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학자들이 좋아하는 문제 중에 ‘트롤리 문제(trolley problem)’라는 게 있다. 이 문제의 핵심은 이렇다.
당신은 기찻길 옆 산책을 즐긴다. 어느 날 산책 중, 열차가 평소보다 훨씬 빠르게 달려오고 있는 것을 목격했다. 아마도 열차는 제어 불능 상태에 빠진 것 같다. 기관사는 실신했고, 그가 멀쩡히 있었더라도 브레이크는 작동 불능 상태에 빠졌다.
그런데 열차 진행방향 본선에서는 5명이 작업을 하고 있다. 5명은 열차를 쉽게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다행히 이 지점에는 측선이 있었고, 열차를 빼 주면 5명이 살 수 있는 듯하다. 하지만 측선을 살펴보니 이곳에도 1명의 사람이 있었다. 물론 그 역시 작업에 열중하고 있기 때문에 폭주하는 열차를 피하기는 어렵다.
당신은 분기기의 레버를 잡아당겨 5명을 구하는 대신 1명을 죽일 것인가, 아니면 그대로 열차가 폭주하게 두어 5명을 죽게 내버려 둘 것인가?
이 문제가 묻고 싶은 질문들은 이런 것이다. 한 명의 목숨이 중요한가, 아니면 다섯 명의 목숨이 중요한가? 다시 말해, 구할 수 있는 목숨의 숫자가 당신의 판단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 그리고 내 작위로 인한 책임이 큰가, 부작위로 인한 책임이 더 큰가? 즉 내가 무언가를 했기 때문에 일어난 결과가 더 받아들이기 어려운가, 내가 무언가를 실행하지 않아 일어난 결과가 더 받아들이기 어려운가?
이 문제가 철학계에 등장한 1967년 이래, 윤리학자들은 다양한 변형 사고실험을 개발하는 한편, 그 함축에 대해 지금까지 격론을 벌이고 있다. 또 심리학자들과 인지과학자들은 이 사고실험을 사용하여 인간의 윤리적 직관이 이러한 갈등 상황에서 어떤 판단을 내리는지 살펴보려고 하고 있다. 무인자동차 개발이 이뤄지고 있는 오늘날에는 심지어 자동차와 관련된 공학자들까지도 이 문제에 주목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이 문제의 다른 측면에 주목하고 싶다. 철도는 이 문제로부터 아무것도 배울 것이 없고, 오히려 완전히 다른 측면에 주목하여 빈발하던 사고를 극복해 안전을 달성해 왔다는 부분이 바로 그것이다. 트롤리 문제는 철도 안전 기술의 중요한 측면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고, 교통 체계를 더 안전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오히려 실제 철도 현장을 더 안전하게 만들어 온 기술의 원리와 원칙에 대해 아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트롤리 문제’가 제안하는 최악의 상황은 철도에서 아주 일어나기 어렵다
글쓴이가 가장 먼저 보여주고 싶은 부분은, 트롤리 문제가 제안하는 상황이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 철도 현장에서는 수많은 기술이 개발되어 있다는 점이다. 한 사람의 손에 의해 치명적인 결과가 벌어지지 않게 만들기 위한 기술 발전, 절차, 규칙이 오늘날의 철도 안전을 책임지고 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문제는 ‘분기기 레버’이다. 이 문제의 핵심에는 인력으로 분기기 위치를 전환할 수 있다는 가정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일은 연동장치가 설치되지 않은 원시적인 구내에서나 일어나는 일이다.
연동(lock)이란, 역이나 신호장 내부의 각종 신호기와 분기기를 동기화시키는 장치를 말한다. 연동이 없다면, 기관사에게 현시되는 신호와 실제 분기기의 개통 방향이 서로 일치하지 않는 일이 일어날 수 있다. 이런 일치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각 역의 관제에서 신호와 분기기를 통합 제어해야만 할 것이다.
연동은 19세기 후반 이래 철도 안전의 3대 요소 가운데 하나로 꼽을 수 있는 기술이었고, 현대화된 철도에서는 기본 중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요소이다. 게다가 도심 거리를 지나다니는 노면전차의 분기기라면, 주변 행인이 최대한 건드릴 수 없도록 안전장치를 해 놓는 것이 당연한 일일 것이다. 도로 신호등 장비도 경찰만 열 수 있도록 잠궈 두는 것이 상식이다.
