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흔히 아티스트들은 까다로워서/쉽게 기분이 상해서 함께 일하기/대화하기 힘들다고 말한다. 이건 오해다. 그 사람들이 까다로운 사람들이 아니라, 아티스트가 아닌 사람들이 그들과 대화하는 법을 모르는 거다.
그런 걸 따로 알아야 하다니 그게 까다로운 거 아니냐고 묻는다면, 그 말도 맞다. 하지만 내가 말하려는 건 그런 게 아니다. 그들은 그저 제멋대로 변덕을 부리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 그들만의 분명한 사고방식과 대화방식이 있다는 것이 그것이다.
2.
대학원 전공이 전공이다 보니 아티스트들과 가깝게 어울릴 일이 종종 있었고, 그러다 보니 그들의 사고방식을 들여다볼 기회가 있었다. 따라서 이건 내 개인적인 의견이지 공들여 일반화를 할 생각은 없다. 그렇지 않은 아티스트를 많이 알고 있다면 반박할 생각은 없다는 말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아티스트는 대개 비주얼 아티스트를 의미한다. 음악 하는 사람들 중에도 현대음악이나 록 뮤지션이라면 비슷하기도 한데, 적어도 클래식 음악인들은 좀 다른 부류다. (그들도 민감하기는 한데, 새로운 아이디어가 그들의 목표는 아니다).
3.
결론부터 말하면 아티스트는 bullshit을 싫어하는 사람들이고, 대화에 bullshit이 끼어드는 걸 싫어하고 참지 못한다.
(여기에서 잠깐. ‘Bullshit’이라는 단어를 예를 들어 설명하면, 가령 교장선생님의 훈화나 지자체장의 인사말, 물건 파는 사람들의 흔한 수법, 보험판매원의 설명, 일 밀린 번역가의 핑계 등 입을 여는 순간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한 번에 짐작할 수 있는 모든 말들이다)
4.
물론 Bullshit 듣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은 없다. 하지만 아티스트들은 bullshit-o-meter가 남들보다 훨씬 예민하게 발달한 사람들이다. 따라서 남들은 웃으며 넘어갈 수 있는 평범한 범위의 bullshit이 그들에게는 방에 시너를 뿌리고 성냥을 긋고 싶을 만큼 참을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왜 그럴까?
여러 가지 이유를 들 수 있지만, 그게 그들의 직업병이자 존재 이유, 혹은 조건이 된 사람들이다. 현대미술의 교육과정에 들어간 다다이즘 이후의 작품들에 사회에 만연한 bullshit에 대한 코멘터리가 많은 것도 하나의 이유다.
5.
하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따로 있다. 어느 미술사가의 말을 빌려보자면, 현대미술의 제작방식은 시를 쓰는 것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온갖 불필요한 요소들, 뻔하고 대중적인 사상과 이미지를 걷어내고 오로지 핵심이 되는 요소만, 그것도 가장 새롭고 뛰어난 방법으로 전달하지 않으면 잘한다는 소리를 듣지 못한다.
그렇게 가르치는 선생님들 밑에서 뛰어난 동료 학생들과 경쟁하면서 미술학교를 졸업하면 일반인들의 대화는 느리고, 진부하고, 거짓으로 가득 찬 번지르르한 대화처럼 느껴진다.
6.
하지만 사회는 그렇게 순수한 아이디어만을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지 않다. 그 안에서 살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bullshit을 참아주고 살아야 한다는 걸 우리는 안다. 거기에 밥줄이 달려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불행하게도 사람은 점점 변한다. 그래서 처음에는 억지로 하던 bullshit을 시간이 지나면서 슬슬 즐기기 시작한다. 자발적으로도 하기 시작한다. 그러다 어느덧 bullshit이 차고 넘치는 사회가 된다.
7.
그런데 bullshit을 하지 않아도 될 뿐 아니라, 해서는 성공할 수 없는 사람들이 아티스트들이다. 그런 그들도 때로는 상대방의 bullshit을 참아줘야 한다는 건 안다. 그런데 그게 쉽지 않아서 남들이 보기에는 똥 씹은 표정을 하고 있는 거다.
물론 비주얼 아트를 한다고 해도 다 같지는 않다. 디자인 쪽은 아무래도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들과 만나야 하니 표정관리를 하는 법을 좀 더 많이 배운다. 하지만 순수미술에 가까울수록 인내심이 떨어진다. 같은 디자이너라도 잘한다고 소문이 난 사람들 중에 ‘까다로운’ 사람들이 많은 건, 클라이언트가 줄을 서 있다면 굳이 bullshit에 대한 불편함을 숨길 필요가 없기 때문일 뿐이다. 결국 그들은 모두 남들보다 민감한 bullshit-o-meter를 가지고 있다.
8.
아티스트들과 이야기하다가 저지를 수 있는 최악의 실수는 나는 너를 이해한다는 투의 말을 하는 것이다. 그건 그들이 당신에게 하는 말이고, 당신이 그들에게 할 말이 아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그 말을 듣고 싶으면, you have to earn it. 그들의 귀를 쫑긋하게 해줄 재주가 없으면 입 다물고 있는 게 좋다.
이걸 읽고 “나는 그런 거 없는 줄 알어?”라고 말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고한다.
No, you don’t.
원문 : Sanghyun Park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