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든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이 있다. 또 원하는 것은 기어이 해야만 된다. 사실 이건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다. 그냥 하나의 기질이다. 스티브 잡스나 엘론 머스크 같은 사람도 이런 기질이 높은 경우다. 손정의 같은 이도 마찬가지다. 근데 이 세 사람을 이야기한다고 좋아할 건 없다. 이들은 자신의 기질을 잘 활용한 케이스지 이들 때문에 그 기질이 무조건 장점이 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원하는 것은 기어이 해야만 하고, 그것도 자기가 원하는 방식대로 해야 하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갖추어야 할 지혜는 그렇게 해야 할 때와 그렇지 않을 때를 구분하는 것이다. 이들의 머릿속에서는 무슨 일을 하든 항상 ‘그렇게 하는 게 맞는 것’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전후 사정이나 전체 상황, 상대방의 입장을 보고 수행하는 게 아니라 그냥 ‘무조건’적이다. ‘당연히 그래야 하고, 마땅히 그래야 하고, 그럴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렇게 해야 한다’고 느끼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믿는다.
그러나 세상에 그런 건 없다. 한 개체, 개인이 자신의 느낌과 생각대로 꼭 해야만 하는 경우는 그렇게 많지 않다. 물론 그렇게 해야 할 때는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 그게 더 적절하고, 더 효율적이고, 자기와 타인들에게 공히 더 좋은 경우들이라면 말이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 ‘다만 자기 느낌, 자기 고집, 자기 집착’인 경우라면 그것을 눈치채야 한다. 안 그러면 결국 본인과 타인들 모두 힘들어진다. 이렇게 살펴보는 이유도 결국은 자신을 위해서이다.
잠깐. 기질론이나 성격이론에서 가장 유념해야 할 부분이 있다. 어떤 기질이나 성격은 절대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즉 이론적으로 파악된 특성이 그 사람에게 절대적으로 적용되는 게 아니라 다만 ‘참고 사항’일 뿐임을 명심해야 한다. 그리고 한 사람은 하나의 기질만 가지는 게 아니다. 한 사람 안에는 다양한 기질적 요소가 들어 있다. 그중에 주되게 드러나는 것, 부수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있을 뿐이며 필요할 때 각각의 기질을 사용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측면을 전제하고 기질론, 성격론을 봐야 한다.
기질은 어떻게 가지게 될까
이런 기질을 가지게 되는 건 대략 두 가지 원인에 의해서다. 하나는 글자 그대로 타고난 기질의 영향이다. 마치 자연선택처럼 우리 인간은 적절하게 몇 가지 기질을 타고 태어난다. 집단적으로 DNA 등에서의 적당한 분포가 있는 걸까. 누가 어떻게 조절하는지는 모르겠지만(이 역시 아마도 집단의식적 기제가 아닐까) 다행히 우리는 모두 같은 기질로 태어나지는 않는다.
성격 및 기질 분류 시스템 중의 하나인 디스크(DIsC)는 주도형, 표현형, 분석형, 안정형 이렇게 넷으로 분류한다. 세상 사람 모두가 주도형으로 태어났다면 아마 인류는 끝까지 서로 싸워 멸망했을 것이다. 안정형은 어떤가? 아마 그 안이함에 모두 굶어 죽었을 것이다. 모두가 분석형이거나 표현형이래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사실 이렇게 서로 다른 기질로 적당히 나뉘어 태어나는 게 인류에게는 축복이다. 나와 다른 성격들을 찬미하라!
또 하나는 성장 과정 중에 형성되는 것이다. 평범한 사람의 뇌도 권력을 가지면 점점 자기만 고집하고 타인들은 고려하지 않게 바뀌어 간다는 심리 연구가 이미 있다. 그 유명했던 ‘땅콩 회항’의 경우도 어릴 때부터 그렇게 자란 이들이 결국 성인이 되어 나타난 하나의 결과다. 꼭 재벌급이 아니래도 각자 자기가 성장하는 환경과 주위 사람들이 끼치는 영향에 의해 원하는 건 다 해야 하고, 하고 싶은 대로 꼭 해야 하는 성격이 형성된다.
