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2017 휴넷 리더스 포럼’에서 발표되었던 정보를 재구성한 자료입니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과 이 사회의 문제점에 대해 긴 토론을 할 때면 공통적으로 나오는 두 가지 결론이 있습니다. 하나는 결국 모든 문제의 원인은 교육이라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현재의 교육 시스템은 잘못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아마 많은 분이 공감할 것입니다. 어째서 우리 교육은 이렇게 변하게 되었을까요? 역사적인 배경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원시시대에 최초의 교육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것은 생존에 관한 것이었고 아마도 부모나 주변인을 통한 교육이었을 것입니다. 그 시절부터 수천 년 동안 인류의 교육은 늘 온디맨드(On-Demand) 방식이었습니다. 굶어 죽지 않기 위해 사냥하는 법을 배워야만 했고, 얼어 죽지 않기 위해 생존하는 법을 배워야만 했습니다. 즉 수요에 의해 공급이 필요한 시대였습니다.
그러한 패러다임이 극적으로 바뀌게 된 것은 바로 산업혁명과 전쟁을 통해서였습니다. 특히 중세시대의 전쟁과는 달리 산업혁명 이후에 일어난 지구적 분쟁인 세계대전은 모든 국가의 자원을 극한으로 끌어올린 총력전이었고, 전쟁의 수요를 조달하기 위해 국가의 모든 자원은 최대한 빨리 공급해야 하는 체제로 변했습니다. 그건 무기나 식량뿐 아니라 인적자원(Human Resource)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가능한 빠른 시간 안에 각기 다른 문화와 환경 속에서 자란 젊은이들을 동일한 수준으로 만들기 위해 인류는 산업혁명에서 배운 공장과도 같은 표준 교육 시스템을 도입합니다. Frederic Tailor나 Henry Ford가 이미 경영학에서 큰 성과를 이룬 방법이지요. 당시엔 교육의 효과성보다는 육성의 효율성을 위하여 개인의 개성을 획일화하고 동일한 교육으로 동일한 목표치에 도달하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전쟁이라는 특수적 상황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음이 당연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전쟁이 마치고 다시 원래의 교육 시스템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미군정 시대에 이어 군사정권이 두 세대를 지배했고, 더욱이 보수적인 유교적 문화는 군사문화와 어우러져 수직적이고 일방적인 교육문화를 이어가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것이 개인적으로 우리 교육문화의 잘못된 첫 단추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수천 년이 지속된 교육의 패러다임이 불과 100년 만에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다시 원래의 상태로 돌아가려고 합니다.
교육, 100년의 동면
1900년엔 사람들이 극장에서 오페라를 들었습니다. 1950년대엔 전축을 들었고, 1980년대엔 워크맨을 들었으며, 2000년대에 와서는 디지털 음원으로 사람들은 음악을 듣습니다. 그러나 교육은 1900년이나 1950년이나 1980년이나 2000년이나 여전히 큰 변화가 없습니다.
다보스포럼에 따르면 현 초등학교 입학생의 65%가 아직 존재하지도 않는 직업에 종사할 것이며, 현존하는 직업 20억 개의 자리가 2030년에는 소멸되고 지금의 일자리의 80%는 15년 안에 사라진다고 합니다. 이런 시대의 변화 앞에서 우리 교육은 아무런 변화 없이 가만히 있으면 이러한 미래를 준비할 수 있을까요?
기술은 급속도로 발전하는데 우리는 똑같은 학습 목표로, 똑같은 내용을, 똑같은 방법으로,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시간에 모두가 모여 학습할 필요가 있는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다행히 많은 교육자의 고민을 거쳐 서구를 중심으로 이러한 획일적인 교육 방법이 최근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교육을 ‘뒤집는’ 원칙
앞으로의 모든 교육은 플립러닝(Flipped Learning)이 될 것이며 되어야만 합니다. 최근 진행되고 있는 새로운 교육 실험들의 키워드들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MOOC, Nano Degree, Micro School, Alternative Education, Edu-Tech, AI, VR/AR Education, Gamification, STEM, Social Learning, etc..
이 키워드들은 대부분 기술에 관한 것이지만 플립러닝은 모든 것에 포함되는 ‘원칙’에 가까운 개념이기에 결국 플립에브리띵(Flipped-Everything)이 될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럼 과연 무엇이 뒤집어질까요?
플립러닝은 기존 방식을 ‘뒤집는(Flip)’ 학습 방식을 말하는 것으로서, 2012년 Bates&Galloway의 정의에 따르면 “교실 수업 전에는 학생들이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강의 영상을 온라인으로 학생들에게 제공하고, 교실 수업에서는 학생들이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푸는 일이나 좀 더 심화된 학습활동을 동료학습자들과의 토론이나 조교 및 교수자의 도움을 통하여 수행하도록 하는 것”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너무나 당연하고 명확한 말인데 한편으로는 그걸 못하고 있음에 반성하게 됩니다. 흔히들 가장 못하는 종류의 강의가 슬라이드나 책을 같이 읽는 방식이라고 하지요. 그건 그럴 필요가 없는 시간 낭비입니다. 위의 정의에서 말한 바와 같이 혼자서 할 수 있는 부분은 혼자서 하고 다 같이 모였을 때는 모여서 할 수 있는 활동을 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방법입니다. 시간뿐 아니라 능률적인 면에서도요.
플립러닝의 특징
플립러닝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 강의식 수업의 수동적 학습자가 능동적인 수업의 주체가 되게 합니다.
