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며
‘콜라보네이션(Collabonation)’은 콜라보+네이션이다. ‘함께 만들어가는 나라’ 정도 되겠다. 부제처럼 달려있는 ‘시민✕안희정’은 안희정이 국가지도자가 되어 시민들과 이 나라를 함께 만들어가겠다는 표현이다. 일단 제목에서 평소 ‘민주주의자’임을 표방한 안희정의 의지가 드러난다.
이와 함께 안희정은 ‘경험한 적 없는 나라’라는 또 다른 부제도 붙여놨다. 이 부제는 책 맨 뒤쪽에 나오는 안희정의 ‘제언’과 연결되어 있다.
이 책을 펼치면 일단 일반적인 책에 비해 컬러와 사진이 많이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화려한 느낌도 들고, 멋을 잔뜩 부렸다는 생각도 든다. 아무래도 책 읽기가 만만찮은 사람들이 많은 점을 고려해서 심리적 부담감을 덜어주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이 책은 크게 10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다. 그 중에 충남도지사로서의 경험담과 자신의 비전을 담아낸 본문이 7개다. ‘시민✕국가’, ‘정부✕관료’, ‘성장✕번영’, ‘복지✕인권’, ‘환경✕지속’, ‘근본✕농업’, ‘외교✕안보’가 핵심이다.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려는 안희정이 시민들에게 내놓은 약속은 맨 마지막 챕터인 ‘제언’에 담겨 있다.
2. 민주주의자 안희정
이 책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민주주의’다. 충남도지사 안희정이 충남을 이끌면서 민주주의 원리를 관철하려 했던 노력의 과정과 결실이 담겨 있다. 안희정은 모든 정책을 추진하는 데 있어서 최대한 민주주의 원리에 맞게 주민들의 의사를 물어보고, 주민들의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해 노력했음을 진술하고 있다.
그의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의 배경은 이렇다.
민주주의가 효과적으로 작동할 때에만 합의된 정책을 만들어 낼 수 있고, 합의된 정책이 실현될 때에만 국가와 사회가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 민주주의가 21세기 국가 발전의 가장 큰 동력이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제아무리 현명하고 덕스러운 자의 탁월한 결정이라 해도 다중의 대화와 타협에 의한 결론보다 좋을 수는 없다.
– p15
3. 시민✕국가
그러나 본문으로 들어가면 시작 부분에서 의외의 결론을 만난다. 안희정은 ‘지방자치는 직업적 숙명’이라며 ‘민주주의를 직업으로 삼고 있는 직업 정치인인 나에겐 지방자치의 권한을 달라고 말하고 싶다’고 선언하고 있다.
이는 충남도지사로서의 한계를 경험한 결과물로 해석된다. 중앙집권체제에서 지방분권체제로 나아가야 한다는 게 안희정의 소신이다. 혁명을 꿈꾸던 80년대를 지나 90년대 들어 안희정은 노무현을 도와 ‘지방자치실무연구소’를 운영했다. 안희정은 민주주의가 가장 정의롭고 효과적인 국가운영체제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주권재민을 실현할 수 있는 지방자치가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직접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생각은 ‘풀뿌리 민주주의’에 기반하고 있다.
이는 충남도지사를 지방자치단체장으로서 경험한 한계로 더욱 확신이 되었다. 대표적으로 메르스 사태 당시 현장을 모르는 중앙정부가 지침을 내리는 비효율성을 적시하고 있다. 최일선 현장에 있는 보건소장이 상황을 가장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고, 따라서 보건소장이 현장을 장악해 대처해나가는 게 효과적이라는 사례를 제시하고 있다. 중앙의 질병관리본부가 모든 걸 통제하는 방식으로는 신속하게 대처하기 힘들다는 이야기다.
이 같은 경험을 바탕으로 안희정은 스스로 분권을 실천한다. 충남도의 15개 시군이 주관하는 사무를 모두 조사하고, 담당자 인터뷰를 거쳐, 합동토론회를 개최하여 그 결과 충남도가 갖고 있던 130개 업무를 시군에 이양하고, 70개의 업무는 시군으로부터 돌려받은 사례가 대표적이다.
안희정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다음 단계로 ‘지방자치’를 제시하고 있다. 지역의 문제를 지역에서 직접 해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주장이다. ‘우리 모두가 함께 이끄는 사회로 가자’라는 표현은 함축적이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속담도 거부한다. 민주주의 시대를 열기 위해서는 ‘사공이 많아야 한다’고 그는 주장한다.
