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안이 국회를 통과했으니 절반쯤은 이루었다고 믿고 싶다. 헌법재판관의 성향이 어떠니 위헌 사유가 어떠니 하지만, 헌법재판은 법률이 아니라 ‘정치’가 본질이다. 지금까지 드러난 민심과 열망이 이 정치의 핵심이면, 그들이 ‘시민권력’을 이길 수는 없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탄핵의 이유에 주목한다. 국회에서 가결된 탄핵 소추의 이유에는 비선 실세 국정 농단, 뇌물죄, 언론 탄압, 세월호 참사 등이 포함되었다. 이 중 한 가지 이유만으로도 탄핵에는 충분하다는 것이 중론, 오히려 나머지 이유를 어떻게 볼 것인가가 남는다.
시간이 충분하다면 각각의 이유에 대해 헌법재판의 판단을 밝혀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비선 실세 국정 농단이나 뇌물죄로 충분하지만, 세월호 참사 당시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는 것을 어떻게 판단하는지도 중요하다. 특히 앞으로 경계로 삼기 위해서는, 한두 가지 사유로 충분하고 “나머지는 더 살펴볼 필요도 없다”는 식으로 얼버무려서는 안 된다.
같은 맥락에서 국회의 탄핵 소추 사유에서는 명시되지 않은 것을 다시 꺼낸다. 이른바 ‘의료 게이트’. 뇌물이나 비선 실세, 세월호 참사보다 덜 중요해 보일지도 모르지만, 다른 많은 사유와 겹쳐 있고 구조를 공유한다. 국정을 어떻게 운영했는지를 드러내 알 수 있는 리트머스 시험지 노릇을 한다는 것이 더 중요하다.
대통령의 ‘의료 게이트’는 왜 중요한가
첫째는 불법 의료. 대통령은 불법인 줄기세포 시술을 받았고, 특정 의료기관에서 가명으로 무상진료를 받았다. 대통령직 수행에 필수적인 공식 의료 시스템을 무너뜨린 것도 불법과 다름없다. 그 대가로 특혜를 제공하거나 입법, 정책 지원을 하는 행위를 했으니 불법성의 정도가 더 심하다.
뇌물이나 비밀 유출에 비하면 가벼운 죄라 할지 모르나, 하급 공무원이나 회사원이 죄를 지은 것에 비교할 일이 아니다. 법치를 가장 앞서 실천, 실현해야 할 국정 책임자가 앞장서 법을 무시했다는 것 자체가 중대한 탄핵 사유다. 이를 그냥 두면 누가 어떻게 법치를 말할 수 있을 것인가.
둘째, 보건의료 정책의 사유화. 참여연대가 대통령을 비롯한 관련자를 고발하면서 낸 보도자료에는 이렇게 되어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후 차병원그룹에 192억 원가량의 국고를 지원하고 체세포 복제배아 연구 승인 등 차병원그룹의 숙원사업 관련 규제를 폐지하고 또한 차바이오가 임상시험 중인 알츠하이머, 뇌경색 줄기세포 치료제와 같은 상병에 임상시험 완화 조치를 취하는데 역할을 함.
겉으로는 투자 활성화니 성장 동력이니 했지만, 사사로운 인연과 보답으로 국가 정책을 주무른 셈이다. 헌법재판이 이를 심판하지 않으면, 앞으로도 비슷한 일이 반복될 수 있다. 보건의료 정책만 그럴까, 모든 논쟁적 정책이 배경을 의심받고 신뢰를 잃게 될 것이 뻔하다. 법의 딜레마를 모르지 않지만, 실정법의 논리만으로 불법의 ‘결정적’ 증거가 없다는 소리는 나오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셋째, 한국 보건의료의 왜곡. 각종 미용 시술에다 이상한 이름의 주사에 이르기까지, 모든 의료인의 혀를 차게 한 일이 한둘이 아니다. 여느 평범한 사람이 그랬더라도 정말 ‘이상한’ 사람으로 치부될 정도로 충격적이다.
물론 실정법 위반은 아니지만, 그는 국가지도자가 아니었던가. 이런 대통령을 보고 정부와 관료, 그리고 시장이 어떻게 반응했을까? 자격을 갖춘 대통령이라면, 겉으로 드러나는 자신의 말과 행동이 몰고 올 국가적, 사회적 파급을 이해하고 예상해야 한다. 미용 시술에 안티에이징, 정체불명의 주사에 의존하는 것이 보통 사람들의 행동, 의료인, 의료체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고 고민했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는 그러지 못했고 그러지 않았다. 이해 부족에, 자격 미달에, 의지도 없었으니, 결과적으로 국정을 어지럽게 했다(국정은 공무원만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이런 국정 이해, 국민의 신뢰에 대한 배신이 의료에 그치지 않는다고 본다. 모든 분야 모든 사안이 필시 비슷했을 것, 그가 했다는 국정 수행을 짐작할 수 있다.
넷째는 마땅히 해야 할 책임을 소홀히 한 것. 세월호 참사가 묻는 것과 같다. 그는 이 시기 한국의 보건의료가 가진 많은 시대적 과제, 예를 들어 공공성 강화, 불평등 해소, 소수자의 건강 보호 등을 입 밖에 낸 적이 없다.
복지도 마찬가지다. 노인과 돌봄, 연금, 장애인, 저출산은 그저 관료적 메커니즘에 따라 굴러왔을 뿐 그 어느 것도 대통령의 국정철학이라 할 만한 것을 발견할 수 없다. 지난 4년 허송세월을 해왔고, 결과는 사회적 삶의 명백한 후퇴다. 이 정도로도 탄핵 사유가 부족한가? 그저 실정법을 위반하지 않은 것으로 괜찮다 할 것인가?
박근혜 정권의 ‘의료 게이트’는 실정법으로는 중대한 위법이 아닐지도 모른다. 탄핵 사유에 포함할 수 없다는 것이 법률 논리일 수 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이 그저 법률적 판단을 하는 과정이 아니라는 우리의 이해를 다시 강조한다. 법률가들이 문구 그대로 헌법 위배 여부를 정하는 제도적 장치도 아니다. 헌법재판과 탄핵 심판은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한 과정으로, 시민권력을 배신할 수 없다.
시민권력이 심판하는 ‘의료 게이트’는 탄핵 사유로 모자람이 없다. 관련 헌법 조항은 이렇다.
- 제7조 1항. 공무원은 국민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
- 제34조 2항. 국가는 사회보장·사회복지의 증진에 노력할 의무를 진다.
- 제36조 3항. 모든 국민은 보건에 관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
- 제66조 2항. 대통령은 국가의 독립·영토의 보전·국가의 계속성과 헌법을 수호할 책무를 진다.
- 제69조. 대통령은 취임에 즈음하여 다음의 선서를 한다.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
원문 : 시민건강증진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