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문화콘텐츠에 돈 쓰는 건 결국 여성: 한 문장으로 시작한 창업
리: 간단하게 자기 소개를 부탁한다.
고: BL전문 웹툰 플랫폼 만두코믹스 대표 고정곤이라고 한다.
리: 어쩌다 처음 회사가 생겨났나?
고: 회사를 다니며 작년 9월부터 준비를 했다. 그리고 6개월이 지난 올해 3월, 각자 하던 일을 정리하고 창업했다.
리: 그런 것 치고는 서비스가 너무 빨리 나왔다.
고: 이미 기획이 어느 정도 완성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3개월 동안 개발과 영업을 진행하다 7월 20일 오픈했다.
리: 원래는 어떤 일을 했나?
고: 원래 나는 YBM에 있었다. 그러다 YBM과 영풍문고가 합작한 법인, y2books에서 부사장을 만났다. 그때 같이 전자책 포털 사업을 진행하다 의기투합했다.
리: 교육, 서점… 둘 다 사양사업인데 묘하게 합친 감이 있다.
고: YBM은 출판, 영풍문고는 서점이고 또 앞으로는 전자책이 뜰 거라는 기대도 있었다. 실제로 당장의 매출과 성장도 나쁘지 않았지만, 최종적으로는 교과서 시장까지 고려한 사업이었다. 일반인들은 잘 모르지만, 전자교과서 시장이 열린다면 일반 전자책 사업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의 규모가 펼쳐진다. 또 YBM이 토익 판권을 가지고 있으니, 이를 전자책으로 확장하고자 하는 측면도 있었고… 한마디로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모두를 석권하자는 취지가 있었다.
리: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국정교과서를 내놓겠다 하지 않나?
고: YBM은 역사교과서를 만들지 않아서(…)
리: 학습지 전자책 수요는 별로였나?
고: 그렇게 크지는 않았다. 사실 교육 사업은 기업이 아닌 정부가 움직이는 사업이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 정책이나 시책이 뒤따라야 한다.
리: 그래서 사업이 망하고, 창업을 결심하게 된 건가?
고: 전자책 사업은 괜찮았다. 특히 장르소설, 장르문학이 많은 판매량을 차지했다. 그것 때문에 이쪽이 좀 전망이 있겠다 생각했다. 특히 여성들의 문화콘텐츠 소비력이 크다는 것에서 기회를 보고 사업기획에 들어갔다.
리: 일반 도서는 전자책으로 별로 안 팔린단 말인가?
고: 안 팔린다는 것이 아니라 장르문학보다 매출이 적다는 이야기다. 그나마 일반 도서는 이벤트가 버텨 줬지만, 그것도 도서정가제 진행하면서 거의 평준화로 향하고 있다. 그럼에도 장르 쪽은 꾸준히 매출이 나왔다. 니치마켓이 결코 규모가 작지 않았던 것이다.
2. 알고 보면 마르지 않는 대형 시장 BL
리: 그래서 바로 BL로 들어간 건가?
고: 사실 처음에는 BL이 뭔지도, 아니… 있는지도 몰랐다.
리: ……
고: 처음에는 그저 여성이 문화콘텐츠 소비에 돈을 아끼지 않는다는 명제 하나에서 시작했다. 그런데 여성들이 단순히 로맨스에 그치지 않고, 성인 콘텐츠에도 생각보다 관대하고 투자를 많이 하더라. 그렇게 BL을 알게 됐다.
리: 그 오묘한 야시시를 접하니 기분이 어떻던가?
고: 처음에는 정서적으로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고… 그래서 시장 분석에만 집중했다. 그런데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지, 독자층이 두꺼운 시장이 형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정작, BL을 주력 콘텐츠로 플랫폼 뛰어든 이들은 많지 않았다.
리: 조아라를 비롯해 이미 사업자가 있지 않은가?
