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롬비아의 마약왕 이야기
파블로 에스코바르(Pablo Escobar)를 아는가?
그는 콜롬비아 메데인 카르텔의 보스로 전무후무한 마약왕이었다. 그의 비즈니스 무대는 콜롬비아와 미국이었고, 비즈니스 규모는 전 세계 코카인 유통량의 80%에 달했다.
1993년 12월 2일, 미국은 특수부대를 파견하여 에스코바르를 사살했다. 미국은 왜 타국인 콜롬비아까지 특수부대를 파견해서 그를 죽여야 했을까? 이유는 간단했다. 마약이 사회에 끼치는 해악 때문이었다. 당신은 아마 주변에서 알콜 중독자를 목격한 적이 있을 것이다. 알콜 중독자는 쫄쫄 굶더라도 돈이 생기면 밥이 아닌 소주를 사서 마신다. 코카인의 경우엔 이보다 더 심각하다. 코카인 중독자는 코카인을 사기 위해 코카인 유통에 직접 뛰어들거나 한탕을 노리고 강력 범죄를 저지른다. 중독자는 점점 늘어나고 그만큼 정상적인 경제 활동 인구는 줄어든다. 이것이 방치되면 경제와 치안에 있어서 국가적 차원의 위기를 맞을 수 있다.
마약 사업은 지속 가능할 수 없다. 모두 중독자가 되어버린다면 마약 살 돈을 누가 대겠는가? 그러나 에스코바르는 그런 것에 관심 없다. 적어도 그가 사업을 할 동안에 콜롬비아가 마약으로 망할 것 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에스코바르의 관심은 오직 돈이다. 한 사람의 인생이 마약으로 파국을 맞는 것도 그에게는 관심 밖의 일이다. 1989년, 에스코바르의 재산은 250억 달러로 세계 7위에 랭크된다.
마약이 콜롬비아 GDP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게 되자, 정치권은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게 된다. 커피 농사를 접고 코카 재배에 뛰어드는 농민들이 늘어났다. 젊은이들은 정상적인 직업이 아닌 마약 거래에서 꿈을 찾았고 갱단에 가입했다. 코카인은 점차 콜롬비아 사회 전반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이때에도 콜롬비아의 GDP는 성장세였지만 경제 생태계가 마약에 잠식당하기 시작한 이상 콜롬비아의 미래는 불을 보듯 뻔한 것이었다. 1989년 콜롬비아의 제55대 대선 후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마약 카르텔 소탕을 공약으로 내세운다.
에스코바르가 그런 후보들을 가만 둘리 없었다. 그는 공권력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장갑차에 잠수함까지 보유한 메데인 카르텔의 군사력은 이미 국가 수준이었다. 에스코바르는 콜롬비아 국가보안국을 공격하여 60여 명을 죽이고 1000여 명에게 부상을 입혔다. 대선 후보들이 탑승한 아비앙카 203편 항공기에는 폭탄 테러를 가했다. 이 테러로 110명이 사망했다. 사망자 중에는 대선 후보 3명도 포함되어 있었다.
다행히도 유력 후보 중 하나였던 세사르 가비리아(César Gaviria)는 비행기에 탑승하지 않은 덕분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가비리아는 2위 후보와 두 배의 표차를 기록하며 1990년 콜롬비아 55대 대통령으로 당선된다. 이는 마약 척결에 대한 대다수 국민들의 의지가 발현된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스코바르를 제거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의 마약 사업으로 인해 직간접적으로 이익을 보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다.
일부 정치인과 공무원들은 에스코바르 편이었다. 에스코바르가 뇌물을 뿌렸기 때문이다. 가비리아는 미국의 도움으로 에스코바르를 어렵게 검거했지만, 에스코바르는 교도소에서 호화 생활을 누리다가 교도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유유히 탈옥했다. 아니, 탈옥보다는 거처를 옮겼다는 표현이 어울릴 것이다.
메데인의 시민들은 에스코바르 편이었다. 에스코바르가 빈민들에게 돈을 뿌리고 콜롬비아 수도 보고타를 능가할 정도의 사회적 인프라를 구축해 주었기 때문이다. 수도에도 없던 지하철이 놓인 곳이 메데인 시였다. 교도소를 나온 에스코바르는 메데인 시에 자리를 잡았고, 시민들은 그를 로빈 훗으로 칭송하며 보호해주었다. 이러다 보니 콜롬비아는 자체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웠다. 결국 콜롬비아산 마약에 큰 피해를 입었던 미국이 개입해 메데인 시에 특수부대를 침투시켰고 에스코바르를 사살하는데 이른다.