전자의 경우든 후자의 경우든 모두 ‘중독’이다. 사실 모든 성격은 중독이다. 에릭 R. 브레이버맨의 『뇌체질 사용설명서』라는 책에서 미국의 한 의사는 인간의 뇌에서 분비되는 신경전달물질 중에 어느 것이 주가 되느냐에 따라 성격과 기질이 나타난다고 밝혔다. 대략 네 경우로 갈라서 도파민은 ‘에너지‘, 아세틸콜린은 ‘창조성‘, 가바는 ‘안정감‘, 세로토닌은 ‘즐거움‘으로 설명한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게 되는 4가지 정도의 기본 성격과도 연결되는 부분이 있어 재미있다.
타고난 것이든 후에 형성된 것이든 자기에게 익숙한 어떤 호르몬, 뇌 신경망, 몸과 정신의 습관과 패턴에 사로잡힌 것이 사실 성격이라 할 수도 있다. 인간은 익숙한 것을 좋아한다. 익숙한 것에 의존한다. 중독도 그런 기제다. 그게 좋고 나쁘고는 부차적이다. 그렇기에 그 많은 소위 ‘나쁜 습관’도 한번 인이 박히면 좀처럼 끊지 못하는 것이다.
기질은 나와 남을 속인다
이 글은 얼핏 보면 ‘주도형’ 성격을 문제시 삼는 듯 보일 것이다.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기질에 좋고 나쁘고는 없다. 그냥 중립적 도구일 뿐이다. 요는 그 주인이 얼마나 잘 사용하느냐에 달렸다. 기질의 주인이 미성숙하고 서투르면 단점으로 드러날 것이고 기질의 주인이 성숙하고 능숙하면 장점으로 드러날 것이다. 그러므로 주도형, 표현형, 분석형, 안정형 등은 모두 좋은 도구이며 핵심은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잘 사용하느냐다.
주도적 기질, 활동적 기질은 많은 곳에 필요하다. 이렇게 해도 좋고 저렇게 해도 좋다는 안정형들은 안정과 평화는 만들지 모르지만 뭔가 해야 할 경우에도 그렇게 있으면 일이 잘 진행되질 않는다. 분석형, 표현형들도 일을 직접 진행하는 데 약한 부분이 있다. 이럴 경우 해야 할 일을 제대로 진행하는 힘은 아주 유용하다. 또한 이런 저런 관점이나 의견에 휘둘리지 않고 해야 할 일을 꿋꿋하게, 묵묵히 수행하는 게 필요한 때도 있다. 그럴 때는 어떤 기질이든 그렇게 해야 한다.
문제는 그럴 필요가 없을 때도 그렇게 하려는 경우다. 이 글의 주제인 ‘무엇이든 자기 원하는 건 해야만 하고, 자기가 원하는 방식대로 해야만 하는’ 사람들은 그게 진리도 사실도 아니라 ‘다만 나의 기질일 뿐’임을 우선 알아채야 한다. 자기는 그렇게 하는 게 상황에 맞고, 가장 좋은 방법이고,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라 느꼈으니 그래야 한다고 믿겠지만 그건 그냥 자기 1차적 느낌일 뿐이다. 그것이 정말 해야 할 일인지, 그렇게 하는 게 맞는지 객관적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 기질대로가 아니라 ‘실제 상황’에 적합하게 말이다. 자신을 위해서.
앞서 스티브 잡스나 엘론 머스큰, 손정의 등을 이야기했다. 이들은 어떻게 된 것인가? 그건 그들이 ‘하고 싶은 대로’ 해서 성공했거나 성공하고 있는 게 아님을 알아야 한다. 그들의 기질에 통찰력과 자기 조절, 상황과 정세 판단 등등의 능력을 더했기에 성공과 연결된 것이지 그들의 기질 때문이 아니다. 즉 ‘그들의 기질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기질에도’인 것이다.
