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에서 독일의 임대주택에 관한 글이 공유된 것을 보았다. 원 프로그램은 2013년 10월에 방송된 KBS 시사 기획 ‘창’이다. 이런 종류의 다큐멘터리는 어느 정도 결론을 내리고 거기에 맞춰 영상 등의 자료를 수집하는 경우가 많기에 조심하는 게 좋은데 아마 이게 좋은 예가 아닐까 싶다. 독일의 주거 시스템을 너무 이상적으로 그렸다는 게 문제다.
일단 독일의 주거 정책이 임차인에 대한 강력한 보호를 시행하는 점은 맞다. 그러나 독일이 이토록 임차인에게 천국이라면 임대인은 왜 건물을 사서 임차인에게 빌려주겠는가? 심지어는 독일의 주택 임대시장은 민간이 주도하는 시장이다.
위의 표를 보면 알겠지만 독일은 유럽 국가 중에서 자가 비율이 가장 낮고 공공임대 비중 역시 매우 낮으며 반면에 민간 임대 비중이 가장 높은 나라다. 특히나 민간 임대 비중이 절반 이상으로 공공임대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 다른 유럽 국가와 독일이 다른 부분이다. 만약 위의 방송대로 독일인들이 집을 여러 개 사지 않는다면 저 어마어마한 규모의 임대주택시장이 어떻게 돌아갈까?
독일은 일단 한국보다도 타이트한 대출규제로 인해 돈이 없으면 집을 사기가 어렵게 되어 있다. 그래서 젊을 때는 자가 주택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임대주택에 거주한다. 이는 세계대전 후에 폭격 맞아 폐허가 된 도시를 재건할 때, 정부 주도로 주택을 짓기보단 민간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발전해왔기 때문이다.
이 민간주택의 보유자들은 대부분 나이 든 50대 이상의 사람들로 주로 영세 임대업자들이다. 이들에게 주택은 연금에 더해 임대수익을 통한 노후 보장의 일환이기도 하다. 이 사람들이 왜 임대료 올리는 것에 관심이 없겠는가? 오랜 기간 임대료를 올리지 않았다는 이 방송의 사례는 극히 이례적이다.
독일은 임대료 부분에선 시장에 맡겨두는데 이 부분은 영국보다도 더 시장지향적이란 평가를 듣는다.
다만 상한선은 있다. 현재의 독일의 임대료 상한은 3년 내 20%(위에선 15%라 나오지만 저것은 예전 이야기일 것이다)이며 여기에 주택보수 및 개량 시 이 비용을 반영하여 연 11%p까지 추가로 더 올릴 수 있다. 이를 모두 반영한다면 3년 동안 최대 53%까지 임대료가 가능하다.
결코 저렴하진 않다. 또한 3년 내 최대 20%의 기본 상한도 독일의 극도로 낮은 인플레이션율을 감안하면 굉장히 높은 수준이다.
여기에 독일의 이런 임대주택은 철저하게 노 옵션이다. 임차인은 들어가면서 도색과 가구, 집기 등을 하나하나 모두 사야 하고 나갈 때는 전부 빼가야 하는 데다가 처음 상태로 다시 원상복구까지 해야 한다. 이것도 다 비용이다. 임차인의 주거 기간 보장에 더해 상대적으로 비싼 이전비용 발생은 임차인이 더 오래 한 곳에 머무르게 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독일의 임대료가 과거 크게 오르지 않았던 것은 특정 지역의 집중도가 한국은 물론 유럽 다른 국가에 비해서도 낮기 때문이다. 독일은 도시 간 경제 격차가 다른 국가보다 낮은 수준에 속한다. 물론 옛 동독지역의 도시들과 서독지역의 도시들은 현격한 차이를 보이긴 하지만 그래도 서독지역 도시들만 하더라도 많은 차이를 보이진 않는다.
또한 인구 집중도 또한 낮은 편인데 1km^2당 인구수를 비교해보면 서울은 165만 명/1km^2인 반면 베를린은 3,900여 명에 불과하다. 남독일 최대 도시인 뮌헨은 약 4,400여 명이다. 한국의 도시 중 뮌헨과 그나마 비슷한 도시가 바로 부산(약 4,453명)이다.
독일이 이와 같은 균등한 분산을 보일 수 있는 것은 일단 국토 자체도 넓기 때문이지만 독일이란 국가 자체가 수많은 소국의 집합으로 탄생한 연방 국가인 점도 있다. 또한 세계대전 이후 초토화된 상황에서 균형 발전이 된 측면도 있고.
좁은 지역에 더 많은 인구가 몰려 살면 당연히 그에 따른 주거 비용은 높을 수밖에 없다. 독일은 각 지역의 대도시로 적절히 분산되어서 상승 여력이 비교적 낮았던 부분이 있다. 그러나 한국은 수도권으로 모든 것이 집중되었기 때문에 상승 여력이 훨씬 높았고 또한 인플레이션도 독일보다 더 높았다.
그러는 와중에 2000년대 들어 독일의 대도시 지역을 중심으로 주거임대료 랠리가 벌어지고 있는 것은 경제 상황뿐 아니라 집에 대해 독일인들이 과거에 갖던 태도가 조금씩 달라졌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민간주택 임대수익이 상대적으로 제법 올라가자 사람들은 예전보다 주택을 빨리 사기 시작했고 신축과 개축을 통해 수익성을 더 높였다.
이러다 보니 예전엔 집을 사지 않았던 사람도 이렇게 올라가는 거 주택을 사자는 쪽으로 방향을 바꾼 상황이다. 이런 식으로 사람들이 어떠한 것에 인식을 바꿀 때 상황은 크게 변한다. 따라서 앞으로 독일의 주택 시장과 사정도 과거와 같지 않을 확률이 높다.
오즈의 마법사는 도로시가 양철 나무꾼과 겁쟁이 사자, 허수아비와 함께 아름다운 에메랄드 시티의 위대한 마법사인 오즈의 마법사를 찾아가는 이야기다. 그러나 막상 찾아가서 보니 오즈의 마법사는 그저 평범한 인간일 뿐이었다. 모든 것이 이와 같다. 멀리서 보면 좋아 보이고 완벽무결해 보이지만 가까이서 살펴보면 생각보단 별것 아니고 보기보단 문제가 많은 것이 세상사다.
그런 점에서 저 프로그램에이 보여주는 독일의 임대주택은 오즈의 마법사와 같다. 그쪽도 그쪽 나름대로 문제가 많다. 아무리 좋은 제도도 그쪽에 맞는 역사적 배경이 기반이 되어 있기에 적용이 가능한 것이다. 좋다고 막 갖다 쓰면 그쪽에서는 역사적 배경 때문에 드러나지 않던 단점이 드러나게 마련이다. 너무 과도한 기대와 이상향 만들기는 지양하는 것이 좋다. 그럴수록 현실과 멀어지기 때문이다.
2015년에 쓴 ‘재미있는 독일의 부동산 시장‘을 덧붙인다. 독일이 그렇게나 임차인에게 천국이라면 왜 지금 독일에선 엄청난 주택 임대료 랠리가 펼쳐지고 있는 것일까? 왜 그것 때문에 지금 독일이 난리인 것일까?
원문: Second Com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