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박근혜 게이트 정국에서 가장 인상 깊은 어록을 몇 개 꼽는다면, 저는 그중 단연코 이 어록을 꼽습니다.
대통령도 여성으로서 사생활이 있다는 걸 고려해 달라.
박근혜 대통령의 변호인인 유영하 변호사의 이 말은 국민들을 잠시동안 당황하게 만들었습니다. 우리나라 대통령이 여성이었다는 사실을 불현듯 깨달으며 잘못 들어간 여자 화장실에서 뛰쳐나오듯 우리는 잠시동안 알 수 없는 죄책감을 가져야 했죠. 그리고 잠시 후 제정신을 차린 우리는 다시 분노했습니다.
그래서 뭐?! 어쩌라구?
대통령의 사생활. 국가의 최고 권력자의 사적인 영역을 어디까지 존중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쉽게 답을 내릴 수 없습니다. 대통령이 국가를 대표하는 최고의 통치권자임을 생각하면, 일반 국민만큼의 사생활을 누릴 수 없음을 마땅히 받아들여야 한다 싶지만 한편으로 인간으로서 존중받아야 할 사생활을 공인이라는 이유로 함부로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도 듭니다.
프랑스의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이 동거녀를 뒤로하고 여배우와 또 다른 연애를 시작했다는 소식에 프랑스 국민의 77%는 ‘대통령의 사생활’이라며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합니다. 나라마다 문화마다 국가의 통수권자의 사생활을 바라보는 시각이 다르다는 걸 생각하면서도, ‘대한민국은 대통령의 사생활에 너무 엄격한가?’라는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7시간 동안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병원에서 가명으로 길라임을 썼는지 수지를 썼는지, 집무실에 침대가 3개인지 4개인지, 전 국민이 디스패치마냥 그녀의 사생활을 파고들고 있으니, 그녀가 억울할 만 하다 싶기도 합니다.
대통령의 사생활이 문제가 되었던 사례는 역사상 많이 있지만, 미국의 빌 클린턴 대통령만큼 그의 사생활이 문제가 되었던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심지어 사생활로 인해 탄핵심의를 당하는 지경까지 갔던 데다 그의 적나라한 사생활이 인터넷상에 낱낱이 공개되는 수모까지 겪었으니, 전 세계에서 사생활에 대해 가장 할 말이 많은 사람이 아닐까 싶습니다.
벌써 20년 전 일이라 많은 분들의 기억 속에서 흐릿해졌지만, 1998년 당시 클린턴 대통령의 비밀스러운 사생활은 미국인들뿐 아니라 전 세계인들을 충격에 빠트렸습니다. 백악관의 주인이자 42대 미합중국의 대통령 빌 클린턴이 백악관 인턴사원인 모니카 르윈스키(Monica Lewinsky)와 백악관 집무실에서 수차례 성관계를 가졌다는 대통령의 비밀스러운 사생활. 미국국민들은 이러한 대통령의 사생활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떤 결정을 내렸을까요?
클린턴 대통령의 사례를 되돌아보면서 우리는 박근혜 대통령의 사생활을 어디까지 존중해주어야 할지 생각해 보는 기회를 가졌으면 합니다.
대학 졸업 후 백악관 인턴으로 취업한 모니카 르윈스키는 자신의 동료인 린다 트립(Linda Tripp)에게 충격적인 사실을 털어놓습니다. 자신이 클린턴 대통령과 연인관계이며 백악관에서 여러 차례 그와 성관계를 가졌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미국의 예산안 합의가 실패해서 정부기관이 일시 폐쇄되었던 1995년 11월 15일, 백악관 또한 대부분의 직원들이 출근하지 못하고 대통령과 일부 직원만이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백악관이 한적했던 그날 밤, 혼자 남아있던 클린턴 대통령에게 르윈스키는 대통령의 집무실을 보고 싶다고 했고, 평소 르윈스키에게 호감이 있던 클린턴 대통령은 그녀를 집무실로 안내합니다. 집무실로 향하는 복도에서 클린턴은 르윈스키에게 키스를 했고, 그날을 시작으로 클린턴 대통령과 르윈스키와의 비밀스러운 사생활은 시작되었습니다.