헌법을 개정할 경우 프랑스처럼 ‘자치분권의 정신’을 헌법에 담아야 한다고 말한다. 프랑스는 2003년 헌법을 개정하면서 제 1조에 지방분권을 명시했다면서 우리도 헌법 차원에서 지방분권을 선언하고 지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94년 지방자치실무연구소를 만들어 이론적으로 연구하던 자치와 분권을 20년후 충남도지사가 되어 현장에서 직접 경험하며 그 신념은 더 확고해진 느낌이다.
4. 정부✕관료
안희정의 정부와 관료에 대한 인식은 노무현의 그것과 거의 비슷하다. 핵심은 ‘정부 혁신’이다. 시장과 정부의 역할을 재조정하고, 정부는 시장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관료들을 혁신의 주체로 보는 것도 노무현과 동일하다.
직업공무원을 개혁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기존의 정치행태에 대한 비판적 사고는 노무현이 관료를 바라보던 그 시각과 거의 비슷하다. 공무원들의 자발적인 혁신 의지를 강조하는 것도 그러하다.
이런 철학에서 충남도지사 안희정은 20011년 ‘독서대학’을 설치해 공무원들의 독서를 장려한다. 초기에 불만도 있었지만 이제는 매달 600명 정도가 독후감을 올리며 토론을 한다고 한다. 익명게시판을 설치해 속에 담아둔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도 했다.
안희정은 행정 혁신의 화두로 ‘코디네이터(Cordinator)’와 ‘거버넌스(Governance)’를 제시한다. 코디네이터는 부처별, 부서별 칸막이를 넘나드는 융복합 행정을 말하고, 거버넌스는 말 그대로 협치 행정을 말한다. 참여정부가 각종 위원회를 통해 거버넌스를 추진했던 그것과 비슷하다.
이를 위해 정보 공개의 투명성을 강조한다. 아는 게 있어야 관료들이 하는 일에 참견을 할 수 있다는 논리다.
이와 함께 모든 게 시장논리로 통하는 자본주의 시대에서 유일하게 공공의 이익을 위해 일을 하는 관료들 스스로 자부심을 갖고 유능하고 공정하게 업무를 처리하는 게 중요하다는 당부도 빼놓지 않았다.
5. 성장✕번영
이 챕터는 경제성장에 관한 이야기다. 결론적으로 ‘지속가능한 성장’을 말하고 있다. 정신과 물질, 풍요와 행복의 균형을 통해 지속적으로 성장이 가능한 나라를 만들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 안희정은 두 가지를 실천했다. 먼저 이익과 지지를 교환하는 형태를 가급적 택하지 않았다고 밝히고 있다. 즉 선출직 공무원으로서 유권자들의 표와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교환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둘째 시장원리를 존중하는 정책을 모색했다고 강조한다.
이 챕터에서는 주로 수도권 규제와 국토균형발전을 이야기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충남지역에 밀집해있는 화력발전소와 전기요금의 불공정성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충남지역이 화력발전소 밀집으로 인한 피해를 입고 있는 데 반해 어떤 이익도 없다는 것이다. 반면 화력발전소 피해가 없는 다른 지역이 전기요금을 동등하게 부과하는 것은 불공정하다는 문제 제기다.
이를 위해 안희정은 ‘신균형 발전전략’을 제시한다. 서울과 지방, 도시와 농촌 간의 불균형 거래에 공정한 가격을 반영하자는 제안이다. 지역별 전기요금 차등제가 대표적이다. 근본적으로는 석탄화력발전소 감축과 전기요금 합리화를 제시하고 있다. 수도권 규제 완화로 인한 지역경제 저성장의 문제도 제기하고 있다. 궁극적으로는 서울로 집중되어 있는 산업과 인재를 지역으로 분산할 수 있는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이 챕터에서는 사실 새로운 성장전략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균형발전전략 역시 참여정부가 역점사업으로 추진했던 것이라 그 내용이 오히려 부실해보인다. 왜냐하면 참여정부의 균형발전전략과 실행방안의 극히 일부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아마 충남도지사로서의 경험에 국한해 서술하고 있기 때문으로 이해하고자 한다.
6. 복지✕인권
안희정은 복지정책에 있어서 자기 책임성과 공동체의 조화를 강조하고 있다. 또한 시장논리에 부합하는 복지정책에 대한 선호를 드러내고 있다. 이 역시 참여정부 복지정책의 기조 위에 서 있다.
눈여겨볼 대목은 충남도 재정이 감당할 수 없는 복지정책을 지양하고 있다는 점이다. 성남시처럼 판교신도시 등의 신산업 단지 활성화로 인해 세수가 넉넉해 이런저런 복지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토대가 충남도에는 없다. 그래서 안희정은 4대 보험 중심으로 복지를 강화해나가고, 그 사각지대를 보완하는 방식으로 복지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역설한다.