정치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정치는 아무래도 활동성과 연결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주도형들, 하고 싶은 게 많고 자기 원하는 대로 하는 기질들이 전방에 나서게 되기 마련이다. 문제는 그런 기질을 가진 사람이 전부 다 능력이 있고 일을 잘하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불필요한 일을 벌이고 추진하며 문제를 더 만들어 내거나 상황을 악화시키는 게 다반사다.
인품에 있어서도 보장되지 않는다. 이기적인 목적을 우선으로 하는 경우도 많다. 그들은 그냥 활동적이고 주도적일 뿐이지 실제 일을 잘하는 게 아니다. 물론 이들 유형만 정치를 하는 건 아니지만 여하튼 확률적으론 많이 나서게 되어 있다. 유권자들은 또 그런 활동형들에 반응을 한다. 뭔가 할 것 같기 때문이다. 많은 경우 엉망으로 함에도 말이다. 더 이상 속지 않아야 한다.
자기 기질의 주인부터 되어야 한다
자기가 하고 싶은 건 꼭 해야 하고, 그것도 자기가 원하는 방식대로만 해야 한다는 기질이 강한 사람들은 이제 ‘나는 기질의 종이 되지 않고 주인이 되겠다!’고 선언해야 한다. 본인은 자기가 살아온 삶의 노하우와 판단에 의해 ‘이렇게 하는 게 객관적으로 맞다’고 강하게 느끼고 확신하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유의해서 봐야 한다. 과연 그게 맞는지, 아니면 나의 심리적 관성인지.
세상일이란 게 꼭 어느 하나의 방법이나 방식만이 맞거나 틀리거나, 그러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이렇게 해도, 저렇게 해도 적절하게 어느 정도 하면 크게 무리 없이 일이 되어가고 만들어지고 완성되는 것이다. 심지어 때로는 겉보기에 완전히 반대되는 방법들로 같은 혹은 비슷한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물론 정확하고 정밀한 진행이 필요한 일은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 핵심은 일을 되게 하는 것이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 아님을 직시하자.
때로는 일이 되는 것과 별개로 사람이 중요한 경우도 많다. ‘사람’와 ‘관계’인 것이다. 일을 우선한답시고 자기 원하는 대로 했다가 사람이 불필요하게 상처 입고 관계가 틀어지는 경우가 많다. 전체적으로 보면 결국 자기 손해가 되며, 덩달아 타인도 고통받는다.
주도적이고 활동적이고 집중적인 기질은 좋은 도구다. 그러나 항상 좀 더 넓게, 깊게 볼 수 있는 능력을 키워나가야 한다. 현재 수준에서 내가 가진 기질의 영향으로 ‘나는 이걸 할 거야. 그리고 내 방식대로만 해야 해’라고 하는 것이, 차후에 혹은 좀 더 넓고 깊은 시각으로 보면 아닌 경우도 많다. 어느 기질의 경우든 해당되지만 특히 주도형 기질은 더 그렇다.
목표를 잘 잡아야 한다. 목표가 ‘내 느낌과 생각에 내가 하고 싶은 것, 내가 옳다고 여기는 방식대로 꼭 하는 것’이 아니어야 한다. 그건 도구적인 부분이다. 진짜 목표는 ‘일이 제대로 되는 것’이어야 한다. 그리고 더하여 ‘사람을 챙기는 것’이어야 한다. 결국 이 모든 게 잘살자고 하는 것 아닌가? 물론 할 수 있다면 ‘일과 사람을 동시에 챙기는 것’이 가장 최선일 것이다.
나를 억압하거나 내 기질을 부정할 필요 없다. 그런 걸 하라는 글이 아니다. 누구도 그럴 필요 없다. 다만 조금 더 성숙해지고, 조금 더 지혜로워지고, 조금 더 가능성을 열어 주는 것이다. 나를 위해. 더해서 주위를 위해.
원문: 필로 이경희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