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계획을 세우며 살아간다. 다이어트 계획, 공부 계획, 진로 계획 등. 원하는 바를 설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한다. 물론 그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게 인생이라고 하지만, 계획 자체를 세우는 것과 세우지 않는 것의 차이는 비교할 수 없다. 때로는 계획의 유무에 따라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임신, 출산과 관련된 계획은 그 파급력이 어마어마하다.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결정짓는가 하면 한 남자와 여자의 이름을 아빠와 엄마로 바꿔버린다. 어찌 보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계획이라 할 수 있는 셈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계획 임신은 그리 잘 이뤄지지 않는 편이다. 국내 계획 임신 비율은 50% 남짓으로 절반가량이 별다른 계획 없이 아이를 갖게 된다.
이러한 상황은 더 큰 문제로 이어진다. 미계획 임신 시 계획 임신보다 기형유발 가능 물질에 2-3배 더 많이 노출되는가 하면 ‘낙태’라는 난제에 맞닥뜨려야 할 때도 있다. 알다시피 우리나라에서 낙태는 불법. 병원을 찾기 힘들뿐더러 큰 비용을 치르고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한편 국내 혼외 출생 및 미성년자 출산은 계속해서 증가하는 추세로, 특히 10대 중 70% 이상이 피임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방법은 하나. 적절한 피임법의 실천과 그 교육뿐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성교육이 어디 조금이라도 실용적인 구석이 있던가. 선생도 학생도 민망해져 대충 비디오나 틀어주고 끝날 뿐. 결국, 대부분 10대는 어디에서도 제대로 된 피임 정보를 접하지 못한 채 성인이 된다.
그러다 인터넷을 찾고 또 찾아서 발견하는 정보는 산부인과 정보나 개인의 경험담으로 귀결되곤 한다. 가끔 믿을만한 정보를 만난다 해도 산발적으로 흩어져 있는 게 대부분. 진득하니 A-Z까지 알아보고 싶어도 그럴 도리가 없는 셈이다.
연구공동체 ‘건강과 대안’은 이러한 문제를 인식, 작년 이맘때 그에 대한 해결책으로 『우리가 만드는 피임사전』(이하 피임사전)을 발간했다. 100쪽 남짓한 이 책자는 너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 피임에 관한 전문 정보를 전달한다. 그중 형제, 자매님 모두 함께 참고하면 좋을 포인트 세 가지를 소개한다.
#1. 피임하고 싶은 이유와 상황은 모두 다를 수 있다
사실 인터넷에 퍼져있는 피임 정보가 위험한 이유 중 하나는 해당 내용을 모든 사람에게 적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감기라 해도 목감기, 코감기에 따라 먹는 약이 다르고 개인 질병 유무에 따라 처방이 달라지는데 피임이라고 해서 그렇지 않겠는가.
이 점을 고려해 피임사전은 다양한 피임 방법을 소개하기에 앞서 먼저 피임을 둘러싼 상황을 정리한다. BMI가 높거나 비만인 경우, 담배를 피우는 경우, 출산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등 유형에 따라 꽤 디테일한 내용을 담았다. 그 구체적인 답변을 일부 인용하자면 다음과 같다.
Q. 출산한 지 얼마 안 됐고, 지금은 수유 중이에요.
A. (…) 수유 중이라고 해서 모두 자연적으로 피임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 출산 직후엔 혈전이 생길 가능성이 높아서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틴을 둘 다 함유한 복합 경구피임약은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프로게스틴만 들어있는 호르몬 피임법은 안전하므로, 루프나 임플라논, 피임주사 등을 시도해볼 수 있습니다.
#2. 이론만큼이나 중요한 건 실전
피임사전은 콘돔, 경구 피임약, 피임주사, 임플라논, 호르몬 루프, 구리 루프 이하 6가지를 대표적인 피임법으로 소개하며 그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전달한다.
그중 피부로 와 닿는 정보는 역시 가격. 경구 피임약은 1개월용 패키지당 1-3만 원으로, 병원 방문 당 1-2만 원의 진료 비용이 든다. 높은 성공률을 보이는 동시에 한 번 맞으면 3개월간 전혀 피임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는 피임주사(DMPA)의 경우 1회에 6-8만 원이다. 임플라논과 호르몬 루프, 구리 루프 등 삽입 장치의 경우 평균 20-30만 원대로 3-5년간 피임 효과가 지속된다.
여기서 하나 더. 피임사전은 대부분이 피임 시술은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모든 비용을 직접 부담해야 한다는 사실을 전달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3. 피임을 대하는 바람직한 자세
언뜻 피임은 속도위반을 하지 않기 위한 방법으로만 받아들여지기 쉽다. 하지만 피임은 거진 10년~30년 이상을 고려해야 하는 일이다. 따라서 피임에 대한 바른 지식과 계획은 필수. 피임사전은 이를 좀 더 성공적으로 실천하기 위해서는 파트너와의 관계, 전문가와의 관계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세상에 혼자 임신하는 사람은 없다. 피임은 파트너 모두가 책임을 져야 하는 일로 건강한 관계와 맥락 속에서 함께 실천해야 하는 일이다. 특히 피임사전은 상호/이중피임(Dual Protection)을 강조하는데, 세상에 완벽한 피임방법은 없는 만큼 두 가지 이상 피임법을 함께 사용하여 효과와 책임 모두 높이길 권한다.
의료전문가와의 상담을 통해 자신에게 맞는 피임법을 찾는 것도 중요하다. 피임사전은 의사나 약사 등 전문가들이 생각보다 친절하지 않을 수 있고 주위의 편견이 존재한다는 사실도 인정하지만, 그래도 원하는 것은 말하고 궁금한 것은 물어보는 자세를 유지하라 말한다.
이외에도 피임사전은 청소년을 고려해, 서울시립청소년건강센터 ‘나는 봄’, 아하! 서울시립청소년성문화센터, 청소년 성문화센터 ‘탁틴내일’ 등을 소개한다.
마치 초등학생 시절 그 존재만으로도 든든했던 전과처럼 알짜배기 정보가 가득한 피임사전. 나이가 적든 많든, 결혼했든 하지 않았든, 남자든 여자든. 피임에 관한 정보가 필요하다면 피임사전을 펼쳐보길 강력 추천한다. 언제나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하나, 사전 예방이다. 지금 당장 무료로 다운받아보자.
원문: 베네핏 매거진 / 필자: 이은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