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파트타임 드라이버다. 아침 아이들 등굣길은 보통 내가 운전을 해준다. 그 오고 가는 길이 심심하다며 아내는 내 말동무가 되어준다. 특히 아이들을 데려다주고 돌아오는 길은 아이들에 대해서 와이프와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오늘 아침 일이다. 어김없이 아이들에 대해서, 그중 요즘 한창 사춘기인 큰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늘 아침 대화를 대략 정리하자면 이렇다.
아내 왜 큰 딸내미는 우리 몰래 안 좋은 짓(부모 몰래 하는 자잘한 일들)을 안 할까?
나 하겠지? 하지만 다른 아이들보다 적지는 않을까 싶다.
아내 그래? 근데 왜 적어?
나 그야 큰 딸은 내가 모든 걸 알고 있다고 생각하니까.
아내 정말 짝지(아내가 나를 부르는 애칭)는 큰애가 하는 모든 일을 다 알고 있나?
나 그럴 리가? 조금 알고 있기는 하지만, 큰애가 하는 모든 걸 알 수는 없겠지. 하지만 조금 알고 있더라도 다 알고 있는 것처럼 행동할 수밖에 없어.
아내 왜?
나 큰 애는 내가 자기 저지르는 안 좋은 짓 중 어떤 걸 알고 있고 어떤걸 모르는지 모르기 때문에….
아내 그게 무슨 소리래?
나 그건 말이지….
공항 검색대와 테러리스트
미리 말하지만,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게임은 스마트폰이나 PC에서 하는 게임이 아니라 게임이론(Game Theory)을 지칭하는 말이다. 그리고 공항검색대와 테러리스트는 게임이론을 소개하는 데 있어서 ‘죄수의 딜레마’만큼이나 많이 알려진 예제이다. 예제를 조금 간략화하자면 이런 것이다.
이러한 부류의 게임은 전형적인 2인(정부 vs. 테러리스트) 혼합전략 게임(2×2 Mixed Strategy Game)이다. 중등학교 수준의 Algebra를 하는 사람이라면 쉽게 풀 수 있는 문제이다.
원칙적으로는 Payoff Function에 따라서 테러리스트의 전략에 대한 Best Response가 정해지는데, 위의 문제의 경우는 이미 답이 주어졌다. 테러의 확률이 10% (0.1)이므로 테러 확률에 대한 대응, 즉, 10%의 검색시스템을 설치하는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10개 공항 중 1개에 새로운 검색 시스템을 설치하는 것이 최선의 전략이다(이를 고상하게 말하자면 ‘내쉬균형’이 되시겠다).
보통 게임이론은 여기까지가 끝지만, 운영적인 측면에서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10개 공항 중 한 곳에 설치하는 것까지는 알겠지만 ‘어디에? 어떻게?’에 대한 대답, 즉 어떻게 적용할지에 대한 부분은 빠져 있다.
물론 위의 질문에 대한 대답은 이미 많은 이들이 이야기하고 있다. 혼합전략에 대한 일반적인 적용 방법은 바로 Randomize, 일명 ‘찍기’다. 즉, 위의 문제에 대한 효과적인 전략은 다음과 같다.
1대의 진짜와 9대의 가짜 검색시스템(10%의 진짜)을 섞어서 (상대가) ‘모르게’ 설치하는 것
물론 여기서의 핵심은 테러리스트가 모르게 하는 것이다. 즉 이런 식으로 ‘찍어서’ 보안 검색 시스템을 설치하게 되면, 모든 공항에 진짜 검색시스템을 설치하지 않더라도 테러리스트의 도발을 억제할 수 있다.
곁다리로, 만약 당신이 테러리스트라면 이 상황에서 어떤 전략을 취해야 할까? 물론 실제 상황이라면 어떻게 해서든지 정확한 정보(즉 어느 공항에 진짜가 설치되는지)를 얻고자 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 게임에서 정해진 규칙에서만 생각해보자. 여기서 정해진 규칙이란 아래와 같다.
- 테러리스트는 10개 공항 중 오직 한 곳만을 공격할 수 있다
- 테러리스트가 가질수 있는 정보는 열 군데 중 한 군데만이 진짜 검색시스템이 설치된다는 것뿐이다.
당신이라면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하겠는가? 다시 한번 말하지만, 때로는 찍기가 최선의 전략이다.
다시 큰 딸내미 문제(?)로 돌아와서
그렇다. 큰 딸내미가 나나 아내 몰래 나쁜(?) 짓을 덜 하는 이유는 내가 큰애가 하는 모든 일을 알고 있어서가 아니라 내가 어느 만큼 알고 있는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마치 테러리스트가 최신 보안 검색 시스템이 어느 공항에 진짜로 설치될지 모르기 때문인 것과 같은 이치로 말이다.
이렇게 설명을 해주니 결정적인 질문을 나에게 던진다.
아내 어떻게 큰애가 당신은 그렇게 믿는데, 왜 나한테는 그렇게 안 할까?
나 그건 아마도 내가 야단치지 않고 넘어가 주기 때문이 아닐까?
이러한 전략의 적용에 있어 최선의 전략은 아이가 뭔가 좋지 않거나 비밀스러운 일을 하다가 들켰을 때 무조건 혼내는 것이 아니다.
- 혼도 내다가,
- 모르는 척 넘어가기도 하다가,
- 가끔씩 나중에 알려주거나.
셋 중 하나를 하는 것이다. 각각의 비중은 상황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통상적으로는 2>3>1의 순서가 되겠다. 즉 도덕적으로 아주 중요한 문제가 아니면 되도록 혼은 내지 말고, 설령 눈치를 채더라도 대부분은 그냥 넘어가 준 다음, 가끔씩 큰애에게 “너 예전에 그런 거 아빠가 알고 있었다”고 한마디 던지는 것이다.
왜 이러한 순서여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좀 더 설명이 필요하겠지만, 큰 딸내미가 지금 사춘기이기 때문인 것도 그 원인 중 하나이다.
덧붙이며
경영이나 경제에 관련된 문제들을 분석하는 데 있어서 게임이론은 상당히 유용한 도구다. 그리고 생각보다 많은 전략적 이슈나 경제학에 관련 문제들을 간단한 게임모델로 해석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번에 큰 딸내미를 키우는 데 이용(?)한 게임모델은 아주 간단한 2×2게임(2인이 플레이하며 각 플레이어가 2가지 전략만 가짐)이며, 중학교 수준의 수학 실력을 가지고 있으면 쉽게 풀 수 있다.
오늘의 예제는 단순히 문제 풀이를 아는 것보다 주어진 현상을 어떻게 표현하느냐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문제 꼴이다. 그리고 이전에도 언급한 적이 있는데, 이러한 문제나 상황에 대해서 수학적으로 표현(모델링)하는 훈련을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도구가 바로 수학이라는 학문이다. 바로 이러한 점이 내가 수학 전공자가 아니면서도 여전히 수학을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원문: Amang Kim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