그렇다면 분기기 앞에서 망설이는 철도원이라는 그림 자체에 문제가 있는 셈이다.
레버가 있는 곳이 아직 남아 있기는 하지만, 분기기 레버는 철도 기술의 발전 속에서 취약한 부분이라는 합의가 있어왔고 이에 따라 점차 제거되어 왔다. 관제가 전동기로 분기기를 가동하는 것이 현대화된 철도의 기본이다(이 과정에서 현시 신호도 함께 바뀐다). 철도원이나 기타 개인이 임의로, 관제에 통보하지 않고 분기기를 조작할 수 있는 상태라는 것 자체가 현대 철도로서의 자격이 없는 설비 수준이라는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트롤리 문제의 책임은 시설 투자를 게을리 한 철도 당국에게 있는 셈이다.
그래도 시설 투자는 돈이 많이 드는 일이니, 인력으로 움직이는 분기기가 남아 있다고 가정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분기기는 대체로 번호가 낮은 분기기이다. 즉 분기각이 크고 속도제한이 낮은 분기기에나 레버가 남아 있다.
분기기에 속도 제한을 거는 이유는 간단하다. 탈선에 매우 취약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철도에서도 46번 분기기의 170km/h 제한이 분기기에서 분기할 때 낼 수 있는 최고 속도이다. 제대로 된 기관사라면 분기기 부근에서 감속을 해야 한다. 통상 철도에서 가장 짧은 분기기인 8번 분기기의 속도제한은 방향에 따라 20km/h(배향)-35km/h(대향)이다. 철도에서는 8번 분기기가 역 구내나 기지 구내에 주로 깔리겠지만, 노면전차의 속도와 공간 제약을 감안하면 본선->측선 방향 편개분기기에도 8번 분기기가 깔릴 가능성이 있다.
8번 분기기의 전체 길이는 대략 25m 가량이다. 현대 철도차량은 20km/h 대역에서는 이 정도 거리 내에서 멈출 수 있고, 35km/h 운전 시에도 그렇게 멀리 가지는 않는다. 수십 미터 내로 제동이 된다. 또한 노면전차는 도로와 공용으로, 육안 운전을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비상제동장치들이 더 마련되어 있어 더 빠른 정차가 가능하다. 참고로 지하철 열차가 승강장에 진입할 때 내는 속도가 약 60~65km/h 수준이다.
기관사 임의로 제한속도를 어기고 분기기에 진입하는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 물론 이 경우에는 탈선이 일어나 열차가 멈출 가능성이 크다. 또 이렇게 일어난 사고는 명백한 기관사의 책임인데, 이는 본선 상 분기기에 대한 정보를 숙지하는 게 기관사의 의무사항이며, 또한 언제 분기기 방향이 바뀔지 모르는 상황에서는 탈선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감속을 하는 것이 맞기 때문이다.
물론 트롤리 문제의 가정 상, 기관사는 실신해 버린 상태이기에 열차를 통제할 수 없다. 하지만 200년 철도사에서 그런 사고 역시 얼마든지 많이 일어났기에, 공학자들은 대응책을 다수 고민한 바 있다. 덕분에 현대 철도에서는 ‘열차 자동 정차장치’를 설치하는 것이 고밀도 혼잡선구의 기본이다. 기관사가 정위치하지 않거나, 신호에도 정시 반응하지 않으면 열차에 즉시 비상제동을 체결하는 것이 이 장치의 기본 원리다.
KTX의 경우에는 기관사가 특별히 마련된 장치에 손을 대고 있지 않는다면 곧 비상제동이 걸린다. 도시철도의 경우에는 이처럼 제어가 꼭 세밀하게 되어 있지는 않지만, 적어도 수백m 간격으로는 ATS 지상자가 설치되어 있어 기관사가 때맞춰 체크하지 않으면 비상제동이 체결되게 된다. 물론 역은 분기기와 승객으로 인해 위험한 곳이므로, 제대로 된 설계라면 기관사가 멀쩡한지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ATS 장치를 초입부터 다수 설치해 놓아야 하는 곳이다. 분기기가 있는 곳이라면 ATS 설비가 부근 어딘가에는 있을 것이다. 그리고 ATS가 제대로 작동했다면, 트롤리 문제 속 열차는 비상제동이 체결되고 있는 중일 것이다.
