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에 여러 문제가 있겠지만 이번 시국을 보면서 새삼 다시 느끼는 것은 그중 가장 뼈아픈 건 북한 문제라는 것이다. 소위 나라를 팔아먹어도 새누리당을 지지한다던 박근혜의 절대 지지자들은 상당 부분 북한으로 인해 새누리당이나 박근혜를 지지했기 때문이다.
이런 분들을 골수 반북론자라고 부른다면 한국에 골수 반북론자는 거의 20-30%는 되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다른 표를 조금만 더 얻어도 새누리당이 정권을 차지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한국의 자칭 보수 정권은 북한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골수반북론자들이 많이 썼던 말은 빨갱이였다. 지금도 나이 든 분들이 모이는 사석에서는 빨갱이라는 말이 널리 쓰인다. 좌파라는 말을 빨갱이라는 말 대신 쓰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지만 골수 반북론자가 어떤 사람인지 이해하는 데 이 빨갱이라는 말이 도대체 무슨 뜻인가 정리해보는 것은 매우 중요할 것이다.
우선 빨갱이를 공산주의자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어디나 그렇듯 예외는 있겠지만 이 글에서 거론하는 골수 반북론자 중에 중국과의 교역이나 협력을 문제 삼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 중국은 공산당이 지배하는 공산국가며 한국전쟁 때는 중공군과 한국군이 싸우기도 했는데 말이다. 아마 일본 공산당의 간부가 한국에서 어떤 사업을 한다고 해도 그렇게 민감하게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골수 반북론자는 대개 이데올로기의 자세한 논리를 고민하고 따지는 스타일이 아니다. 그보다는 ‘누가 누구 편이라더라’ 같은 식의 개념에 가깝다.
따라서 빨갱이란 공산주의자가 아니다. 그것은 친북인사를 말한다. 그래서 이들은 좌파를 종북이라는 말과 같이 쓰는 일이 많다. 이들은 반공주의자라기보다는 반북론자라고 불러야 하며, 단순히 반북론자라고 부르기보다는 골수 반북론자라고 불러야 한다. 이들을 단순히 반북론자라고 부를 경우 여기 속하지 않는 사람을 친북론자쯤으로 이해하게 되는 오해가 있기 때문이다.
사실 친일파라는 말 자체가 민족배신자라는 말에 대한 미화라는 주장이 있듯 친북론자라는 말은 오래된 반공 논쟁 때문에 쓸데없이 나쁜 이미지를 가지게 된 단어다. 친일이란 일본과 친하게 지낸다는 말인데 해방된 지 반세기가 넘은 지금 친일이 무슨 문제겠는가, 매국하고 민족을 배신하는 것이 문제지. 과거의 일 때문에 지금의 일본과 일본인들을 적으로 여겨야 한다는 말인가. 친일은 문제가 아니다. 그들은 공존해야 할 이웃이다. 민족과 국가에 대한 배신이 문제다.
마찬가지로 북한 사람들도 이제 엄연히 어떤 형태로건 공존해 나가야 할 사람들인 것이 현실이다. 친북이 죄라면 북한과 전쟁이라도 다시 시작하자는 말일까? 개성공단처럼 북한 사람들 고용해서 같이 경제 활동한 사람들은 간첩이라는 말인가? 친북이 무슨 문제겠는가, 친일때와 마찬가지로 매국이 문제고 민족 배신이 문제인 것이다.
사실 이 부분이 이 골수 반북론자 문제의 핵심 중의 하나다. 골수 반북론자들은 자신 이외의 사람들을 맹목적인 종북론자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지금 북한의 현실을 생각해 보면 참으로 믿기 힘든 일이다. 생각해 보라. 북한은 지금 GDP 기준 한국의 1/20에서 1/25 규모를 가진 나라다. 김정일 사진이 젖는다고 집단적으로 울음을 터뜨리던 사람들이 그 나라를 대표한다. 전 세계적인 보편에 비추어 경제로 보든 문화로 보든 존경할 만하고 평화로운 천국은 절대 아니다.
세상에는 여러 사람이 있으니 북한을 찬양하고 한국을 북한처럼 만들어야 하겠다는 사람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있냐 없냐로 말하자면 한국이 미국의 일부가 되었으면 좋겠다거나, 절대 독재국가로 만들어야 한다거나, 심지어 종교국가로 만들어야 하겠다는 사람은 왜 없겠는가.
그러나 냉전 시대가 끝난 지 한참인 21세기에 다수의 한국인이 북한의 지령을 받고 북한을 추종한다는 생각은 과대망상이라고밖에는 말할 수 없다. 이 골수 반북론자들이 우리 사회의 주된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종북론자라는 집단은 그들의 상상 속에나 있는 허구의 세력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골수 반북론자들은 종북세력이란 게 유의미하게 존재한다고 믿는다.
