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창업교육의 문제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컨텐츠의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사람의 문제입니다. 그러나 이 둘은 하나의 문제처럼 같이 얽혀 있으며 사실상 모든 문제는 이 범주 안에 다 들어갈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창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공통점이 있습니다. 모든 이해 관계자들은 이구동성으로 현재 우리나라의 창업 교육 생태계는 잘못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창업자나 예비 창업자는 물론이고 교육자, 멘토, 중간운영기관, 정부기관 등 이해관계가 있는 모두가 현재 우리나라의 창업교육은 잘못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이건 구조의 문제입니다.
문제
컨텐츠의 문제를 먼저 말하자면, 창업교육컨텐츠의 종류와 방식이 너무나 차별성이 없습니다. 통계자료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개인적인 경험에 비추어 보았을 때 국내에서 실시되는 창업교육의 80%는 같은 내용을 하고 있습니다. 바로 사업계획서 작성법입니다.
여기에는 실제 사업의 청사진을 그리기 위한 사업계획서 작성법(9블록비즈니스 모델 캔버스등)도 있지만, 대부분 정부지원자금 신청 또는 투자유치를 위한 IR용 사업계획서 등에 가깝습니다. 조금 더 큰 범주로 IR피칭과 슬라이드(PPT) 제작도 이 범주에 들어간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 외에 다른 종류의 교육을 찾기는 쉽지 않습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고 있을까요? 저는 이 문제를 멘토와 창업자, 운영기관 모두가 처음부터 단추를 잘못 끼웠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창업자의 문제
우선 창업자의 문제입니다. 창업학은 경영학 과목으로도 있는 주제이지만 예비 창업자들은 원론적이고 많은 트레이닝이 필요한 이론적인 교육은 불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또는 그럴 시간이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쏟아지는 업무 속에서도 급한 대로 필요한 부분만 On-demand로 학습을 하다 보니 가장 시급한 문제에 대한 미봉책만 두서없이 찾게 됩니다.
스타트업이 당면한 가장 큰 문제는 ‘생존’이고, 생존에 가장 필요한 것이 자금이다 보니 대부분의 초기기업은 조직의 시스템이나 가치보다는 ‘일단은 살고보자’는 마음으로 정부지원사업에 눈을 돌릴 수밖에 없게 됩니다. 그리고 사실 세계 최고 수준의 정부지원금도 그런 미끼가 되어줄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전 세계에서 아이디어만 가지고 3천~1억 원까지 상환의 의무가 없는 grant를 주는 나라는 많지 않습니다. 투자 인프라나 돈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자생의 준비가 되지 않은 기업에게 무작정 퍼주는 것은 스타트업에게도 독이고 국민예산도 낭비라는 것을 선진국은 경험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다 보니 스타트업은 눈먼 돈이라 여겨지는 정부지원사업을 본사업의 가치보다 먼저 생각하게 되고, 그것을 준비하는 족집게성 교육을 찾게 됩니다. 이건 우리나라의 교육 문화와도 관계가 있습니다. 토론을 통한 Bottom-up 식 교육이 아니라 정답 찾기식 교육을 받다 보니 정부지원금 조차도 ‘모범답안’을 찾는 방식이 되어버린 것이지요.
다음은 운영기관의 문제입니다. 얼마 전 오마이뉴스에서 창업생태계에 있는 전문가들을 인터뷰한 기사가 있었습니다. 여기서 대답한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운영기관의 전문성 부족’을 문제의 큰 축으로 꼽았습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한번 생각해봅시다.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고 ‘창조경제’는 이 정권의 핵심 키워드로 세워지고 막대한 예산이 투입됩니다. 인프라도 없고 전문조직도 부족한 상황에서 막대한 자금이 내려오니 이것을 실행할 조직들이 만들어집니다. 전국에 창조경제혁신센터가 세워지고 대학마다 기존의 산업협력단 외에도 창업보육기관들이 들어섭니다.
그러나 애초에 스타트업 열풍이라는 것이 국내에선 처음 있는 일입니다. 과거 2000년도 전후 벤처 열풍 시대의 스타들이 나서는 것만으로는 그 수요를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운영기관들이 잘못한 포인트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이 분야에 경험이 많지 않은 사람을 자리에 임명하고 나니 실제 운영은 직접운영보다는 전문운영기관들을 통한 간접 운영을 하게 됩니다. 이것이 왜 문제냐 하면, 직접 기획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정부-기관-중간운영기관-멘토-스타트업의 형태로 하도급 구조가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시스템은 비용적인 부분을 차치하고서라도 운영기관이 장기적인 계획과 커리큘럼을 가지고 사업을 진행하지 못하고 각 앞단과 뒷단에 커뮤니케이션이 되지 않아 효율이 떨어지는 특징을 가지게 됩니다.
