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입문자분들이 여러 가지 이유로 카메라와 렌즈 처음 구입하실때 표준 줌렌즈 먼저 구입하시는 경향이 강합니다. 저도 처음 입문할 때 그리했었고 말이죠.
표준 줌렌즈도 종류가 여러 가지 있습니다. 저렴한 번들 줌 렌즈부터 시작해서 중간급 줌렌즈, 최고급 표준 줌렌즈, 표준영역을 포함하는 슈퍼 줌렌즈 등등 말이죠. 특히 백만 원 훌쩍 넘는 최고급 표준 줌렌즈 하나 무리해서 들이고는 ‘이제 뭐든지 다 찍을 수 있겠지.’ 하시는 그런 경우 흔히 보는데요.
제 생각에 표준 줌렌즈는, 아무리 스펙과 성능이 좋아져 봤자 결국은 표준 줌렌즈에 불과하다 생각합니다. 그 말은 렌즈가 별로라는 소리가 결코 아닙니다.
표준 줌렌즈의 가장 큰 특징은 사용자의 실력, 사용자의 내공이 고스란히 사진에 드러난다는 점에 있습니다.
표준 줌렌즈는 우리가 가장 자주 보고 쓰는 평범하기 짝이 없는 화각에 똑딱이 콤팩트 카메라와 비교해도 그닥 특별히 도드라지지 않는, 평범하기 짝이 없는 피사계심도(아웃포커싱)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렌즈를 쓰면서 차별화된 사진을 찍어 내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건, 결국 그 렌즈를 쓰는 사람의 남다른 시선과 능력입니다.
사용자가 평범하더라도 특별한 장비들을 갖추고 있으면, 예를 들면 조리개가 엄청 밝은 렌즈로 아웃포커싱 시킨다거나 남들 안 쓰는 필름으로 찍고 이상한 색감을 입힌다거나 초망원렌즈 혹은 초광각 렌즈를 써서 평소 우리가 절대 못 볼 관점에서 찍고 보여준다거나 하면 좀 남달라 보일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도 그렇게 많이들 하지요, 우리;
하지만 사용자가 평범한 상태에서 ‘평범 그 자체’인 표준 줌렌즈를 사용한다면, 아무리 최고급 표준 줌을 쓴다 하더라도 사진이 특별해지긴 쉽지 않습니다. 표준 줌렌즈의 진정한 정체성은 바로 ‘정직함’이니까요.
표준 줌렌즈는 사용자의 실력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렌즈거든요. 생초보 아마추어와 프로페셔널의 실력 차이가 가장 여실히 드러나는 것도 바로 이 표준 줌렌즈를 사용했을 때의 사진입니다.
그래서 저는 초보분들께 표준 줌렌즈를 그다지 권해드리지 않습니다. 막 시작하는 단계에서 이 렌즈의 정직함은 너무 날카롭고 무거워요. 고급 표준 줌렌즈 비싼 건 실제로 무게도 무겁고 말이죠. 들고 다니기 부담스러울 정도로요.
표준 단렌즈 같은 재미있는 다른 렌즈들로 시작해서 열정에 불을 붙이고 재미를 충분히 느낀 후, 다음 단계의 도전과제에 응해야 한다고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솔직히 저도 표준 줌렌즈는 별로 자신 없어요. 제 보잘것없는 실력이 그대로 드러나는 게 정말로 무섭습니다. 그러다 보니 평소 잘 쓰지 않아요. 실패만 하지 않으면 되는 행사 촬영이나 여행 때에나 주로 들고 나가게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표준 줌렌즈는 사실 제대로 마주 보면 진심으로 무서운 렌즈예요. 그래서 카메라 처음 사시는 분들이 ‘인물이고 풍경이고 뭐든 적당히 다 찍을 수 있는’ 렌즈를 원하면서 표준 줌렌즈를 고르시곤 하지만, 그게 꼭 합리적인 선택이고 저는 보지 않습니다. 인물도 풍경도 제대로 찍으려면 제약이 많은 게, 사실 표준 줌렌즈이기도 하거든요.
“줌렌즈는 악마의 선물”이라는 필립 퍼키스의 말은 여기에서 언급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제가 한 말에서 다시 몇 단계 나아간 곳에 있거든요. 다만 이 말에 대해서는 꼭 생각해보십사 말씀드립니다.
“일단 무조건 좋은 표준 줌 하나는 있어야 한다.”
“카메라 처음 사는 거니 표준 줌 하나 사자.”
위 같은 생각으로 표준 줌렌즈를 사려던 분이 있으시다면, 부디 다시 한번 잘 생각해 보셨으면 합니다.
원문: 마루토스의 사진과 행복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