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마운틴 뷰의 한가로운 어느 날. 아빠와 아들이 뜰에서 울타리를 만들고 있다. 능숙한 솜씨로 척척 울타리를 만들어가던 아빠는 잠시 쉬면서 아들의 모습을 바라본다. 아들은 못을 박으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작은 손은 망치를 드는 것조차 버거워 보였다. 아빠는 좀 더 작은 망치를 아들에게 쥐여주었다. 그리고 아들과 함께 간격을 맞추어 꼼꼼하게 못을 박았다.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울타리의 귀퉁이를 마무리하며 아빠는 입을 열었다.
스티브, 무엇을 만들든지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신경 써야 하는 거란다.
애플은 눈에 보이지 않는 기기의 내부까지도 깔끔하게 디자인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스티브 잡스는 그것을 아버지 폴 잡스에게 배웠다.
그렇다고 잡스가 아버지의 가르침에 맹목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폴 잡스는 자동차 엔지니어였고, 자신의 아들도 가업을 이어받기를 바랐지만 스티브는 따르지 않았다. 폴은 이렇게 말한다.
기술을 전수하려 했지만 스티브는 손에 기름 묻히는 일을 별로 좋아하지 않더군요.
독선적인 일부 마이크로 매니저들은 흔히 스스로를 스티브 잡스에 비유한다. 이 글은 그들의 잘못된 환상을 바로잡기 위해 작성되었다. 잡스는 자기 생각만 밀어붙여 성공한 사람이 아니다. 만일 그랬다면 그는 지금처럼 위대한 사람으로 기억되지 못했을 것이다. 잡스는 수많은 중요한 국면에서 타인의 아이디어에 설득당했다. 오히려 독선적으로 행동했을 때에는 실패를 맛보아야 했다. 실패 앞에서는 책임 전가나 자기합리화를 하지 않았고, 자신에게 옳은 조언을 했던 사람의 의견을 인정하고 받아들였다. 그게 스티브 잡스였다.
개인용 컴퓨터의 개념이 아직은 미미하던 1976년. 잡스와 워즈니악은 홈브루 컴퓨터 동호회에서 애플 I을 공개했다. 기대와 달리 별 반응이 없었지만 컴퓨터 가게 ‘바이트 샵’의 사장이었던 폴 테렐은 애플 I에 관심을 보였다. 테렐은 잡스에게 애플 I 50대를 매입하겠다고 말했다. 단, 동호회에서 선보인 부품 형태가 아니라 누구나 바로 사용할 수 있는 완제품 상태여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잡스의 생각은 달랐다. 잡스가 생각하는 애플 I의 타깃은 컴퓨터 마니아였다. 그들에겐 오히려 자유롭게 개조하고 조립할 수 있는 부품 형태가 더 나았다. 잡스는 테렐에게 부품형태의 애플 I 50대를 가져왔다. 약속을 어기고 자신의 생각을 밀어붙인 것이다. 다행히도 테렐은 마음씨가 좋았는지 부품형태의 애플 I을 잠자코 구입해주었다.
테렐이 옳았음을 알게 되기까지는 몇 달이 채 걸리지 않았다. 뉴저지 주 애틀랜틱시티에서 열린 제1회 개인용 컴퓨터 대회에서 잡스는 다양한 디자인의 컴퓨터들을 맞닥뜨렸다. 그것들은 하나같이 소프트웨어, 키보드, 모니터를 갖춘 완제품이었다. 내부 부품들은 말끔한 금속 케이스 안에 담겨 있어서 마치 TV처럼 쉽게 사용할 수 있는 가전제품으로 보였다. 그에 비해 애플 I은 괴물이 한입 뜯어먹은 라디오처럼 보였다.
