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내가 나이를 많이 먹은 것은 아니지만(진짜다), 내가 어릴 적 경험했던 세계와 지금의 세계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다르다. PC통신 서비스가 시작된 것도 80년대 중반이고, 90년대 초중반까지만해도 인터넷이란 것은 일반인들의 세계에는 개념조차 없었다. 오래 전에 빌게이츠가 컴퓨터 메모리는 640KB면 충분하다고 말했다는 일화에서 알 수 있듯, 컴퓨터 분야는 대체로 과거에 예측했던 것보다 훨씬 더 발전했다.
그럼에도 어릴 적에 기대했던 것만큼 빨리 진행되지 않은 것들도 있다. 많은 분야들이 있겠지만 아톰이라든가 거대로봇이 태어나지 않은 것도 그렇고 컴퓨터 입출력 장치의 형태도 그 중 하나일 것이다. 어릴 적에 나는 21세기가 도래하면 마이너리티 리포트처럼 손가락으로 허공에서 컴퓨터를 컨트롤 하거나 아이언맨처럼 양손으로 데이터를 쓰레기통으로 처박아버리는 미래가 올 줄 알았다.
현재 21세기가 오고도 10년이나 더 흘렀는데, 아직도 컴퓨터의 주된 입력장치는 키보드와 마우스이다. (마우스를 발명한 더글라스 앵겔바트는 지난 7월 2일, 향년 88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R.I.P.)
그래도 정말 입력장치에는 발전이 없었을까? 현재 가장 주목을 끌고 있는 몇 가지 컴퓨터 입력장치를 정리해봤다.
1. Leap motion
리프 모션은 키보드와 마우스로 3D 작업을 하다가 빡친 사람들이 만든 컨트롤러로 실제 생활에서 찰흙을 만지듯 가상세계에서도 찰흙을 주무를 수 있는 컨트롤러라고 한다. 3D 모델링을 직접 해본 사람들이라면 알겠지만, 그 노가다성은 상상을 초월한다.
아래는 밀크쉐이크라는 저가(무료일지도?)의 모델링 툴로 사람을 모델링하는 모습이다.
보면 감이 오겠지만, 조각가들이 덩어리와 표면을 이해하는 방식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모델링을 해야 하는 것이다. 즉, 직관적이지가 않다. 튀어나오면 깎고, 모자라면 덧붙이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3D도 예술의 도구가 되면서 이런 인터페이스는 예술가들과의 소통을 어렵게 한다는 점이 지적되어 아직도 모델링 방식의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는 중이다. 그럼 리프모션을 한 번 구경해보자.
이 작은 기계는 두 개의 카메라와 세 개의 적외선 LED를 이용해 손이나 펜, 심지어는 젓가락 같은 것을 0.01mm 정확도로 감지할 수 있다. 물론 리프모션을 지원하는 앱에서만 동작하지만 이미 다양한 개발자들이 많은 앱을 개발하고 있고 또 자체 마켓을 제공해 향후 손쉽게 지원하는 앱을 찾아볼 수 있게 될 것이다.
현재 선 주문 가능하며 가격은 기계 값 $79.99에 배송비 $14.99를 합쳐 $104.48 (약 12만원). 여러 명이 사도 배송비는 같으니 구매계획이 있거든 사람을 모으자. 본인은 8명이 모여 주문했다가 지금 세금 폭탄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정식 출시는 7월 22일. https://www.leapmotion.com/
2. Kinect
키넥트는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야심 차게 시작한 프로젝트로 동작 인식이 가능한 장치이다.
키넥트 : Assassin’s Creed for Kinect Announced! (키넥트로 어쌔신 크리드를 하는 모습. 물론 이건 만우절 장난이다.)
동작 원리는 한 렌즈에서 적외선을 깨알 같이 쏴주고, 적외선카메라에서 이 깨알을 읽어서 깊이를 파악하고, RGB인식 카메라로 색 정보를 알아내는 것으로 캠코더의 야간 모드를 켜게 되면 이 깨알들을 볼 수 있다!
리프 모션보다 우월해 보이겠지만, 실제로는 해상도나 정확도가 떨어지고, 최소 2m 가까이 떨어져 있어야 하기 때문에 사실상 책상에 앉아 컴퓨터에서 사용하기는 무리다.
주력으로 밀고 있는 분야는 역시 모션 감지 게임, 그리고 의료분야나 광고 마케팅이며 다양한 덕후들에 의해 시각장애인을 위한 감지센서나 샌드 박스 등의 용도로 개조되기도 한다.
실시간 물 흐르는 시뮬레이션을 샌드박스 AR로 하다니…
(사실 나도 학교 졸업 프로젝트로 해보려다 프로젝터 가격이 너무 비싸서 포기했다.)
최근 XBOX ONE이라는 신형 XBOX 게임기에 새로운 키넥트가 탑재된다고 발표되었으며 이 신형 키넥트는 최소 인식 거리도 짧아졌고 정확도와 해상도가 크게 올라갔으며 심지어 심장 박동 수까지 측정 가능한 괴물이라고 하니 기대해보자.
신형 키넥트의 기능에 대한 설명영상. 영어를 잘 몰라도 영상만으로도 알아볼 수 있다.
특히 심박수를 파악한다는 건 얼굴 피부 아래 핏줄 패턴을 파악해서 판단한다는 식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 같은데, 얼른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괴물같은 기술이다. 심박수가 정말 정밀하게 측정된다면 헬스 게임 콘텐츠도 분명 나오겠지. 흐흐 미미쨩 병원놀이 할까…
심박수나 표정변화, 스트레스 감지가 된다면, 유저의 신체를 측정해서 적당한 스트레스 수준을 찾아 제공하는 스토리텔링도 가능할 것 같다.
가격은 XBOX360용은 12만원이지만 이제는 구하기도 힘든 Y자 케이블을 사야 컴퓨터에 연결 가능하고, Kinect for Windows는 22만원(-_-)이지만 곧바로 컴퓨터에 연결 가능하며 약간의 향상 점이 있다. (키넥트포윈도 링크)
다만 개발자가 아닌 일반사용자가 현재 쓸 수 있는 제대로 된 프로그램은 오직 게리모드 뿐이다.
3. 책 컨트롤러
그 외에도 개인 차원에서 다양한 덕질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실험적인 프로젝트도 꽤 많이 나오고 있다. 스트레스에 취약한 분들은 따라하지 말자. 수명을 갉아먹히는 느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 하고 싶다면, 아두이노, 프로세싱 등을 파시길 바람. 더 알고 싶다면 링크는 http://elektrobiblioteka.net/
4. 마치며
사실 키보드와 마우스는 대체하기 힘든 입력 장치이다. 키보드와 마우스는 팔을 거의 움직이지 않고 모든 컨트롤이 가능하지만 이런 동작 인식 장치들은 필연적으로 팔 혹은 몸을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다. 즉 최대한 신체를 덜 쓰면서 많은 작업을 할 수 있는 방향과는 좀 다른 노선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장치들을 로망이다 로망! 실용성만 따지고 있었다면 마우스는 나타나지도 안았을 것이다! 대체로 GUI(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 는 TUI(텍스트 유저 인터페이스)에 비해 입력에 필요한 품이 많이 드는 인터페이스지만 그래도 GUI가 세상을 얼마나 바꿔놓았는가 말이다!
향후 기술이 발달하면 뇌파로 조종하는 장치가 나오기를 바랄 뿐이다. 그렇다면 손 하나 까딱 안 하고 다 할 수 있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