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젊은이들에게 조국을 자랑스럽게 느끼게 만들까? 조국은 자랑스럽다는 내용으로 가득 찬 교과서일까?
역사적으로 그런 사례는 거의 없다. 어릴때는 통할지 몰라도 그렇게 만들어진 자부심은 대가리에 피가 마르는 순간 배신감으로 바뀐다. 더구나 요즘은 외신이 차단되고 외국여행도 금지되었던 유신 시대가 아니다. 이미 국제사회 기준을 알고 있고, 국제사회에서 우리나라를 어떻게 보는지 알고 있다. 그 반응과 정보를 통해 젊은이들은 자랑스럽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한 것이다.
2002년에 거리를 붉게 물들이고 젊은이들이 “대~한민국”을 외칠 때, 그들은 정말 대한민국에 대한 자부심에 가득 차 있었다. 그 자부심은 2006년 월드컵 때도 계속 이어졌다. 그 자부심은 교과서에서 배운 것이 아니라, 국제사회에서 우리나라가 누리는 평판을 인터넷 등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기에 만들어진 것이다. 예컨대 IMF를 가장 빨리 졸업한 경제 모범생, 전 세계에서 가장 모범적인 사례로 꼽히는 민주화 같은 것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군사독재를 시민들의 힘으로 몰아낸 뒤 그렇게나 안정적인 민주정부를 안착시킨 사례는 세계적으로 드물다. 타이완의 예를 들 수도 있지만, 타이완은 시민혁명이 일어나기 전에 국민당에서 먼저 개혁을 해버린 케이스다.
그래서 1987년 6월 민주항쟁은 전 세계에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 하지만 이른바 자스민 혁명의 꼬여버린 말로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우리나라처럼 시민혁명에서 민주정부 수립으로 이어지는 것이 희생번트 뒤 적시안타처럼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많은 개발도상국들은 우리나라를 실제로 존경했다. 미안마 민주화 운동 때 많은 미안마 망명정치인들이 한국 정부의 지지 발언을 기대했는데, 그때 그들이 사용한 용어는 ‘아시아 민주정치의 등불 한국’이었다.
2008년 촛불은 바로 그 자부심의 한 장면이었다. 대규모 시위를 무슨 축제나 놀이처럼 즐겼던 이유는 경찰과 법이 억압의 도구가 아니라 시민의 벗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 내내 그 믿음은 무너졌다. 그리고 느닷없이 나타난 노인우익테러집단은 우리나라가 사실은 민주화되지 않았음을 만천하에 공개했다. 이제 우리나라는 UN에서 공식적으로 언론 자유가 위험한 나라로 분류한 나라로 전락했으며, 국제사면위원회, UN인권이사회의 지적을 받는 나라로 전락하고 말았다.
게다가 경제마저 지지부진하게 되었다. 당연한 결과다. ICT경제는 젊은이들의 발랄하고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분출해야 성장한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이래 우리나라는 말 잘못 하면 망한다는 풍토를 만연하게 만들었다. 자기 생각을 감히 꺼내지 못하는 억압적인 사회 분위기에서 창조성은 발휘되지 않는다. 디자인 강국 이탈리아가 베를루스코니 억압통치 덕분에 얼마나 망가졌는지 보라. 기가 죽어버린 국민은 더 이상 에너지를 발휘하지 못한다. 2008년의 촛불 진압은 젊은이들의 기를 죽여버렸고, 자부심을 잃게 만들었다. 그리고 경제마저 어려워졌다. 자부심의 두 축이 다 무너졌다.
이게 교과서 때문인가? 교과서에서 부정적으로 묘사된, 그것도 구체적이 아니라 한참 봐서 기운으로 느껴야 되는 그런 것들 때문인가? 차라리 지금 국회에서 집권당이 역사교사, 역사학자를 향해(이제 조만간에 모든 교사, 모든 학자에게로 확대시킬 모양이다) 쏟아내는 수준 이하의 냉전적 발언들이 더 부끄러운 일이다.
국가에 대한 자부심은 교과서가 아니라 국가 그 자체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국가가 제 노릇을 하면 자랑스럽고 못 하면 쪽팔리는 것이다. 젊은이가 국가를 부끄러워한다면 가장 먼저 부끄러워야 할 사람들이 도리어 교과서 탓을 하고 있는 그 모습이 부끄러운 것이다.
뼛속 깊이 후진국 근성에 쩔어서 “우리나라 하는 일이 다 그렇지 뭐.”를 입에 달고 다니는 5~60대가 오히려 ‘대한민국=좋은나라’ 교과서로 공부한 세대임을 생각해 보라. 국가가 부끄러운 짓을 하면 교과서와 무관하게 부끄럽다.
원문 : 권재원-부정변증법의 교육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