이러한 현실 인식은 당연히 기괴하다. 요즘 청년들을 보라. 촛불집회에 나와서 광화문을 채우는 그 청년들은 이데올로기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단지 좋은 직장 잡고 돈 많이 벌어서 맛있는 거 먹고 연애도 하고 출세도 하고 여행도 다니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북한을 추종한다는 생각은 재벌 3세들이 실은 노숙자를 부러워한다는 말처럼 어색하기만 하다.
골수 반북론자들은 현 여권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너무 쉽게 종북이나 빨갱이로 부르는 경향이 있다. 노조 운동을 하거나, 세월호 진상규명을 말하거나, 환경 운동을 한다고 하면 금세 종북으로 불리는 기괴한 일이 자주 생긴다. 물론 골수 반북론자들도 이것을 말 그대로 주장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골수 반북론자들은 국민 대부분을 꼭두각시로 인식한다. 국민들은 속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간첩 몇 명, 종북주의자 몇 명이 모든 종류의 반 여권 운동의 배후에 있다고 믿는다. 광주학살도 간첩에 동조한 사람들에 대한 응징쯤으로 생각한다. 세월호 사건 같이 다수의 사람이 동정심을 느끼는 일에도 그들과 피해자 가족은 전부 누군가에게 선동되고 조종되고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100만이 거리로 나오는 촛불집회를 보고도 저들은 돈 받고 나온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철부지며 순진하기 짝이 없어서 매수당했거나 골수 종북론자에게 속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골수 반북론자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은 한국 대중을 어리석고 조종되기 쉬운 존재로 파악하는 것이다. 조선놈은 맞아야 정신을 차린다같은 말을 자주 하는 것이 그들의 특징이다. 대중의 지혜가 위대하다는 것을 믿지 않아서 대중의 힘이 모여서 큰일을 이루는 경우는 오직 어떤 지도자의 명령에 일사분란하게 움직여야만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애초에 어리석은 대중에게 복잡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은 전부 사기꾼이라는 것이다.
나 같은 사람은 오히려 그 반대를 믿는다. 지금 정국에서 세상이 상식적으로 굴러가게 만드는 힘은 오직 대중에게서만 나오고 촛불에서만 나왔다. 진실을 파헤치는 힘도 상당수 대중에게서 직접 나온다. 박근혜나 재벌, 여당이었던 구 새누리당 의원들은 말할 것도 없고, 야권의 정치인들도 대다수가 허둥지둥대고만 있을 뿐 사회를 홀로 이끌어간다는 의미의 강력한 지도력을 발휘하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된 지 아주 오래되었다. 나뿐 아니라 한국 정계의 부패소식과 질서정연한 촛불집회를 본 세계의 외국인들도 대부분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골수 반북론자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한국 대중은 어리석다고 생각한다. 최순실이 승리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러한 반목은 이번에는 해소될 수 있을까? 이번 정국을 거치고 나면 한쪽이 한쪽을 이겨서 승리하는 것일까?
여태까지 쓴 것을 보면 골수 반북론자들을 사회적 문제나 사회적 악을 만들어 낸 가해자처럼 기술한 면이 있다. 그들은 분명 자신의 행동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나 사회의 문제점이나 가해자처럼만 생각하는 것도 공평하지는 않다.
골수 반북론자들의 뿌리는 편을 갈라 남북이 싸웠던 한국전쟁의 비극에 있다. 같은 지역을 짧은 간격을 두고 다른 이데올로기를 믿는 사람들이 점령하고 협력자와 배신자를 색출했던 역사 말이다. 이들이 중국에 그다지 반감이 없는 것은 한국전쟁 때 중공군이 북한편에서 싸웠지만 중공군이 지금의 남한 지역까지 내려온 적은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이들은 중국도 북한처럼 미워했을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단순히 비극의 존재 그 자체만으로 한국전쟁이 끝난 지 반세기가 넘은 지금도 유의미한 규모의 골수 반북론자가 존재하는 것을 다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계몽주의적 태도, 오만한 지식인의 태도, 이로 인해 생기는 문화적 차이와 세대간의 실망이 이들을 외롭게 방치해왔다고 생각한다.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골수 반북론자의 상당 수는 고령의 노인이다. 그들의 자식이 베이비붐 세대다. 386세대이자 대학생으로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다수가 바로 이 세대다. 베이비붐 세대와 그 이전의 세대 사이에는 큰 부채와 많은 문화적 차이가 존재한다. 그 이전 세대는 낮은 학력을 가지고 있었는데, 베이비붐 세대는 그보다 훨씬 더 높은 학력을 가지게 되었다. 밤낮으로 일하면서 자식을 좋은 학교에 보내는 것이 성공한 삶을 사는 것이라고 믿었던 이전 세대의 사고방식 덕분이다.