에스코바르 사살 이후에도 마약 카르텔은 기승을 부렸다. 콜롬비아 정부는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직접적인 타격을 가했지만 풍선 효과만 불러일으킬 뿐이었다. 이쪽을 눌렀다 싶으면 저쪽이 튀어나왔다. 농민들도 마찬가지였다. 정부가 코카 농장에 제초제를 살포해봤자 소용이 없었다. 농민들은 자리를 옮겨 다른 곳에 코카를 심었다. 반군 세력인 콜롬비아 무장혁명군 FARC도 문제였다. 그들은 마약을 자금줄로 삼으면서 콜롬비아를 지속적인 내전 상태로 만들었다. 콜롬비아에 닥친 위기는 털실처럼 복잡하게 얽혀있었다. 오래도록 소모적인 전쟁 끝에 콜롬비아는 방법을 바꾼다. 에스코바르가 했던 것처럼 빈민층에게 눈을 돌린 것이다.
2010년 당선된 59대 대통령 후안 산토스(Manuel Santos)는 복지 정책과 고교 무상교육으로 빈민층 척결과 중산층 키우기에 정부 역량을 집중시켰다. 2011년에는 FARC와 평화 협상을 시작했고, 마약 척결에 함께 협력하기로 합의했다. 마약 작물 재배는 의료 목적에 한해서 허가하고 정부가 이를 관리하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그 결과 국제 유가 하락(콜롬비아는 석유 의존도가 높다)에도 불구하고 콜롬비아는 내수가 살아나기 시작했다. 2014년 1분기 GDP는 중남미 1위로 6.4%의 경이로운 수치를 기록하게 된다. 이후로도 다른 중남미 국가들이 1% 안팎에서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동안, 콜롬비아의 GDP는 평균 5% 안팎을 기록했다. 후안 산토스는 2014년 제60대 대통령 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한다. 2016년에는 FARC와 평화 협정을 체결하고 콜롬비아 내전을 종식시켰다. 그 공로로 산토스는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다.
이 일화에서 메데인 시민들의 행동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들은 왜 마약왕을 감쌌던 것일까? 그들은 왜 그토록 이기적이고 근시안적으로 행동했던 것일까?
그들은 왜 그랬을까?
그들을 이해하는 것에는 에이브러햄 매슬로(Abraham Maslow)의 연구가 주효하다. 아래 그림은 매슬로의 5단계 욕구설을 나타낸 것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하위 단계의 욕구가 해결되면 상위 단계의 욕구를 추구하게 된다. 거꾸로 하위 단계의 욕구가 해결되지 못하면 좀처럼 상위 단계의 욕구를 생각하지 못하게 된다. 여기에서 해결은 완전한 충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주관적인 만족도를 말하는 것이며 사람마다 다르게 나타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래의 피라미드는 보편타당한 인간 욕구의 발현 경로를 잘 보여주고 있다.
다시 마약왕 에스코바르가 등장하기 전의 콜롬비아로 돌아가 보자. 당시 콜롬비아산 커피와 니켈은 해외에서 충분한 가치를 인정받았지만 근로의 가치는 그러지를 못했다. 콜롬비아 극빈층은 커피 농장과 니켈 광산에서 저임금을 받고 노예 수준의 노동에 혹사당해야 했다. 그들은 1단계 생리적 욕구조차 제대로 해결할 수 없었다. 물론 그러는 동안 그들을 고용한 기업주는 어마어마한 부를 축적했다. 콜롬비아의 양극화는 심각한 수준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마약왕이 나타났다. 그는 빈민층을 위해 병원, 학교, 축구장, 동물원, 무상 주택을 지어서 제공했다. 또한 노동의 요구 없이 기본소득을 제공했다. 최근 핀란드에서 실험 중인 기본소득 제도의 원조는 에스코바르인 셈이다. 여기에 더해 에스코바르 밑에서 일하게 되면 내전 상태인 콜롬비아에서 신변을 보호받을 수 있었다. 그뿐인가? 마약 사업에 가담했을 때의 수익 배분은 커피 농장에 비하면 상당히 공정했다.
만약 당신이라면 어찌하겠는가? 커피 농장에서 노예 노동에 혹사당하겠는가? 아니면 목숨을 걸고 에스코바르 밑에서 일하겠는가? 콜롬비아 사람 중 약 75만 명이 에스코바르 밑에서 일하는 것을 택했다. 커피 농장에는 희망이 없지만 마약 사업에는 아무리 위험해도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일이 오늘보다는 더 나으리라는 희망 말이다. 그들은 에스코바르 밑에서 최소 3단계까지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었다. 이런 현상은 콜롬비아 정부가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해도 변하지 않았다. 정부차원에서 평화협상으로 내전을 종식시키고, 최저임금을 크게 올리고, 교통비를 지원하는 등의 구체적인 정책이 시행되고 나서야 점차적으로 변화될 수 있었다.