잡스는 테렐이 옳았음을 인정하고, 다음 모델인 애플 II의 케이스 디자인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메이시스 백화점 가전제품 코너에서 마음에 드는 디자인을 발견한다. 쿠진아트에서 나온 믹서기였다. 먼 훗날 잡스가 애플에 복귀했을 때 변기 디자이너였던 조너선 아이브가 중용되는 것을 보면, 잡스의 독특한 디자인 감각은 이 시절에 이미 형성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무튼 애플 II는 믹서기에서 영감을 받은 덕분에 금속 재질의 대다수 다른 컴퓨터들과 달리 차별화된 플라스틱 재질의 디자인을 입을 수 있었다.
마케팅을 제대로 아는 사람과 함께 오시오
애플 II를 완제품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돈이 필요했다. 잡스는 투자를 받기 위해 돈 밸런타인을 찾아갔다. 밸런타인은 ‘아타리’에 투자해 큰돈을 번 인물로, 오늘날 세계 최고의 벤처 캐피털로 인정받는 세쿼이아 캐피털의 설립자였다.
밸런타인 앞에 선 잡스의 태도는 겸손했다. 잡스는 밸런타인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 물었고, 밸런타인은 마케팅을 아는 사람과 함께 오라고 조언했다.
과거 아타리에 입사할 때는 사무실에 드러누워서 입사 안 시켜주면 한 발짝도 안 움직이겠다고 했던 게 잡스였다. 갑 앞에서 갑질 하는 게 잡스 스타일이다. 그러던 그가 왜 이렇게 공손한 태도를 보인 걸까?
이유는 단순하다. 잡스는 자신이 안다고 생각하는 것 앞에서는 당당했다.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 앞에서는 겸손했다. 아타리에 입사할 때 잡스의 입장은 자신의 기술을 아타리에 제공하는 것이었다. 때문에 잡스는 상대방이 어처구니없어할 정도로 당당할 수 있었다.
하지만 벤처는 달랐다. 벤처는 잡스가 처음 발을 들인 영역이었고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았다. 그에 비해 자신 앞에 선 사람은 벤처 투자로 큰돈을 벌만큼 벤처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었다. 이것이 잡스가 밸런타인에게 공손했던 이유다.
잡스의 이런 태도는 밸런타인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잡스가 젊을 때부터 히피 기질이 있었고 선불교에 심취했다는 사실을 다들 알 것이다. 잡스는 단 한 번도 선불교의 구루에게 무례하게 대한 적이 없었다. 모르는 것에 대한 겸손은 잡스의 일관된 태도였던 것이다.
마이크로 매니저는 둘 중 하나다. 히어로, 아니면 나르시스트. 스티브 잡스는 히어로 타입이었다. 둘 다 독재자인 점에서는 비슷하지만 히어로 타입은 마음이 맞는 동료들을 만났을 때 위대한 업적을 세우며 그 과정에서 자신과 비슷한 또 다른 히어로들을 탄생시킨다는 점이 다르다. 반면 나르시스트 타입은 오로지 자신만 안다. 타인의 장점을 볼 줄 모르며 타인을 자신의 인생을 위해 희생시킬 소모품으로만 여긴다.
나르시스트 타입의 특징 중 하나는 모르는 것도 아는 체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을 숨기고, 무지가 드러날 것 같으면 화를 낸다. 나르시스트 타입은 자신에게 다른 의견을 내는 것을 무례라고 생각한다. 다른 의견이 있어도 모두 묵살하며 자신의 의견을 끝까지 관철시킨다. 그러다가 실패하면 자신을 제대로 따르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직원들에게 책임을 뒤집어씌운다.
나르시스트 타입의 마이크로 매니저는 자신이 모르는 분야까지 아는척하며 세밀하게 간섭하고 지시하기 때문에 일을 걷잡을 수 없는 파국으로 몰아간다. 간섭당하는 직원은 처음에는 반대 의견을 내겠지만 한 두 번 묵살을 당하면 입을 닫고 수동적인 사람이 된다.
마이크로 매니저는 모든 분야를 간섭하기 때문에 수동적인 태도는 곧 집단 전체의 문화가 된다. 자신에게서 나르시르트 타입의 기미가 보인다면 알아야 한다. 직원들은 당신이 보는 앞에서는 입을 닫고 수동적으로 시키는 대로 하겠지만, 뒤에서는 모르는 것을 아는척하는 당신을 집단으로 비웃는다는 사실을.
