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V 조형물을 독도에 설치하려고 했던 펀딩 계획이 알려지면서 화제가 됐다. 태권V 이야기만 나오면 맨날 또 표절 이야기인데, 정리할 건 얼추 정리하고 더 큰 문제인 민족주의 동원 이야기로 가자는 의미에서 후딱 끄적임.
1. 태권V는 표절인가? 디자인은 표절이지만, 전체적으로는 NO.
베낀 부분이 워낙 많은 건 당연히 사실이다. 냉정하게 말해 디자인의 오리지널리티는 뿔이 두 개라는 것 밖에 없다. 대놓고 디자인이 똑같다. 하지만 뇌파로 인한 로봇 조종은 투장 다이모스보다 2년 앞섰으며, 정작 펼쳐지는 이야기는 그 동네 것 베낀 거라기보다는 한국식 반공물의 전통에 더 가깝다. 똘이 장군에서부터 김청기 감독의 반공물 플롯은 자리잡혀 있었다.
2. 베꼈으니 가치가 없는가? NO! NO! NO!
졸작이냐 하면 그건 아니다. 베낀 부분에만 매달려 전체를 부정하면 그것도 불필요한 자학이다. 남의 나라 물건을 모양 베껴서 이쪽 나라에서 다른 용도의 물건으로 써먹은 것에 가깝다. 그리고 초기에 표절은 아무런 경험이 없는 불모지에서는 (정당화될 수 없겠으나)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모든 산업이 그런 식으로 태동하고 발전한다.
3. 그렇다면 김청기 감독이 정당화될 수 있는가? NO.
그건 힘들다. 당장 김청기 감독이 디자인을 뭉텅 베끼고서는 아니라고 우겼다. 더군다나 초기에 베꼈다고 해도, 거기에서 벗어나 오리지날리티를 살려야 한다. 하지만 김청기 감독은 이후에도 계속해서 표절을 일삼아 왔다. 때문에 어쨌든 국산 로봇 애니메이션의 효시라는 의미는 있겠지만, 산업 측면에서 정당화하기는 힘들다.
4. 그래서 태권V의 문제는 무엇인가? 민족주의적 소비!
문제는 단순히 일부 사람들이 태권V의 디자인이 표절이라는 사실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게 아니다. 그 바탕에 태권V를 민족주의로 소비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 프로젝트는 그런 감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차라리 ‘덕택에 한국에 로봇 애니메이션이 싹틀 수 있었다. 고맙다, 일본.’같은 쪽이 더 의미 있어 보인다.
5. 그래서 정리하자면? 추억을 민족주의로 변질시키지 말자.
표절이니 쓰레기다, 속았다, 쪽팔린다… 이런 논리는 너무 일방적이다. 분명 표절인 부분도 있다. 그런데 나름 한국 애니메이션사에 의미도 있으며, 무엇보다 태권V를 통해 얻은 추억도, 즐거움도 진짜다. 대신 민족주의 프로젝트에 동원하기 위해, 특히 영향을 받아온 일본에 적대하는 아이콘으로 써먹지 말자. 왜냐하면, 그건 즐겁지도 않고, 진짜도 아니고, 심지어 앞으로 아름다운 추억이 될 것도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