르윈스키의 충격적인 고백을 접한 린다는 르윈스키에게 클린턴과의 관계를 증명할 수 있는 증거들을 버리지 말라고 조언합니다. 클린턴이 르윈스키에게 준 선물들을 잘 챙겨놓고 특히, 클린턴의 정액이 묻어있는 르윈스키의 파란 드레스를 세탁하지 말고 갖고 있으라고 조언합니다. 린다의 예상대로 이 파란 드레스는 이후에 클린턴과 르윈스키의 관계를 입증하는 결정적인 증거가 됩니다.
한편 린다는 르윈스키를 진심으로 걱정해주는 듯하면서도 은밀히 자신만의 증거를 만듭니다. 자신과 르윈스키의 전화통화를 몰래 녹음해서, 르윈스키가 클린턴과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 내용을 증거로 남겨 놓습니다.
한편, 당시 클린턴 대통령은 대통령 당선 이전 알칸사주 주지사로 재직 당시에 있었던 성희롱 사건으로 골치를 썩고 있었습니다. 당시 주 정부 직원이었던 폴라 존스(Paula Jones)는 클린턴 당시 주지사가 자신을 호텔에서 성추행했다며 소송을 제기하였습니다. 클린턴은 이 소송이 대통령 재임 기간 동안 중단되도록 법원에 호소했지만, 대법원에서는 대통령 재임 기간이더라도 재판이 계속되도록 판결을 내렸습니다. 결국 클린턴은 백악관에서 법원으로 불려 다녀야 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폴라가 제기한 성추행 소송. 이 소송은 이후 클린턴과 르윈스키의 관계가 세상에 드러나게 된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클린턴의 성추행을 입증하려던 폴라의 변호사는 클린턴의 여성편력을 법정에서 드러내서 재판에서 승리하려는 전략을 수립했습니다. 그리고는 클린턴과의 관계가 의심이 가는 주변 여성들을 증인으로 법정으로 소환해서 클린턴과의 관계를 캐묻게 됩니다. 그때 소환된 여성 중 한 명이 바로 르윈스키입니다. 르윈스키는 이미 백악관에서 클린턴과 함께 있는 모습이 자주 노출되어 두 사람의 관계가 입에 오르내리고 있었습니다.
법원에 증인으로 소환당한 르윈스키. 그녀는 클린턴과 성적인 관계를 맺은 적이 있냐는 질문에 거짓말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함께 소환된 그녀의 동료 린다에게도 자신이 한 이야기를 잊고 거짓말을 해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하지만 르윈스키의 비밀을 알고 있는 린다는 법정에서 거짓말을 하게 되면 위증죄 처벌을 받게 될까 봐 르윈스키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몰래 녹음한 르윈스키의 전화통화 내용을 특별검사 케네스 스타(Kenneth Starr)에게 전달합니다. 이렇게 르윈스키가 가장 가까운 동료에게 털어놓은 비밀은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1998년 1월 17일, Drudge Report의 보도를 시작으로 Washington Post 등 미국 메이저 언론들이 클린턴과 르윈스키의 관계에 대해 보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케네스 특별검사는 전달받은 녹음테이프를 무기로 클린턴을 압박하기 시작했습니다. 클린턴의 부동산 투자 및 횡령 등에 대해 수사하고 있었던 케네스 특별검사는 자신의 조사범위를 르윈스키와의 관계까지 확대하여 클린턴을 궁지로 몰기 시작했습니다.
케네스 검사가 클린턴을 가장 궁지로 몰았던 것은 바로 클린턴의 위증죄 혐의였습니다. 클린턴은 폴라의 성추행 소송에 증인으로 소환되어 르윈스키와의 성관계 여부를 강하게 부인했었습니다. 만약 클린턴이 르윈스키와 성관계를 가진 것이 사실이라면, 클린턴은 법정에서 위증을 한 것으로 이는 탄핵 사유에도 해당하는 큰 범죄이기 때문입니다.
I did not have sexual relationship with that woman, Miss Lewinsky.
클린턴이 이렇게 자신 있게 전 국민 앞에서 르윈스키와의 관계를 부정하게 된 것은, 둘 사이의 관계를 입증할 만한 증거가 충분치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르윈스키가 전화상으로 클린턴과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한 녹음테이프가 있었지만 그것은 전화통화 일뿐 르윈스키가 입을 열지 않는 한 둘 사이의 관계를 증명할 수 없었습니다.
