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학위로 전문가가 되는가, 전문가가 박사학위를 따는가?
나는 타고난 지적 허영심(!)을 제어하기 힘든 사람이다. 사회적으로 합의된 정의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주위에서 받아들여질 만한 정도를 지적 ‘호기심’이라 한다면, “도대체 왜 저렇게까지?”라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키는 수준을 지적 ‘허영심’이라 할만하다.
난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늘 업무와 관련 없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혼자서 ‘연구’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영업연구직’이라는 별칭도 얻었었다. 그런 편린이 보고 싶은 분은 아래 링크를 참조하시길. 단, 나는 종합상사에 근무하기는 했지만, 밥솥이나 가발 같은 소비재를 다루는 일은 전혀 해본 적이 없다.
지난 글에서 다룬 석사과정은 차마 지적 허영심이라 부르기에 좀 뭣하다. 학사과정과 직장생활을 연결해서 생각할 때, 석사과정 정도는 이제 누구나 필요할 수 있다는 공감이 널리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사과정은 다르다. 시작할 때부터, 아니 탐색할 때부터 날선 의구심이 공격해 들어온다.
박사 따서 교수 되려고? 아님 연구원으로 이직하게?
문제는 바로 이것, 직업인이 왜 박사학위를 얻으려 하는가 하는 근본적인 질문으로 귀결된다.
김박사 vs. 김프로
직장생활 하다 보면 박사가 아닌데도 박사로 불리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다니던 직장에서도 여러 명의 박사 아닌 박사가 있었는데, 거기서는 약간 비꼬는 느낌이 섞여 있었다. 정작 돈은 못 벌면서 아는 것만 많은 사람이라는 뜻으로 말이다. 아는 것 많은 사람이 돈까지 잘 벌면 김박사가 아니라 ‘김프로’라고 따로 부르기도 한다.
직장에서 박사학위에 도전하려면 공부 이전에 엄청난 편견의 벽부터 넘어서야 한다. 그리고 스스로 답할 수 있어야 한다.
도대체 박사가 되어서 뭐 하려구?
나의 사례 : 어쩌다 박사과정에 들어서게 되었나?
1999년 석사학위를 받은 직후 전역하였다. 수산업(!)에 잠시 머물다, 2000년에 종합상사로 옮겼다. 이쑤시개나 인공위성을 사고파는 Trader가 아니라, 인프라, 플랜트 같은 프로젝트를 개발하는 일을 맡게 되었다. 물론, 지역은 아프리카.
지금도 아프리카에서 사업을 벌이면서 마주하는 가장 큰 어려움은 ‘금융’이다. 돈 끌어대기가 참 어려운 지역이다. 그래서 유상차관을 활용하는 법을 배웠다. 물론, 처음에는 원조니 ODA니 하는 것이 뭔지도 몰랐다. 그냥 금융의 한 갈래려니 하고 활용하는 법에만 몰두했다.
다행히 상재(商才)가 있다는 소리를 들어가면서 사업개발을 잘 배웠다. 그러기를 10년이 다 되어갈 무렵, ODA니 개발협력이니 하는 것들이 그냥 금융과는 뭔가 좀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업 만드는 기술만 익혔지, 이 사업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인지, 아니 어디로 가야 하는 것인지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렇다, 내게는 전체적인 그림이 없었다.
또 마흔을 눈앞에 두니, 이룬 것 없이 나이만 들어간다는 자괴감도 한몫 했다.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았지만 마흔에 뭔가 내 것을 시작하지 않으면, 쉰이 되어서도 같은 고민을 할 것 같았다. 지금도 그렇지만 개발협력업계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유독 학력 인플레이션이 심했다. 현장에서도 Ph.D.가 그렇게 흔하게 보였다. 그래서 박사과정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직장에서는 임원이 노골적으로 반대했다. 주변에서는 한참 돈을 잘 벌던 과장이 딴짓 한다며 어르고 달래면서 막았다. 그러나 난 결심했고, 밀어붙였다.
그 결정이 바로 ‘인생을 바꾸는 결정’이 되었다.
