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란 대학원 최종 졸업자를 일컫는 말이다.
안암골에 박사가 하나 살았다. 그는 성품이 괴팍하고 연구를 좋아했다. 그와 함께 일을 하는 조교들은 으레 이 박사를 찾아보고 그에게 “교수님”이라 부르며 인사를 하는 게 통례였다. 그러나 계약직이라 연봉이 워낙 박하여 한 해에 받는 돈이 삼천을 넘기지 못했다. 어느 때 이사장이 인건비 액수를 일람하게 되었다. 지출 항목을 조사해보고 이사장은 크게 노하여 말했다.
어떤 계약직 교수가 연봉을 삼천씩이나 받아간단 말이냐?
이렇게 호통을 치고 박사의 계약을 해지하려 했다. 지시를 받은 학장은 박사를 불쌍하게 여겼다. 하지만 계약을 유지할 방도가 없으니 어떠하랴. 차마 해지 통보를 할 수는 없고, 그렇다고 이사장 지시를 어길 수도 없어서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소문을 전해 들은 박사는 밤낮 울기만 했다. 이 꼴을 본 아내가 남편에게 푸념을 했다.
당신이 평생 앉아서 연구만 하더니 이제 쥐꼬리 연봉조차 못 받을 지경이 되었구료. 에이 더럽소! 박사 박사 하더니 그 박사란 것이 한 푼 값어치도 못 되는구료.
그 마을에는 대기업 회장이 하나 살고 있었다. 박사가 봉변을 당하게 된 내력을 듣고 그는 가족들에게 말했다.
박사란 가난해도 남들이 교수님이다 박사님이다 떠받들어주는 것. 나는 아무리 돈이 많아도 폰팔이에 스마트탄 제조기라는 비천한 이름을 면하지 못한단 말이야. 교수들을 만나면 뭐 아는 척하기도 힘들고 꼴이 영 더럽다. 그런데 지금 박사가 계약 해지 위기에 몰렸다 하니, 내가 그 학위를 대신 사서 이름을 드높이는 게 어떻겠는가?
의논을 마친 회장은 즉시 박사를 찾아가서 연봉을 대신 내주겠노라고 말했다. 박사는 몹시 기뻐했다. 약속대로 회장은 학장을 찾아가서 기부금을 내주었다. 학장은 영문을 모르고 깜짝 놀라 박사를 찾아 영문을 물었다. 박사는 청바지 차림에 구겨진 남방으로 황망하게 일어나 고개를 숙이며 학장을 감히 쳐다보지도 못했다. 학장은 더욱 놀라서 박사를 붙들어 일으키며 물었다.
박 선생 이게 대관절 어찌 된 일이오?
그러나 박사는 더욱 황송해 하며 머리를 조아렸다.
황송하옵니다. 소인은 학위를 팔아서 연봉을 메꾼 것이올시다. 하오니 이제부터는 건넛집 회장이 박사입니다. 소인이 어찌 예전처럼 선생 연하겠습니까?
듣고 나서 학장은 감탄하였다.
참으로 융복합 시대에 걸맞은 분이오그려! 회장이 되었으면서도 배움을 바라니 열정이 있는 것이요, 학교의 어려운 사정을 자신의 일처럼 여기어 기부금을 내니 이는 어진 것이요, 무식한 것을 싫어하고 교수라는 이름을 높이 여기니 이는 고귀한 것이라. 이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박사구려! 그렇지만 학위를 사사로이 두 사람이서 사고팔아 증서를 만들지 않으면 후일에 소송이 일기 쉽소. 그러니 내가 학교 사람들을 모아놓고 증인을 만들고 명예박사 학위증도 만들어서 수여식을 해야만 사람들의 신용을 얻을 것이오.
이렇게 되어 학장은 교내 모든 교원 및 교직원을 불렀다. 그 밖의 대학원생, 학부생들도 모두 모이라 했다. 회장은 오른편 높직한 자리에 앉히고, 박사는 단상 아래 세워놓았다. 그러고는 증서를 만들어 읽었다.
