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살 때 3%만 있으면 97%를 빌려드립니다.
이런 광고문구는 뭔가 사기성이 농후해 보인다. 전통적인 한국의 1금융권의 점잖은 대출은 집값의 60%까지인데 (현재는 한시적으로 1, 2금융권 모두 70%) 집 살 때 자기 돈 3%만 있으면 97%를 빌려준다는 게 어디 가당키나 한 말인가? 집값의 97%를 빌려준다면 제2금융권도 아닌 제4금융권 사채업자에게서나 들어봄 직한 ‘발칙한’ 발언처럼 들린다.
하지만, 이는 미국 국책 모기지 기관 패니메이(Fannie Mae)의 선진 금융프로그램인 ‘Home Ready’의 내용이다. 우리가 들어봤음직 한 초우량 은행들인 웰스파고, 뱅크오브아메리카, JP모건체이스 등이 내어놓고 있는 아주 알짜배기 금융상품이다. 여기서 한술 더 떠, 최근에는 패니메이의 자매회사인 프레디맥이 미국 최대 온라인 모기지 회사인 퀵큰론과 함께 1%만 있으면 99%를 빌려주는 상품까지 만들었으니 집을 장만하려는 사람들의 꿈에 사다리를 연결해주는 걸 넘어서서 아예 고속 엘리베이터를 마련해 주고 있는듯하다.
미국은 2008년 금융위기를 금세 잊어버리고는 또 다시 탐욕에 가득 차 허술한 돈놀이를 하는 것일까? 아님 뭔가 믿는 구석이 있거나 우리가 모르는 뭔가가 있는 것일까? 우리의 상식으로는 잘 이해되지 않는 미국의 주택담보대출, 모기지Mortgage 제도에 대해 살짝 알아보자.
한국의 담보대출
흔히들 주택담보대출을 영어로 번역을 하게 되면 모기지mortgage라고 쓰는데, 엄밀히 미국의 모기지 제도와 한국의 주택담보대출은 다르다. 글자 그대로의 의미, 집을 담보로 돈을 빌린다는 의미는 맞을지 몰라도 여기서 지칭되는 미국의 모기지 프로그램과 한국의 담보대출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
일단, 우리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주택담보대출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요즘같이 금리가 낮은 시기에는 집을 담보로 싼 돈을 안 쓰면 왠지 손해 보는 느낌마저 들 정도로 1호 재산목록이다. 이러한 집을 현금주고 사는 사람은 많지 않다. 2호 재산목록인 자동차를 살 때도 찻값의 상당 부분을 빌려서 사기는 하지만, 두 경우의 느낌과 무게감은 사뭇 다른 것 같다.
차를 할부로 살 때, 또는 리스로 빌릴 때를 생각해 보자. 우리는 찻값의 상당액을 미래에 갚겠다는 약속을 하고 차키를 넘겨받는다. 이때 우리는 차를 금융으로 ‘구입했다’는 표현을 쓴다. 그런데 집 열쇠를 넘겨받을 때는, ‘매입’이라고 쓰고 ‘투자’라고 읽는 것 같다. 차는 타기 위해 사고 집은 살기 위해 사지만, 차는 소비고 집은 투자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집은 투자상품으로 자리 잡았을까? 몇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급격한 경제발전으로 사람들이 텍사스 소 떼처럼 도시로 도시로 몰려들면서 도시는 절대적인 주택 부족을 겪었던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주거수요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단기간에 대규모 주택을 쏟아내어야 했는데, 이때 아파트가 나왔다.
동네에 중국집이 한두 개밖에 없고, 점심시간에 문밖으로 사람들이 줄을 지어 기다리고 있다면 이런저런 개인의 기호를 살리기보다는 ‘짜장면 다섯이요’처럼 짧고 통일된 주문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이러한 결핍의 시대에는 대규모의 아파트를 속전속결로 공급하기 위해 천편일률적인 성냥갑의 형태로 수백 개의 똑같은 평면의 집들을 공장 두부처럼 찍어낼 수밖에 없었다. 닭장 같은 아파트는 몇천 세대씩 묶여 단지를 이루게 되었다.
그런데 이렇게 주거상품이 천편일률적으로 규격화되다 보니 시간이 지나 표준화된 투자처로 효용을 인정받고 투자상품으로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전부 제각각으로 생긴 단독주택을 살 때는 시세를 알아보려면 발품을 팔아 동네를 몇 바퀴씩 돌면서 시장조사를 해야 하겠지만, OO동 OOO아파트 30평형은 평당 OOO만원, 40평형은 평당 OOO만원씩 가격이 공시되다시피 정해지다 보니 어리숙한 일반인들도 안심하고 투자할 수 있는 안정성을 확보하게 되었고, 세대수가 많다보니 매물도 많고 활발한 거래가 일어나는 시장이 형성되어 여유돈 있을때 샀다가 돈이 필요하면 언제든 팔아 현금화 시킬수 있는 투자상품으로 아파트는 각광을 받게 된 것이다.
