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제와 어제는 ‘미스 박’이라는 용어 사용을 더 많이 해서 ‘미스’, ‘미스터’라는 말의 원래 의미를 찾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과 얼떨결에 토론하게 되었다. 매우 흡사해 보이는 두 트윗(서로 다른 사람이 작성한)을 보고서 여러 생각이 들어서 혼자 주절거렸기 때문이었다.
- 미스터 박은 그럼 남혐인가요?
- 미스·미스터라는 말을 하급자가 상급자에게도 더 많이 써서 본래의 의미를 회복해야 한다.
두 주장을 보고서 나는 꽃다지의 노래에 대해 얘기했다. 이명박을 ‘미스터 리’라고 불러서 동일한 시민의 위치에 놓아둘 수는 있으나, 그것이 ‘미스 박’과 같은 ‘젠더 하대’의 표현으로 소비되지 않는다고, 미스라는 단어와 미스터라는 단어는 사회적으로 동질하게 사용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동시에 그렇기 때문에 이 두 단어의 사용 빈도를 늘린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며 좀 더 근본적으로 여성 억압적 사회가 변해야만 단어의 불균형이 바뀔 거라고 했다. (저는 하부구조를 먼저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는 구좌파니깐여)
그리고 나는 혼자 주절거리고 이 이야기가 끝날 줄 알았는데, 두 번째 주장을 한 분이 갑자기 나에게 버럭 화를 내기 시작한 것이었다. 논점의 전개 과정이 굉장히… 기록해 둘만 하다고 생각하여서 남겨둔다. DOC를 둘러싼 여러 논점들이 한꺼번에 등장하며, 최근의 사회에서 발현하는 정치적 애티튜드에 대한 통찰도 제공하는 토론이었다.
1. 그럼 여혐이 창궐하게 내버려두자는 거냐?
여성 억압적 사회가 변해야만 단어의 불균형이 바뀔 거라는 내 말을, 그분은 ‘그러면 사회를 바꾸기 어려우니까 가만히 내버려 두자는 거냐’고 해석했다. 단어의 본래 의미를 찾아주는 것도 사회를 바꾸는 거 아니냐면서. 나는 단어의 빈도수를 늘리는 것보다 더 근본적인 것들을 바꿔야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뜻이라고 대답했다.
2. 계급이 낮은 사람이 ‘미스 박’이라고 호칭하는 게 왜 여성혐오인가?
자신은 박근혜보다 나이도 어리고 계급도 낮고, 심지어 여성이다. 그런데 자신이 박근혜를 ‘미스 박’이라고 호칭하는 게 왜 여성혐오냐는 질문이었다.
나는 “한참 나이도 어리고, 계급도 낮고, 심지어 성별도 여성인 내가 롯데호텔 파업을 지지하는 맥락에서 김대중을 향해서 ‘저 절름발이가’ 운운하면, 장애인 혐오가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분은 “절름발이는 욕이니 ‘미스’와는 다르지 않느냐”고 했고, “‘저 장애인이’라고 하면 내용이 달라지느냐”고 물었다.
그와 마찬가지로 박근혜가 저지른 범죄사실과 박근혜가 비혼 여성이라는 것은 아무 상관이 없고, 그렇기에 박근혜를 비판하기 위해 그녀의 비혼 여성 정체성을 가지고 오는 것은 올바르지 못하다고 다시 얘기했다.
3. 나보다 모자라 보여서 ‘미스 박’이라고 한 건데 왜 여성혐오인가?
그분은 여성 정체성을 다시 강조하며, 자신보다 ‘모자라 보여서’, 미스 박이라고 한 것이라고 했다. 그녀의 “경험이 미숙하고 유아적인 태도”는 범죄사실과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니냐고, “아이를 한 번이라도 키워 봤으면 세월호에 대해 그렇게 반응하진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분이 매우 명확하게 미소지니적 맥락에서 ‘미스 박’을 사용했다고 대답했다. “경험이 미숙하고 유아적”이라는 말은 ‘비혼 여성’과 동의어가 아니고, 공감 능력이 부족한 것도 비혼 여성의 특징이 아니라 박근혜의 특징인데, 대체 왜 ‘미스 박’이라는 표현이 그녀의 그런 특징을 두드러지게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고. 그게 바로 여성혐오라고 말을 하였다.
4. 비혼 여성이 아니라 젊은 여성처럼 굴어서 ‘미스 박’이라고 한 건데 안 되나?
그러자 그분은 내가 부당한 비난을 하고 있다며, 자신은 비혼 여성을 비난한 게 아니라 박근혜만을 지칭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 이유로 그분이 댄 것은 박근혜의 60대라는 나이였다.
60대 할머니가 비혼 여성이라는 게 왜 박근혜 비난이 아닌가요? 저 정도 나잇대 아줌마들은 젊은 여성을 지칭하는 표현으로도 ‘미스’를 씁니다. 60대 할머니가 나잇값 못하고 미스처럼 군다는 건데, 박근혜만 지칭한 비난이죠.