벽에 부딪친 케네스 검사. 그는 르윈스키를 협박했습니다. 만약 둘 사이의 관계가 입증되면, 법원에서 둘의 관계를 부인했던 르윈스키는 위증죄로 감옥에 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만약 지금이라도 둘 사이의 관계를 밝힌다면, 위증죄는 사면해준다는 조건을 제시하며 르윈스키를 회유합니다. 결국 겁에 질린 르윈스키는 케네스 검사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클린턴의 정액이 묻어있는 파란 드레스를 그에게 넘깁니다.
클린턴의 자백을 받아낸 케네스 특별 검사는 자신의 수사결과를 보고서로 작성해서 미 연방 하원에 전달합니다. 445페이지에 이르는 이 보고서에는 클린턴과 르윈스키의 세세한 대화 내용부터 그들의 성관계 장면을 세세하게 묘사되어 미국사회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특히 이 보고서는 인터넷으로 전부 공개되어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 언론이 이를 퍼나르듯 보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전 세계인이 미국 검사가 작성한 보고서를 통해 미합중국의 대통령이 자신보다 20살 어린 인턴사원과 어떤 자세로 무슨 대화를 하며 성관계를 가졌는지를 알게 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1998년 10월 5일, 미 하원 법사위원회는 케네스 검사의 보고서를 바탕으로 클린턴 대통령이 탄핵의 사유가 될 만한 두 가지 중대범죄를 저질렀다고 판단하고 탄핵안을 발의했습니다. 그 두 가지 중대 범죄는 (1)사법방해와 (2)위증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빌 클린턴은 미국 역사상 두 번째로 탄핵 대상이 된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이제 클린턴의 탄핵 여부는 미 상원에서 표결로 결정나게 되었습니다.
100명의 상원의원으로 구성된 미 상원은 21일간 그의 혐의를 심의하고 최종투표를 통해 클린턴의 탄핵 여부를 결정짓게 되었습니다. 당시 미 상원은 55명의 공화당과 45명의 민주당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클린턴의 탄핵은 전체 위원의 2/3인 67명이 찬성하면 결정되는 구조였습니다.
1999년 2월 12일, 운명의 탄핵 투표가 실시되었습니다. 최종투표 결과 클린턴의 첫 번째 탄핵사유인 사법방해에 대해서는 찬성 50표, 반대 50표로 부결되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탄핵사유인 위증죄에 대해서도 찬성 45표, 반대 55표로 부결되었습니다. 공화당원들 가운데서도 클린턴의 혐의를 무죄로 판단하는 표가 10표 이상 나오면서, 결국 빌 클린턴 대통령은 두 혐의 모두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고 탄핵은 최종적으로 부결되었습니다.
백악관 집무실 복도에서 시작된 이 스캔들은 클린턴을 미국 역사상 두 번째로 탄핵재판을 받은 대통령으로 기록하며 끝을 맺었습니다. 하지만 이 사건에 대한 미국 시민들의 생각은 계속되었습니다.
도대체 클린턴 대통령이 탄핵의 심판대까지 올라야 했던 그의 범죄가 무엇이었을까?
이런 근본적인 질문부터,
왜 미국은 지난 1년간 클린턴의 사생활에 관심을 가졌어야 했을까?
이런 반성까지, 다양한 이야기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두 사람의 관계가 언론에 폭로되고 탄핵투표가 이루어진 1년 동안, 언론과 사람들은 오직 클린턴이 르윈스키와 성관계를 가졌는지에 대해서만 관심을 가졌습니다. 언론에서는 매일같이 둘 사이에 대한 추측에 기반한 자극적인 기사들을 내놓았고, 정치권에서는 클린턴의 여성편력에 대해 매일같이 논쟁을 벌였습니다.
케네스 검사의 보고서가 인터넷에 공개된 것은 이러한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켰습니다. 케네스 검사는 보고서 완성 이전에도 수사 내용을 언론에 조금씩 흘렸고, 언론은 이를 특종처럼 보도하며 국민들의 관심을 클린턴의 사생활로 돌렸습니다.
