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 주: JTBC의 정유라 체포 보도 과정과 관련해, 일각에서 이것이 언론의 중요한 원칙을 저버린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었습니다. ㅍㅍㅅㅅ는 어제(1월 3일) 위 문제를 제기한 박상현 메디아티 이사의 글을 실었었고, 이에 대해 다양한 첨언과 반박의 글들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모쪼록 발전적인 논쟁의 장이 열리길 바랍니다.
JTBC에서 정유라를 신고하고 보도한 것에 대해 시비가 일고 있다. 그 중 메디아티의 박상현 이사는 JTBC가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고 매우 심각하게 지적하고 있다.
박상현 이사는 그의 글에서 “기자는 사건을 보도만 할 뿐 개입하지 않는다” 는 원칙을 제시하고 있는데, 이는 따지고 보면 애초에 존재할 수 없는 원칙이다. 이 원칙을 지키려면 기자는 취재원이 제공하는 보도자료를 가공해서 보도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다큐멘터리의 예를 든 것을 보면, 개입이라는 행위가 취재 대상의 실체와 현상을 변화시키므로 취재와 보도 행위는 “변화되지 않는 원래의 상태와 현상”을 유지하기 위해 “관찰”만 해야 하며, 일단 본질을 변화시키면 보도 가치가 사라진다는 취지로 보인다. 일단 자연 야생물의 경우는 그렇다.
취재 행위 자체가 ‘개입’이다
그러나 사람이 관련된 보도는 취재 행위 자체가 ‘개입’이며, 그것은 필연적으로 취재원의 ‘변화’를 유발한다. 개입하지 않고 어떻게 취재를 하나?
JTBC 보도를 놓고 보자. 정유라 가족은 취재진이 밖에 와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블라인드를 내리고 이불로 창을 막았다. 이 자체가 개입이다. 인터뷰를 하겠다고 문을 두드리는 것은 어떤가? 그때부터 이미 정유라 가족은 이전의 자연적인 관찰 대상에서 벗어난다.
자연 다큐멘터리식의 원형 그대로의 관찰은, 사람이 개입된 그 어떤 취재에도 불가능하다. 마이크를 들이대고 카메라를 들이대고, “뭐 좀 여쭤봐도 될까요?”라고 질문하는 순간 관찰 대상의 원형은 변화된다. 취재원은 위축되기도 하며, 더 의연한 자세를 취하기도 하고, 때로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기도 하고, 철저하게 위장을 하기도 한다. 취재 행위는 어떤 식으로든 취재원의 변화를 가져오며, 그 변화된 사실 자체가 취재 대상이 된다. 변화되지 않은, 혹은 상황에 맞추어 변질시키지 않은 원형질로서의 취재원을 취재하는 노력은 별도의 차원이다.
입증을 위해 제시한 CNN의 정치부 에디터 레이첼 스몰킨의 일화는 그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 이상의 의미는 가지지 못한다. 최소한 나는 그가 생각하고 있다는 보도의 원칙에 전혀 공감하지 못한다.
소말리아에서 구호활동을 취재하던 기자에게 구호 요원이 물을 나눠주는 것을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빨리 나눠주지 못하면 폭동이 날 것 같다는 거다. 기자는 그 부탁을 들어줘야 하는가?
부탁을 들어줄 수도 있고, 매정하게 취재만 할 수도 있다. 그에 대한 평가와 비난은 별도의 문제다. 취재하다가 취재원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보도를 위해서는 절대로 도와주지 말아야 하며, 일단 도와줬다면 그때부터는 보도를 포기해야 한다는 원칙은 존재하지도 않을뿐더러, 존재할 수도 없는 원칙이다. 당연하게 이는 개인의 선택의 문제다.
기자는 언론인으로서의 정체성뿐만 아니라, 자연인, 직업인, 시민 등 인간이 가지는 모든 정체성을 함께 가진다. 다만 때로 상황에 따라서 언론인으로서의 정체성과 다른 정체성이 부딪치기도 하며, 택일해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는 것뿐이다.
이 경우는 거기에 해당되지 않는다. 범죄 정보를 입수하고 이것을 신고할지 말지는 전적으로 개인의 판단이다. 이때 신고해야 한다는 시민의 입장과 취재해야 한다는 기자의 입장이 상충하는 것도 아니다.
사람의 취재에 있어서 기자가 인위적으로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는 원칙이 있기는 하다. 이것은 기자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인위적으로 본질과 현상을 변화시키는 경우다. 이름하여 연출과 왜곡이다. 그러나 이 건은 그것에도 해당하지 않는다.
국민의 ‘알 권리’, 사건의 ‘진실’이 최우선
보도윤리를 따지는 데 있어서 적용해야 할 단 두 가지 원칙이 있다. ‘진실’과 ‘알 권리’이다. 취재에서 지켜져야 할 진실은 결코 그녀가 취재진의 존재를 깨닫지 못한 채 지속하는 이전의 일상이 아니다. 그녀는 체포되어 수사받아야 할 피의자라는 것이 이 취재 행위에서 지켜야 할 유일한 진실이다. 정유라를 신고한 행위는 그와 관련된 어떠한 진실도 변화시키거나 왜곡시키지 않는다.
‘알 권리’의 차원에서 보더라도, “신고를 했다면 그 이후는 보도하지 말았어야 한다”는 주장도 이해하기 어렵다. 누가 신고를 했건 국민들은 그녀가 체포되는 현장에 대한 ‘알 권리’가 있다. 현장에 기자가 있는데 그가 신고인이라는 사실이 충분히 충족시킬 수 있는 국민의 알 권리를 포기하게 할 이유가 되지는 못한다. 더 나아가 JTBC가 그러했듯이 신고하기까지의 과정, 경위, 신고 이후의 조치, 이 모든 것들이 당연한 취재대상이다.
더 황당한 것은 시청률 상승으로 이해의 충돌이 발생한다는 대목이다. 직업인으로서의 방송 기자는 어떤 취재건 그로 인한 시청률 상승을 기대하고 의도하고 예상한다. 시청률 상승이라는 것은 취재 보도 행위에 따르는 당연한 결과다. 시청률 상승이라는 이해의 충돌이 관공서에 신고하는 행위에서만 발생하고 다른 경우에는 발생하지 않는가? 혹은 다른 경우에는 무관하지만 오로지 관공서에 신고하는 행위에서만 문제가 생기는가?
JTBC는 최순실의 태블릿 PC를 입수하여 보도하기 전에 검찰에 넘겼다. 신고한 것이다. 그러면 JTBC는 신고 이전에 취재한 것만 보도하고, 태블릿 PC와 관련된 검찰발 기사는 보도하지 말아야 하나?
무슨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
출처 : 고일석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