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4일 사태가 본격적으로 터진 뒤 민주당이 일관되게 취한 입장은 정치적 해결이었다. 민주당의 최초 입장은 진상규명과 부역자 사퇴였고, 문재인의 거국중립내각 제안이 있었고, 민주당의 2선 후퇴 요구가 있었다. 문재인의 ‘명예퇴진’ 발언까지 국민들의 비난을 있는 대로 감내해내다가 11월 12일 백만 촛불집회 이후 정치권에서 가장 늦게 퇴진 당론을 정할 때까지, 민주당의 정치적 해결 모색을 철저하게 외면했던 것은 청와대와 여당이었다.
외면한 정도가 아니라 아주 자근자근 짓밟았다. 김병준 총리 지명으로 우롱하더니, 상설특검 운운으로 조롱하고, 2선 후퇴 없는 총리 추천 요구로 농락하더니, 검찰 수사 거부로 찬 물을 끼얹었다.
책임을 따지자는 것이 아니다. 책임도 책임이지만 청와대와 여당의 이런 오만방자한 작태로 인해 국민의 분노가 돌이킬 수 있는 임계점을 넘어도 한참 넘어서 버렸다는 것이다. 이제 와 뒤늦게 국회 합의, 4월 퇴진 운운하며 정치적 해결을 요구하는 것은, 있는 대로 약을 올려놓고 또 한 번 결정적으로 혀를 날름거리는 꼴이다. 그 방안이 설사 합리적이고 유용한 것이라고 해도 국민들의 분노가 그것을 수용할 수 있는 수준을 지나쳐 있다.
사태 초기만 해도 ‘즉각’이 아니더라도, 탄핵을 통해 ‘강제로 끌어내리는 것’이 아니더라도, 자리에서만 물러나면 되는 것 아니냐는 양해가 가능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국민의 요구는 명확하게 즉각 사퇴와 탄핵이다.
즉각 사퇴와 탄핵이 담고 있는 의미는 단순한 대통령의 퇴임이 아니다. 물러나더라도 날짜를 기다렸다가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마치 대단한 결단이나 한 것처럼, 마치 국민의 뜻을 받들어 모시는 것처럼 유유히 물러나는 꼴조차 봐줄 수 없다는 것이다. 순순히 보내줄 수 없다는 것이다. 국민의 명령에 무릎 꿇고 목숨을 구걸하면서 물러나거나, 탄핵으로 강제로 끌려나가는 것이 아니면, 그 어떤 경우도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지금은 직접민주주의 국면이다. 국민들이 정치권에 위임해놓았던 통치권을 회수해왔다. 그럼에도 구체적인 판단과 결정과 행동은 정치권이 해야 한다. 현실 정치에서 국민의 요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말처럼 쉽지 않다. 그러나 국민의 요구가 명확하고, 거대하며, 정당한 것이라면 국민의 요구를 따라야 한다.
여러분은 스스로 국민으로서 국민을 믿는가? 솔직히 나는 믿지 않는다. 여러 정치적 상황이 얽혀 끝끝내 민주당은 낙동강 오리알이 될 수도 있다. 그래도 해야 한다.
상황은 단순하다. 지금 이 순간 국민의 요구가 선택의 여지 없이 명확하고, 거역할 수 없이 거대하며, 의심의 여지 없이 정당하다면 거기에 따라야 한다. 옥쇄를 각오하고, 나중에 버려질 위험까지 감수하면서 국민의 뜻을 따라야 한다.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찾아 국민의 뜻을 받들 수 있는 길을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지금 정치권이 그야말로 좌고우면 할 것 없이 가야만 하는 길이다.
원문 : 고일석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