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 가구 시대라고 합니다. 초고령화 사회라고 합니다. 미국이 언젠가는 금리를 올릴 거라는 것도 다 알고 있습니다. 사실 사회학적인 흐름을 우리는 모르는 게 아닙니다. 시간이 문제인 것이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는지는 언론과 SNS를 통해 우리는 이전보다 더 잘 알고 있습니다.
기업도 그렇습니다. 세부적인 커스터마이징을 제외하고 전체적인 시장의 방향이나 규모가 어떻게 될 거라는 것은 이미 몇 년 전부터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말 이런 정보에 맞게 사업의 형태를 바꿔 나가는 곳은 많지 않습니다.
다 알지만 사업에 적용 못 하는 혼밥, 혼술 시대의 ‘공간’
여러분은 국내 1위 커피 전문점 브랜드인 ‘스타벅스’에 왜 가십니까? 무난하고 안정적인 커피 맛, 빠지지 않는 베이커리의 수준, 아날로그적인 고객 콜링, 편리한 모바일 어플리케이션, 접근성, 그냥 로열티. 여러 이유로 스타벅스를 방문하거나 혹은 방문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스타벅스가 이미 과포화된 한국 카페 시장에서 여전히 잘 되는 이유는 이런 데에만 있지 않습니다. 상당히 인문학적인 부분에 기인합니다. 바로 혼자 오랫동안 놀기에 괜찮은 곳이라는 것입니다.
1인 가구, 혼밥, 혼술 등 혼자 뭔가 하는 것이 더 자연스런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스타벅스도 혼자 놀기 좋은 곳입니다. 실제 평일 대낮이나 주말에 스타벅스를 가보면 둘 이상 고객만큼 혼자 와서 책을 읽거나 컴퓨터로 작업을 하는 고객들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혼자서 커피를 즐기기에, 혹은 혼자 오랜 시간 좌석을 점유하기에 스타벅스는 위협적이지 않은 환경입니다. 컴퓨터를 할 콘센트도 많고 와이파이도 잘 되며 화장실도 깨끗합니다. 조명도 적당히 어둡고 옆 좌석의 이야기는 좋아하는 재즈풍의 음악으로 덮어줍니다. 매장은 대부분 넓어서 회전율을 고객이 좌불안석으로 의식할 필요도 없고, 아예 신경 쓸 필요도 없는 구석진 자리도 많습니다.
무엇보다 스타벅스 직원들이 커피를 마시지 않아도 의자에 앉아 있는 고객에게 나가라는 말을 하거나 눈치를 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스타벅스의 서비스 교육에도 반영되어 있는 것입니다. ‘커피를 파는 것’이 아닌 ‘공간을 제공하는 것’으로 업의 정의가 바뀌고 있는 것이지요.
강남대로나 홍대, 종로 일대 등 사람들이 많은 곳에는 늘 많은 카페와 음식점이 있습니다. 혼자 다니다 보면 밥 먹고 커피 마시기 쉽지 않은 곳이 많습니다. 대부분의 이유는 방금 스타벅스가 환영받는 이유와 반대되는 것입니다. 밥만 먹거나 커피만 마시는 것 외에는 할 게 없도록 만듭니다. 콘센트도 없고 와이파이도 없습니다. 화장실은 불결하고 매장은 좁아서 눈치가 보입니다. 심지어 눈치를 주기도 합니다.
물론 사업의 형태가 달라서 이런 것이라면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싼 컨텐츠를 좁은 공간에서 높은 회전율로 극복하는 사업에 맞는 운영형태가 따로 있으니까요. 하지만 싸지 않은 컨텐츠를 넓은 공간에서 적당한 회전율로 브랜드를 파는 스타벅스와 비슷한 고객의 라이프 스타일을 타겟팅한 브랜드에서도 이런 일은 벌어지고 있습니다. 가서 혼자 있으면 편하지 않습니다. ‘공간’이 아닌 ‘제품’을 소비하기만을 바랄 뿐이니까요.
온라인 시대에서 오프라인 공간의 재조명
일본의 ‘츠타야 서점’에 대한 관심이 높습니다. 몇 년 전만 해도 오프라인 서점들은 온라인 서점의 등장과 성장으로 미래가 불투명한 사업으로 보였습니다. 실제로 많은 동네 서점들이 문을 닫았습니다. 온라인 서점에서 파는 음반도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동네 음반 가게들은 오래된 역사를 뒤로 하고 폐업한 곳이 많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아직 살아남아 있는 곳은 대부분 대형 서점들입니다.
