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돌아온 지 한 달이 지났지만 난 여전히 시차 부적응 중이다. 여기 시간으로 새벽 5시, 한국시각으로는 오전 10시에 어김없이 기상. 그러다가 어느 페북 친구분을 통해 올라온 피딩을 보았다. ‘세상을 바꾸는 시간 60초’라는 TV 프로그램에 나온 어느 스트릿 포토그래퍼 분의 강의였다.
이분이 이야기하는 것은 대충 이런 것이다.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가라’ ‘위험을 두려워하지 말고 도전하라 젊은이여’… 사실 이런 이야기는 기업가 정신이나 성공한 스타트업 CEO에게 흔히 나오는 강연 단골 주제다. 이런 부류의 강의를 들어본 청년이나 젊은 사업가라면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은 이야기일 것이다. 그래서일까, 이 동영상을 보면서 언뜻 드는 질문이 있었다.
- 이 시대의 젊은이나 청년 사업가는 성공을 위한 위험 감수를 겁내고 있는가?
- 젊은이들에게 ‘성공을 위해 위험을 감수하라’고 가르치는 것이 바람직한가?
1. 예시: 미국과 한국의 전염병 대응 정책
물론 여기서 말하는 이야기는 가상의 이야기이다. 그냥 소설(?)이니 사실 여부에 집중하지 마시고 문제 자체에만 집중하시라. 먼저 대한민국의 전염병 대응 정책을 보자.
문제를 요약해 보자. 대책 A를 취하면 600명 중 200명은 확실하게 생존하고 대책 B를 취하면 ⅓의 가능성으로 전부 생존할 수도, ⅔의 가능성으로 모두 죽을 수도 있다. 여러분이라면 어떤 프로그램을 선택할 것인가? 한국 대책에 결정을 내리기 전 미국의 경우를 한번 보자.
요약하자면 이런 것이다. 미국의 정책에서는 대책 C를 선택할 경우 600명 중 400명이 죽는다. 하지만 대책 D를 선택하면 33%의 확률로 전부 살 수 있다. 여러분이라면 어떤 정책을 취할 것인가?
위 질문은 실제로 내가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했던 질문들이다. 물론 질문할 때는 한국 대책 따로, 미국 대책 따로 선택하도록 했다. 미국 정책의 경우 대다수 학생(80% 이상)이 대책 D를 선택했다. 선택한 학생들에 이유를 물어보았다.
400명이 죽느니 차라리 위험을 감수하겠다.
어떤가? 여러분들도 대다수 학생과 의견이 같은가? 참고로 한국의 경우는 A와 B를 선택한 숫자가 거의 비슷했다. 사실상 위의 정책은 한 가지 대책을 제외하고는 동일한 기대치를 갖는다. 중학교 수준의 평균값을 구할 줄 아는 학생이라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 대책 A: 200명 생존
- 대책 B: ⅓*600+⅔*0=200 → 역시 200명 생존
- 대책 C: 600-400=200 → 역시 200명 생존
보면 알겠지만 대책 A~C는 기댓값은 동일하다. 하지만 대책 D는 다르다.
- 대책 D: (0.33)*600+(0.67)*0=198 → 198명!
즉 4개의 대책 중 가장 기댓값이 낮은, 가장 선택하지 말아야 할 정책이다. 그렇지만 대다수의 학생(80% 이상)들이 미국의 정책에서 대책 D를 선택했다. 그렇다. 요즘 젊은이들은 위험한 길을 택하지 않는 성향이 강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무모하리만큼 위험한 선택을 한다.
이런 결과는 내가 실험했던 집단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비슷한 실험을 했던 다른 데이터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난다. 이는 곧 과거에 비해 요즘 젊은이들이 위험스러운 요소가 있는 선택을 하려는 경향을 가진다.
2. 정작 가르쳐야 할 것은 무엇일까?
위의 문제를 보면 알 수 있듯 대부분 ‘어떤 식으로 감성적이 되느냐’에 따라 다른 선택을 한다. 그리고는 타당한 논리를 찾기 위해 노력한다. 대책 D를 선택했던 학생이 죽느니 차라리 위험을 감수하겠노라 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니 젊은이들에게 가르쳐야 할 것은 성공을 위해 위험을 감수하라는 것이 아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얼마나 위험한지 정확하게 파악하고, 정말 위험한 것이라면 해당 위험을 피할 방법이다.
위의 ‘세상을 바꾸는 시간’ 강연을 했던 포토그래퍼가 유명해진 것은 위험을 감수했기 때문이 아니라 단순히 ‘운이 좋아서’였다. 그곳은 안전요원이 경고할 정도로 위험한 곳이고 되도록 가지 않는 것이 맞다. 물론 거기 가서 살아남을 수도 있고, 원했던 뭔가를 얻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위험의 확률’ 자체가 바뀌는 것은 아니다.
위험의 확률 자체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높을 수도 낮을 수도 있다. 언론에서 잘 치는 장난 가운데 하나가 이 위험의 확률을 왜곡하는 것이다. 우리는 정확하게 무엇이 위험한지, 얼마나 위험한지 그 정도를 파악할 능력이 필요하다. 이렇게 왜곡된 위험성에 대해서 합리적으로 의심하도록 해주는 것은 감성적인 사고가 아니라 수학적인 사고이다.
위에서 언급했던 미국의 가상 대 테러 정책 예시 경우도 중학교 수준의 수학 실력과 사고능력을 갖추었다면 충분히 올바른 선택을 할 문제다. 그럼에도 MBA 과정을 듣는, 나름 가방끈 긴 성인조차 감정적인 선택을 해버린다. 넘치고 넘치는 강연이 성공을 위해 위험에 도전하라고 가르친다. 올바른 판단을 위해 필요한 수학적·논리적 사고보다 감성적 사고를 강조한다.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지도 모르는 채 이런 말도 안 되는 무용담이 인기를 끄는 게 씁쓸하기도 하다. 그나마 나만 이런 생각을 하는 게 아니라는 것에 위안을 받으며 몇 자 적어 보았다.
원문: Amang Kim님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