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여 년간의 UX 컨설팅 생활을 접고 스타트업 바닥에 뛰어든 지 3년 반이 흘렀다. 1번의 창업과 2번의 창업팀 합류는 모두 실패로 귀결되었다.
최근 몇 년 전부터 우리는 주변에서 ‘스타트업’이라는 단어가 마치 시대를 대표하는 유행어처럼 번지고 있음을 감지해 왔다. 많은 젊은이가 스타트업 바닥에 합류하고 있다.
인생에 있어 선택지가 놓였을 때 선택의 결과가 어떤 양상을 보일지 알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합리적 선택을 통해 결과에 책임을 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성공의 결과는 구글에서 ‘스타트업’으로 검색하면 쉽게 살펴볼 수 있을 것이고, 실패의 결과는 쉽게 찾아보기 어렵기에 짧게나마 글을 써본다.
부디 스타트업 바닥에 뛰어들 젊은이들에게 본인의 선택에 따른 결과가 어떤 일들을 초래하게 될지, 간접적으로나마 이 글을 통해 피부에 와 닿는 경험이 되길 바란다.
돈, 당신은 돈을 벌지 못할 것이다
1. 창업자로 시작하게 된다면?
최소 3~5년 동안 당신은 변변한 돈벌이도 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통계로도 나타나듯이 10팀 중 9팀은 망하게 될 것이고, 1팀의 절반은 생존에 급급하며 좀비처럼 움직이게 되며 반의반 기업만이 제대로 살아남을 수 있는 환경이다. 글로벌 표준이 그렇고, 한국의 스타트업 환경은 더욱더 척박하다.
스타트업을 시작하면 아마도 3~4년 정도는 올인할 준비를 해야 한다. 이 정도 투자할 생각이 없으면 스타트업을 하지 말아야 한다. 가족이 있다고? 제발, 스타트업 바닥에서 가정이 무너져버린 사람들을 왕왕 보게 된다. 당신의 선택으로 가족들이 힘들어지는 결과를 당신은 감당해야만 할 것이다. 쉽게 여길 문제가 절대 아니다.
수많은 정부정책과 기관들이 도움을 줄 것이라고? 당신이 본인들의 경쟁력이 아닌 타인의 도움으로 생존을 연명하고자 한다면 이미 그 시점부터 게임은 끝나 있다고 보면 된다. 냉정하게 질문을 던져보자. 당신과 당신의 조직은 준비가 되어 있는가?
2. 스타트업 구성원으로 합류하게 된다면?
로켓에 올라타서 같이 훌훌 올라가 보자는 달콤한 소리는 딱 리크루팅시기, 허니문 때에만 가능한 이야기이다. 전원생활의 달콤함을 꿈꾸고 많은 도시인들이 농촌으로 향하지만 대부분 그 생활에 실망하고 복귀하는 이유를 생각하면 적절한 비유가 아닐까 싶다. 시골 할머니들의 등이 왜 그렇게 활처럼 굽어 있는지 생각해보자. 낭만은 TV나 책에서만 존재하는 판타지일 뿐이다.
상법상 스톡옵션으로 부여할 수 있는 주식의 수량은 총 발행 주식 수의 10%. 대체적으로 초기합류 인원 10명에서 5%, 그 후 10명에게 3% 마지막 10명에게 2%를 부여한다고 생각해보자. 2년이 지나야 주식을 살 수 있는 권리가 부여되고, 2년이 지났을 때 당신의 스타트업이 살아남을 가능성은 10%도 채 되지 않는다.
투자를 받았다고 생각해보자. 투자를 받는다고 하면 당신의 스톡옵션은 희석이 되어 나중에 100억의 회사가치를 인정받더라도 당신은 큰돈을 가져갈 수 없다. 몇천억, 몇조짜리 회사가 되어야 고생한 만큼의 일확천금을 누릴 수 있겠지만 한국의 스타트업 환경에서 보기 힘든 매우 드문 케이스이다. 또한 당신의 지분율은 투자를 받을 때마다 희석되어, 애초에 꿈에 그리던 돈은 당신을 벌지 못할 것이다.
또한 스타트업의 생리상 인력 구조조정이 발생될 수밖에 없다. 당신이 조직에서의 대체 불가능성을 보여주지 않는 한 당신은 정리될 가능성이 높다. 3차 투자를 앞두고 투자자가 ‘이 회사는 왜 이렇게 인건비 비중이 높냐?’ 한마디에 당신의 자리는 깨끗하게 정리될 수도 있다. 당신은 회사가 성공하게 되어도 그 보상을 함께 나누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전쟁에서 쓰러져간 수백만의 무명의 병사는 역사에 이름을 남기지 못한다.
스타트업에 합류하며 장밋빛 미래를 꿈꿨다면, 그 꿈에서 빨리 깨어나기를 바란다. 낭만은 선수들에게는 존재하지 않는다. 당신은 왜 스타트업에 가려 하는가?
동료, 원피스는 그저 만화일 뿐이다
스타트업에 합류하며 내가 주인인 회사를 꿈꿨다면, 그 꿈에서 빨리 깨어나기를 바란다. 스타트업의 주인은 주주이다. 그리고 창업자가 최대 주주인 경우가 많으니 엄밀히 말해서 창업자가 주인이다.