사고 선구가 고밀도, 고속 열차 운전이 이뤄지는 간선이나 도시철도라면 주변에 EMP탄이 터져서 모든 회로가 죽은 상태가 아닌 이상 ATS 설비가 갖춰져 있으며 이 설비가 작동한다고 기대할 수 있다. 낙뢰가 떨어져서 신호설비가 죽어버린 경우에도 비상제동 체결 후 관제 음성 지시에 따라 저속 운행(20km/h)을 하는 것이 기본이다. 여하간 ATS가 무력화된 경우에도 분기기 조작자의 책임은 없다. ATS 정비가 제대로 되지 않은 이유를 밝혀 그에 따른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참고로 ATS가 좀 더 발전한 장비가 열차 자동운전 장비라고 할 수 있다. 철도에서는 자동 운전 열차가 널리 상업 운전 중이다. 자동 운전 이슈에 대해서는 글의 말미에서 좀 더 논의를 해 보자.
제동장치 고장 가정도 있다. 하지만 철도차량의 기본 제동 방식인 압축공기제동은 19세기 중반 처음 개발될 때부터 열차가 다른 칸과 단절되는 방식 등으로 제어가 상실되면 바로 제동을 체결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탈선으로 인해 연결기가 끊어진다거나 하면 열차를 구성하는 모든 차량에 곧 비상제동이 체결될 것이다. 다만 트롤리 문제의 설정상 ATS 이외에는 자동 비상제동 체결을 할 만한 상황은 없어 보인다.
역이 내리막 앞에 있어, 열차가 내리막에서 폭주하는 상황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 경우에는 두 가지 변수가 있다.
1) 분기기가 정위와 반위가 있는 편개 분기기 형태인가, 정위가 따로 없는 Y형 양개 분기기인가?
- 양개 분기기라면 일정 속도 이상을 넘는 열차는 탈선하게 된다. 편개 분기기라면 정위에서는 속도 제한이 따로 없으므로 열차를 탈선시키려면 분기기를 반위로 바꿔야 한다.
2) 역 이후에 충분히 긴 내리막이 있는가?
- 역 이후에 충분히 긴 내리막이 있다면 역 이후 내리막에서 열차는 폭주하여 완파될 것이다. 완파를 막으려면 역에서 열차를 탈선시키든 측선으로 빼든 해서 정차시켜야 한다. 측선 쪽에 설비가 있다면 그것을 이용할 수도 있다.
- 다만 설정상 그 앞에 사람이 있다면 쉽게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된다. 또 여기서 열차가 빈 화물열차이며 기관사가 아직 죽지 않았다고 가정하면 문제는 더 복잡해진다. 본선으로 열차를 보내어 사람 5명+기관사를 죽이고 열차를 완파시킬 것인가? 측선으로 빼내어 1명을 죽이고 기관사 또한 죽을 수 있는 상황에 내몰지만 열차 파괴는 경파 수준으로 막을 것인가? 이 정도 선택지가 된다.
이렇듯 내리막 폭주 시에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요소들이 개입된다. 여기서 양개 분기기라면 폭주 열차는 분기기 조작을 어떻게 하든 탈선할 것이기 때문에 분기기 조작자에게는 책임이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편개 분기기의 경우 내리막 유무에 따라 문제의 성격이 바뀐다.
내리막이 없다면 드디어 트롤리 문제가 철학자들이 논의하는 방식으로 성립할 것이다. 하지만 내리막이 있다면 기관사와 열차의 운명이 문제에 끼어들게 된다. 하지만 역시, 레버가 있는 분기기라는 조건을 만족시키는 분기기라면 통과 제한 속도가 낮을 테니, 측선으로 빠진 열차는 분기기의 특성상 곧 탈선하여 정차할 듯하다. 물론 이 탈선 열차가 측선 상에 있는 한 명의 사람을 치고 지나갈지 어떨지는 아무도 모른다.
트롤리 문제가 일어날 만한 상황이 있는지 점검하는 인적 절차도 있다. 열차가 운행 중인 시각에 보선 작업을 벌일 경우, 작업반(분대규모) 가운데 한 명은 열차감시를 하는 것이 의무사항인 걸로 알고 있다. 고속열차의 경우 애초에 열차 차단 시간을 설정하고 그때 작업을 하는 것이 원칙이다. 요 몇 년새 열차감시가 제대로 되지 못하여 안타까운 사고가 작업팀에게 일어나는 경우가 있긴 했으나, 결국 이때도 책임은 차단시간을 제때 확보하지 못한 회사에게, 그리고 열차감시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사람에게 있다.