고: BL 소설 플랫폼은 많이 있다. 조아라뿐 아니라 리디북스, 북팔에서도 상당한 매출이 일어나고 있다. 그런데 정작 웹툰은 비어 있었다. 웹툰에서 주로 매출을 내는 아이템은 레진코믹스의 화양연화 이후 유행한 썰만화 류의 남성향 콘텐츠가 대부분이다. 후발 주자들이 너도나도 그런 만화를 내놓으며 유료 웹툰을 형성했다. 그런데 콘텐츠 소비층은 주로 여성들이고, 또 돈 쓰는 이들도 여성 중심이지 않나. 그래서 BL과 웹툰을 접목시키면 사업성이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리: 나도 한 때 여성향 콘텐츠로 승부하는 ㄴㄴㅅㅅ(남남섹스)라는 사이트를 꿈꿨던 적이 있다. 그런데 그들 사회가 너무 폐쇄적이라 시장조사도 힘들더라.
고: 그래도 우리는 하던 일이 있다 보니 출판 쪽이나 콘텐츠 쪽 사람들을 통해 어느 정도 정보를 받을 수 있었다. BL 시장을 조사하며 놀라웠던 건, 의외로 BL을 일반적인, 평범한 여성들이 많이 보더라. 가정주부, 여대생, 중고등학생… BL은 소수가 즐기는 매니악한 콘텐츠가 아니라 의외로 평범한 사람들이 즐기는 콘텐츠였던 것이다. 그래서 시장이 충분하다 생각하고 컨셉을 BL 웹툰으로 잡게 됐다.
리: 하지만 다양한 계층이 즐긴다고, 그것이 시장이 크다는 건 아니지 않나?
고: 조사해 보니 놀라울 정도로 컸다. ‘현대지능개발사’라는 곳이 있는데, 여기가 오직 BL 만화만 출판하는 회사다. 콘텐츠진흥원의 만화산업백서를 보면, 국내 만화 출판 회사 중 대원, 학산, 서울에 이어 BL물 만으로 4위를 하고 있다.
리: 4위?
고: 2012년 자료인데, 그 해만 그런 게 아니라 5~6년 간 계속 그랬다. 1000억대 시장에다가 순위가 계속 올라갔더라.
리: 대본소 물량 때문 아닐까?
고: 일반 만화에 비하면 대본소 물량은 적은 편일 거다. 영풍, 교보 등을 잘 뒤져 보면 전문 코너가 있다. 많이 팔리는 건 2만 종 이상 팔리고, 평균 2500권씩 나간다. 사실 그간 만화 출판물 시장이 많이 죽지 않았나? 그런데도 BL은 죽지 않고 남아 있으니 상대적으로 점유율이 높아지고 있다.
리: BL은 쓰는 돈이 줄지 않는 마르지 않는 시장이다?
고: 독자 대체도. 중고등 때 처음 잘 접한다. 그 친구들이 성인이 되고 그러면 시장이 죽는 게 아니라 중고등학생들이 이 시장을 대체하는 것이다. 이게 팬픽하고 유사한 점이 있다 보니, 팬덤 문화를 통해 꾸준히 문화 콘텐츠로 꾸준히 유지된다. 실제로 다른 플랫폼에서 연재하는 BL 만화의 경우 독자층이 HOT 세대 아주머니들이 많다 하더라. 비록 더 이상 팬으로 남아있지는 않아도, 그 문화에 대해 추억이 남아있는 거다.
리: 그 정도 대형 출판사라면 독자적으로 사업을 해도 되지 않나?
고: 플랫폼 사업자와 출판업은 영역이 다르다. 그래서 영풍문고와 YBM도 협업을 했던 거고. 만약 플랫폼 사업자가 출판까지 함께 하려 하면, 타 출판업자들은 콘텐츠를 내놓지 않는다. 과거에는 그런 예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두 영역이 명확히 구분돼 있다. 업계가 좁아서 암암리에 상도덕도 강한 편이다.
리: 하지만 BL 관련 사업자가 많지 않다는 건, 그만큼 진입 장벽이 있다는 이야기일 것 같다.
고: 그게 정말 쉽지 않다. 예로 그나마 알려진 ‘성인동’ 같은 경우는 특정 해당 기간 동안에만 가입이 된다. 그조차도 운전면허증 등 신분증을 얼굴에 대고 인증해야 한다. 우리도 좀 운이 좋게 그쪽에 접선이 돼서 다행이지, 아니었으면 훨씬 더 헤맸을 거다.