- 통제적인 감독자 혹은 지식 전달자인 교사가 학생들의 학습을 돕는 조력자 역할을 합니다. 즉 플립러닝 방식의 교육에서 교사의 역할은 퍼실리테이터(Facilitator)가 되어야만 합니다.
- 온라인 동영상 등 테크놀로지를 활용하여 수업을 촉진합니다.
- 전통적인 교실 수업과 숙제를 위한 시간이 바뀝니다.
- 강의장에서는 학습자들이 이해하지 못한 내용을 파악, 이해 정도에 따라 개별적으로 지도하거나 문제 해결 활동을 통해 고차적 사고력, 문제 해결 능력을 기르도록 사용됩니다. 즉 배운 내용을 현장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가 주된 질문이 됩니다.
위 그림은 교육학에서 유명한 이론인 Bloom’s Taxonomy입니다. Bloom의 분류법에 의하면 학습 과정은 크게 지식(Knowledge)-이해(Comprehension)-적용(Application)-분석(Analysis)-종합(Synthesis)-평가(Evaluation)의 6개 위계로 나누어진다고 합니다. 기존의 전통적 학습이 강의장에서 ‘지식-이해’ 단계를 거치고 개별적으로 ‘적용-분석-종합-평가’를 한 것에 비해 플립러닝은 개별적으로 ‘지식-이해’ 단계를 거치고 강의장에서는 ‘적용-분석-종합-평가’를 지향함으로써 학습 효과를 극대화합니다. 상위 학습 목표는 오프라인으로, 하위 학습 목표는 온라인으로 함으로서 효율성을 높이자는 완전히 반대의 패러다임이지요.
즉 성과나 효율성에 있어서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앞에서 말씀 드린 바와 같이 앞으로의 교육이 플립러닝으로 변할 수밖에 없고 변해야만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MOOC 등 대학교육은 물론이고 기업교육을 제공하는 온라인 교육업체들도 최근 플립러닝을 이용한 솔루션 개발에 경쟁적으로 뛰어들고 있습니다.
플립러닝의 사례
플립러닝을 이용한 대표적인 교육 사례 중 하나가 바로 미네르바스쿨(Minerva School)입니다. 이 학교는 투자를 받아 설립한 스타트업 교육기관으로서 미국대학교육협의회(KGI)에 등록되어 4년제 학위를 수여하는 정식 대학입니다. 모든 학생은 4년 내내 100% 온라인으로 수업을 받는 동시에 1년마다 국가를 바꿔가며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1학년은 미국 샌프란시스코, 2학년은 브라질, 3학년은 독일, 4학년은 인도 등에서 말이지요. 온라인 수업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수업정원 20명 이내의 실시간 온라인 토론으로 참여율을 높이고 있다고 합니다. 즉 여기도 개별학습과 집단학습을 구분하고 뒤집었으나 집단 학습도 온라인에서 함으로서 국경의 한계를 초월했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미네르바스쿨은 현재 하버드(5.2%), 예일(6.3%), 스탠퍼드(4.7%)보다도 낮은 입학률(1.9%)을 보일 정도로 치열한 경쟁을 보이고 있으며 등록금 역시 미국 대학 평균의 1/4 수준이어서 기존의 대학 산업을 뒤집고 있습니다. 한국에도 곧 들어온다고 합니다.
미네르바스쿨 말고도 국내에도 플립러닝의 성공사례가 있습니다. 바로 카이스트의 ‘에듀케이션 3.0’ 프로젝트입니다. 기사에 따르면 카이스트의 이 프로젝트는 처음에는 시행착오도 있었고 어색함도 있었지만, 그 이후로 몇 해가 지나면서 현재 공학 분야 거의 모든 전공의 평가 지표에서 카이스트가 대부분 1위를 하고 있다고 하니 그 효과가 크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변화를 위한 제안
지금까지 플립러닝의 개념에 대해 간략히 알아보았습니다. 이것도 그냥 교육방식의 하나가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기엔 지금 전 세계의 교육이 이 방식으로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또한 기본 도구가 온라인이기 때문에 MOOC나 Open Education Resource, Social Learning 등의 개념들과 빠르게 흡수되면서 미래 교육의 형태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교육자들은 이러한 변화에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요? 몇 가지 제안을 드리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첫째로, 앞으로의 교육 콘텐츠는 플립러닝에 맞추어 커리큘럼을 준비해야 할 것입니다. 당장 온라인 콘텐츠가 자체 준비되지 않는다면 다른 외부 강의 혹은 도서를 통해 사전에 공부하고 사후에 복습하되 클래스에서는 토론과 실습을 중심으로 교육이 진행되도록 설계해야 합니다.
둘째로, 교육자 역시 단순히 지식의 전달자가 아니라 퍼실리테이터로서 훈련이 되어야 합니다. 이제 웬만한 지식은 인터넷으로 누구나 찾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즉 정보 비대칭으로 인한 격차가 급격히 줄어들게 되었지요. 그렇다면 앞으로 교사의 역할은 이론이나 논문을 많이 읽은 사람보다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식을 통해 학생들에게 어떤 경험을 만들어 줄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으로 변하게 될 것입니다.
셋째로, MOOC를 비롯하여 현존하는 대부분의 온라인 콘텐츠는 영어가 절대적입니다. 따라서 학생과 교사 모두 영어로 된 콘텐츠에 친숙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정책적·비즈니스적으로 해외 콘텐츠들에 대해서 캡션 작업도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서 언어에 따른 정보 격차가 최소화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원문: 최효석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