나는 초반에 ‘본래의 의미를 되찾아 줘야 한다’고 그녀가 말했던 것을 다시 언급했다. ‘미스’라는 말에는 젊은 여성이라는 의미가 없고, 그것 또한 파생된 의미라고. 적확하게 단어를 쓰자고 주장하면서 전혀 적확하게 쓰고 있지 않다고.
더불어 60대 여성이 비혼인 것은 비난할 거리가 되지 못하며, 젊은 여성이 미숙하다는 것도 나이주의적 편견이라고 대답했다. 젊은 여성 일반이라는 의미로 미스를 사용했다고 해도 여전히 여성혐오 표현이라고 했더니 그분을 나를 차단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이 토론은 DJ DOC와 ‘미스’라는 단어에 대한 논점들 외에도 나에게 정치적 애티튜드에 대한 통찰을 유의미하게 남겼다.
당신은 ‘권력자’다
내가 인용 리트윗을 한 것에 대해 그분은 먼저 분노하셨다. 인용 리트윗을 하면서 자신에게 반말했다는 것.
인용 리트윗은 당신에게 말을 거는 게 아니고, 내 팔로워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멘션과 다르다.
이렇게 설명했더니 그분은 대답했다.
그걸 모든 사람이 다 알 수도 없는데 그렇게 말씀하시는 건 문화권력 같네요.
‘권력’이라는 단어가 어떻게 사용되는지에 대해 나는 크게 회의적이다. ‘페북권력’이라는 말을 보고 학을 떼었던 게 얼마 되지도 않은 것 같은데, 대체 권력 개념을 이렇게 광범하게 넓혀서 뭘 어쩌겠다는 건지 모르겠다. 이쯤 되면 실제 권력까지 나아가는 방향을 잡기도 어려워 보인다.
약자인 나를 왜 비난하나?
이 분이 주장하면서 계속 덧붙이셨던 것은 자신은 ‘잘 모르는 아줌마’라는 것이었고, ‘그냥 아줌마’ ‘힘없는’ 같은 표현을 토론 내내 반복해서 사용했다.
최근 ‘수동공격성’이라는 말을 부당하게 사용하는 사례를 많이 본다. 단순히 상대방이 예의 바르게 말하기만 해도 수동공격적이라며, 자신처럼 품위를 잃고 나락으로 떨어지기를 바라는 못된 사람들.
허나 수동공격성이라는 말은 이런 사례에 사용되는 것이 맞다. 자신의 ‘자격 없음’ ‘민중 됨’ ‘피해자 됨’을 토론의 방패로 사용하는 사람들. 개별 토론에서는 그것이 방패가 될 수 없음을 밝힐 수 있으나, 이것은 일종의 사회적 애티튜드라는 생각이 많이 든다. 많은 사람들이 취하고 있는 태도다.
지금 OOO(한 적 없는 극단적인 말)라고 말하는 거냐?
토론을 하다가 그분은 자꾸 이상한 형태로 논의에서 튀어나가셨는데, 지금 떠오르는 것으로는
- 지금 박근혜를 미스터 박이라고 부르자는 거냐?
- 나에게 아줌마라고 스스로를 지칭하지 말라고 강요할 거냐?
등이 있다. 나는 그때마다 내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말해야만 했다. 자신의 머릿속에서 토론하는 상대의 지향을 극단적으로 상정한 뒤, 자신이 만들어낸 이미지에 상대방을 끼워 맞추고 말하는 것.
이런 사람들은 다양한 양태로 발견된다. 자기 머릿속에서 계속 이미지가 바뀌는 경우도 보았고, 어제 이분처럼 말하다가 자기가 구상한 극단적인 생각을 멋대로 덮어씌우는 케이스도 있다. 저렇게까지 노골적으로 드러나기는 쉽지 않겠지만, 인간이란 패턴화를 하기 때문에 저런 함정에 빠지는 건 누구나 쉬울 것이다.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를 차단하고 나서는 ‘미스 박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여사님이라는 말에는 반대하지 않겠지’ ‘힘없는 내가 뭘 어쩌겠어요’ 라며 혼자 위 패턴들을 계속 반복하고 계셨는데, 김 여사라는 단어에 페미니스트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여사님보다는 선생님이라는 단어를 쓰기 위해 어떻게 노력하는지는 알려드려도 부정하실 거라는 생각이 들어 씁쓸했다.
언어를 변화시키려는 노력은 언제나 훌륭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방향만 괜찮다면. 왜 여성혐오를 못 잃는지는 알지, 왜 모르겠어. 그게 얼마나 짜릿하고 편안한지. 여하간 나는 여성 정체성을 가진 인간이다. 빠지기 쉬운 함정들이 아주 많다. 잘 성찰하며 살아야겠다.
원문 : 이서영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