자신의 부귀를 위해 빈민층을 이용했던 교활한 마약왕. 이런 부류는 딱히 콜롬비아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에도 비슷한 부류들이 존재한다. 지금부터 할 이야기는 콜롬비아의 사례와 매우 비슷하지만 빈민층의 욕구에 대한 것은 아니다. 이번 이야기는 소비자의 욕구에 대한 것이다.
“아무래도 이건 아니다.”
먹여주고 재워주기만 해도 고마웠던 시절이 있었다. 나의 아버지가 그랬다. 아버지는 충북 보은군 회인읍에 살던 촌사람이었다. 부푼 꿈을 안고 서울에 갓 상경한 아버지는 단지 먹여주고 재워주는 조건으로 식당에서 일을 했었다. 그때는 그런 것들이 흔한 시절이었다.
그로부터 많은 세월이 흘렀다. 서울은 많이 변했다. 대한민국도 많이 변했다. 하지만 아직도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 먹여주고 재워주면 충분하다고 여기는 악덕 업주들이다.
우리는 대공황의 역사로부터 자본주의의 한계를 배웠다. 구매력이 유지되지 못하면 자본주의 시스템은 무너진다. 구매력은 근로의 가치가 공정하게 인정될 때 유지될 수 있다. 대한민국의 산업이 농업과 경공업 기반이었던 시절, 사람들은 덜 입고 덜 먹고 덜 자면서 열심히 일했다. 나라를 살리겠다고 국산품을 애용했다. 기업이 어려울 때는 금을 모아서 구제했다. 그 덕분에 대한민국은 위기를 극복하고 세계 주요 사업을 주도하는 선도국가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나라가 OECD에 가입하는 날에도 근로의 가치는 여전히 비하되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야근과 주말근무로 이어지는 노동 착취과 저임금 기조가 꾸준히 유지되고 있다.
노동 착취와 저임금 기조는 지속 가능할 수 없다. 제품을 살 돈도 시간도 없다면 누가 소비를 하겠는가? 소비가 위축되고 경기침체가 오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악덕 업주는 그런 것에 관심 없다. 적어도 그가 사업을 할 동안에 한국이 노동 착취와 저임금으로 망할 것 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악덕 업주의 관심은 오직 돈이다. 누군가 분신을 하고 본사 옥상에서 뛰어내려도 상관없다. 한 사람의 인생이 파국을 맞는 것은 그에게는 관심 밖의 일이다. 그러는 동안 그들은 부를 세습해왔다. 2015년 포브스는 전 세계 10억 달러 이상의 자산가 중에서 세습의 비율을 조사했다. 한국은 75%였다. 이는 세계 순위 4위로 전 세계 평균의 두 배를 뛰어넘는 수치였다.
한동안 한국의 대다수 소비자들은 이런 행태를 방관해왔다. 부의 분배가 공정하게 이루어지지 못하고 특정인들에게 부도덕한 방법으로 집중되고 세습되는 것에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았다. 내가 구매하는 제품이 어느 회사에서 나온 것인지, 또 그 회사가 사회적으로 어떤 물의를 일으키는지도 큰 관심이 없었다. 일부는 오히려 세습 부자들을 동경하고 그들과 같아지고 싶은 마음에 명품으로 치장하는 것에 관심을 가졌다.
그러다 변화의 시기가 왔다. 시작은 아마도 2009년 어느 전직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죽음이었을 것이다. 수많은 국민들이 진심으로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그리고 그가 살아있을 때 그의 가치를 몰라봤던 스스로를 원망했다. 많은 이들이 분노하고 울분을 삼키며 가슴속에 하나의 생각을 품었다.
아무래도 이건 아니다
하루 종일 일에 몰려서 만성 피로에 찌든 대다수 한국인들은 그동안 3단계 욕구를 채우기에 급급했다. 중장년층은 언제 잘릴지 몰랐고 청년 실업률은 날이 갈수록 높아만 갔다. 삶에 치이느라 정신없던 한국 사람들에게 갑작스러운 전직 대통령의 죽음은 충격이었다. 그제야 한국인들은 새로운 가치에 눈을 돌린다.
그것은 정의였다.