창업자의 비전을 나침반 삼아 나아가는 배에 선원으로 올라타는 것. 그리고 그 비전은 조직의 규모와 시장환경에 따라 매번 달라지게 될 것이다. 또한 투자로 인해 최대 주주가 변경이 되더라도 당신이 변화된 모습에 발 빠르게 맞춰가지 못하게 될 경우 당신은 그 배에서 하차하게 될 것이다.
또한 당신의 의지대로 회사와 조직이 움직이지 않을 가능성이 클 것이다.
좋은 동료들이 모인다고 좋은 회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쓰러진 사람들. 스쳐 지나가 버린 사람들.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 당신은 상처받게 될 것이다. 당신은 최악의 순간들을 보게 될 테고, 겪어보기 전까지 주변 동료들의 진면목을 알 수 없을 것이다. 개인과 개인 간의 관계도 변하고, 회사와 나와의 관계도 변하게 될 것이다.
그 와중에 변하지 않는 것은 무엇일까? 진지한 고민 없이는 시류에 흘러가게 될 것이다. 당신은 왜 스타트업에 가려 하는가?
수평적 조직문화, 회사는 대학교 동아리가 아니다
모두가 공격수인 축구팀은 망할 수밖에 없다. 기본적으로 조직의 생리상 목표달성을 위한 문제 해결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그 와중에 조직은 적절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강력한 팀이 필요하다. 강력한 팀에서는 훌륭한 리더십과 팔로어십이 필요하지만, 대다수의 스타트업에서는 수직적일 때와 수평적일 때를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회의실에서 사안에 대한 깊은 고민 없는 구성원들끼리 모여 다수결로 이뤄지는 민주주의가 발생할 때 어떤 결과가 발생하는지 이미 너무 많이 보지 않았는가? ( 대다수 이런 경우, 리더가 변변치 못하거나 결정에 대한 책임을 다수에게 떠넘기기 위해 발생한다)
스타트업에서 수평적 조직문화를 기대하지 말자. 필수조건이 아닌, 충분조건일 뿐이다. 어느 조직이건 목표달성을 위해선 리더와 팔로어는 필수적으로 필요하다. 당신이 훌륭한 리더가 되지 못한다면, 구성원들은 당신이 세운 바보 같은 목표들로 인해 착취를 당할 것이다.
당신이 훌륭한 팔로어라면, 리더가 잘못된 목표를 세웠을 때 직, 간접적으로 투쟁해서 싸워 쟁취하라. 갈등은 필수 불가결한 요소이다. 갈등을 회피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당신은 좀비 모드로 팀과 조직을 갉아먹게 될 것이다. 또한 리더는 갈등이 없는 상태에서 더욱 많은 바보 같은 행동들을 만들어 낼 것은 자명한 일이다.
당신이 가진 능력들을 조직 내에 올바르게 투사하지 못하게 될 경우 조별과제의 악몽은 스타트업에서도 반복된다. 내가 겪은 경험으로는, 좋은 사람들이 모인다고 좋은 결과가 이뤄지는 것은 아니었다. 당신은 왜 스타트업에 가려 하는가?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진심인가? 냉정하게 질문을 던져보자. 자기 자신이라도 변화시킬 수 있는가?
글 쓰다 말고 페북을 보다가 빡쳐서 급히 캡쳐해본다.
제발 젊은이들에게 죄를 짓는 행위는 하지 말자. 대한민국 헬조선 현실에서 창업밖에 돌파구가 없다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창업은 외친다고 해소될 문제가 아니다. 수많은 젊은이들을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형국이다. 결국 그 구렁텅이가 모두 메꿔진 뒤에야 살아남는 자들이 시체들을 밟고 길을 건널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리 모두 헬조선이 얼마나 불모지 같은 토양을 지녔는지 잘 알고 있다. 훌륭한 토양이 존재해야 과실도 알차게 맺히는 법이다.
마무리하며
분명한 목적, 목표 없이는 스타트업 바닥에서 몇 번의 파도 끝에 부서지게 될 것이다. 아니, 오히려 스타트업 바닥에서 필요한 요소는 목적, 목표보다는 기개와 끈기가 아닐까? 기개와 함께라면 동네 골목길에서 구두닦이를 하더라도 가업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쪼그라드는 통장잔고. 가족들의 시선. 동료들의 이탈. 흔들리는 조직. 주변의 손가락질. 날로 나빠지는 건강을 바라보자. 높은 연봉, 충분한 복지, 안정된 직장, 좋은 환경을 버리고 당신은 왜 스타트업에 합류하였는가? 당신은 버틸 수 있는가? 창고의 낭만은 잠시일 뿐이다.
당신은 왜 스타트업에 가려 하는가?
PS.
문득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 본다. 나는 어떤 답을 내릴 것인가? 다시 4년 전으로 돌아간다면 나는 다시 스타트업을 선택할까? 담배가 절로 생각나는 질문이다. 우리 인생에서 올바른 답이란게 존재할까? 우리에게 ‘실패할 자유’는 사치일까?
우리의 진정한 모습은 능력이 아니라 선택으로부터 시작된다고 본다. 내가 나로 존재하기 위해. 난 다시 그때로 돌아가도 동일한 선택을 할 것 같다. 그리고 앞으로도. 실패할 자유와 함께, 내가 나로 존재하기 위해.
그러나 당신은, 왜 스타트업에 가려 하는가?
원문: 정민철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