리: 음지라서 장사가 힘들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던가?
고: 오히려 더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고 싶은데 볼 데가 없으니 개인정보를 넘길 수밖에 없는데, 그 개인정보는 어떻게 관리하나? 애초에 BL이 대중성이 있는데, 이렇게 음지에 있는 것도 문제라 생각했다. 길티 플레저야 있겠으나, BL이 다 성인용인 것도 아니고. 애초에 취미는 취미일 뿐이지 않나.
리: 그런데 출판만화가 계속 팔리는 것도 신기하다. 그것도 성인만화처럼 마음껏 드러내놓고 볼 수 있는 게 아니지 않나.
고: 확실히 혼자 있는 공간이야 마음껏 즐길 수 있지만, BL이 동성애를 다루다 보니까 친한 친구나 매니아들 사이 외에는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래도 어떻게든 보기 위해 북 커버를 사용하거나(…)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면 표지만 보고 BL인지 아닌지도 알 수 없으니까.
리: 무엇 때문에 BL이 이렇게 계속 팔릴까?
고: 처음에는 거부감이 엄청났지만… BL 만화를 보다 보면 확실히 틀린 게 남성향 성인만화와 달리 스토리가 있다. 물론 남성향 성인만화도 훌륭한 작품들이 많지만, 시장에서 돈 버는 다수 작품들은 오직 벗기는 걸 보는 게 목적이지 않나. 그런데 BL은 비록 그런 부분은 뽕빨스러울 수 있지만… 장르마다 무엇을 중시하는지의 차이가 있지만, 기승전결이나 메시지가 충실한 편이다. 남자 중 하나를 여자로 바꾼다면, 남자가 봐도 내용이 좋다 느낄 작품들이 많다.
3. 결코 녹록지 않았던 남자들의 BL시장 진입
리: 요즘 웹툰 시장은 아주 비용 경쟁이 엄청나다. 비용 부담은 가능한 수준이었나?
고: 맞다. 웹툰이 무형의 콘텐츠이긴 하지만 사실 많은 비용을 투자해야 한다. 수익을 실현하기까지 지속적으로 돈이 들어가야 하니까. 또 한 가지만 잘해서는 이익을 실현하기도 힘들다. 마케팅도 따라야 하고, 작품도 좋아야 하고, 플랫폼 설계도 잘 해야 하고… 그래도 어느 정도 자신감을 가지고 출발한 건, 여성 독자의 힘을 믿어서였다.
리: 여자가 콘텐츠에 돈 잘 쓰는 건 그냥 당연한 상식 아닌가?
고: 여성의 콘텐츠 소비 양식이 남성과 좀 다르다. 남자는 성인물 봐도 내가 집에서 무슨 야동을 보고 야만화를 봤는지 추천하거나 하지는 않지 않나.
리: 나는 하는데(…)
고: 아무튼(…) 여자들은 그런 면에서 좀 적극성이 있다. 본인이 보고 괜찮다 생각하면, 좀 민망해도 주변 친구들에게 추천하고, 나중에는 같이 서점 가서 구매도 한다. 그래서 남성향 콘텐츠에 비해 여성향 콘텐츠는, 그 질만 좋으면 어떻게든 이익을 실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사실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을 뿐, BL 좋아하고 BL 작가가 되고 싶어하고, 실제로 작가가 된 사람들마저 꽤 있다. 좋은 작품을 만들면 독자들이 알아서 마케터가 될 거라 본 것이다.
리: 실제로 그렇게 진행 되던가?
고: 꿈은 크지만 현실은 시궁창이야… 창업에서 겪는 뻔한 이야기이지 않나?
리: 사업을 진행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이: 여느 창업자나 그렇겠지만 일단은 돈이다. 사재로 창업하고 정부지원금을 받았지만, 아무래도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지인들 도움으로 서버 비용도 저렴하게 임대 받았고, 사무실도 쉐어해주신 분이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넉넉한 건 아니라… 사실 지금 몇 군데 투자처와 이야기는 하고 있다. 하지만 그게 통장에 돈이 꽂혀 투자지, 아니면 뭐…
리: 돈 외에는 어떤 문제가 있었나?