굿슈머(Goodsumer)의 시대가 온다
2010년 마이클 샌델이 쓴 책 『정의란 무엇인가』가 한국에 출간되며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한다. 이는 한국인들이 정의를 애타게 갈구하고 있음이 증명된 사건이었다. 미국인 교수가 던진 정의에 대한 질문은 한국 사회를 크게 흔들었다. 많은 한국인들은 비로소 5단계 욕구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2013년 남양유업 사태가 터진다. 대기업이 대리점을 상대로 강매를 한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사람들의 분노는 폭발적이었다.
이전에도 비슷한 사례들은 있어왔다. 하지만 정의에 눈을 뜬 사람들은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다고 스스로에게 외치고 있었다. 불매운동이 일어났고, 남양유업의 주가는 폭락했다. 남양 측은 자사의 제품에서 상표를 감추는 꼼수까지 써야 했다. 그래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2017년 1월까지도 남양유업의 주가는 2013년에 폭락했던 수치 이하를 기록하고 있다.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가 벌어졌다. 그리고 그 연장선상에서 2016년 10월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가 터졌다. 이 말도 안 되는 권력형 비리에 여러 대기업들이 연루를 의심받았다. 삼성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으로 7천9백억의 이익을 챙겼다는 의심을 받았다. 현대자동차는 특정 광고회사에 일감을 몰아주었다는 의심을 받았다. 한화와 롯데와 SK는 면세점 특허 관련 특혜 의심을 받았다. 한화와 CJ와 SK는 오너의 대가성 사면 의심을 받았다.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얼마나 더 많은 비리가 숨겨져 있는지 아직은 알 수 없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비리가 명백히 밝혀져 언론의 타깃이 된다면 그 기업은 분명 남양유업처럼 경영 위기에 봉착하리라는 것이다. 백만 촛불의 분노는 고스란히 부도덕한 기업을 향할 것이다. 그 분노는 그 어느 때보다도 거대하고 뜨겁게 불매운동의 불길을 지필 것이다.
한편, 이 천인공노할 비리 사건에서 자유로운 LG는 의식 있는 소비자들 사이에서 구매 운동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이제까지 없던 유형의 소비자가 한국에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은 악덕 기업의 제품을 불매하고 의로운 기업의 제품을 구매하는 소비자다. 그들은 매슬로의 다섯 번째 단계의 욕구를 그대로 시장의 니즈로 표출하는 소비자다. 순실을 밟고 새로운 영향력을 과시할 소비자, 정의로운 소비자, 굿슈머(Goodsumer)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이러한 소비 경향은 한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일찍이 필립 코틀러(Philip Kotler)는 그의 저서 ‘마켓 3.0’을 통하여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소비자가 장차 늘어날 것을 예언한 바 있다.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소비자는 예를 들자면 신발을 살 때 기왕이면 아프리카에 한 켤레가 기부되는 신발을 사는 사람이다. 화장품을 살 때 기왕이면 멸종위기 동물을 보호하는 화장품을 사는 사람이다.
이제까지 누구도 이런 유형의 소비자를 한 단어로 정의한 적이 없었다. 나는 이 글을 통해 이들을 굿슈머로 정의하고자 한다. 굿슈머는 앨빈 토플러(Alvin Toffler)가 예언하여 현실이 된 프로슈머(Prosumer)개념을 뒤이을 새로운 소비자 유형이다.
2차 산업혁명의 시기에만 하더라도 제품을 품질로 차별화하려는 경향이 많았다. 이때의 주요 소비자 유형은 합리적인 소비를 지향하는 컨슈머다. 주로 가격이나 품질을 객관적으로 따져서 구매하는 것이 영리한 소비로 여겨졌다. 이는 매슬로의 욕구단계로 봤을 때 1, 2, 3단계의 니즈를 충족시키는 소비다.
시간이 좀 더 흘러 산업이 발달하고 품질에 있어서 차별화가 어려워지자 시장에서는 고객 만족이 차별화 요소로 부각된다. 이때의 주요 소비자 유형은 제품에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반영하려는 프로슈머다. 이후로 크리슈머 무슨 슈머 등등 갖가지 슈머 용어가 난립하는데 자세히 알아보면 모두 프로슈머 개념에 포함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때부터 기업들은 제품에서 서비스에 이르기까지 고객의 취향을 반영하기 위해 애쓴다. 프로슈머는 주로 디자인이나 서비스 면에서 자신의 의사를 반영시키거나 취향에 따라 구매하는 것을 영리한 소비로 여긴다. 이는 매슬로의 욕구단계로 봤을 때 4단계의 니즈를 충족시키는 소비다.
