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4일, 박근혜가 담화라는 것을 다시 내놓았다. 적당히 눙치면 넘어갈 것으로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과거의 대통령과 비교해서 자신은 비교적 깨끗했다고 억지를 부리고 있다.
하지만 이제 국민은 새로운 세상을 이끌어갈 지도자를 원한다. 박근혜에게는 그런 능력이 전혀 없다. 박근혜는 마리오네트 대통령이라는 닉네임이 붙기 시작했다. 마리오네트에는 “끈으로 조종하는 꼭두각시극 또는 실이나 끈을 달아 위에서 조종하는 여러 가지 종류의 인형들의 총칭”이란 설명이 붙어있다. 박근혜는 최순실이 지시하면 그대로 따르는 인형에 불과했다. 실체를 확인한 이상 국민은 그런 대통령을 단 하루도 원하지 않는다. 하기야 머리가 그 수준이니, 지금은 다른 누군가가 조종하는 대로 앵무새처럼 담화를 읽을 것이다.
책보다 화면이 재미있는 시대
캐나다의 소설가 엘리엇 페퍼는 말한다. ‘블로그는 모든 사람을 기자로 만들었다. 자가출판은 모든 사람을 저자로 만들었다. 유튜브는 모든 사람을 영화인으로 만들었다. 아이튠스는 모든 사람을 음악가로 만들었다. 출판사, 음반사, 언론사는 오랫동안 쥐고 있던 취향의 게이트키퍼라는 지위를 잃어버렸다.’
어제 ‘기획회의’ 429호 특집 “2016 출판계 키워드 30”의 교정지를 읽는데 ‘큐레이션’을 설명한 출판평론가 장은수의 글에서 나온 이야기다. 이제 개인은 모두가 언론이 되고 저자가 되고 있다. 그러니 언론사와 출판사는 게이트키퍼라는 지위를 잃어버린 것이 맞다.
>책을 펴내면 바로 권위를 인정받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많은 책이 종이에 잉크만 바른 것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그래서 출판사 이미지가 더욱 중요해졌다. 어제 한 편집자를 만났는데 학교에서 비리에 연루된 출판사 이름만 보고도 문제가 된 출판사의 책을 빼버린다는 이야기를 했다. 무서운 세상이 되었다. 박근혜 덕분에 출판사들은 더욱 고생을 하게 됐다.
장은수의 글은 이렇게 시작된다.
콘텐츠의 시대다. 모든 곳에, 모든 형태로, 하루 스물네 시간 내내, 도저히 한눈팔 수 없을 정도로 온갖 콘텐츠가 넘쳐난다.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필요한 콘텐츠를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지 않는다. 스마트폰이라는 도깨비 방망이만 있으면, 시간이 저절로 흘러가는 듯 느껴진다. 읽고, 듣고, 보고, 공유하고, 이야기하고, 쓰다 보면, 어느새 여가시간 전체가 훌쩍 지나간다.”
그의 지적대로 사람들은 또 스마트폰의 화면만 들여다볼 것이다. 책보다 화면이 너무 재미있으니 말이다. 이번 주말에 또 촛불을 드느라 책 읽을 시간이 있겠는가?
대리사회의 괴물과 박근혜
새벽에 <대리사회>(김민섭, 와이즈베리)를 읽기 시작했다. 저자는 “지식을 만드는 공간(대학)이 햄버거를 만드는 공간보다 사람들 더 위하지 못하는 것은 슬픈 일이다”라는 선언이 담긴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를 펴냈다는 이유로 대학에서 사실상 추방당한 이다.
그렇게 그는, 대리기사가 됐다. 이제 대학 강사에서 대리기사가 된 ‘지방시’는 “내가 이 사회에서 주체성을 가진 온전한 나로서 존재하고 있음을 증명할 수 있는가?”하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대리사회>를 썼다. ‘지방시’가 대리기사로 일하는 동안, 타인의 운전석에서 세 가지의 통제를 경험했다고 말한다.
그 세 가지의 통제는 운전에 필요하지 않은 모든 ‘행위’의 통제, ‘말’의 통제, ‘사유’의 통제다. “액셀과 브레이크를 밟고 깜빡이를 켜는, 그런 간단한 조작 이외에는 그 무엇도 마음대로 할 수가 없”었고, “손님에게 먼저 말을 건네”지 못했다. “주체적으로 행위하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은, 사유하지 않게 된다는 의미와도 같”았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타인의 운전석은 이처럼 한 개인의 주체성을 완벽하게 검열하고 통제한다. 신체뿐 아니라 언어와 사유까지도 빼앗는다. 그런데 운행을 마치고 운전석에서 내려와도 나의 신체는 온전히 돌아오지 않았고, 여전히 ‘대리’라는 단어에 묶여 있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그 어느 공간에서도 그다지 주체적인 인간으로 존재하지 못했다. 대학에서도 그랬다. ‘나는 대학에서 무엇으로 존재하고 있는가?”하는 질문을 하는 데만 8년의 시간이 걸렸다. 인문학을 공부했다는 한 인간으로서 몹시 부끄러운 일이다. 그러나 대리사회의 괴물은 내가 한 걸음 물러서서 판단하고, 질문하고, 그렇게 사유할 여유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렇다. 대리사회의 괴물은, 어디에나 있다. 박근혜는 지난 18년 동안 정치를 하면서 마리오네트 역할을 하느라고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러니 온갖 ‘마약’까지 먹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박근혜가 지금의 정신 상태와 지적 능력으로 자신을 주체로서 일으켜 세우기는 힘들겠지도 모른다. 그래도 기회가 된다면 <대리사회>를 읽으며 한 번 최순실의 고삐에서 제대로 벗어나는 것을 시도해보기를. 박근혜에게 이 책을 강력하게 추천한다.
원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