역 구내에서는 역무원이 열차감시를 할 수도 있다. 간선 철도에서는 적어도 열차가 진입하는 시간에는 역무원이 열차를 확인할 수 있는 장소에 나와 있어야 하며, 본선이나 측선상의 작업자들에게 경고를 보낼 수 있어야 한다.
웹상에서 유행하는 트롤리 문제의 한 변형도 잠깐 논의할 가치가 있을 것이다. 이 변형에 따르면, 선로 상에 있는 사람들은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레일에 묶여서 옴짝달싹할 수 없다. 열차감시를 하는 역무원은 경고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구하러 뛰어들어야 한다. 그러나 물론 성인 5명을 묶어놓은 끈이 쉽게 풀릴 리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대책이 없는 것이 아니다. 먼저 역무원이 상주하는 구내라면 역무원에 의해 쉽게 발각될 것이라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아무도 없는 신호장에서 일어난 일이라면, 선로순회를 하는 보선반 인원에 의해 발각될 가능성이 크다. 이들은 하루에도 여러 차례 선로를 도보로 왕복하면서 살펴보는 것이 일이다. 선로가 제대로 되어 있는지 앞서 보내는 개통열차를 운행하여 상황을 살펴보는 것을 통해 위험을 회피할 수도 있다. 고속철도의 경우 매일 새벽에 한 편 굴려보면서 점검하는 절차가 준수되고 있다.
가능성이 낮지만, 궤도 양 단에 묶인 인체로 인한 효과가 일어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인체도 쇼트를 일으킬 수는 있기 때문에 이런 가능성이 성립한다. 쇼트를 일으킬 수 있는 물체는 폐색(block)을 설정하는 데 기본이 되는 궤 도회로 점유 효과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폐색이란 열차가 한 편만 들어갈 수 있는 선로 상의 구간이다. 궤도 회로란 철로 된 궤도를 전기 회로로 구성해 놓은 것을 말한다. 이 회로에 철도의 금속제 차축이 진입하면 회로에 단락(short)가 일어나 선로가 점유되어 있는지 확인할 수 있어, 선로 점유 현황을 파악하고 본선 상의 열차를 통제할 때 궤도회로는 가장 기본이 되는 기술이 된다.
비록 인체가 충분한 도체가 아니긴 하지만, 인체가 쇼트를 일으킬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으니 궤도의 양 단에 묶인 인체로 인해 단락이 일어날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 물론 확실히 이상 점유를 시키려면 침수 정도는 시켜야 할 것이다. 여하튼 이렇게 궤도회로가 점유되면, 사람들이 있는 폐색구간 초입의 신호기에는 정지신호가 현시된다. 그에 따라 기관사가, 또는 ATS에 따라 정차하면 사고는 일어나지 않는다.
논의대로면, 정말로 모든 조건이 맞아떨어진 경우는 이렇다.
연동 없는 구내에서, 기관사가 죽어버린 열차가 ATS도 설치되지 않은 구간에서 레버가 달려 있고 연동이 제한적인(즉 레버를 당기면 방향이 바뀌는) 8번 또는 비슷한 호수의 분기기를 그대로 통과할 수 있는 속도로 달려가고 있는데, 즉 본선으로든 측선으로든 열차는 그대로 달릴 수 있는 속도를 유지하고 있는데, 양 분기기 앞에 갑자기 서로 구별되는 숫자만큼의 사람들이 선로로 뛰어듬.
물론 이런 역이나 신호장이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이들 조건 가운데 가장 일어나기 쉬운 일은 사람이 뛰어드는 일이다.
이때 분기기 조작원은, 주변에 추돌할 물체가 없다는 전제하에 열차 탈선을 선택할 수 있다. 최대 35km/h 수준의 속도라면, 어디 추돌하더라도 열차 측 사망자까지 나오기는 쉽지 않다. 20km/h 정도라면, 유류나 황산조차라도 서 있는 구내가 아닌 이상에야 객실 내 승객에게 위해가 갈 가능성은 매우 낮다. 노면전차라면 뭐 접촉사고 정도의 효과가 날 것이다.