고: 플랫폼 업체들이 너무 많이 생기고 있다는 점이다. 처음에 연락할 때는 만남을 피하더라.
리: 작다고 무시하는 건가?
고: 플랫폼 업체에서 연락이 너무 많이 오니까. 웹툰 플랫폼이 최근 2~3년 사이에 30여개가 생기고 망하고를 반복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경계를 많이 했다. 억지로 일단 만나서 여성 대상으로 성인 사이트를 만들고, 전략적으로 BL 만화를 전면에 내세우겠다고 하니 의견이 좀 갈리더라.
리: 그래도 미팅도 가지고, 순탄하게 영업이 된 것 같다.
고: 만나도 마찬가지인 게, 우리 목적은 작품을 받는 거다. 그런데 작가들 입장에서는 그간 망했던 곳이 워낙 많아서 못 믿겠으니, 홈페이지와 플랫폼을 다 만들고 이야기하자고 한다. 이게 어려운 게 뭐냐면 오픈해 봐야 홈페이지에 알맹이가 없지 않나. 그렇게 닭과 달걀 중 무엇이 먼저인지 모순된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몇 달 간 사발팡방 돌아다니면서 만나보며 애걸복걸했다. 그래도 플랫폼이 나오고 나서는 좋게 생각해준 분들이 많아 생각보다 쉽게 작품 섭외를 할 수 있다. 생기기 전에는 분위기 좋게 이야기 잘 하다가 마지막에 와서 ‘지금은 작품을 공급하기 힘들다’는 이야기가 정말 많았다.
리: 뭔가 굉장히 암울하다.
고: 그래도 출판 쪽에서는 암암리에 BL 시장이 크다는 걸 다들 알아서 긍정적 시각이 없지 않았다. 특히 BL 출판을 많이 하는 곳일수록 좋은 답변을 보내왔다. 아무래도 국내에 없던 시도이다 보니까, 선행된 모델이 없다 보니까 우려가 좀 많았던 것 같다.
리: 어차피 출판사는 작품 소싱하고 수익분배만 하면 되는 거 아닌가?
고: 처음에는 그럴 줄 알았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 출판계는 유통에 매우 민감하고 자기 저작물에 애정이 강하다. 그래서 업체들 생긴다고 해서 함부로 주지 않는다. 나름대로 상대방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만 전달해주는 경우가 많다. 운영자들의 비전까지도 꼼꼼히 따지는 게 이 업계다. 왜냐면 망하고 나면, 저작물이 인터넷에 확 풀릴 부담이 크니 세밀히 따질 수밖에 없더라.
4. 기존 BL 팬들이 답을 가져다 주다
리: 대형 사업자들과의 관계도 관계지만 더 큰 문제는 작가다. 콘텐츠 플랫폼 사업자는 모두가 같은 고민을 가지고 있다. 작가들을 잘 먹고 잘 살게 해줄 수 없으면, 그 플랫폼은 오래 지속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고: 그간 BL 작가들이 돈을 버는 방식이 이렇다. 성인동 등 블랙마켓을 통해서 시중에 유통하는 방식으로 돈을 벌었다. 한 화 한 화를 짧게 짧게 주일마다 올린 후, 책 구매할 사람 있는지 설문 조사를 한 후, 숫자가 차면 책을 발행한다. 물론 일부는 아예 유료 형태로 해서 돈을 내고 한 화를 읽을 수 있게도 한다. 어떻게 보면 정말 요즘 모바일 시대와 안 맞는 방식이다.
리: 뭔가 충분한 수익을 올리기 힘들어 보인다.
고: 사실 소위 웹툰 작가, 웹소설 작가라는 직업 자체가 기본적으로 소수를 제외하면 많이 벌기 힘든 구조다. 그러니 BL이라는 특수 장르는 더할 수밖에 없다. 물론 대형 플랫폼에서 BL 인기작이 조금씩 늘어나는 건 사실이지만, 아직까지 소수다. 한국 BL이 수요는 많지만 여전히 음지에 갇혀 있는 현상을 깨부수지 못했던 것이다. 기성 만화가가 BL 그리고 싶은데 돈이 안 되니까 순정, 로맨스를 그리며 그리고, BL은 블랙마켓이나 성인동에 다른 이름으로 내는 게 현재의 모습이다.