다만 이 대형서점들도 이전과는 조금 다른 모습의 공간 활용을 보이고 있습니다. 광화문 교보문고에 어마어마한 사이즈의 책상이 들어온다고 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반반이었습니다. ‘책 볼 수 있는 공간이 와서 좋다’와 ‘책이 더 잘 팔리지 않을 것이다’라는 우려였죠. 하지만 이제 와서 조심스럽게 평가해보면, 이전보다 이후의 교보문고가 더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공간’이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온라인 서점은 만들 수 없는 ‘공간’을 활용할 수 있는 자원으로 생각하고 고객 경험을 주는 데 새로운 기여를 했으니까요.
이 열풍은 이제 동네 서점까지 확산되고 있습니다. 몇 년 전 생각만 해도 망할 수밖에 없는 동네에 책만 빽빽한 서점들이 ‘공간’에 주목하면서 업의 정의가 바뀌고 있는 것입니다.
츠타야 서점은 그것이 보여줄 수 있는 물리적 결합의 핫이슈인 것입니다. 라이프스타일을 팔지만 그것에만 그치지 않고 온라인 공간에서 구현하는 데 한계가 있는 한눈에 들어오는 시각적 만족감과 ‘공간’이라는 편리하고 아늑한 자원의 활용이 뒷받침된 것이죠. 여기도 물건만 빽빽한 B급 아울렛 처럼 진열해서는 이렇게는 잘 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SPA 브랜드도 ‘공간’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좁은 매장에 좁은 공간을 판매에만 몰두해 상품 진열을 빽빽하게 하는 게 고객 만족이라고 생각하는 기존 브랜드에 비해 SPA 브랜드는 공간의 개념을 이전의 몇십 평에서 몇백평 대로 확장하여 다양한 상품을 한 자리에서 보여주고 있는 것이죠. 공간이 넓기에 필연적으로 공간은 목적에 의해 구분될 수밖에 없고, 그것이 라이프 스타일에 맞는 코디든 특정 제품군을 전면에 내세운 공간의 극대화든 공간의 집합이 상품의 집합과 긴밀하게 연계되어 있습니다.
온라인 공간이 무한의 확장성과 정보 제공의 편의성을 오프라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잘 갖추고 있지만, 오프라인도 인간의 특성에 맞게 시각적 아름다움과 아늑함을 줄 수 있는 나름의 매력을 잘 활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SPA 브랜드에 대한 접근을 단순히 공간의 규모로만 접근해서는 곤란합니다. 엄청나게 큰 공간을 단순히 ‘판매 공간’으로 정의하고 물건만 빽빽하게 진열한다면 고객은 그 큰 공간에서 아무런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복잡함에 질려 버릴 것입니다. 공간의 구분과 체험의 공급을 무엇으로 할 것인가를 정하는 문제는 곧 공간의 체류 시간에 영향을 미치고 구매 확률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됩니다. 비싼 임차료를 들여 사용하고 있는 공간을 단순히 판매의 장으로만 생각하기에는 임차료가 아깝습니다.
공간 임차료나 감가상각 비용이 아까운 것은 SPA 브랜드만이 아닙니다. 리조트나 호텔 등의 숙박업이나 전자제품이나 자동차 등 테크 기반의 제품을 파는 곳도 마찬가지입니다. 기계적으로 앉아서 커피 마시는 곳, 체크 인아웃을 하는 곳, 객실 공간 등 이렇게 나누기에는 고객의 기대치가 너무 높아졌습니다. 다른 곳과 다른 차별적 경험에 대해 공간 하나하나의 쓰임에 반영하는 노력이 이제 소규모 호텔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체류 시간이 한정적인 곳에는 재방문율을 높이는 결정적 경험이 되기도 합니다.
구도심의 재발견이나 집 인테리어에 사람들이 주목하는 것도 맥을 같이 한다고 생각합니다. 온라인 시대에 오프라인 공간에 대한 역할을 사람들이 재정의 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온라인 세상이 되면 온라인 안에 빨려 들어갈 것처럼 생각했지만, 결과는 오히려 온라인 시대에 맞는 오프라인 공간의 쓰임에 대해 사람들이 재정의 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더 새로운 것, 새로 지은 곳에만 주목하던 사람들이 경제 성장에 따라 빈티지에 주목하고 빈티지한 감성 – 아날로그한 감성에 주목하면서 서울의 구도심이 재조명받고 있습니다.