하지만 열차 전방에 그대로 노출된 사람은 스치면 사지 손실, 치이면 사망이다. 위해의 수준이 다르기 때문에 탈선이 더 나은 답일 수 있다. 열차를 탈선시키는 방법은 간단하다. 열차가 분기기를 통과할 때 레버를 당겨 분기기 위치를 정위에서 반위로 바꿔버리면 된다. 물론 추가 사고가 나지 않는다는 조건이지만, 철도에서는 탈선을 시켜서 사람을 살리는 방법이 가능하다. 열차는 그냥 제동을 걸었을 때보다 더 짧은 거리를 진행하고 멈추게 된다. 속도가 낮기 때문에 탈선한 열차는 선로 주변에 멈춰 있을 것이다.
이런 대안과 관련해서도 학계에서 논의되는 한 가지 변형이 있다. 가장 우측 그림이 그것이다. 이 그림을 그린 학자에 따르면, 진행 중인 열차를 다른 차량으로 막아서 5명을 구하면, 선로 주변 해먹에서 잠을 자고 있던 무고한 사람이 탈선한 열차에 맞아 죽는 결과가 나오게 된다. 이때도 열차 탈선을 시킬 수 있을까?
물론 철도 현장을 알고 있다면 이런 터무니없는 퍼즐을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차라리 철도 현장에서 매우 중요한 사고 유형을 제시할 수 있다. 복선 철도에서는 탈선한 열차의 일부분에 맞은편 열차가 추돌하여 사고가 더 커지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에서도 비슷한 유형의 사고가 일어난 적이 있다(2013년 대구역 탈선사고).
그렇다면 더 현실적인 퍼즐은, 열차 빈도가 매우 높은 복잡한 역이나 본선에서 탈선을 시켜 맞은 편 열차와의 추돌 가능성을 남겨두면서도 사람을 구할 것이냐는 퍼즐인 셈이다. 이때 선택지는 5명의 목숨이 한 편, 그리고 본선 차단과 맞은편 열차와의 추돌 가능성이 한 편이다. 열차 자체의 방호 능력 덕분에 이런 추돌로 인해 사람이 죽는 경우는 드물지만 일어나지 않는다고 보장할 수는 없다. 또한 본선 차단과 2차 사고는 많은 경우 수십만 명의 교통편과 시간을 빼앗고 철도사업자에게는 막대한 재정 손실을 불러오게 된다. 정답은 없지만, 현실에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사고인 만큼 이런 식으로 문제를 제시하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추가로 뚱뚱한 사람을 본선에 떨어뜨려 열차를 탈선시켜 저지하는 방식의 퍼즐 역시 개연성이 없기는 마찬가지이다. 달리는 열차를 저지해 앞으로 가지 못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다른 철도차량이라도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 고속 추돌 사고 가운데서는 상대 열차를 올라타 앞으로 진행하는 사고 사례를 빈번하게 찾을 수 있다. 올라탐 방지 장치는 철도차량의 필수 요소가 될 정도이지만, 최근에도 중국의 온주 고속열차 추돌 사고에서는 고속열차 한 량 반 정도를 종잇장으로 만드는 올라탐 현상이 벌어지고 말았다. 수백 톤의 질량으로 달리는 열차를 완전히 차단시키려면 역시 수백 톤의 질량이 필요하다. 100kg 수준의 인체가 아니라, 과선교 자체를 붕괴시켜야 열차가 앞으로 달려 나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물론 그렇게 하면 열차 쪽 피해가 매우 커진다. 독일의 유명한 고속철도 탈선 사고인 에셰데(Eschede) 사고 역시 탈선한 열차가 과선교를 붕괴시켰기 때문에 사고 규모가 매우 커졌던 사건이었다.
결국 철도기술의 발전을 알고 있다면, 분기기 조작 역무원의 책임이 성립하는 경우는 대단히 까다로운 조건이 맞아 떨어질 때뿐이며, 이에 따라 트롤리 문제는 개연성이 매우 낮은 작위적인 문제처럼 보이게 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2. 철도 안전 기술의 초점
물론 작위적인 퍼즐이라 할지라도 기능과 의미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앞서 지적했던 것처럼, 이 퍼즐은 당신이 사람 목숨의 수가 많을수록 더 가치 있다고 평가하는지, 그리고 작위와 부작위 사이의 선택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물어보는 데 있어서는 매우 적절한 틀거리가 될 수 있다. 묻고자 하는 질문에 알맞은 틀거리를 제공하기 때문에 철학뿐만 아니라 심리학과 공학으로도 번져나갔다고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바로 이런 성격 때문에, 나는 이 퍼즐이 철도 안전의 원리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본다.