조금이라도 그런 낌새가 보인다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스스로를 스티브 잡스에 비유하는 짓을 그만두고 자신이 잘못했노라고 직원들 앞에서 사과하라. 직원들은 당신의 사과가 진심인지 지켜볼 것이고, 당신의 바뀐 태도를 느낀 순간부터 당신을 존경하기 시작할 것이다.
마케팅을 아는 사람과 함께 오라는 밸런타인의 말에 잡스는 세 명만 추천해 달라고 부탁했다. 밸런타인은 부탁대로 세 사람을 추천하는데 잡스는 그중 한 사람의 관심을 끄는 것에 성공한다. 그는 바로 애플의 숨겨진 아버지 마이크 마쿨라였다. 마쿨라는 잡스와 함께 애플의 백년대계를 구상한다. 가계부를 쓰고 쇼핑을 하고 그 외 모든 일상을 컴퓨터로 하는 세상. 마쿨라가 생각하는 것은 이제까지 없었던 새로운 시장의 탄생이었다. 마쿨라의 생각을 잡스는 그대로 흡수한다.
마쿨라가 애플을 위해 제일 처음 체계화한 것은 세 가지로 구성된 애플의 마케팅 철학이었다. 첫 번째는 고객을 향한 ‘공감’. 두 번째는 중요하지 않은 것은 과감히 버리는 ‘집중’. 세 번째는 뇌에 새겨질 만한 강력한 ‘인상’으로 제품을 느끼게 만드는 것이었다. 잡스는 이것을 어떻게 실천했을까? 잡스는 누구나 공감할만한 최적의 유저 인터페이스를 만드는 것에 최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필요하지 않은 것은 과감하게 버리는 것으로 혁신에 집중했다. 애플의 광고와 키노트는 당대의 이슈가 되도록 인상 깊게 만들었다. 이것은 잡스가 죽는 날까지 지켜졌던 애플의 철칙이었다.
여기서 잠깐 마케팅의 정의를 설명하고 넘어가겠다. 나는 자기한테 맡기면 마케팅을 싸게 해주겠노라 말하는 자칭 마케팅 전문가를 본 적이 있다. 나는 어느 벤처 대표가 자기네 제품은 마케팅이 필요 없다고 말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이건 다 헛소리다. 이들은 마케팅이 뭔지 모르고 있다. 이들은 ‘마케팅=광고’라고 생각하고 이런 말을 하고 있다. 적어도 이 글을 읽는 분들은 광고를 마케팅이라는 단어로 바꿔서 말하지 않기를 바란다. 광고는 그냥 광고일 뿐이다. 마케팅은 광고가 아니다.
피터 드러커는 기업의 두 가지 구성요소로 마케팅과 혁신을 말했다. 만일 마케팅이 곧 광고라는 게 사실이라면 기업의 구성요소가 광고와 혁신이란 말인가? 말도 안 되는 헛소리다. 왜 HP 창립자 데이비드 패커드가 “마케팅은 한 부서에만 맡기기에는 너무 중요하다”라고 말했겠는가? 마케팅은 말 그대로 마켓과 관련된 모든 활동이다. 그러기에 마케팅을 기업의 요소로 꼽기도 하고 가장 중요하다고도 말하는 것이다.
마케팅은 사람들이 무엇을 필요로 할까를 고민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고로 “우리 제품은 마케팅이 필요 없다”라고 말하는 것은 “우리 제품은 니즈를 생각 안 하고 그냥 만들었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스스로 산업혁명 초기의 마인드를 가지고 있다고 광고하는 셈이다. 마케팅은 누가 무엇을 어떻게 사용할지를 고민하는 것이 포함되므로 제품의 정체성과 직결된다. 그리고 그 정체성을 어떻게 누구에게 광고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일지 고민하는 것도 마케팅에 포함된다. 제품의 탄생에서 끝까지 마케팅은 제품과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경영의 정의만큼이나 마케팅의 정의도 다양하다. 필립 코틀러 는 마케팅을 “기업이 고객을 위해 가치를 만들고 관계를 구축함으로 그에 상응하는 가치를 얻는 과정”이라 정의했다. 피터 드러커는 마케팅의 목적이 “영업을 불필요하게 만드는 것”이라 말했다. 정답에 가까운 정의가 무엇이든 간에 한 가지만은 확실하다. 마케팅이 곧 경영이라 할 만큼 마케팅은 여러 영역을 포함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광고가 마케팅 활동에 포함될 수는 있어도 마케팅이 광고라는 등식은 성립될 수 없다.
