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게이트로 연일 세상이 시끄러운 요즈음, 국정농단의 직격탄을 맞은 곳이 있다. 바로 문화창조벤처단지에 입주해 있던 문화예술업계의 스타트업들이다.
이들은 대부분 혹독한 경쟁률을 뚫고 벤처단지에 입주했고 이제 그 곳에서 자신들의 미래를 찾고자 했다. 그러나 ‘희망의 근거’였던 그 곳은, 이제 거대한 ‘비리의 온상’이 되었다. 대통령과 최순실 그리고 차은택까지 창조 경제를 주무른 국정농단의 주인공들 때문이다.
아래는 하루아침에 ‘창조 경제의 부역자’가 되어버린 이들의 목소리다. ‘성명서를 내는 것이 가장 적절한 대응 방법’이라는 데 뜻을 모은 스타트업들이 모여 발표하는 성명이며, 이에 참여하지 않았다고 해서 박근혜 정권을 지지한다는 의혹을 받지는 않아야 한다는 점을 미리 밝혀둔다.
대통령과 최순실, 그리고 차은택은
문화예술산업계를 농단한 책임을 져야 한다
지난 10월부터 언론을 통해 충격적인 소식이 연일 보도되기 시작했다. 비선실세 최순실이 국정을 농단했다는 소식이 그것이다. 최순실이 청와대 비서관의 협조로 대통령의 연설문을 수정하는 것은 물론, 인사에 개입하고 국가지사를 주물렀다. 이 과정에서 최씨 일가는 다양한 분야에 손을 뻗쳐 부를 축적했다. 문화예술산업계도 물론 예외가 아니었다.
창조 경제. 그것이 박근혜 정부가 내건 슬로건이었다. 그에 맞춰 박근혜 정부는 문화창조융합 벨트와 같은 거대한 사업을 기획했다. 예전에는 없었던 규모였다. 이에 문화예술을 업으로 하는 예술가와 경제인들이 기대를 걸었던 것은 당연했다. 단기간에 투자비용을 회수하기 힘든 문화예술업의 특수성을 드디어 정부가 이해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제는 굶어가며 글 쓰고 그림 그리는 작가, 막노동을 병행하는 배우, 과로사 하는 제작자와 개발자가 줄어들 것이라 기대했다.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문화예술 육성 정책이 시작되는 것이라 믿었다.
창조 경제의 일환으로 문화창조벤처단지가 등장했다. 스타트업에게 사무실을 임대 지원해주는 사업이었다. 문화창조벤처단지는 문화예술 종사자들의 일거리를 만들 수 있는 벤처를 찾는다고 했다. 문화예술생태계를 구축할 잠재력이 있는 스타트업을 뽑겠다고 했다. 그래서 이곳의 경쟁률은 13대 1을 육박했다. 이 숫자는 그간 문화예술업계의 갈증을 증명한다.
우리들은 그 혹독한 경쟁률을 뚫고 입주에 성공했다. 이곳에 입주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더 없는 자랑이자 훈장이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최순실과 차은택을 비롯한 문화예술계를 농단한 실세들이 드러나면서, 허무하게도 하루아침에 수치의 증거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연일 우리를 비난하는 기사가 지면을 장식하기 시작했다. 우리들이 차은택의 부역자라고 했다. 밤을 새워 경쟁률을 뚫은 덕에, 우리는 국정 농단 무리들의 부패를 가릴 병풍이자 들러리로, 같은 국민들의 분노를 분산시킬 총알받이로 선택된 것이다.
그렇다면 박근혜 정부가 말한 창조 경제는 과연 무엇인가? 최순실 자녀와의 연줄만 있으면 제안서 한 장 없이 대기업에 납품할 특혜를 주는 것? 개성공단을 폐쇄하여 협력업체 5000여개 와 10여만 명의 종업원들을 생존의 위기로 내몰고 최씨 일가가 착복하는 것? 중국에 진출한 문화콘텐츠 산업에 큰 타격을 입히면서까지 최씨 일가가 사드 거래로 윤택해지는 것? 문화예술업을 산업 생태계로 끌어올린다는 희망찬 명목으로 모두를 속여 열심히 일하게 만들고는, 뒤에서 최순실과 차은택 같은 개인이 부와 권력을 누리는 것?
우리가 이 모든 사태에 좌절을 느끼는 이유는, 단순히 최순실-차은택과 같은 편으로 매도되고 있다는 억울함 때문만이 아니다. 우리가 들였던 노력을 보상받기는커녕, 영원히 벤처단지 출신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닐 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아니다. 우리 역시 최씨 일가의 농단에 분노한 국민임에도, 그 분노를 표현할 자격조차 빼앗긴 이 기막힌 상황도 아니다.
우리가 진심으로 참담한 지점은, 현 정부에는 어떠한 원칙도 신념도 없었다는 사실의 발견이다. 원칙과 신념이 있어야 할 자리에 대신 최씨 일가가 있었다.
한 나라의 정책이란 정부의 신념을 바탕으로 원칙대로 결정되어야 한다. 그것은 정상적인 민주국가라면 당연히 작동하고 있는 최소한의 조건임을, 우리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리고 그렇게 나온 책이어야만 시민이 나아가야 할 길을 비출 불빛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불빛을 향해 쉼 없이 달렸던 우리 모두는, 지금에 와서야 헤드라이트 앞에 뛰어든 토끼였음을 깨달았 다.
원칙과 신념이 없는 국가, 정당한 노력이 보답 받는다는 믿음이 사라진 국가에선 아무도 정직하려고도, 노력하려고도 않을 것이다. 그저 국가 권력의 비위를 맞추고, 부패에 줄을 대야 현명하다는 소리를 듣는 사회가 될 뿐이다. 그러나 권력의 눈치를 보는 문화예술이 꽃을 피운 선례는 없다. 이 사실만은 문화예술을 업으로 하는 우리들이 가장 잘 알고 있다. 우리는 문화예술이 더 이상 기만당하고, 모욕당하지 않기를 원한다.
그래서 우리는 이 모든 사태를 주도한 박근혜 정부의 조건 없는 퇴진을 촉구한다. 또한 땅에 떨어진 문화예술계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최씨 일가가 오염시킨 부분을 공정하게 도려내기를 요구한다. 만약 지금 이 사태를 바로 잡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의 문화예술 정책은 헌정 사상 최대 규모의 부패에 얼룩진 상태로 영영 길을 잃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의 직원들과, 직원들의 가족들이 후대의 문화예술인들 앞에 떳떳하기 위해 더 늦지 않게 목소리를 내고자 한다. 그것이 우리의 책무고, 정직한 문화예술인, 노력하는 기업을 살려내는 유일한 길이다.
우리는 시민들의 의지에 적극 연대할 것이다.
2016년 12월 08일
벤처단지 스타트업 성명서 참가 기업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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