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사실 이런 기사는 지겹다.
나라는 항상 때만 되면 독서량이 줄어든다는 내용을 미디어를 통해 널리 퍼트리고, 국민들은 그런 내용의 기사나 컬럼을 보고 그러려니 한다. 이런 기사를 보고 그러려니 하는 대한민국 국민은 분명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이런 내용의 글에서는 자꾸만 책을 안 읽어서 사람들이 독서도 안 하고 회사나 학교만 왔다 갔다 한다고 이야기하는데 사실 무엇이 먼저인지도 모르겠다. 국민들은 대부분 회사나 학교에 모든 시간을 다 쏟아부어야 하니 책 읽을 시간 따위는 없다고 하니 말이다. 사실 그걸 진심으로 받아들여 줘야 할지 혹은 핑계로 봐야 할지도 관건인데, 설사 그게 핑계라도 상관없다. 그래 봤자 우리나라는 그렇게 큰 문제라고 하는 국민독서량의 이슈에 핑계밖에 못 만들어내는 정책을 펼치고 있는 셈이니까 말이다.
책을 읽지 ‘않아도’ 되는 이유
당신은 책을 읽는 사람인가? 맞다고 한다면 당신은 무엇을 위해 책을 읽는 것일까? 지식? 교양? 아마 이 둘은 책이 생겨난 이래로 우리가 책을 읽어야 하는 가장 큰 이유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지식은 책이 아닌 인터넷에 훨씬 많고 교양은 전에 비해 책이 직접 기여를 하지 않더라도 높아졌다. 그 둘은 이제 책을 읽어야 하는 우선순위에서 1, 2등을 다투지 못한다.
그럼 이제 남는 것은 논리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책은 인터넷에서 혹은 신문에서 읽는 글의 내용들과 차원이 다르게 긴 길이의 논리 덩어리이다. 시와 같은 장르는 비록 다를 수 있지만, 대부분의 글은 하나 혹은 몇 가지의 결론을 향해 달려간다. 인문서적도 그렇고 소설도 그렇다. 우리는 남이 써 놓은 논리의 흐름을 따라가면서 우리가 논리를 만들 수 있는 법을 간접적으로 배우게 된다. 그리고 결과로 사람들은 책을 한 권 읽고 나면 인사이트, 감동, 지혜 등을 얻을 수 있다. 단! 그 내용을 천천히 곱씹어 본 경우 그렇다.
자 그렇다면, 대한민국에서 책을 읽는 사람들 가운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런 논리의 흐름을 따르고 자신이 읽어본 책의 내용에 대해서 ‘생각’을 해볼까? 그 수를 정확히 파악하기는 어렵겠지만 많아 봤자 5명 중 1명 수준을 넘지 못하지 않을까 싶다. 결국 책을 적게 읽는 것도 문제지만, 책을 그냥 읽기만 한다는 것도 문제가 된다.
사실 그 이면에는 우리가 글을 쓰지 않는 것에도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우리 가운데 초등학교를 지나서 일기를 써도 되지 않게 된 이후 진심으로 내가 느끼는 내용에 대해서 글로 적어 보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 전형적인 문제풀이와 주입식 교육은 교과서와 문제집 그리고 이에 대한 탈출구에 해당하는 만화책 이외에는 책을 읽게 되지 않는 아이들을 양성해냈다. 게다가 그것들을 읽고 있는 와중에도 자신의 생각이 무엇인지 적어보지 않게 되는 문제를 만들었다.
하물며 책을 많이 읽으면 ‘독서충’이라고 불린다는 말도 있는데, 글까지 쓰게 되면 ‘글짓기충’이 되어버리기 십상일 것이다.
이제는 ‘글쓰기 교육’으로 바꿔야 할 때
하지만 생각해보자. 내 글의 소중함을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하물며 어떻게 남의 글의 소중함을 알겠는가? 내가 글을 써보면 남의 글을 읽어야 하는 이유도 자연스럽게 깨우치게 되어 있다. 우리가 어른이라면 그 문화를 만들어주는 것이 급선무일 것이다. 글을 짓는 것이 자연스러워지면 독서충이라는 말도 자연스레 사라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럼 글쓰기가 거창한 것인가? 당연히 아니다. 책을 읽고 요약해 본 적이 있는가? 내가 만나본 사람에 대한 느낌을 10줄 이상 적어볼 자신이 있는가? 몇 년을 살았던지 자신의 삶을 A4용지 10장으로 써 볼 수 있는가? 솔직하게 말하자.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작은 것이든 큰 것이든 글짓기를 해 본 적이 별로 없다.
글을 쓰는 것은 내 생각을 담는 것이다. 이것은 세상을 폭넓게 받아들이기 위해 남의 글을 읽는 독서와는 다른 형태의 창의이다. 글쓰기는 내 안의 울림이고 나에 대한 가장 쉽고 진정한 표현이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 아이들에게 수 백권의 책을 사주면서도 하나의 오롯한 그만의 글을 쓸 수 있도록 도와준 적은 없다. 겉멋은 필요 없다. 자신만의 진짜 글을 쓰기만 하면 된다.
우리의 교육은 전형적인 읽기의 교육이다. 또한 혹자는 우리 국민이 말하기를 꺼려한다고도 이야기한다. 어떤 자리든지 우리는 마지막 시간에 ‘질문 있습니까?’라는 말에 아무도 손을 들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두 가지를 모두 인정하고 나면 우리에게 남는 것은 무엇일까? 그건 참으로 슬픈 결론이다.
그러니 읽는 것을 바로 늘리기 어렵다면 ‘읽기’라는 행동에 기반을 닦아보자. 어차피 독서량 늘리자고 떠들어봤자 늘지 않을 거, 천고마비나 1일 권장 도서량 목표를 수립할 시간에 우리 아이들이 스스로의 글을 써보고 글의 가치를 직접 만들어 느끼게 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그런 허울뿐인 독서권장보다는 이 방법이 훨씬 나은 방법임을 나는 적어도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