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식 과장은 아는 것이 많은 사람이다. 그는 누가 무엇을 물어도 바로 대답할 수 있을 정도다. 그래서 임원이 물어보는 질문에 대답을 잘한다. 회사 내에서 모르는 것이 없을 정도로 빨리 알고 그것을 잘 외운다. 김 과장은 일주일간의 매출 보고가 있는 월요일 아침이면 6시 반에 출근을 한다. 먼저 시스템을 돌려 정보를 빨리 알기 위해서다. 그는 남들이 아직 모르는 정보와 숫자를 누구보다 먼저 알고 말하는 것에 큰 자부심을 느끼는 사람이다.
위의 김 과장처럼 새로운 정보를 먼저 얻는 사람, 그리고 외우는 것을 잘하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들이 때론 일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건 연차나 경험이 적은 사원들의 눈에만 그렇게 보일 뿐이다. 사실 그는 일을 잘하는 사람이 아닌 빨리 정보를 모으는 Fast Scraper일 뿐이다.
사실 그가 먼저 아는 것은 공공재일 뿐, 중요한 정보는 아니다. 지금 당장은 모르더라도 프로그램에 버튼 몇 개만 누르고 조금만 기다리면 알게 되는 것이고, 또 외우지 않더라도 출력한 것을 보면 바로 대답할 수 있는 정보이기 때문이다.
개인의 앎은 ‘사실-데이터-정보-지식-지혜‘의 순서로 완성된다. 우선 사실(Fact)이 가장 기초이자 근본이 된다. 사실을 객관화시키면 데이터(Data)가 되고 이 데이터가 모이면 정보(Information)가 되며 다음 단계가 바로 지식(Knowledge)이다. 마지막으로 지식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면 보편적인 지식, 즉 지혜(Wisdom)가 된다. 사실에 근거한 데이터를 모아서 하나의 가치와 의미가 있는 정보와 지식으로 완성되는 것이다. 그 정보에 긴 안목 다양한 관점 그리고 업무 본질의 옷을 입히면 당신만의 지혜가 된다.
단지 데이터를 먼저 알게 되는 것이 일을 잘하는 척도가 될 수는 없다. 현대 사회에서는 사실을 먼저 아는 것보다는 정보에 담긴 뜻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정보를 조합하고 그 안에의 유의미한 인사이트를 뽑아내는 것, 그리고 그 인사이트를 바탕으로 앞으로 행동해야 할 것을 결정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저 숫자를 아는 것, 어디서 불이 났다는 사실을 아는 것, 오늘 날씨가 영하 5도라는 걸 아는 것, 어제 매출이 얼마였다는 것을 아는 것, 누가 승진할 거라는 소문을 아는 것, 이런 것은 큰 의미가 없다. 한순간에는 의미가 있을 수 있지만 그 순간은 매우 짧다. 그것이 모든 사람이 아는 지식이 되는 순간 그 의미는 사라지기 때문이다.
새로운 이야기와 소식, 지식을 퍼트려서 일견 식자, 혹은 일 잘하는 사람처럼 보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정보를 바탕으로 더 깊게 생각하여 유의미한 인사이트를 생산하는 것이다. 그렇지 못하다면 그 정보는 겨울철 영하 0도에 동네 개울가에 비치는 살얼음 같을 뿐이다. 해가 뜨면 바로 녹아 없어진다. 오히려 지식과 정보를 새로운 가치로 생산해 낼 능력이 없는 사람들일수록 새로운 정보를 먼저 접하는 것에 집착한다.
예를 들면 지난주 매출을 주도한 상품은 ○○○이고, 매출은 2주 전보다 250% 신장한 XX백만 원이었다. 여기까지만 안다면 그저 정보를 아는 것에 머문다. 매출이 신장한 그 이유는 남부 지방의 갑작스러운 폭염과 새로 바꾼 진열 집기 때문이었다. 다음 주도 더울 거라는 정보를 확인한 후 남부지방 매장의 점장에게 전화해서 정성적인 고객의 반응을 체크한다. 그리고 해당 상품의 발주량을 상향 조정하고 프로모션 계획도 세우는 의사결정을 내리고 행동한다. 이것이 훨씬 중요하다.
이번에 누가 승진하고 누가 사장님과 라인이라는 것을 단지 빨리 아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보다 그 사람이 왜, 무엇을 잘해서 이번에 승진할 수 있었는지, 어떤 이유로 사장님과 친하게 되었는지 등을 알아내서 자신도 그 능력을 개발하는 것이 맞다.
데이터를 빨리 모으는 Fast Scraper가 아직 회사에서 ‘열심히 일한다’라는 인식을 받는 이유는 하나다. 우리의 조직이 여전히 ‘농업적 근면성’을 중요한 덕목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시스템이 좋지 않은 회사에서 월요일 아침 새벽 별을 보고 출근해서 남들보다 30분 빨리 자료를 돌려서 남들보다 30분 일찍 아는 것이 능력처럼 비칠 수 있다. 하지만 누구나 곧 알게 되는 것을 먼저 아는 것, 그리고 그것을 아침 회의에 먼저 말하는 것. 그건 능력이 아니다. 그저 남들보다 농업적 근면성이 뛰어난 것일 뿐이다.
이런 글에 누군가는 ‘그럼 근면한 게 잘못이냐?’고 불편해할 수도 있다. 물론 근면성 자체가 나쁘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단지 근면한 것이 곧 일을 잘하는 것으로 판단하는 것이 문제라는 말이다. 하루가 다르게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 맞춰서 끊임없이 회사를 위한 이윤을 생산하기를 강요받는 2017년, 직장인에게 필요한 능력은 근면성 그 하나만 가지고는 부족하다.
진짜 안다는 것은 정보에 깊은 숙고, 정보의 분석, 그리고 경험을 더해서 나오는 논리적인 인사이트다. 단지 먼저 아는 것을 자랑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그저 작은 물방울 하나에 뚫리는 습자지이고 해 뜨면 곧 사라질 살얼음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원문: 직장생활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