리: 애초에 양성화되기 힘든 장르라는 생각도 든다.
고: 가까운 일본의 경우에는 BL 작가들이 상당히 많이 번다. 몇 백만 부 판매되는 경우도 있을 정도로, 자연스럽게 문화와 시장이 정착돼 있다. 한국은 시장 형성이 안 된 건 아니지만, 양성화되지 않았기에 창작자가 돈 벌기 힘들다. 그러다 보니, 시장 진입자가 많아지지 않아 문화적으로 풍성해지기도 힘들다. 우리가 그래도 이 일로 돈을 버는 것 외에, 의미를 가지는 게 있따면 BL 분야에 종사하고 있고, 꿈을 키우는 작가들이 좀 더 희망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주고 싶다는 것이다.
리: 그래서 다시 작가 이야기… 작가들 한 분 한 분 모시기도 힘들었을 것 같다.
고: 거의 다짜고짜 성인동 커뮤니티에 글을 올려서 작가를 섭외했다.
리: 성인동은 극도로 배타적인데, 그딴 글 올리면 짤리지 않나?
고: 그게, BL 전문 출판사들 인맥을 통해 수소문 하다보니, 아예 BL 관련 성인동 운영자를 만나게 됐다.
리: 가니까 뭔 소리하던가?
고: 남자 둘이 나오니까 어이없어 하더라. 사업상 찾아오는 사람들은 종종 있는데, 남자들만 나온 경우는 처음이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오히려 많이 도와주더라.
리: 어떤 도움을 주던가?
고: 국내 BL 시장 이야기는 물론이고, 작가들도 많이 추천해주셨다. 나중에는 다리까지 놔주셔서, 실제 작가로 활동하는 분들도 만나게 됐다. 그렇게 해서 조금씩 라인업을 갖추게 됐고, 지금처럼 모양새가 좀 나왔다.
리: 콘텐츠 사업은 비즈니스 모델도 중요하지만, 콘텐츠를 보는 감식안도 중요하다. 남자들이 이걸 할 수 있었나?
고: 당연히 못했다. 심지어 처음에는 읽는 것만으로도 괴로웠는데…
리: ……
고: 그래서 아예 감식안은 아웃소싱을 했다. 알음알음 통해서 만난 작가님들이 많이 추천을 해줬다. 그리고 나중에는 회원들이 도움을 주더라.
리: 회원들 간담회라도 했나?
고: 회원들이 계속해서 평가도 하고 메시지도 준다. 우리는 남자니까 어떤 작품이 좋은 작품인지, 또 잘 팔릴지 알기 힘들다. 하지만 회원들의 구매와 평가를 보면 자연스럽게 감식안이 생기더라. 이제는 우리도 수십 페이지 정도 읽으면, 이 작품들이 어떤지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됐다.
리: 실제로 끝까지 읽나?
고: 사람이 놀라운 게 용불용설이라고… 읽다 보니까 나름 재밌다. 쿠폰 줄 테니 당신도 결제해서 봐라.
리: 거절합니다(…)
고: 아무튼(…) 그렇게 연결되어, 최근에는 작품 이야기를 넘어 직접 만들고 연재하고 있다.
리: 직접 연재하는 작품들의 수익은 어떤가?
고: 나쁘지 않지만, 런칭한 지 얼마 안 됐으니 그리 많은 것도 아니다. 그냥 이러다가 히트작이 나오면 한두 개 작품이 플랫폼을 먹여 살릴 수도 있으니, 희망적으로 계속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5. 음지에 있는 시장을 양지로 끌어올리려는 원대한 비전으로
리: 작가 섭외가 있다고는 하지만 아무래도 초기 기업이다 보니 자금이 부족하고, 주로 기존 출시된 작품을 가져오게 된 것 같다.
고: 그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이제 겨우 시장을 만들어 가는 단계이니.
리: 그렇다고는 해도 웹툰은 상하 스크롤이고, 출판물은 좌우로 넘기는 방식이라 독자들이 힘들어하지 않을까?
