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사 3학기 때 있었던 일이었다. 석사 4학기 때 학위논문을 써야 하기 때문에 그 전에 필요한 조건을 맞춰야 하는 시기였다. 조건이란 이를테면 영어 점수(토익이나 토플 등)나 학술지에 게재된 논문 수 등을 말하는데, 논문 수는 채웠으나 논문을 쓰느라 또 생계를 유지하느라 영어에 소홀했던 것이 문제였다. 결국 토익이나 토플을 위해 영어공부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사실 나에게는 약점이 있다. 바로 ‘영어’다. 그 무엇이든 마음먹은 대로 꼭 해내고 마는 성격인데, 이상하게도 영어는 공부 시간이 부족해서인지 아니면 자신감이 부족해서인지 번번이 실패했다.
나의 영어역량 미흡은 알바를 해야 하는 나에게 큰 문제였다. 학부 때부터 이런저런 알바를 했지만, 알바를 안 한 기간은 거의 없었다. 항상 공부하면서 일하는 것이 익숙했기에 그 많은 과제와 논문이 쏟아지는 석사 때에도 일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사실 일을 하지 않으면 즉 돈을 벌지 않으면 안 되는 환경에 놓여있었다. 학부 때에는 장학금과 알바로 메우지 못한 등록금을 부모님께서 내주셨지만, 석사 때는 부모님께서 내주시는 것이 죄송스러웠다. 그래서 석사 때는 더 많은 일을 해야만 했다. 다른 알바보다는 과외가 그나마 고소득이었기에 과외만 집중적으로 했는데, 보통 4팀에서 5팀이었다. 그 당시 석사 때 수업이 평균 4과목 듣는 것을 감안하면 수업 외 시간은 과외를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 2회씩 2시간을 만났기 때문에 이동시간을 생각하면 1팀당 4시간, 그런데 4~5팀이었으므로 약 주 16~20시간은 이동시간과 과외 시간이었던 것이다. 주 16~20시간이면 사실 괜찮을 수도 있겠지만, 과외생들을 위해 사전에 준비하는 시간을 생각하면 개인 시간은 물론이거니와 밥 먹을 시간도 없었다. 돈이 되는 학생이라면(사실 과외가 잘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에 누구라도 들어오면 조건 따지지 않고 받았다) 초중고 가리지 않고, 또 과목도 가리지 않고 다 받았기 때문에 제아무리 잘한다고 자신감 있게 말해도 사전에 과외생들을 위한 공부는 필수적이었다.
밥 먹는 시간은 항상 정해졌다. 수업이 오후 6시에 끝나면 바로 지하철까지 뛰었다. 약 20분 정도 뛰어서 지하철 근처 편의점에서 빵과 우유를 샀고 항상 만원 지하철을 타고 과외 학생을 만나러 갔다. 만원 지하철에서 타인의 시선 때문에, 또 장소 자체가 협소하여 무엇인가 음식물을 섭취하는 게 조금 그랬지만 사실 그 이동 시간 아니면 먹을 시간도 없기에 꾸역꾸역 먹었다.
항상 지하철에서 내가 빵과 우유를 먹는 장소는 문 바로 앞이었다. 창문을 바라보고 먹어야 그나마 타인의 시간으로부터 조금이라도 벗어날 수 있었다. 가끔은 창문에 비치는 내 모습이 참으로 초라해 보여서 서글픈 마음이 들기도 했다. 내가 왜 이렇게까지 돈을 벌어야 하는지, 나는 공부하는 학생인데, 왜 공부는 하지 않고 엉뚱한 과외생들 공부를 하는 것인지, 왜 나는 바쁠 수밖에 없는 것인지.
석사 1학기 때부터 석사 2학기 때까지 1년 동안 그런 생활을 반복했다. 사족이지만 석사 3학기 때는 영어공부만 진행했고 석사 4학기 때는 논문만 쓰는 시간이 아까워 풀타임으로 일을 다녔다.
이런 일상 속에서 영어공부 시간이 필수적으로 필요하게 되었다. 사실 영어 점수 자체가 없으면 졸업 요건도 못 맞추는 것이기에 빨리 영어 점수를 획득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래서 어머니께 2~3달 정도만 과외를 하지 않을 테니 교통비, 핸드폰 비 등을 포함한 한달 생활비 20~30만 원 정도 3개월만 줄 수 있냐고 물어보았다. 사실 그 전에는 용돈 자체를 달라고 한 적이 없었기에, 적잖이 놀라신 것 같았다. 그러더니 하시는 말씀이, 지금 아빠가 일도 잘 안 들어오고 해서 과외를 계속하면 안 되겠냐고 하셨다.
그 말을 듣고 그동안 쌓여있던 울분이 터졌다. 그러고는 어머니께 소리를 지르며 말했다.
그럼 내가 영어 공부를 하지 못해서 졸업이 늦어져도 괜찮은 거야? 왜 나는 항상 돈을 벌어야 돼? 다른 애들은 알바도 안하는 데 왜 나만 돈을 벌고 그 지랄발광을 하면서 공부해야 돼? 내가 공부하는 학생이야? 돈 버는 학생이지?
그리고는 집을 뛰쳐나왔다. 마음이 무척이나 불편했지만, 그 시간마저 공부해야 했기에 집에서 1시간 40분이나 걸리는 학교로 향했다. 학교에 도착해서 그 빌어먹을 영어 공부를 하려는 순간 어머니께 문자 메시지가 왔다.
미안하다.
참아왔던 눈물이 터졌다. 마음이 복잡하고 힘들어도 공부할 시간이 없기에 공부를 해야 한다고 굳게 다짐했지만, 기어코 눈물이 터지고 말았다.
어머니에 대한 분노보다는 어머니께서 그렇게밖에 말할 수 없는 그 환경 자체가 짜증이 났다. 어머니께서 그 미안하다는 그 문자를 보낼 때 심정을 생각해보니 더 찢어질 듯이 아렸다. 그렇게 한바탕 울고 결국 집으로 되돌아갔다.
어머니께서는 별말씀 없으셨다. 하지만 그로부터 3개월 동안 생활비를 주셨고, 그 기간만큼은 과외를 하지 않을 수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영어 성적은 나왔고 졸업 요건을 맞출 수 있었다. 그렇게 석사과정을 마쳤다.
요즘에도 과외 학생을 만나러 가면서 시간이 없을 땐 가끔 만원 지하철에서 어쩔 수 없이 빵과 우유를 먹는다. 빵과 우유를 먹을 때마다 나의 비루한 석사 시절이 떠오른다. 그리고 추억처럼 뇌리를 스치는, 어머니의 그 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