들어서 웹툰 시장은 계속해서 팽창하고 있다. 이들 중 가장 주목 받는 플랫폼은 ‘피키캐스트’의 서비스 ‘피키툰’이다. 피키캐스트 2.0에 발맞춰 등장한 피키툰은 플랫폼 파워와 자금을 바탕으로 마인드C, 이말년, 주호민, 이상신-국중록 콤비 등 유명 만화가를 다수 영입하며 인기를 얻고 있다.
서울문화사의 ‘빅툰’은 기존 출판만화를 전면에 내세우며 웹툰 시장에 뛰어들었다. <드래곤볼>, <블리치>, <명탐정 코난> 등 자사가 유통권을 가지고 있는 만화를 대거 포진시킴은 물론, 여기에 성인 웹툰을 더해 결제율을 높이려 노력 중이다. 출판만화가 온라인으로 도전하는 것은 20년 전부터 있어온 시도지만, 처음으로 3대 만화 출판사가 직접 플랫폼을 만들었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
특정 분야에 집중한 니치 웹툰 서비스들도 눈에 띈다. 2014년 게임 전문 웹툰 서비스 ‘배틀코믹스’의 등장에 이어 2015년에는 BL 전문 웹툰 서비스 ‘만두코믹스’가 문을 열었다. BL은 그간 음성화된 영역으로 여겨졌지만 음성화된 영역으로 남아 있었기에 시장 사이즈는 크지 않았다.
만두코믹스는 이런 좁은 BL 시장의 니치마켓을 파고 들어가, 이미 100여종의 BL 만화를 서비스하고 있다. 출판사 ‘현대진흥개발사’는 BL만화만으로 만화도서 시장에서 4위를 하고 있을만큼 시장이 작지 않은 BL시장이지만, 아직까지 성인동에서 도는 수준으로 금기시된 BL시장이 만두코믹스를 통해, 열릴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2016: 그리고 그 이후
겉으로 웹툰 시장은 끝을 모르고 성장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 업계 종사자들에게 문의한 결과 우려가 훨씬 컸다. 이미 시장 사이즈에 비해 비정상적으로 많은 투자가 이뤄지고 있고, 해외진출은 생각보다 어렵다는 이야기들이었다. 매출이 나오고는 있지만, 대다수가 성인물에서 나오고 있다는 한계도 뚜렷하다. 여기에 여전히 대부분의 웹툰 이용자들은 포털의 무료 웹툰만을 이용한다는 한계는, 여전히 현 웹툰시장의 커다란 약점이다.
요약하면, 현재 한국의 웹툰 시장은 표면적으로 엄청나게 성장했으나 여전히 많은 문제점이 남아 있다. 기대를 걸었던 해외는 쉽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한국에서 인기를 끄는 웹툰은 상당히 한국적 색채가 강해서 잘 먹히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처럼 대형 유통사의 힘을 빌려 블록버스터로 나아갈 수도 없고, 일본처럼 전문 편집자의 도움도 얻기 힘들다. 이를 극복할 수 있는 것은 매출이지만, 많은 현업 종사자는 탈출구를 찾기 힘들다 말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웹툰을 즐기는 전체 사용자 수와 유료 사용자 비율은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웹툰 붐을 타고 신인 작가 유입 역시 아직까진 왕성한 편이다. 쉽지 않겠지만, 2016년 이후에도 꾸준히 설립될 웹툰 플랫폼들이 작품뿐만 아니라 시장 개척과 전략에 집중하여 이 상승세를 이어가길 바랄 뿐이다.
이 콘텐츠는 BL 전문 웹툰 서비스 만두코믹스의 지원으로 제작됐습니다. 도움 주신 만두코믹스와 감수자 분들께 감사 드립니다.
감수자: 김낙호(만화 연구자), 박인하(청강대 교수), 노모뎀(흔한 오타쿠), 박석환(한국영상대학교 교수), 이현석(한일 만화 편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