고: 일본 만화는 저작물 변경 조건이 엄격해서 억지로 변형할 수도 없다. 그래도 BL 독자들은 일단 온라인으로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아하는 것 같다.
리: 매출은 어떤가?
고: 우려했던 것보다 매출은 있는 편이다. 첫 달은 적어서 걱정했는데, 다음 달부터 2배, 그 다음 달은 3배… 이렇게 계속 늘고 있다. 절대적으로는 적은데 성장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본다. 의미 있는 건 구매를 했던 분의 재결제율이 굉장히 높고, 또 계속 높아지고 있다.
리: 그렇다고 해도 인건비도 못 건질 수준일 텐데, 대형 경쟁사들이 부담스럽지는 않은가?
고: 이미 레진코믹스, 탑툰을 비롯한 업체들은 대형 사업자가 됐다. 후발주자가 똑같이 해서는 이기기 어려우니, 장르적 특성에 맞춰 한 분야만 키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형 웹툰 사이트들도 일부 BL 만화를 서비스하고 있지만, 그쪽으로만 특화시킨 전문 사이트는 아직 없다. 기존 출판 시장이 컸던만큼, 성장 가능성도 충분하다고 본다. 거기에 문화적 측면에서 비전을 이뤄낼 수 있다면 더욱 좋을 것이고.
리: 남자들끼리 운영하다 보니 문제는?
고: 이해하기 힘든 문화다 보니… 여러모로 에로사항이 있지만 생략하겠다. 지금은 작품을 보는 눈이 생겼다지만, 당장 콘텐츠와 마케팅을 담당할 분이 필요하다. 이 글 본 후죠시 전문가들은 제발 페이스북 페이지에 메시지 좀 넣어줬으면 좋겠다. 되도록이면 어릴 때부터 BL에 빠져 산 분이었으면 좋겠다. 내 일이라서가 아니라 정말 가능성이 큰 분야라 생각한다.
리: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서 뭐한 질문이다만, 확장 계획은 어떻게 되는가?
고: 지금 현재는 웹툰 서비스만 하고 있지만 소설도 진행할 생각이다. 아무래도 남성향 성인 작품은 비주얼이 중요하니 소설보다는 만화 쪽이 몰입도가 높다. 하지만 여성은 좀 더 섬세한 디테일까지 원하는 경우가 많다. 글은 그런 부분을 풀어낼 수 있기에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또 출퇴근하면서 만화 보기에는 좀 어려우니까(…) 그런 시장을 좀 공략하기 위해서 소설 쪽도 기획 중이다.
리: 그래도 시장을 창출해야 하는 BL 웹툰에 비하면 소설은 이미 수많은 작가들이 포진해 있어서 확장이 빠르지 않을까?
고: 성인동 위주로 작가도 연락을 하고는 있는데… 그런데 워낙 숨어 있어서 만나기 힘들다. BL이 그만큼 양성화가 되어 있지 않다.
리: 자. 슬슬 마무리를 지어보자. 올해 목표는?
이: 투자 유치 좀 성공해야. 두세 군데 정도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잘 돼서 좀… 내년 200억 매출 나오면 좋겠다는 꿈을 꾸고 있다.
리: 그건 정말 꿈인 것 같다.
고: ……
리: 아무튼… 네… 목표…
고: 최종적인 목적 중 하나는… BL 만화는 지금은 소수가 즐기는 것으로 여겨지지만, 여성이 즐길 수 있는 평범한 성인물이다. 이를 그간 BL 안 봤던 독자층에도 전파하고 싶다. 기존 남성 성인물과 BL 비교해 보면 미학적으로 굉장히 뛰어나고, 성의 관계만 집중하는 남성 만화에 비해 유려한 그림과 완성도 등 분명 빠져들 요소가 있다. 이가 문화적으로도 장르문학에도 당당하게 자리잡을 수 있다면 참 좋을 것 같다.
리: 네.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한 말씀 부탁 드립니다.
고: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BL에 흠뻑 빠진 후죠시 분들을 모십니다. 사실 투자든 뭐든 제발 휴가 한 번 가는 게 소원입니다. 휴가도 필요 없으니 하루라도 좀 쉬고 싶습니다.
리: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