2년의 이수 과정과 5년 반의 논문
통계를 보면 국내에서 박사과정에 있는 사람 가운데 75% 정도가 재직자다. 재직자가 75% 이상이라고는 하지만, 원래 박사과정에는 part-time이라는 것이 없다. 특히 전문대학원은 더하다.
내가 공부한 경희대 국제대학원 국제개발협력학과는 석사과정 위주로 구성되어 있는 데다, 석사과정에서 일반적으로 학위논문을 쓰지 않기 때문에 수업이 많다. 이것이 박사과정에도 영향을 미쳐서 직장의 배려 없이 재직자가 다니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같은 전공으로 내 앞에 입학한 분들이 보면 상대적으로 시간이 자유로운 시민단체 간부, 직장에서 학위과정을 인정하는 연구원, 전업 학생이 전부였다. 내 입학 동기도 정식으로 소속기관에서 지원해주는 공사 직원이었다.
오후 늦게 몰아놓은 수업시간을 야간으로 바꾸고 주중에 있던 시간을 주말로 바꾸려면, 교수님들의 배려와 같은 수업을 듣는 동료·석사 후배들의 이해가 필수적이었다. 그런 배려와 이해 속에서 이수과정은 그럭저럭 잘 마칠 수 있었다.
종합시험으로 마무리한 2년간의 이수과정은 지금 생각해 보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 뒤에는(물론 그때는 몰랐지만) 무려 5년 반을 끌고 갈 학위논문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마 박사과정에서 수업을 듣기 어려워서 포기한 경우는 별로 없을 것이다. 이놈의 학위논문이 어렵기 때문에 그렇게 많은 ‘박사과정 수료(일명 ABD, All But Dissertation)’가 존재할 것이다.
내가 학위논문을 쓰면서 어떤 뻘짓을 했는지, 이건 너무도 긴 얘기다. 여기서 다 풀어놓기 어려울 정도니 나중에 따로 쓰겠다. 다만, 논문 통과 직후에 논문작성을 앞둔 후배들 앞에서 발표한 자료 제목이 「실패사례에서 얻는 교훈: 직업인의 박사학위 논문쓰기」 였다는 점만 일단 밝혀둔다……
그래서 박사학위로 뭘 얻었나?
이제 박사학위를 받은 지 겨우 2달이 지났다. 박사학위가 있다고 해서 특별히 얻은 것? 아직까지 그런 건 없다. 원래 겸업 학생은 박사학위를 받아서 전문직에 진입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상당한 경험을 쌓은 후 박사학위에 도전하는 경우가 많다. 내 경우에도 학위를 받기 이전에도 나름 전문가 소리를 들었고, 1인기업으로 독립을 해서도 별문제가 없었다. (이것이 학위논문이 늦어지게 된 주요한 원인이기도 하다…)
그럼, 도대체 그 긴 세월 동안 뭘 했단 말인가?
우선, 내가 하는 일을 전체적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실무는 디테일을 챙기는 것이다. 그걸 오래 한다고 해서 저절로 큰 그림이 머릿속에 들어오는 것은 아니다. 이수과정을 배우면서 흩어진 한 가마 분량 구슬이 한 줄로 꿰어지는 느낌, 2천 개짜리 그림 퍼즐이 맞춰지는 느낌, 그런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내가 가지고 있던 구슬 하나, 퍼즐 한쪽이 가진 의미를 그때서야 명확히 알게 되었다. 아마 박사과정이 없었으면 지금도, 앞으로도 몰랐을 것이다.
이걸 거꾸로 생각하면, 전업 학생은 박사과정 내내 내가 받은 그런 느낌을 갖기 힘들 것이다. 왜냐면 가진 구슬과 퍼즐이 몇 개 없을 테니 말이다.
두 번째로 네트워크의 폭이 넓어졌다. 지도교수님은 내가 가진 경험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정말 무수히 많은 분들과 만나는 기회를 주셨다. 아마 전업이 아닌 겸업 학생의 특성을 살리려고 그러신 것일 텐데, 효과는 만점이었다. 몇 년 사이에 정부기관·학계·업계를 두루 만나 교류할 수 있었다.