그런데 주식과 달리 집은 금액이 워낙에 커서, 집을 하나 사기 위해서는 큰 목돈이 필요하다. 투자자 주머니 사정에 따라 수박 반 통처럼 쪼개서 살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집을 살 때는 금융의 도움이 필요하다.
은행 돈이 귀하던 시기에는 전 세계 사금융 업계를 깜짝 놀라게 한 세계적 발명품인 전세 제도도 나오게 됐다. 오늘날 6억짜리 집을 전세 놓으면 4억 정도는 무리 없이 전세금으로 융통할 수 있고, 소득과 신용이 있는 사람이면 집을 담보로 은행에서 4억 원 플러스 알파를 대출받을 수 있다. 그동안 사람들은 수중에 돈이 없더라도 무리해서 집을 사기 위해 이러한 지렛대를 십분 활용했다. 살다 보면 목돈이 필요할 때가 생겨도 집을 팔기보다는 집을 담보로 돈을 빌렸다. 집값은 계속 오른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집값이 오른다는 전망이 불투명해지게 되면, 즉 앞으로 집값이 정체되거나 떨어진다면 어떻게 될까? 집값 하락의 논의는 이런 식으로 전개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주택보급률이 100%가 넘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공급과잉은 시간의 문제일 뿐 언젠가는 들이닥칠 현실이다. 주택 공급은 늘어나는데 집을 사려는 실수요가 그만큼 받쳐주지 않는다면 빈집이 생겨날 것이고, 새로운 집을 짓더라도 실수요자들의 소득이 받쳐주지 않는다면 미분양이나 급매물이 생길 것이다.
수요는 적어지는데 공급이 많아진다면 가격은 하락할 것이고 집값이 하락한다면 전세는 급속도로 월세로 돌아서거나(※ 전세는 오직 집값 상승을 전제로 만들어진 사금융 제도이다), 낮은 임대수익률에 집으로 한몫 잡으려던 가수요는 줄어들 것이다. 매물은 늘고 가격은 하락할 것이다.
가격이 하락하면 수요는 더 줄어든다. 어차피 모아둔 돈으로 집을 사는 것이 아닌 이상, 이자로 나가는 돈이나 임대료로 나가는 돈이나 나가는 건 같은데 집값이 오르지 않는다면 뭐하러 번거롭게 집을 사느냐는 자유로운 영혼들이 늘어난다. 그렇게 집을 못 사는 게 아니라 안 사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집에 대한 실수요는 더욱 위축되고 가격하락 폭은 더 커질지도 모른다.
이렇듯 모든 현상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악순환의 인과고리를 만들게 된다. 박근혜정부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가수요, 즉 투자수요를 당겨 썼다. 약발이 빠르고 확실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투기수요에는 치명적인 부작용이 있다. 언젠가 수익을 달성하고 나면 시장에서 떠날 수요라는 것이다. 언 발에 오줌 누기라는 말처럼… 당장은 시장이 활황으로 돌아가는 것 같지만, 음악이 꺼지는 순간 폭탄 돌리기가 멈출 것이다. 누군가는 폭탄을 안고 있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차선으로 생각해볼 만한 것은 무엇이 있을까? 실수요, 즉 유효수요를 늘려 잡는 것이다. 기존에는 집 살 수 있는 능력이 안 되거나 기회가 없었던 사람들이 집을 살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다소 시장논리에 반할 수도 있고 나라에서 지원하는 복지처럼 비쳐질 수 있지만, 두터운 실수요자를 만들어 내는 만큼 시장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를 통해 수급불균형에 의한 가격하락을 방지하고 궁극적으로 납세자들의 행복을 지켜줄 수 있는 안전망이 구축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눈여겨 볼만한 것이 미국의 주택금융이다.
미국의 모기지 Mortgage
1929년 미국의 대공황 당시, 새로운 집을 살 수 있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했다. 다수의 사람들은 경제 상황이 최악에 치달으면서 집을 차압당하고 경매로 잃어버린다.
이러한 상황에서 1934년 미국의 주택법이 발효되면서 FHA(연방 주택관리국 Federal Housing Administration)라는 새로운 조직이 탄생하였다. 이 조직은 사람들이 집을 담보로 돈을 빌렸다가 돈을 갚지 못하게 되면 대신 책임을 지고 돈을 갚아주는 역할을 맡게 된다. 나라에서 보증을 서주게 되니, 가뜩이나 대공황 때 움츠러들었던 은행들이 집을 사거나 짓는 데 필요한 자금을 시중에 풀게 되는 계기가 되었고, 미국의 선진화된 모기지 프로그램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게 되었다.