광고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형편없는 제품을 여론 조작을 통해 좋은 것처럼 꾸미는 어뷰저들(속칭 알바) 때문에 생겨난다. 이들은 뭔가 있어 보이기 위해 자신들이 더럽힌 ‘광고’라는 단어 대신 ‘마케팅’이란 단어를 사용하고 스스로를 ‘마케터’라고 자처한다. 덕분에 ‘마케팅=광고’가 되어버리고 결과적으로 어뷰징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마케팅을 외면해버리게 한다.
어뷰저들에게 휘둘려서 어뷰징과 광고를 동일시하지 말자. 어뷰저들은 거짓말쟁이들이다 그러나 광고인은 꼭 필요한 전문가들이다. 마찬가지로 광고와 마케팅을 동일시하지 말자. 광고가 필요 없을 수는 있다. 그러나 마케팅은 필요를 따질 문제가 아니다. 마케팅은 시장 활동에 있어서 사회과학적으로 효용성이 증명된 기법들의 총체다. 당신이 마케팅이 뭔지 모른다 하더라도 사람들이 무엇을 필요로 할까 고민하며 서비스를 만들고 있다면 단지 비전문적일 뿐, 당신은 이미 마케팅을 하고 있는 것이다.
마케팅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돕기 위해 마케팅의 역사를 연재 중에 있다. 관심 있는 분은 참고하기 바란다.
아버지, 비즈니스 파트너, 투자자, 어드바이저. 앞의 예화는 모두 잡스가 동등하거나 높은 위치의 사람들과 겪은 일들이었다. 과연 ‘설득당하는 잡스’는 그보다 상대적으로 낮은 위치의 사람에게도 해당하는 이야기였을까?
1980년 무렵. 애플은 크게 성장했고 회사다운 면모를 갖추었다. 지분을 가지고 애플에 경영권을 행사하는 이사들이 생겼고 잡스는 예전처럼 자기 마음대로 회사를 경영할 수 없었다. 잡스는 이사들과의 마찰로 인해 애플의 차기 주력 사업이었던 리사 프로젝트에서 영향력을 상실한다. 화가 난 잡스는 뭔가 보여주겠다고 생각했는지 변두리에서 아무도 신경 안 쓰던 ‘매킨토시 프로젝트’에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잡스는 매킨토시를 리사보다 훨씬 잘 팔리는 컴퓨터로 만들어서 이사들에게 본때를 보여줄 계획이었다.
매킨토시의 팀장은 제프 래스킨이었다. 잡스의 생각에 한 팀에 두 명의 리더가 있을 수는 없었다. 잡스는 래스킨을 쫓아내다시피 하여 맥팀의 영향력을 확보한다. 이어서 래스킨의 색을 완전히 지우기 위해 매킨토시의 이름을 바이시클로 바꾸려 했다. 하지만 팀원들은 매킨토시를 더 마음에 들어했다.
결국 잡스는 바이시클로 개명하는 계획을 포기한다. 팀원 모두가 원치 않는 것을 억지로 추진하는 것은 잡스의 스타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 짓을 했다간 팀 전체의 사기를 나락으로 빠뜨리게 된다.