이런 감성은 온라인이 노력해도 제공할 수 없는 고유한 가치들입니다. 집도 그렇습니다. 온라인과 테크가 발전하면서 온라인에 접속하지 않은 시간에 최대한의 오프라인이 줄 수 있는 안락함에 주목합니다. 모두가 최신화, 기술화만 외치던 시대에서 공간의 쓰임을 고민하는 ‘온라인과 최신 기술이 보편적인 시대’로 바뀌고 있습니다.
창고 같은 공간과 보여주는 공간
공간이 단순히 기능적인 부분만 수행하지 않기 위해서, 브랜드는 공간에 접근하는 방법을 달리해야 합니다. 아직도 모든 대리점이나 가맹점 등 유통 채널을 일관된 인테리어에 매장 내부도 복사해 놓은 듯이 같은 것을 해야 브랜딩이 유지될 거란 획일성을 벗어나야 합니다.
스타벅스는 건물이나 입지조건에 맞추어 외관 파사드나 내부 집기와 가구를 조금씩 다르게 진행하고 있습니다. 다른 나라의 스타벅스를 다니지 않아도 국내의 매장도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브랜드 전체를 하나의 매장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매장 하나하나를 브랜드로 보는 것입니다. 매장 하나가 작품인 셈이죠.
하지만 국내 브랜드는 아직 대부분 모더니즘에 머물러 있습니다. 매장의 내부와 외관 모두 전국 어딜 가도 똑같은 게 브랜드라고 생각합니다. 융통성이 적습니다. 그래서 빽빽한 매장에는 ‘재미’가 없습니다.
‘재미’는 재미있는 물건을 두고 재미있는 이벤트를 한다고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매장 각각이 나름의 개성이 있어서 보는 재미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브랜드의 공간이 아니라 그 브랜드의 특색있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공간을 단순히 비용으로 생각하면 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싼 인테리어의 취지는 좋지요. 하지만 엄청난 양의 인테리어 자재를 미리 싼 가격에 사서 모든 매장을 군인들처럼 다 똑같이 만들어 놓는 것은 공급자의 방식일 뿐입니다. 좁은 사이트에 두 개 이상의 매장이 있다면 더욱 그렇습니다.
매장 하나하나가 공간적인 개성이 있어서 사람들이 방문할 수 있는 인테리어 준비가 좋습니다. 인테리어 자재를 대량으로 구매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부정과 비리도 이번 기회에 한 번 체크 할 수도 있습니다. 또 기존보다 저렴한 인테리어면서도 공간의 개성을 살릴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찾을 수 있습니다. 공간의 활용성에 주목할수록 이런 인테리어 제안이 더 각광받을 수 있습니다.
공간에서 펼치는 각종 마케팅과 프로모션도 브랜드 내에서 ‘따로 또 같이’ 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예전처럼 전체적인 프로모션만 하는 것은 특정 이슈 몰이가 필요한 것 이외에는 많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오히려 로컬에 맞게 진행하는 맞춤형 전략들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디까지 따로 할 것인가’ 이 지점을 잘 정리하지 않으면 소비자들에게 혼란을 줄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지역 간 차등적인 가격을 적용하는 것처럼 제품 자체의 가치를 조정하는 것은 신중하게 접근해야 합니다. 공간의 가치와 선호하는 컨텐츠를 중심으로 따로 또 같이의 폭을 정리하고 피드백을 통해 부단한 조정이 필요합니다.
마무리하며
오프라인 비즈니스를 하는 많은 브랜드들이 대부분 온라인으로 사업의 영역을 확장할 계획을 하고 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할 수 있는 고객과의 커뮤니케이션을 안 하는 것도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하지만 선택적으로 접근해야 할 일입니다.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습니다. 브랜드의 본질을 더 잘 보여줄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해 온라인이 방해가 된다면 안 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다만 현재 오프라인 비즈니스의 공간의 활용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의 공간은 우리 브랜딩에 도움이 되며 고객 체류 시간을 늘리는 데 도움이 되는 모습을 하고 있느냐는 것이죠. 물론 말씀드린 것처럼 사업의 형태에 따라 싼 것을 많이 팔거나 엄청난 회전율이 필요한 비즈니스에는 잘 맞지 않는 방식일 수도 있습니다. 자본의 양에 따라서 접근할 수 있는 전략은 달라야 하니까요.
그렇지만 과거에는 서점도 그런 비즈니스로 생각되었습니다. 그러니 고려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원문 : Peter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