하지만 ‘클린턴이 혼외정사를 했다는 사실이 과연 대통령직을 박탈당할 만큼의 잘못인가’에 대해 미국인들은 의문을 갖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가 도덕적으로 가족들로부터 비난받을 일을 했다는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클린턴과 르윈스키의 10차례의 성관계 중 6회는 힐러리영부인이 백악관에 있을 때였다는 사실은 클린턴을 도덕적 지탄의 대상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는 사실이었습니다. 하지만 미국 시민들은 이것은 클린턴의 사생활일 뿐, 그리고 클린턴과 힐러리 사이에서 해결되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탄핵심의를 앞두고 있었던 USA투데이와 CNN의 합동 여론조사에 따르면 클린턴 대통령의 탄핵을 반대하는 여론은 65%로 탄핵을 찬성하는 여론의 34%를 압도했습니다.
대통령의 사생활에 대한 미국인들의 시각.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데 왜 미국은 지난 1년간 클린턴의 사생활에 이토록 많은 관심을 가졌던 것일까요? 결국 탄핵의 사유가 되었던 것은 그가 법정에서 거짓말을 했다는 것이지 그가 르윈스키와 성관계를 가졌다는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미국 언론들은 그의 사생활을 낱낱이 보도하며 클린턴을 희대의 바람둥이이자 도덕적 실패자로 묘사하였습니다. 결국 사생활에 대한 선정적인 보도를 하며 국민들을 자극시켜온 언론이 지난 1년의 미국사회를 R등급의 포르노로 만든 것이었습니다.
웃지 못할 일은 클린턴의 지지자이자 성인잡지 <허슬러(Huslter)>의 잡지 발행인 래리 플린트(Larry Flynt)는 이 사태에 분노하여 클린턴을 탄핵하고자 했던 사람들의 과거 섹스스캔들을 폭로하겠다고 협박하며 미국정치권을 바짝 긴장시켰습니다. 실제로 래리의 폭로 협박으로 인해 공화당 국회의원 여러 명이 스스로 자신의 과거 사생활을 자백하며 사과를 하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벌어졌습니다.
클린턴의 스캔들은 미국사회에 중요한 교훈을 남겼습니다.
대통령의 사생활은 그의 대통령으로서의 업무수행에 영향이 없는 한 과도하게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다.
이런 공감대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박근혜 대통령의 사생활에 대해 생각해보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사생활은 물론 존중받아 마땅합니다. 대통령이라고 해서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대중에게 공개하며 스스로의 인권을 포기하라고 강요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지금 대한민국 언론을 채우고 있는 많은 뉴스들에서 이런 불필요한 사생활을 보게 됩니다. 국민을 자극시키고 분노시키는 대통령의 사생활에 대한 뉴스들. 대통령이 보톡스를 맞든 마늘주사를 맞든 성형을 하든, 이는 지금 우리가 대한민국 대통령에게서 알고자 하는 내용이 아닙니다. 요즘 말로 ‘안물안궁’의 영역입니다. 관심 없습니다.
우리가 지금 대한민국 대통령에게 묻고자 하는 것은 따로 있습니다. 그동안 대한민국 통수권자로서 내려왔던 정치, 외교, 사회, 문화 각 영역의 주요 결정들이 정말로 외부인의 영향에 의해 내려졌었는지, 외부인들이 국가적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면서 그들의 사리사욕을 추구해왔었는지, 대통령 본인과 외부인들이 국가기관의 주요 인사에 개입하고 특정 정치성향의 인물들을 통해 민간기업과 시민사회를 장악하려고 했었는지, 그리고 심지어 안보와 직결된 국방, 무기 구입에 대한 로비와 이권개입이 있었는지 등입니다.
만약 이러한 사실을 밝혀내는 데 있어 대통령의 사생활을 들춰보는 것이 필요하다면, 그것은 더이상 사생활이 아닙니다. 세월호가 침몰하던 7시간 동안 국가 최고의 의사결정권자가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어떤 결정을 하고 지시를 내렸는지는 사생활이 아닙니다. 그 7시간이야말로 대한민국에서 가장 엄격하고 엄숙하게 밝혀내고 되돌아봐야 할 공적인 영역입니다.
1998년 낱낱이 밝혀진 클린턴 대통령의 사생활에 대해 미국인들은 그가 억울했으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2016년 아직도 숨겨진 박근혜 대통령의 7시간에 대해 대한민국인들은 반드시 밝혀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당신만의 사생활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원문 : 세상을 풀어보는 두루마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