잡스의 스타일은 첫 단계가 팀원의 아이디어를 자신의 아이디어로, 자신의 아이디어를 팀 전체의 아이디어로 만드는 것이었다. 그다음 단계는 우리가 함께 위대한 일을 하고 있다고 팀 전체에 최면을 거는 것이었다. 그다음 단계는 전설적인 명품을 탄생시키는 것이다. 보통은 이것이 마지막 단계라 생각할 것이다. 주제에서 조금 벗어난 이야기지만 잡스에게는 하나의 단계가 더 남아있다. 바로 애플을 애용하는 당신이 애플만큼 특별한 존재라고 최면을 거는 것이다.
히어로 타입의 마이크로 매니저는 아이디어의 출처가 어디든 간에 자신의 리더십을 통해 위대한 업적을 달성하고자 한다. 반면 나르시스트 타입의 마이크로 매니저는 아이디어의 출처가 항상 자신이어야 한다. 히어로 타입은 타인이 더 좋은 아이디어를 내게끔 자극하기 위해 폭언을 한다. 반면 나르시스트 타입은 자신 외에 다른 아이디어를 모두 형편없는 것으로 격하시키기 위해 폭언을 한다.
“이거 쓰레기네.”
잡스의 말버릇이다. 잡스를 잘 아는 사람들은 이게 말 그대로의 의미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 본 의미는 “최선입니까? 확실해요?”에 가깝다. 진짜 쓰레기라는 의미가 아니라는 말이다.
이 말에 상처받은 사람들은 애플을 떠났다. 그들이 무능해서가 아니다. 단지 잡스의 리더십에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리더십은 그 리더십에 어울리는 성향의 사람들과 함께 뭉쳤을 때 최고의 힘을 발휘한다. 결과적으로 이 폭언은 잡스와 성향이 맞는 사람들만 남아서 강력한 팀을 이루는 필터 역할을 했다. 잡스가 “이거 쓰레기네”라고 했을 때 대든 사람들은 승진을 했다. 데비 콜먼은 이렇게 말한다.
옳다 확신하는 것은 당당히 맞서서 지켰습니다. 그러자 저를 계속 승진시켜주더군요.
잡스에게 맞서 싸운 콜먼은 잡스에 의해 매킨토시 재무 담당에서 운영 담당 임원으로 승진했다. 재무 전문가였던 콜먼은 자신이 운영 파트로 온 것이 의아했지만 최선을 다해 일했다.
잡스는 이후에도 설비의 청소상태나 구조와 관련해서 콜먼과 싸웠다. 콜먼은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것은 굽히지 않았다. 잡스는 그것을 존중했다. 콜먼은 운영담당 부사장으로 승진했고 1990년에는 정보 시스템과 기술 부문의 부사장이 되었다. 잡스는 왜 콜먼을 이런저런 파트로 돌려가며 승진시켰을까?
애플 퇴사 후 콜먼의 행보를 보면 추측할 수 있다. 그녀는 1994년 메릭스의 CEO가 되었다. 잡스는 리더를 키운 것이다. 콜먼은 이렇게 말한다.
그는 직원들에게 믿을 수 없는 특별한 기회를 줍니다. 자신의 인생을 새로 쓸 기회를.
맥팀의 핵심 엔지니어였던 빌 앳킨슨의 증언에 의하면 엔지니어링 파트에서도 비슷한 일은 자주 있어왔다. 어느 날 잡스는 불시에 어느 엔지니어의 자리에 돌입해서 작업물을 보고는 “이거 쓰레기네.”를 시전 했다. 그 엔지니어는 자신이 왜 그렇게 작업했는지 설명했고 잡스는 납득했다.
그러나 거기에서 끝난 게 아니었다. 잡스에게 자극받은 그는 다시 한번 작업물을 검토했다. 그리고 더 나은 해결책을 찾아냈다. 결과적으로 잡스의 자극이 긍정적인 효과를 준 것이었다. 앳킨슨은 이렇게 말한다.
그에게 맞서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도 중요합니다. 대개의 경우 그의 말이 옳으니까요.