앞선 서술의 초점이 분기기 조작원의 책임이 없다는 점을 보이는 데 집중되어 있었다는 데 주목해 보자. 내가 줄기차게 지적한 내용의 핵심은 현대 철도의 분기기는 구조상 외부에서 조작이 대단히 어렵다는 점, 그리고 기관사나 역무원, 정비 및 보선팀이나 운전을 지시한 관제 등 상황에 따라 여러 주체에게 열차 운행에 대한 책임이 귀속된다는 점이었다.
이런 내용을 요약하여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
철도사고의 책임은 일개인에게 귀속되지 않으며, 철도라는 시스템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는 상황에 귀속된다. 철도사 200년간 겪었던 수많은 사고 경험은 어떻게 하면 제대로 시스템을 구성하여 사고를 막을 수 있느냐는 방향으로 응축되었다. 철도 안전의 책임은 일개인의 능력에 맡겨져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위치를 지키고 있는 수많은 철도원 모두에 의해 지켜지는 것이다.
특히 철도에서 시스템을 강조해야 했던 이유는 다음 두 가지이다. 먼저 이 시스템은 인간의 감각과 순발력만으로는 통제할 수 없는 속도와 무게, 규모를 가지고 있다. 305km/h로 달리는 KTX의 비상제동거리는 3km에 달한다. 또한 언급했다시피 열차의 무게는 통상 수백 톤이며, 열차를 직접 저지할 수 있는 것은 비슷한 무게의 콘크리트 더미뿐이다. 전국 각지의 열차 지연상황이 서로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을 정도로 네트워크의 규모 역시 방대하다.
또 한가지의 이유는 이 시스템이 한 편에 수백 명, 때로는 수천 명의 사람 목숨을 싣고 달리기 때문에, 그리고 대도시 사이를 연결하는 가장 신뢰할 수 있는 교통수단이라는 사회의 평가 때문에 생기는 무거운 책임이다.
아무도 다치지 않은 철도 사고 때문에 철도가 비판의 대상이 되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하루에도 15명꼴로 사망하는 도로 교통에 비하면 매우 안전하다는 점을 들어 철도인들이 이것이 철도에게 불리하다고 주장하는 장면을 몇 번 목격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도로 차량에 비해 철도차량이 가진 책임이 훨씬 더 크고 무겁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런 비난도 철도가 감당해야 할 일종의 사회적 책임 가운데 하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은 든다.
이런 책임을 감당하기 위해 설계된 시스템의 구성 원칙 가운데 여기서 짚어볼 만한 부분은 바로 페일 세이프(fail safe) 원칙이다. 이 용어는 항공 안전 운항의 핵심 원칙을 지시하기 위해 나온 것이다.
이상이 생기더라도, 기체가 떨어져서는 안 된다. 생각할 수 있는 대부분의 이상 상황에는 최대한 비행할 수 있게 하라.
물론 이런 원칙은 각각의 영역에서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응용될 수 있고 그래야만 한다. 예를 들어 원자력 발전소의 경우 원자로에 이상이 발생하면 핵분열부터 즉각 정지시켜야 할 것이다. 철도 운전의 경우에는 이상이 발생하면 최대한 즉각 정차하여 상황을 살피는 것이 널리 통용되는 페일 세이프 원칙이다. 다만 터널에서는 원칙이 변형된다. 터널에서 이상이 생기면 최대한 신속히 빠져나와야 하는데, 터널은 탈출이 어려운 데다 주변 도움을 받기도 어려운 곳이기 때문이다.
이 원칙을 언급하는 이유는 이렇다. 위험 상황 시 도움이 되는 원칙은 간명하고 이해하기 쉬운 원칙이다. 긴급 상황을 겪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하겠지만, 그 상황 하에서 많은 경우 인간의 판단력과 순발력은 엉망이 되고 만다. 페일 세이프 원칙의 정신은 바로 이렇게 허둥대는 인간에게 조금이라도 대처하기 쉬운 상황과 여유를 만들어 놓으라는 데 있다. 철도 안전 현장의 발전을 이끌어 온 개념은 이런 식의 개념들이지, 사람을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하게 만드는 트롤리 문제와 같은 난제가 아니다.