근혜 3년 10월 6일에 이 증서를 만든다. 박사를 팔아서 연봉을 얻었으니 그 값이 1년에 삼천만 원이나 된다.
원래 박사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연구만 하는 것은 백수요, 강의를 하면 시간강사라 하고, 연봉 삼천에 행정 일을 하면 연구교수라 하고, 하늘의 기운을 받아 정규직이 되는 극소수는 전임교수라 한다. 계약직도 정규직도 모두 같은 이름으로 불러야 저렴하게 부리기 좋기에 통틀어 박사라 한다. 너는 이 중에 전임을 제외한 원하는 것을 고르면 된다.
절대로 연봉 협상은 하지 말며, 학교나 학과에서 시키는 일은 충실히 실행함에 종사해야 할 것이다. 작가는 작품을 쓰면 게재료를 받지만 박사는 논문을 쓰면 게재료를 내야 한다. 늦게 퇴근을 해도 야근비를 받을 수 없으며, 주말에 학회나 행사에 동원됨도 기꺼이 여겨야 한다. 학부생이 무리한 요구를 해도 웃는 낯으로 겸허히 받아들여야 하며, 설령 돈을 내더라도 매년 몇 편씩 논문을 써야 한다. 그리고 논문을 내거든 저작권 따위를 좇지 말고 모든 권리는 학교나 학회에 넘겨야 한다. 교과서를 쓰거나 연구성과를 내더라도 그것이 학교나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은 결과물이라면 네가 쓴 책이라 해도 저작권은 학교나 정부에 주어야 하느니라.
신성한 연구활동에 종사하므로 재물을 따지지 말 것이며, 학문의 선봉에 서는 일이니 고달픔을 피하지 말지어다. 하늘의 뜻을 받아 전임교수가 되는 것은 오로지 너의 노력에 달린 일이니 매사 겸허히 노력함을 힘쓸지며, 자신이 처한 고달픔을 함부로 소리내어 말하여 박사로서의 품위를 해치지 말지어다.
만일 이러한 행동을 실제로 실천하지 못하면 그대로 학교본부에 고하여 학위를 취소하도록 할 것이니라.
이렇게 쓰고 이사장과 총장과 학장 모두가 서명을 했다. 이것이 끝나자 교직원이 인장을 찍었다. 그 소리가 마치 즐거운 고연전 날에 지고 가는 연대생 우는 소리를 듣는 듯하였다.
이것을 교직원이 다 읽고 나자 회장은 우는 소리로 말하였다.
박사란 고작 이런 것뿐입니까? 내가 듣기에 박사는 명예로운 학자라고 들었는데 겨우 이것뿐이라면 비루한 인생이지 않습니까. 더 좋은 일이 있도록 좀 고쳐주십시오.
이에 학장은 문서를 다시 고쳐 썼다.
하늘이 박사를 낼 때는 돈을 따지지 않는다. 비록 나이는 대기업 과장급이라고는 하나 신입사원 못지않은 패기로 열심히 나아가라는 뜻으로 신입사원 정도의 연봉만을 준다. 공부를 스스로 너무나 좋아하여 자신의 논문에 대해서도 돈을 따지지 않는다. 자신의 논문을 게재하기 위해 학술지에 수십만 원을 내고도, 인터넷에서 자기 논문을 다운받기 위해 다시 몇천 원을 기꺼이 낸다. 저렴한 연봉으로 교수 타이틀도 쉽게 얻을 수 있다. 게다가 연구교수니 강의전담교수니 하는 식으로 타이틀도 길어서 주위 사람들이 사정도 모르고 우러러보니 이처럼 효율적인 자리가 어디 있겠는가.
회장은 그 증서를 보자 혀를 내밀어 보이며 말했다.
제발 그만두시오. 맹랑합니다. 나를 금치산자로 만들 작정이오?
이렇게 말하고 회장은 휠체어를 타고서 달아나버렸다. 그리고 죽을 때까지 다시는 ‘박사’라는 말을 입 밖에 내지 않고, 자녀들에게도 대학원 근처에는 가지도 못하게 하였다.
─ 안암 박성호, 「박사전」
원문: 박성호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