둘째는 정부와 기업에서 나오는 예산이 많다 보니 기관 스스로도 자생하려는 노력 대신 각종 사업비를 따기 위한 업무에 매달리게 됩니다. 물론 이것도 더 올라가다 보면 창업교육의 KPI를 횟수로만 평가하는 주관기관들의 운영도 책임을 피할 수 없습니다. 하여튼 이렇게 대외사업비를 획득하는 것 자체가 기관의 KPI가 되니만큼 대학이나 기관의 인력들은 사업비를 따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실제 운영은 외주 하청을 주는 구조가 굳어지게 됩니다.
멘토의 문제
다음은 멘토의 문제입니다. 위에서 말한 이유로 창업보육기관은 직접 혹은 중간운영기관을 통해서 보육기업을 교육할 멘토를 섭외합니다. 그러나 보육기업과 실제 섭외하는 멘토의 매칭이 안 맞는 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스타트업들이 가장 선호하는 멘토는 자신의 사업 분야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대기업의 실무 전문가입니다. 예를 들면 SNS 서비스를 하려는 회사라면 페이스북의 개발자나 기획자를 원하고 커머스 서비스를 원하는 회사라면 쿠팡의 실무자를 원하는 경우지요. 그러나 문제는 회사에서 한창 일하는 이런 전문가들은 정기적인 교육을 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1회성 특강은 가능하겠지요. 그러나 매주나 격주 등 정기적으로 스타트업을 만나 20~30만 원 내외의 멘토링비를 받으며 회사를 비우게 해줄 수 있는 대기업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누가 이런 멘토링을 할 수 있을까요? 결국 전업으로 이런 교육을 할 수 있는 전업 멘토들만 가능합니다. 그런데 이런 전업 멘토들의 경우 개발자 출신도 있고 창업자 출신도 있지만 대부분 투자회사 출신이 많습니다. 창업 생태계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이유도 있지만, 섭외하는 운영기관에서도 이들을 선호하기 때문입니다. 위에서 말한 대로 스타트업도 투자유치를 성공의 잣대처럼 여기는 회사가 많고 기관도 투자유치 현황이 실적평가의 중요한 지표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투자회사 출신의 멘토들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교육은 무엇이 있을까요? 마케팅일까요, 아니면 조직운영일까요? 당연히 매일 보고 분석하고 평가하는 사업계획서입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창업 교육이 투자유치나 정부자금지원을 위한 사업계획서 작성법으로 편중되어가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해결책
이 복잡한 실타래를 풀기는 쉽지 않습니다. 이미 너무 정교한 톱니바퀴들이 모여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위에서 언급한대로 사회의 교육 문화적 배경까지 닿아있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은 책임을 가지고 있기도 하고, 해결책을 말할 자격이 주어진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창업교육문화가 발전하기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몇 가지 생각한 바를 공유해보고자 합니다.
첫째, 정부는 예산의 양이 아닌 예산 사용의 결과를 우선으로 평가해야 합니다. 그 결과가 단순히 엑셀 표에 들어가는 창업기업이나 투자유치 성공률과 같은 무미건조한 숫자가 아니라 기업의 매출과 순이익률, 산업의 기여도, 고용창출기여도 등의 핵심 지표로 바꾸어야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정권이 바뀌면 전문 컨설팅 회사와 계약을 해서라도 이런 창업자금 집행 및 성과측정방법에 관한 컨설팅을 받기를 기대합니다.
둘째, 정부와 기관은 보여주기식 행사를 지양하고 창업기업에게 직접도움이 가는 지원을 늘려야 합니다. 현재는 복잡한 하도급 구조를 가지고 중간운영기관이 가장 큰 혜택을 받는 구조입니다. 우스갯소리로 전국에 있는 수많은 창업보육기관을 모두 없애고 그 예산을 스타트업에게 나눠주면 1개 기업당 수천만 원은 지원이 가능하다고 하지요. 그만큼 중간에서 새나가는 돈이 많다는 인식이 널리 퍼진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해서 생태계의 구성원인 중간운영기관도 먹고 살게 하려는 목적이라면 어쩔 수 없습니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러한 구조는 중간 운영기관도 예산을 가지고 있는 발주사에 의존되는 구조이기 때문에 건강한 생태계라고 말할 수는 없겠습니다.
셋째, 기관은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는 그럴싸한 이력만 가지고 있는 사람을 앉히지 말고 정말 검증된 능력의 실력자를 채용하는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차라리 기관은 예산 편성권만 가지고 있고 운영은 전적으로 민간 엑셀러레이터등 전문 기관에 턴키방식으로 넘기는 방법입니다. 그런데 후자는 하청에 재하청으로 넘기는 구조이므로 썩 좋은 방법은 아닙니다. 그래서 애초에 그런 전문 운영기관이 직접 사업을 하게 하는 것이 좋은데 무리하게 관 중심으로 성과를 내려고 하다 보니 이런 비효율적 구조가 만들어졌습니다.
