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만인에게 몽둥이를 쥐여주자. 한국의 후진 지배구조는 자본주의 원리로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사모펀드와 행동주의 투자자들이 기업에 적극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때 잃어버린 주주권리를 되찾을 수 있다.
개발도상국 기업이 대부분 그러하듯 한국 기업의 지배구조는 문제가 많다. 소수의 지분을 보유한 지배주주가 순환출자 등의 편법적인 수단을 통해 기업을 경영한다. 상장 기업의 자산을 마치 사유물처럼 전용하는가 하면, 삼성물산의 사례처럼 불법·편법적인 방법으로 기업가치를 훼손하기도 한다. 소액주주를 포함한 일반 주주들은 이처럼 억울한 피해를 수시로 당하고 있다.
“상장기업에서 참사가 일어나는 원인은 무관심한 주주, 열심히 일하지 않는 이사, 초점을 잃은 경영진에 있는 경우가 많다. 그들의 만성적인 책임 부재 및 관리감독 결여가 누적되어 참사로 나타난다. 주주 행동주의자들은 이런 상황을 이용해 이익을 챙긴다. 즉, 비효율적인 경영진을 먹이로 삼고, 회사와 다른 주주들에게 득이 되는 방식을 취한다.”
주주의 권리가 상대적으로 잘 보호받는 미국도 처음부터 기업들이 주주의 이익을 옹호하지 않았다. ‘주주 자본주의’의 천국은 행동주의 투자자들이 오랜 기간 투쟁해서 쟁취한 전리품이다. 행동주의 투자자들은 주주 권리를 되찾기 위해 위임장 대결, 적대적 인수합병 등 다양한 수단으로 기업과 싸웠다. 선진적인 지배구조는 기업과 투자자의 투쟁 과정에서 한 땀 한 땀 만들어졌다. 권리는 공짜로 주어지지 않았다.
최초의 행동주의 투자자는 놀랍게도 벤저민 그레이엄이다. 그가 활동하던 100년 전에는 미국 기업들도 주주가치를 크게 신경 쓰지 않았던 모양이다. 1927년 그레이엄은 노던파이프라인의 주가가 65달러에 불과했지만 주당 이익은 6달러가 넘으며 보유 유가증권이 주당 90달러에 이른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레이엄은 노던파이프라인의 주식을 매집하고 경영진에게 잉여현금을 배당하라고 요구했지만 묵살당했다. 그는 이에 굴하지 않고 노던파이프라인 주식을 더 사들이고 100주 이상 보유한 주주들을 만나 위임장을 확보하기 시작했다. 이사회에서 의석을 확보하여 배당을 추진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1928년 노던파이프라인 주주총회에서 그레이엄과 동료 변호사는 이사회 의석 5석 중 2석을 확보했다. (중략) 그러나 이사회에서는 여전히 소수였으므로, 그레이엄은 나머지 3명의 이사와 격렬히 싸울 작정이었다. 그런데 싸울 필요가 없어졌다. 주주총회 몇 주 후, 노던파이프라인 경영진이 잉여현금을 분배하기로 한 것이다.”
초창기 행동주의 투자자들이 위임장 대결이라는 온건한 방법을 사용했다면, 기업사냥꾼들은 주주권리를 훼손하여 주가가 저평가된 기업을 적대적으로 인수하는 공격적인 방법을 이용했다.
기업사냥꾼들은 배부르고 기름진 CEO들을 타깃으로 삼아 적극적으로 쪼아먹었다. 가장 유명한 기업 사냥꾼은 칼 아이칸이다.
“그는 자신의 새로운 투자 전략을 ‘일종의 차익거래’로 보았다. 즉, 미국 내 자산 가치는 빠른 속도로 올라가고 있지만 자산주들의 시장가치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경영진은 자기가 소유한 주식이 적기 때문에 회사를 팔아 주주들에게 주식의 제 가치를 안겨 주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 하지만 기업의 지배권을 놓고 일단 싸움이 붙으면 주주들은 뜻밖의 횡재를 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아이칸이 손을 댄 기업 대부분의 주가가 올랐다. 나머지 주주들도 큰 이익을 봤음은 물론이다.
행동주의 투자가 항상 성공적인 결과만 낳는 것은 아니다. 2000년대 초 자산운용사 BKF캐피탈의 주주들은 경영진의 방만한 경영에 불만이 많았다. 결국 스틸파트너스는 BKF의 지분 6.5%를 취득하고 위임장 대결에 돌입한다. BKF의 높은 임금을 줄이고 포이즌 필을 철회하라는 것이다.
“시장은 환호했다. 스틸파트너스가 6.5% 지분 보유 신고를 한 4월부터 처음으로 BKF에 공개서한을 보낸 12월까지 BKF 주가는 24%나 뛰었다. 2005년 6월 23일 BKF 주주들은 스틸파트너스가 내세운 이사들을 선출했다.”
하지만 그 뒤 나쁜 소식들이 잇달았다. 핵심 인력들이 연이어 회사를 떠나고, 운용자산도 급감했다. 위임장 대결이 벌어진 15개월 뒤 회사는 운용자산을 모두 잃고 껍데기로 전락했다.
“주가는 주주들이 기존 이사를 갈아치우는 투표를 단행한 날로부터 90%나 급락했다.”
행동주의 투자자가 선의로 가득 찬 해결사라는 얘기는 아니다. 그들도 행동하는 이유도 결국 자신의 이익이다.
“주주 행동주의자들도 기회를 잡았다 싶으면 무관심한 주주들을 이용해 이익을 챙기는 일을 마다하지 않는다. 주주 행동주의자들이 모든 주주를 위해 가치를 창출한다고 떠들지만, 그들의 속셈은 자신과 재정적 후원자들의 이익을 챙기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행동주의자가 기업을 쪼아대면 경영진은 자신의 자리를 보전하기 위해 주주를 챙겨야 한다. 결과적으로 주주에게 바람직한 지배구조가 만들어지고 주가도 오른다. 각자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는 과정에서 부가 창출되고 모두가 이로운 것, 그것이 바로 자본주의의 장점 아니겠나.
지배구조 문제도 제대로 된 자본주의를 도입해야 해결할 수 있다. 사모펀드, 기업사냥꾼, 소액주주 가릴 것 없이 본인의 권리를 또박또박 요구하고 관철 시킬 수 있어야 한다. 정치적 힘을 가진 사람만 보호하는 짝퉁 자본주의는 이제 끝내자.
한국의 지배구조는 주주를 업신여기는 경영진이 쫓겨날 수 있을 때 제자리를 찾을 것이다. 미국의 지배구조도 하루아침에 완성되지 않았다. 100년의 세월 동안 주주들이 하나하나 다듬어서 완성한 결과다.
“주주 행동주의는 일시적 유행이 아니다. 주주 행동주의는 기업 지배구조라는 정원 한가운데 심어져 지난 100년간 깊이 뿌리를 내렸다. 계절 따라 변하고 시장 상황에 따라 다른 형태를 띠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