3. 자동차 안전을 위해 철도를 참조하려면
최근 트롤리 문제가 철학계 밖에서도 점점 더 많이 언급되는 이유는, 아마도 자율주행차 때문일 것이다. 자율주행차를 제어할 인공지능이 어떤 방식으로 구성되어야 하느냐는 질문에서 아마도 트롤리 문제는 일정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도로 차량은 엄격하게 통제된 시스템 위를 달리는 철도보다 이런 상황에 처할 가능성이 훨씬 높을 것이다. 이 때문에 트롤리 문제처럼 곤혹스러운 상황에 대한 논의가 철도 안전에 대해 생각할 때보다 더 유용할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하지만 글쓴이는 미래 도로를 좀 더 안전하게 만들기 위한 논의에서 철도 기술이 트롤리 문제와 같이 현업과 무관한 형태로 등장하는 것은 실제로 도로를 안전하게 만드는 데 그리 보탬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글쓴이는 오히려 현 단계 도로를 더 안전한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절실한 과제는 철도 안전을 달성하는 데 보탬이 되었던 요소들을 도로에서도 실현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그 가운데 손꼽을 수 있는 초점은, 도로 운전에서도 페일 세이프가 성립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있을 것이다. 현재 도로 운전의 여건을 생각해 보면, 차량 이상이나 주변 여건의 변화가 생겼을 때 따를 수 있는 간단한 페일 세이프 원칙이 성립할 수 없는 상황이다. 후방에서 달려오는 차량 덕분에 정지한다고 해서 안전하지 않고, 이상이 생긴 차량을 더 주행시키거나 안전하지 않은 도로 위에서 더 주행을 하는 것도 위험한 일이다. 아마도 도로 운전을 더 안전하게 만들기 위해 트롤리 문제보다 더 중요한 딜레마는 이 딜레마일 것이다.
철도는 이런 딜레마를 잠시 앞에서 언급한 폐색 개념을 도입하여 해결했다. 폐색 개념은 결국 열차 사이에 일정량의 안전거리를 도입하게 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철도 안전에 큰 도움이 되었다. 자동차 운전에서도 안전거리에 대한 권장 사항이 있지만, 교통량이 증가한 경우나 추월 등을 위해 운전자들은 이를 무시하고 있는 형편이다. 도로와 차량이 이상 상황에서 완전히 해방되는 날은 절대로 오지 않을 것이므로, 자율주행차는 안전거리를 엄수하는 것을 철도로부터 배워야 할 것이다. 안전거리는 이상 발생 시 최소한의 대처를 할 수 있는 물리적 기반이 되어 주는 토대이므로 어떤 경우에도 없어져서는 안 된다.
또한 광학 도구에 의존하지 않는 방식으로 차량을 제어할 수 있는 기반이 없다면, 도로 차량은 안개 속에서 감속해야만 한다. 안개 속에 무엇이 있는지를 광학 도구로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철도는 이를 전기의 힘으로 달성할 수 있었다. 중후장대한 금속, 즉 도체로 가득 찬 시스템이기 때문에 궤도 회로를 구성하여 차량의 소재를 파악하는 일이 생각보다는 어렵지 않았던 것이다. 도로 차량은 동일한 방식으로 안개를 극복할 수 없지만, 광학 도구에 의존하지 않는 방식으로 차량을 제어해야 한다는 목표만은 철도 기술에서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사례 말고도 다른 많은 흥미로운 사례들이 철도 기술 속에 있다. 이미 이 글은 많이 길어졌고, 글쓴이 역시 철도 기술에 대해 그리 많은 것을 알지는 못하니 더 상세한 논의는 이만 줄이겠다.
하지만 이것만은 강조하고 싶다. 철도 안전은 트롤리 문제가 부각시켜놓은 일개인의 책임과 선택으로 지켜질 수 없었고, 다양한 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안전 설비를 체계적으로 채택하면서 동시에 현업에서 실제 일을 하는 사람들의 선택은 최대한 간명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지켜질 수 있었다. 도로 안전 또한 그러한 방향으로 발전해 나아가야만, 여전히 심각한 교통사고 사상자 숫자는 크게 감소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한국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사람의 수는 여전히 1년에 5천 명 수준에 달하며, 전 세계적으로는 1백만 명이 넘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