어쨌든 최선은 아니지만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관의 직원들도 체계적인 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 분야에 전문 경험이 있는 기업과 더욱 협력해야 합니다.
넷째, 교육커리큘럼을 다변화해야 합니다. 이건 창업교육계 전반의 문제입니다. 단지 주제가 사업계획서에 편중되어있는 것만이 문제는 아닙니다. 교육의 방식도 워크샵, 세미나, 액션러닝, 퍼실리테이션, 케이스스터디, 시뮬레이션, 롤플레잉 등 다양한 방법이 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중에서 창업교육과 가장 거리가 먼 세미나 방식이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건 좀 대담한 의견이지만, 저는 그래서 창업 강사들은 교육학을 공부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잘 아는 것’과 ‘잘 가르치는 것’은 다른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실무에서 실력이 있다 하더라도 그걸 잘 이해시키는 기술은 실무능력과 정비례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자면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을 가장 잘 돌볼 수 있는 사람은 유아교육학 박사가 아니라 현장의 어린이집 선생님입니다. 육군훈련소에서 신병을 군인으로 완성시키는건 훈련소장 장군이 아니라 중사 교관입니다. 경험상 실무에 있던 현장 전문가가 이론을 접했을 경우와 학계에 있는 이론 전문가가 실무를 경험했을 때 엄청나게 시너지를 내며 성장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습니다.
즉 지금까지 창업교육계의 코치들은 실무 전문가들이 많은 편인데, 여기에 전문분야에 대한 이론 말고도 교육학 이론도 공부해보시면 더 뛰어난 멘토가 되실 수 있으실 것으로 생각됩니다.
다섯째, 그러나 창업교육에서 제가 생각하는 가장 좋은 교육 방식은 여전히 멘토링이라고 생각합니다. 순위를 정하자면 멘토링-액션러닝-퍼실리테이션-워크샵-강의 정도의 순서로 생각합니다. 문제는 멘토링이 올바르게 진행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여러분은 멘토링과 컨설팅의 차이를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컨설팅은 문제를 책임지는 일이지만, 멘토링은 사람을 책임지는 일이라고 봅니다. 저는 학식이 뛰어나지도 경험이 풍부하지도 않습니다. 그럼에도 이 바닥에서 계속 일할 수 있는 비결을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제 멘토들의 일을 그 회사의 CSO가 되어 제 사업처럼 붙어서 같이 고민해주기 때문이라고 말이지요. 육군 훈련소 연대장은 되지 못하지만 하사 분대장 정도 역할은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창업보육현장에서는 장군들이 너무 많습니다. 5분 발표 뒤 5분 피드백하는 것을 멘토링이라고 부릅니다. 이건 멘토링의 의미를 모욕하는 일입니다.
여섯째, 보육기업들도 사업계획서를 넘어 기본기를 쌓는 교육에 투자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교육은 특강이나 세미나 같은 강연을 통해서는 절대 이룰 수 없습니다. 강연은 동기부여를 자극하기 위한 수단입니다. 운 좋게 외부로부터 거액의 투자금을 받고도 회사가 쓰러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가 본 사례의 대부분은 창업자의 역량이 사업의 규모를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때서야 창업자가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보다 높은 깊은 수준의 공부를 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는 경우도 많이 보았습니다. 그나마 그런 자신의 부족함을 채워줄 전문 CSO, CFO, CHRO, CTO를 채용하는 것은 다행인 사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지식은 생각의 근육입니다. 안 하다가 갑자기 무리한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지요. 되려 역효과만 납니다. 이건 시간과의 싸움으로 매일 꾸준히 노력해야 합니다. 보통 대학교 원론 교재 한 권을 보는데 매일 2시간 정도 투자한다고 하면 3개월 정도가 소요됩니다. 마케팅, 기업재무, 회계학원리, 인사관리, 조직관리, 경영전략, 브랜딩 이 정도만 공부한다고 해도 1년은 꼬박 공부해야 할 거리입니다. 그 외에도 기초 코딩, 데이터베이스, 웹디자인, 세무, 경리 실무 등을 공부한다고 하면 초기 몇 년은 공부할 거리가 넘쳐납니다. 이건 회사가 정상궤도에 올라선 이후 시작하기엔 늦습니다.
가장 좋은 것은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 이러한 기본기가 마련되어 있는 것이겠지만, 그럴 상황이 아니라면 사업을 시작하면서부터 관심을 가지고 공부해야 합니다.
원문 : 최효석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