지금은 품질로도 고객 만족으로도 차별화하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소비자들이 자신의 취향 이상의 것을 바라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자아실현이다. 사람들은 소비에 이르기까지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가치를 실현시키고자 한다. 따라서 기업은 올바른 가치를 추구하는 것으로 자신을 차별화해야 한다. 이는 매슬로의 욕구단계로 봤을 때 5단계의 니즈를 충족시키는 소비다. 기업은 이제 굿슈머를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한다. 이 개념을 무시한다면 소비자들은 당신의 기업을 마약 카르텔과 동급으로 취급할 것이다.
자, 이제 당신이 새로운 소비자의 시대가 올 것을 절감하고 굿슈머를 맞이할 준비를 한다고 치자. 당신에게는 구체적인 마케팅 전략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럴 것을 대비해 강력한 힌트를 주고자 한다.
힌트는 당신이 적어도 하루에 한 번 이상은 목격하게 되는 상징에 있다. 사람들은 그 상징을 가방에 매달기도 하고, 뱃지로 옷에 착용하기도 한다. 소셜 서비스 계정의 프로필 사진을 그 상징으로 대신하는 경우도 있다. 그 상징은 노란색이다. 이제 좀 감이 오는가?
당신은 사람들이 노란 리본을 다는 이유에 주목해야 한다. 사람들이 노란 리본을 다는 이유는 명백하다. 잊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 어린 목숨을 앗아간 불의를 절대로 망각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정의를 추구하겠다는 것이다. 의로운 한 시민으로서 그 죄악을 저지른 악마들을 결코 좌시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불의를 못 참는 사람들은 노란 리본을 다는 것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적극적으로 표출하고 있다. 이것은 일시적이지 않고, 장기간 지속되는 정체성이다.
지금까지의 포지셔닝 전략은 시장에서 제품이 가지는 정체성의 위치를 확보하는 것이었다. 당신은 새로운 포지셔닝의 개념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이제는 고객이 인식하는 제품의 정체성보다, 고객이 우리 제품을 사용했을 때 주변 사회가 인식하는 고객의 정체성을 고민해야 한다. 시장의 포지션보다, 사회의 포지션을 고민해야 한다는 말이다. 한마디로 소셜 포지션(Social Position)이다.
소셜 포지션은 제품의 기획 단계에서부터 검토되어야 한다. 당신의 기업이 만일 겨울 점퍼를 만드는 업체라면 어떤 소재를 사용할 것인가? 거위털을 사용할 것인가? 그럴 경우 당신의 브랜드를 입은 고객은 사회에서 어떤 포지션을 갖게 될 것인가? 동물 학대에 무관심한 무식한 사람으로 비치지는 않을 것인가? 거위를 학대하지 않고도 털을 얻는 새로운 방식을 개발하면 어떨까? 아니면 거위털과 비슷한 효과를 내는 신소재를 개발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그런 점퍼를 입은 고객은 사회에서 어떤 포지션을 갖게 될 것인가?
당신이 동물과 환경을 생각하는 가치를 차별화 요소로 삼고자 한다면 그 가치를 소비자에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 동물 보호 캠페인을 진행할 것인가? 그런다고 했을 때 효과적인 심벌과 캐릭터와 메시지는 어떤 것이 될 수 있을까? 당신이 고안한 심벌과 캐릭터와 메시지는 당신이 전하고자 하는 가치를 충분히 내포하고 있는가? 고객이 주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을 정도로 충분히 매력적인가?
세계적인 의류 브랜드 파타고니아(Patagonia)는 살아있는 거위의 털을 쓰지 않는다. 오직 정상적으로 죽은 오리와 거위에게서만 털을 채취 해 점퍼를 만든다. 파타고니아는 2011년에 그들의 점퍼를 사지 말라는 캠페인을 전개했다. 파타고니아 점퍼를 만들기 위해서는 135리터의 물이 필요하고, 이는 45명의 사람이 하루를 버티는데 충분한 양이라는 메시지였다. 자사의 점퍼를 사지 말라는 캠페인이 진행된 그해에 파타고니아의 매출은 40% 상승했다.
지금까지 콜롬비아 마약왕의 사례를 통해 매슬로의 욕구 단계설을 이해하고, 한국에 나타난 새로운 유형의 소비자인 굿슈머에 대해 살펴보았다. 당신이 굿슈머와 소셜 포지션 개념을 기억한다면 시장에서 독특하고 매력 있는 차별화 요소를 구축하는 것에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비즈니스 최전선에서 열심히 싸우고 있는 당신에게 당부의 말을 남기며 이 글을 마치고자 한다. 마약왕이 되지 말라. 사업의 전 영역에서 악을 짓밟고 올라서라. 사람들은 당신의 팬이 될 것이고 구매 운동을 전개할 것이다. 이것이 지상 최고의 마케팅이다.
원문 : 여현준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