자신이 잘 아는 분야에서는 직원들과 신념을 겨루며 싸웠던 잡스. 자신처럼 당당하게 신념을 지키는 직원을 존중했던 잡스. 자신보다 옳은 신념을 가진 직원에게 설득당했던 잡스. 그런 잡스가 자신이 잘 모르는 분야에 대해서는 어떻게 행동했을까? 믿기 힘들겠지만 그런 경우에 잡스는 믿을만한 사람을 앉히고 위임했다. 이때 잡스의 역할은 돈을 대고 팀원들의 사기를 올려주는 것에 국한됐다. 잡스는 스스로 자신 있고 잘 안다고 확신하는 분야에만 마이크로 매니징을 한 것이다.
1986년 잡스는 조지 루카스로부터 루카스 필름의 컴퓨터 사업부를 사들였다. 당시 잡스는 애플에서 쫓겨난 상태였는데, 자신이 설립한 넥스트 컴퓨터의 사업이 부진한 탓에 새로운 활로를 모색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잡스가 사들인 루카스의 컴퓨터 사업부는 크게 개발과 애니메이션 제작으로 나뉘어 있었다. 잡스는 개발팀을 통해 동영상 렌더링 전용 컴퓨터 및 소프트웨어를 시장에 내놓을 계획이었다. 애니메이션 제작팀에게는 그 컴퓨터와 소프트웨어의 성능을 과시하고 홍보하는 역할을 부여하고자 했다.
애니메이션팀의 책임자는 존 래시터였다. 잡스는 애니메이션팀을 터치하지 않았다. 래시터가 1984년 시그래프에 출품한 <안드레와 월리 꿀벌의 모험>을 보고 그가 뛰어난 능력자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잡스는 자사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역량을 뽐내기 위해 애니메이션 한 편을 더 제작하기를 원했다. 래시터는 잡스의 기대에 부응하여 <럭소 주니어>라는 2분짜리 짧은 애니메이션을 제작했다.
1986년 8월, 두 사람은 댈러스에서 개최된 시그래프에 참석했다. 시그래프에서 <럭소 주니어>는 최우수상을 받았다. 아카데미상 후보에까지 올랐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때 당시 잡스가 손을 대고 있던 넥스트 컴퓨터와 렌더링 전용 컴퓨터 사업은 망해가고 있었고, 잡스가 래시터에게 위임한 애니메이션 쪽은 비록 돈은 못 벌었지만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시그래프에서 최우수상을 받는 순간 잡스는 눈물을 글썽이며 의미심장하게 외쳤다.
이제 알겠어! 어떻게 해야 되는 건지 이제 알겠다고!
잡스의 이 발언을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해석할지 모르겠다. 나는 이 발언을 위임의 방법을 알았다는 의미로 해석한다. 잡스가 위임하는 법을 몰랐다는 얘기가 아니다. 위임을 통해 작지만 의미 있는 승리를 거두었다는 것이 잡스에게는 커다란 경험이었다는 이야기다.
잡스는 본격적으로 애니메이션 산업에 뛰어들기 위해 디즈니와 손을 잡았다. 물론 이번에도 제작에는 관여하지 않고 래시터에게 위임했다. 하지만 애니메이션은 개판이 됐다. 디즈니의 영화부문 책임자였던 제프리 카첸버그가 시나리오에 직접적으로 관여한 탓이었다. 카첸버그는 잡스처럼 마이크로 매니저였다.
애니메이션이 개판이 되자 카첸버그는 무책임하게도 투자를 중단한다. 이쯤 되니 잡스가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잡스는 애니메이션 팀을 방문한다. 그리고 어떻게 했을까? 본인이 직접 제작을 진두지휘했을까?
잡스는 애니메이션 팀원들과 어우러져 카첸버그를 비롯한 디즈니 간부들을 향해 쌍욕을 퍼부었다. 팀원들은 통쾌함에 열광했다. 바닥을 쳤던 사기는 하늘을 뚫을 듯 치솟았다. 잡스는 래시터를 치켜세워주었고 디즈니가 중단시킨 투자를 자신이 대신 감당했다. 래시터는 잡스의 신뢰와 투자를 기반으로 팀원들을 이끌고 애니메이션을 완성시킬 수 있었다. 그렇게 세계 최고의 애니메이션 기업 ‘픽사’는 역사에 길이 남을 3D 애니메이션 <토이 스토리>를 세상에 탄생시켰다.