그것이 한국이 경제적으로 성공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믿는다. 다른 가난한 나라에서는 가난하고 못 배운 부모가 죽을 힘을 다해 자식을 교육시키려고 하지 않는다. 교육은 어느 정도 사치라고 생각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노후 자금 따위는 생각하지 않고 모든 것을 자식 교육에 쓰는 부모, 자식의 먹을 것이 아니라 자식의 책값이나 학원비를 위해 가정부로 일하는 부모 이야기는 다른 나라에서 찾기 힘들다. 한국은 그와 달랐기 때문에 나라의 경제수준에 비해 노동자의 질이 달랐고 빠른 경제성장이 가능했던 것이다.
지금의 장년층을 이루는 베이비붐 세대, 한국의 인구구조에서 불룩 튀어나온 부분에 해당하는 이 세대는 어떤 면에서 매우 이기적인 세대다. 그들은 다수의 힘을 이용해서 기존의 규칙을 자꾸 허물어왔다. 그들 이전의 세대는 가족적 질서를 강조하는 세대였다. 그 질서는 물론 억압적이고 반시대적인 면이 있었지만 앞에서도 말했듯 베이비붐 세대가 그 이전 세대보다 풍요롭게 살고 공부하게 만들어 준 원동력이기도 했다.
그러나 한 세대가 지나고 나서 그들이 다음 세대에게 똑같은 일을 하는가 하면 그렇지는 않아 보인다. 사람마다 큰 차이가 있겠지만 부모에게 육아를 부탁하고 부모 돈을 내 돈처럼 쓰던 베이비붐 세대의 사람들은 꽤 많다. 그러나 그들이 나이가 더 들어서 같은 일을 다음 세대에게 해준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다. 그들은 받을 때는 전통적 유교질서에 따라 행동하고, 줄 때는 서구적 개인주의자처럼 행동하는 면이 있다. 인간이 누구나 그렇듯이 베이비붐 전후 세대도 이기적인 면이 있고 어떤 세대든 다 아픔과 어려움이 있지만 베이비붐 세대가 자기 중심적으로 살아왔다는 것을 부정하기는 힘들다고 생각한다.
한국 사회가 더 발전하지 못한 것이 왜 골수 반북론자들만의 문제겠는가. ‘1987년 6월항쟁 세대’라고 자랑하는 베이비붐 세대는 그래서 얼마나 더 이웃을 생각하고 가족을 생각하는 삶을 살았나. 그들은 그들이 비판하던 권위주의를 없애고 부패를 없앴는가? 그들의 부모 세대에 해당하는 베이비붐 이전 세대가 외롭게 방치된 면이 있다면 그들에게 가장 많은 것을 받았던 베이비붐 세대에게 가장 큰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닐까? 만약 이 현실에 대해 애초에 너는 너고 나는 나라고, 우리는 모두 자기 이익만 따지면서 사는 것이 옳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사회적 정의니 부패니 하는 것에 대해 떠들 자격도 없다.
그래서 ‘우리 젊었을 때는 이렇지 않았다’고 요즘 대학생들을 비판하거나 ‘나이든 분들이 문제’라고 너무 쉽게 말하는 장년층은 문제가 있다. 지금 우리 사회가 가지는 문제를 오직 지금 장년층을 이루는 베이비붐 세대만이 전부 해결해야 한다는 건 옳지 않지만, 남 이야기하듯 ‘왜 저런 사람들이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그들이 왜 있겠는가. 우리가 잘못해서 있지. 우리가 자기 생각 덜 하고, 더 이웃을 생각하고, 부모를 생각했더라면 좋지 않았겠는가? 아주 단순하게 말해서 내가 속한 베이비붐세대가 부모 세대를 외롭게 했기 때문에 한국에 문제가 있는 거라는 말이다.
우리나라는 지금 많은 부끄러움과 분노로 채워져 있다. 분노가 진정한 개혁의 힘이 되려면 우리나라를 여러 방면에서 보아야 할 것이다. 종국에는 한국이라는 공동체를 강화하고 국민통합을 더 이룩하는 쪽으로 나가야 할 것이다. 누군가가 이기고 졌는가 하는 것은 이런 차원에서 보면 작은 것이다. 박근혜도 최순실도, 여당도 다 문제지만 더 큰 차원에서 보면 그들만 없다고 나라가 달라지는 것이 아니다. 골수 반북론자들에게 이기고 지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국민의 마음이 하나가 되어야 나라가 달라질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또 반목과 미움을 동력으로 또 다른 박근혜와 최순실이 나타나지 않겠는가?
원문: 나를 지키는 공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