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쯤, 대학교를 졸업한 직후의 일이다. 나는 1년의 휴식기를 가졌다. 아무것도 안 하면서 1년을 지내기로 했다. 오랜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그때까지 쉴 새 없이 달려온 내 삶을 되돌아보면서 잠시 숨을 고르기 위한 시간을 갖고 싶었다.
처음 얼마 동안은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아침마다 조금 더 눈을 붙이겠다고 이불 속으로 숨을 필요도 없었다. 알람을 끄고 ‘5분만’ 하는 생각에 다시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가 시간이 훌쩍 지나가버린 경험이 많았던지라, 알람 때문에 더 이상 아침잠을 방해받지 않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에겐 큰 행복이었다.
하지만 그런 만족감은 오래가지 않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며칠 지나지 않아서였다. 처음에는 열시, 그리고 나중에는 정오쯤 이불 밖으로 기어 나오면 내 주변에는 적막감이 감돌고 있었다.
내가 알던 다른 사람들은 뭐 하고 사나 궁금했다. PC 메신저에 로그인했다고 이름이 뜬 친구에게 인사를 건넸다. 하지만 바로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언제쯤 대답이 올지 멍하니 기다리던 중 깨달았다.
그들이 내 인사에 답변을 바로 하지 않은 것은, 나와는 다르게 학교나 직장에서 자기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컴퓨터 앞에 앉아서 메신저나 하고 있을 만큼 한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나도 어딘가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면 대답이 늦었다는 것을 의식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하루는 아침 운동이라도 해볼 생각으로 자전거를 끌고 나왔다. 출근길에 나선 사람들로 가득한 버스가 내 앞으로 지나쳐갔다. 나와는 무관하게 원래대로 돌아가고 있는 세상과 내 일상이 너무 대조되었다. 마치 나 홀로 기차가 떠난 플랫폼에 서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어디에도 속해있지 않다는 느낌. 그것은 결코 홀가분한 것만은 아니었다.
의미 없이 바쁜 삶을 벗어나야 한다
바쁘게 살고 있지 않으면 불안하다. 그리고 어쩌다 만난 사람들 앞에서 주눅 들게 된다. 어딘가에 속해있지 않겠다는 것이 내 결심에 의한 것일지라도, 현재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상대방이 어떻게 생각할지 의식하게 된다. ‘혹시 내게 문제가 있다고 여기지 않을까.’ 잡생각만 늘어난다.
무언가를 하고 있지 않을 때, 어딘가에 속해있지 않을 때, 우리가 느끼는 불안감은 우리가 어딘가에 들어가서 무언가를 하도록 등을 떠민다. 비록 그것이 의미가 없는 일들이라도. 심지어 시간 낭비임을 알면서도.
아마 당신도 이런 경험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합격 가능성이 없는 시험에 매진하고, 성공 가능성을 잘 따져보지 않고 개업을 한다. 아이들의 공부에 도움이 되든 말든 일단 학원에 다니게 한다. 왜 그럴까? 일단 어딘가에 속해서 무언가를 해야만 불안감을 떨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불안감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것은 결국 인정받고 싶은 욕구이다. 특히 조직 내에서는 권위를 가진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로 나타나기도 한다. 상사에게 인정받고 싶어서 야근을 밥 먹듯이 하는 사람들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가지 싶다.
어릴 적 ‘바다에서 조난 당했을 경우 생존법’을 다룬 책을 읽은 적이 있다. 그 중 아직도 기억나는 내용은, 목이 마르더라도 절대 바닷물로 해결하지 말라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인정 욕구에서 비롯된 갈증을 바쁜 일상이라는 바닷물로 해결하려고 있다.
『너무 바쁘다면 잘못 살고 있는 것이다』에서 저자 토니 크랩은 이런 우리의 모습을 ‘모어게임More Game’이라고 표현한다. ‘모어게임’은 ‘더 많이, 더 빨리’에 몰두하는 우리들 삶의 방식을 가리킨다.
너무 바쁘다면 잘못 살고 있는 것이다저자는 의미 없이 바쁜 삶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사고방식을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일할 때 관심을 둘 것은 일의 양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렇다고 질이 중요하냐, 그것도 아니라고 한다. 양과 질이 아니라면 무엇이 중요하단 말인가?
저자는 양과 질을 뛰어넘어 ‘차별화’를 중심에 두는 사고방식을 그 답으로 제시한다.
‘차별화’는 궁극적인 해법이 되지 못한다
차별화는 중요한 일에 집중하여 그것을 남다른 방식으로 해내는 것이다. 남다르게 일하는 대신 적게 일하고, 결과적으로 세상에 더 큰 영향력을 끼치는 것이 차별화이다. 저자는 쉼 없이 돌아가는 바쁜 일상의 쳇바퀴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차별화뿐이라고 말한다.