이 네트워크를 통해 일과 공부에 있어 중요한 정보를 얻고, 일거리를 만들고, 파트너를 찾을 수 있었다. 겸업 학생이라도 학생이니까 학교에서는 공부만 열심히 하면 된다는 생각, 갈빗집에서 상추만 먹고 나가자는 생각이다.
세 번째, 박사과정을 통해 독립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 내가 몸담았던 회사에서는 오랫동안 사업개발자는 독립할 수 없다고 믿고 있었다. 대형사업 개발 성사요인을 개인기가 아니라 대기업 브랜드가 가진 신뢰와 명성이라고만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런 맹신을 깨는 과정에는 복잡한 비즈니스 모델 얘기가 개입되지만, 여기서는 중요하지 않으니 생략한다. (그래도 궁금한 분들은 이 글을 참고하시라)
그러나, 내가 컨설팅에 머물지 않고 사업개발에 직접 개입한다는 것 외에는 1인기업의 비즈니스 모델은 대개 비슷하다.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박사과정을 통해서 묘한 내 ‘포지셔닝’이 생겨난 것이다.
정부에게는 내가 민간의 의견을 전달하는 사람이다. 민간에서는 내가 정부 일을 설명하는 사람이다. 기업에서는 날 교수나 연구원 취급하고, 학계나 시민사회에서는 내가 비즈니스계를 대변한다고 여긴다. 어떻게 보면 참 애매한 이런 위치가 역으로 내 경쟁력의 원천이며, 이것은 다름 아닌 박사과정을 밟으면서 발견한 것이다.
박사과정을 고민하는 분들에게 드리는 조언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국내 박사과정 학생 약 75%가 재직자다. 직장에 다니면서 박사학위를 준비한다는 얘기다. 그러니까 박사학위를 받아서 전문직에 진입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과정을 거쳐 이미 상당한 경험을 쌓은 사람이 박사학위에 도전해 자기 전문성을 확인한다는 얘기다. 그러니, 박사학위 이전에 자기 전문성을 어떻게 쌓을 것인지에 대한 큰 그림을 먼저 그려야 한다.
박사과정은 생각보다 어렵다. 괜히 겁주는 얘기가 아니다. 특히 직업을 가지고 학업을 병행하는 사람들에게는 정말 각오가 필요하다는 얘길 해주고 싶다. 그래도 박사과정을 선택하는 분들에게는 ‘약간’ 선배로서 감히 한 가지만 조언을 드리고자 한다.
박사과정이 자신의 직업을 어떻게 업그레이드할 것인지 구체적으로, 아주 구체적으로 고민해 보시라. 박사학위가 그저 찬란한 지적 허영심의 훈장이라면 중도에서 포기하기 쉽다. 학위가 생업과 밀접하게 연관되어야만 완주할 수 있고, 얻을 것도 있다.
일단 학위를 받아 놓으면 뭔가 풀리겠지, 하는 안이한 생각은 전업 학생이나 누릴 수 있는 호사다. 박사학위가 있으면 이직이 되겠지, 퇴직 후에도 할 일이 있지 않을까 하는 순진한 생각은 버리시길 바란다. 그러나 잘 계획된 학위는 직장 내에서 위치나 업무를 바꿀 수도 있고, 이직할 수도 있고, 아예 독립을 할 수도 있다. 그러려면 학위라는 최종 목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그 ‘과정’을 잘 디자인해야 한다.
위에서 얘기한 것처럼 내가 박사과정에서 얻는 것은 학위증이 아니라, 그야말로 ‘과정’에서 얻은 지식, 네트워크, 아이디어다. 이것이 전업 학생과는 전혀 다른 접근이다. 직업인이 박사학위를 생각할 때는 보다 더 깊은 고민이 필요한 이유다.
PS.
오늘은 존경하는 선배님 한 분의 박사학위 논문이 통과되었다는 기쁜 소식을 들었다. 62세다. 이것을 발판으로 앞으로도 오랫동안 많은 것을 이룰 분이다. 더욱 많은 분들의 박사학위를 향한 고민과 도전을 응원한다.
원문: 개발마케팅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