1934년 이전의 미국은 겉으로 볼 때에는 최근까지의 한국과 매우 비슷했다. 집을 담보로 빌릴 수 있는 금액은 집값의 50% (LTV 50%), 돈을 빌리면 3년에서 5년간 이자만 갚다가 만기에 원금을 갚는 형태였다. 따라서 목돈을 손에 쥐고 있는 일부의 사람들만 집을 살 수 있었고, 그래서 당시 주택 자가보유율은 40% 수준에 머물고 있었다.
그런데 이때 두둥, FHA의 등장으로 갑자기 집을 담보로 80%, 90%까지 돈을 빌릴 수 있게 되었다. 이러면서 집을 살 수 있는 사람들의 수가 큰 폭으로 늘어나게 되었다. 대출 기간도 대폭 늘어나 3~5년이 아니라 15년까지 돈을 나누어 내도록 했는데, 이 기간은 점차 30년까지 늘어났다.
대출 기간이 짧으면 그만큼 원금상환 주기도 빨리 도래하게 된다. 그때 금융 상황이 악화되어 신규로 대출refinance을 받지 못하게 되면 집주인들은 꼼짝없이 부도를 맞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제 대공황 당시 집을 경매로 잃은 사람들은 이러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FHA의 등장으로 안정적인 주택금융 프로그램이 만들어지면서, 미국의 주택구입은 대부분 모기지 프로그램을 통해 이루어지게 되었다.
FHA는 중간에 HUD라는 미국 주택도시개발국 (Department of Housing and Urban Development)로 흡수됐다가 2012년 서브프라임 사태 이후 급증한 부실채권으로 기금Reserve이 간당간당한 앵꼬로 떨어질 뻔 하기도 했다. 하지만 곧이어 2% 수준의 적정 충당금을 회복시켜 지금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집을 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미국은 신용사회이고 신용이 매우 중요하다고 얘기하는 이유가 바로 장기 금융 프로그램인 모기지를 신청할 때 당시의 신용상태에 따라 그 후 상당기간 동안의 이자 금액이 늘기도 하고 줄기도 하기 때문이다. 또한, 모기지 프로그램에서 원금을 제외한 이자 부분에 대해서는 세금 감면 혜택을 주기 때문에 세금 부담이 높은 중상층에서는 절세효과의 혜택도 볼 수 있다.
이렇듯 미국의 모기지가 집을 사용할 수 있는 타이밍을 앞당기는 수단(카드사 12개월 무이자 할부 같은 느낌)으로 활용된 반면, 한국의 주택담보대출은 투자효과를 극대화 하기위한 지렛대로 활용되었다고 하겠다.
물론 한국에도 FHA와 비슷해 보이는 프로그램들이 있다. 한국주택금융공사의 생애최초주택 구입자금, 근로자서민 주택 구입자금, 우대형 보금자리론 등 3종 정책성 대출을 묶어 디딤돌 대출이라고 하는게 있다. 다만, 한국은 정부의 LTV규제 때문에 모두가 획일적인 기준을 적용받아 실질적으로 빌릴 수 있는 대출금액에 한계(최대 60~70%)가 있고, 요즘은 DTI규제로 인해 LTV상한선을 다 채우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아지고 있으니 대출의 문턱은 반쯤 낮췄다고 볼 수 있겠다.
한국에서도 대출원금과 이자를 계산할 때 30년 원리금 분할 상환을 표방하기는 하지만, 실제 대출 기간이 5년 정도로 짧고 그때그때 대출 연장을 하도록 정해 두었다. 이러한 balloon payment(남은 대출잔액은 다음 대출에서 승계) 방식은 80년 전 미국에 모기지 프로그램이 도입되기 전의 모델이다. 아직 우리나라에 선진화된 금융 프로그램이 성장하지 못했다고 보든지, 미국은 한국과 근본적으로 대출 목적물의 성격이 달라 금융의 목적 자체가 다르다고 보든지 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언제까지 집이 투자상품으로 남아 있을 수는 없다. 금융의 선진화도 피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이제… 앞으로 가야 할 길은 보이는 듯하다.
PS.
그런데 모기지는 들을 때마다 어감이 별로다. 모가지 같아서 섬뜩하기도 하고… ㅜㅜ 실제로 Mortgage의 어원은 Death-Pledge (죽어서까지 갚아야 하는 빚)으로, 빚을 못 갚으면 담보를 갖고 가도 좋다는 의미라고 한다.
원문 : 남성태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