꽤 설득력 있는 말이다. 실제로 우리 주변에 차별화에 성공해서 풍요로운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다. 경제, 정치, 예술, 과학 등 다양한 영역에서 볼 수 있다. 남들이 시도하지 않은 새로운 도전을 감행하고 찬사를 받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차별화를 통해 일군 명성을 토대로 풍요로운 삶을 누린다.
그렇다면, 저자의 말처럼 차별화에 노력하기만 하면 모두가 바쁜 삶에서 해방되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까? 자. 지금부터는 내 생각을 소개하고자 한다. 저자처럼 유명한 사람들의 생각은 나중에 서점이나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어보면 알 수 있다. 하지만 나처럼 평범한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는 지금 이곳이 아니면 접하지 못한다. 혹시 아는가? 그런데도 건질 게 있을지.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차별화를 해법으로 제시하는 저자의 주장이 궁극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본다. 차별화는 또 다른 소모적 경쟁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차별화를 두고 벌어지는 또 다른 ‘모어게임’ 말이다. ‘더 많이, 더 빨리’에서 ‘더 다르게’로 바뀔 뿐 ‘더’라는 명제 자체는 바뀌지 않는다.
소수의 승자에게 모든 열매가 돌아가는 ‘차별화’ 경쟁은 결국 차별화에 성공하지 못한 대다수 패자를 뒤에 남긴다. 차별화에 성공한 소수는 적게 일하고 풍요로운 삶을 살겠지만, 그렇지 못한 대다수는 여전히 깨어있는 시간의 거의 전부를 일터에 쏟아부어야 한다. 아마도 당신이나 나 모두 확률적으로 후자에 포함될 가능성이 높지 않겠는가.
그뿐만 아니다. 차별화를 해법으로 제시하는 저자가 놓친 더 큰 맹점은 다른 곳에 있다. 그것은 바로 ‘인공지능과 빅데이터를 앞세운 기계와의 경쟁에서 결코 인간은 차별화의 궁극적 승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머지않은 미래에 우리가 하던 일의 대부분은 우리 인간보다 훨씬 능률적이고 부지런한 기계가 담당하게 될 것이다. 반복적이고 육체적인 노동은 물론, 고도의 지적인 업무도 마찬가지 운명을 따를 것이다.
인간이 하던 일의 대부분이 기계로 넘어가는 시대가 도래한다. 그때가 오면 인간의 자리는 어디가 될 것인가. 이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서는 ‘시간이 흘러도 기계가 흉내 낼 수 없는 인간만의 특성’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그 자리를 지키면 되기 때문이다.
먼저, 흔히들 인간의 독점적 영역으로 여겨지던 것을 살펴보자. 최근 들어 인공지능이나 빅데이터가 중요한 화두가 되면서 이런 종류의 논의가 많다. 그 중 대표적인 견해들을 살펴보자.
인간의 독점적 영역으로 여겨지던 것 중에 대표적인 게 ‘감성’이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생각해보자. 감성은 상대방의 말과 행동이 어떤지 여부로 판단된다. 인간과 동일한 수준의 표정과 반응을 보일 수 있는 기계가 있다고 해보자. 장담컨대 그런 기계는 감성이 있는 것으로 여겨질 것이다. 감성 자체는 몰라도, 적어도 감성을 ‘표현’하는 것은 인간의 전유물이 아니다.
그렇다면 또 다른 인간의 특성인 ‘창의력’은 어떨까. 안타깝게도 이미 극첨단의 영역에서 인공지능은 인간만의 영역으로 여겨지던 창의력까지 넘볼 정도로 발전했다. 최근의 인공지능 연구에서는 기계가 아무것도 참조하지 않은 상태에서 인간에게 의도한 감정을 일으키는 도구, 말하자면 예술 작품을 완전히 새롭게 만들어낼 수 있음을 증명했다. 머지않은 미래에 우리 인간은 기계가 창작한 음악을 감상하며, 기계가 써내려간 소설을 읽고 눈물을 흘릴 수도 있다.
이처럼 기계는 점점 더 빠르고 치밀하게 학습하여 무엇이 인간다움의 요소인지, 그리고 무엇이 차별화의 비결인지 터득하고 있다. 배우고 응용하며 무언가를 차별화하는 능력도 더 이상 인간만의 영역은 아니다.
요컨대, 차별화는 극소수의 승자에게는 달콤한 열매를 가져다주지만 대다수의 패자에게는 여전히 고달픈 삶을 겪게 한다. 게다가 그 극소수의 승자의 자리도 불안하긴 마찬가지다. 당분간 인간에게 돌아갈 몫이 있겠지만, 과도기가 지나고 차별화 게임에서 기계들이 승기를 잡으면, 인간들은 모두 차별화 게임의 패자로 전락하는 것이다.
아직 아무도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시대를 목전에 둔 지금, 앞으로 인간이 설 자리는 어디인가. 진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우리의 새로운 자리를 찾아야 한다.
‘무엇을 만들 것인가?’가 아닌 ‘무엇을 누릴 것인가?’