픽사로부터 얻은 위임의 교훈은 잡스가 애플에 복귀한 후에 더욱 빛이 났다. 잡스는 스스로 자신 있는 분야도 많은 부분을 위임하기 시작했다.
그중 아이팟의 예를 들어보겠다. 잡스는 음악시장의 잠재력을 내다보고 아이튠즈를 출시했다. 당시에 나와 있던 MP3 플레이어들은 잡스가 보기에 ‘쓰레기’였다. 음악이 몇 곡 들어가지도 않았고, 아이튠즈와 호환성도 매우 떨어졌다. 잡스는 애플이 직접 MP3 플레이어를 만들기로 결정하고 아이맥 프로젝트의 책임자였던 존 루빈스타인에게 이 일을 맡긴다.
아이팟은 기존의 MP3 플레이어만큼 작으면서도 많은 곡을 담을 수 있어야 했다. 마침 도시바에서 1.8인치 미니 하드디스크를 개발했었는데 만들기만 하고 딱히 용도를 찾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루빈스타인은 이거다 싶어서 도시바의 하드디스크를 아이팟의 저장장치로 채택한다.
그 외에도 아이팟에 쓰일 소형 LCD와 내장 배터리를 결정했다. 루빈스타인이 모은 부품을 제품으로 디자인하는 것은 토니 파델의 몫이었다. 파델은 휴대용 음악 기기에 대한 나름의 비전의 있던 사람으로 루빈스타인이 아이팟 프로젝트를 위해 새롭게 영입한 인물이었다.
2001년 4월, 잡스의 주관하에 아이팟 프로젝트를 위한 회의가 시작되었다. 파델은 잡스 앞에 세 가지 모형을 선보였다. 첫 번째와 두 번째는 일부러 약점이 있는 모형들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루빈스타인이 모은 부품으로 디자인한 모형을 선보였다. 두 번째까지 실망하고 있던 잡스는 마지막 모형을 보고 크게 만족했다.
그때 마케팅 담당자였던 필립 쉴러가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한다. 아이팟은 천여 곡을 담을 만큼 용량이 컸다. 그 많은 곡을 버튼을 눌러 선택해야 한다면 고문이나 다름없었다.
쉴러는 버튼으로 곡을 선택하는 것 대신 휠을 돌려 곡을 선택하는 아이디어를 냈다. 휠을 돌리는 속도에 따라 곡의 스크롤 속도를 조절할 수 있어서 아무리 많은 곡도 편하게 선택할 수 있었다. 잡스는 아이디어를 듣고는 크게 외쳤다.
바로 이거야!
마무리하며
마이크로 매니징은 별로 바람직한 리더십이 아니다. 대다수 사람들은 독재를 참아내기 힘들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 성격이 어디 고치기 쉬운 것인가? 선천적인 성향 때문에 마이크로 매니징을 할 수밖에 없는 리더들이 분명 존재할 것이다. 꼭 자신이 마이크로 매니저가 되어야 한다면 나르시스트 타입만큼은 되지 말자.
모르는 것을 아는 체 말라. 모르는 것 앞에서 겸손하라. 아는 사람을 존중하라. 위임하는 방법을 배우라. 그리고 무엇보다도 스스로 스티브 잡스를 자처하며 빙의되지 말라. 당신이 잡스를 따라 마이크로 매니징을 하는 것이 훌륭한 게 아니다. 마이크로 매니징을 했음에도(결함 있는 성격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성공한 잡스가 훌륭한 것이다.
지금까지 스티브 잡스의 일화들을 통해 조금은 의외였을지 모를 설득당하는 잡스의 일면들을 살펴보았다. 이 글이 마이크로 매니징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팀의 사기이며 마이크로 매니징은 팀 사기 진작에 많은 약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며 글을 마친다.
Do you see a man skilled in his work? He will serve before kings; he will not serve before obscure men.
– Proverbs 22:29
원문 : 여현준의 브런치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