인간의 새로운 자리를 찾는 논의에서, 나는 가장 먼저 ‘생산’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것을 멈출 것을 제안한다. ‘무언가를 생산하는 정도’를 기준으로 삼는 한, 우리는 양과 질, 심지어는 차별화의 길에서도 우리의 자리를 지킬 수 없다.
우리는 이제 ‘생산’에서 ‘소비’로 생각의 중심을 옮겨야 한다. 달리 말하면 ‘무엇을 만들지’가 아니라 ‘무엇을 누릴지’에 대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 기계와 인간이 유일하게 다른 점은 인간은 ‘누리는 것’에 의미를 둔다는 점이다. 무언가를 소비하고 누린다는 것. 그것은 인간만이 지닌 특징이다.
‘소비’라고 해서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돈과 물건만을 두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내가 말하고자 하는 소비의 가장 중요한 대상은 ‘시간’이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삶에서 보람과 즐거움을 느끼는 순간은 ‘시간’을 잘 사용했을 때이다.
우리는 새로운 것을 배우면서 보람을 느끼고, 건강한 삶에서 행복을 느낀다. 가족과 함께하는 저녁 식사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다. 이런 것들은 인간들만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것들은 모두 자유로운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가 하던 고된 일들의 대부분은 우리보다 훨씬 일 잘하는 기계들이 할 것이다. 이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남는 시간을 잘 사용하는 방법’이다.
바쁜 일상에 묶여있을 것이 아니다. 그 바쁜 일상을 기계들이 대체한 이후에 우리가 누릴 삶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보아야 한다. 머지않은 미래에 다가올 현실이다.
미리 시간을 누리고 있는 이들에게
잠깐 멈춰서 오늘 했던 이야기를 정리해보자.
첫째로, 정신없이 돌아가는 일상에 대한 우려에서 출발했다. 남에게 어떻게 비칠까를 고민하며 스스로 더 바쁜 삶을 살도록 채찍질하는 우리 일상에 대한 반성이 화두였다. 방향이 어떻든 일단 속도만 올리고 보는 그런 삶에서는 자신을 성찰할 여유가 없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두 번째로, 오늘 소개한 <너무 바쁘다면 잘못 살고 있는 것이다>의 저자 토니 크랩은 이러한 폭주하는 삶의 방식을 ‘모어게임’이라고 규정했다. 이어서 저자는 모어게임의 해결책으로 ‘차별화’를 제시한다.
세 번째로, 나는 저자의 ‘차별화’가 궁극적인 해결책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왜냐하면, 차별화는 또 다른 무한 경쟁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 인간은 차별화 경쟁의 틀 안에서 인공지능과 빅데이터로 무장한 기계를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나는 ‘만드는 것’에서 ‘누리는 것’으로 삶의 무게중심을 옮길 것을 제안한다. 우리가 누릴 것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돈을 비롯한 물질이 아니다. 가장 핵심은 ‘시간’이다.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시간을 쓸지에 대해서 고민해야 한다. 나머지 무언가를 ‘만드는 일’은 기계의 몫이 될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현실적인 문제가 생긴다. 바쁜 일상에 벗어나서 여유시간을 갖고, 미래를 내다보고 사유하는 것. 누가 하고 싶지 않을까. 하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들 대부분은 오늘을 살아남기 위해서, 먹고 살기 위해서, 즉 생계를 위해서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또다시 일터로 향하는 버스와 지하철에 몸을 맡긴다.
우리가 아직 과도기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언젠가 가까운 미래에 ‘우리가 원치 않는데 시간을 쏟게 만드는 현재의 일들’은 기계에게 넘어간다. 하지만 아직은 아니다. 그전까지 불가피하게 거쳐야 할 비포장도로를 우리는 지나고 있다. 현재, 즉 과도기에 우리 사회의 최상층 극히 일부는 시간을 자기 뜻대로 누릴 수 있지만, 당신과 나를 포함한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
지금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이들은 ‘궁극적으로 우리 모두가 가야 할 미래’에 운 좋게 먼저 도달한 이들이다. 그들이 아직 미래에 도달치 못한 나머지 사람들을 챙겨야 한다. 그래서 먼저 시간을 누리게 된 사람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등잔 밑이 어둡다. 우리 바로 곁에서 시간을 자유롭게 쓰고 있지 못하는 다른 이들에 대한 관심. 먹고 살기 위해 쪼들리는 삶을 살고 있는 이들에 대한 관심.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것이 남과 다른 차별화를 이루고 남을 밟고 올라서기 위해서 애쓰는 것보다 우리 인류 전체에 훨씬 좋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마무리하며
내가 인생의 큰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것은 대학교 졸업 후 1년 간 무위도식하며 지낸 시간들 덕분이다. 나는 삶의 큰 그림을 그때 상당 부분 완성했다. 나는 확신한다. 우리에겐 시간이 필요하다.
시간을 누리고 있는 이들은 아직 쳇바퀴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들도 그들과 같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그 길을 찾기 위해 자신의 시간을 기꺼이 내어야 한다.
원문: 신승건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