진보진영의 젊은 도지사라서 복지정책을 많이 펼 줄 알았는데 별로 그런 것 같지 않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한다. 재정여건을 고려해 새로운 복지정책을 만들기보다는 기존의 정책을 가다듬고 있다는 밝히고 있다.
대표적으로 ‘행복경로당’ 사업이 있다. 충남도는 65세 인구가 16%를 넘어가는 전국 5위의 고령사회다. 시와 읍 단위 경로당에는 각종 편의시설과 문화프로그램이 있지만 마을 단위 경로당은 그렇지 못하다. 이에 안희정은 새로운 재정이 투입되는 방식으로는 추진하지 못하고, 대신 시군 단위로만 있던 자원봉사 인증기관을 읍면동 단위로 확대해 마을 공동체와 자원봉사단체의 협업 시스템으로 노인 복지 수요를 해결하고 있다.
이 챕터에서는 스토리의 점프업이 심해서 당황스럽기도 했다. 충남도의 소소한 복지정책 이야기를 읽다가 뒷부분에 이르자 갑자기 국가폭력과 인권, 자본주의의 폐해, 여성문제, 소수자 보호, 세계질서까지 등장하며 너무 거창했기 때문이다.
어떻든 마무리는 다시 복지정책 이야기로 돌아왔다. 복지에 필요한 재정확보를 위해 있는 법을 제대로 지켜 상속세나 증여세를 제대로 걷자는 주장, 직접세에 비해 간접세 비중이 너무 높다는 주장이 나온다. 이는 직접세 비중을 높이자고 명시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주장하는 것으로 읽힌다.
안희정은 공정과세를 통해 세수를 확보하고 이를 지출할 때는 성실한 시민의 근면성과 자기 책임성을 모욕하지 않는 방식의 정책을 수립해야 함을 역설한다. 행복경로당이 그런 사례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과제의 선결 조건으로 경제성장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7. 환경✕지속
이 챕터를 읽으면서 5번 항목의 ‘성장✕번영’과 이야기가 중첩되는 느낌을 받았다. 이미 앞선 챕터에서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야기한 바 있는데, 환경문제를 다룰 때 지속가능성이 언급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화력발전소 이야기도 다시 나온다.
이 챕터는 5번 항목에서 그냥 같이 다루었으면 어땠을까 생각해봤다. 그리고 환경을 다루어서 그런지 전반적으로 어떤 전문성보다는 수필을 읽는 느낌이 강했다. 장삼이사들도 대충 이야기할 수 있는 그런 환경 이야기 말이다. 충남도지사로서 이 부분까지 제대로 공부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아예 별개의 항목으로 다룰 필요가 있었을까?
환경문제의 해결책으로 민주주의를 제시하는 부분에서는 역설적이지만 ‘고민의 결여’가 읽힌다. 천성산 도롱뇽, 부안 방폐장 사태 등 환경문제는 항상 갈등을 불러 일으켰다. 결국 민주주의가 해법일 수밖에 없다.
안희정은 자신이 충남도지사로서 가로림만 조력발전소 사업의 해결 과정을 소개하고 있다. 1970년대 말부터 이야기가 나온 이 사업은 주민들이 찬반으로 갈려 극심한 갈등을 겪던 사업이다. 더구나 태안군과 서산시 간의 이해관계도 엇갈렸다. 어떻든 안희정은 민주주의 방식을 최대한 동원했다. 찬반으로 갈린 주민들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에서 시작해, 엄격한 환경영향평가 등을 거쳐 결국 2016년에 가로림만을 해양 보호구역을 지정하면서 일단락 지었다.
이 사례는 민주주의자 안희정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만하다. 하지만 민주주의의 역설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 이 책 전반에서 그렇다. 트럼프의 당선, 영국의 브렉시티, 필리핀의 두테르테, 유럽 전반의 극우세력 확장도 모두 민주주의라고 부르지 못할 이유가 없다. 정책 추진에 있어서도 민주주의의 역설은 충분히 가능하다.
8. 근본✕농업
이 책에서 가장 눈에 띄는 챕터는 농업에 관한 부분이다. 사실 농업문제는 역대 정권이 아직도 풀지 못한 난제이기도 하다. 그래서 농어민 빚 탕감이 주로 공약에 등장했고, 이걸로 대충 뭉개고 넘어온 역사가 있다.
안희정은 농촌 지역이 많은 충남도지사로서 농업 분야에 있어서는 확실한 강점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이 챕터를 읽으면서 농어업 중심의 지방자치단체장의 경험이라는 우물 안에 갇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도 함께 생겨났다.
우선 그가 충남도지사로서 ‘3농혁신’을 추진한 사례는 다른 대선 후보와는 차별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3농은 ‘농어업, 농어촌, 농어민’을 말한다. 3농 혁신은 농어업을 지속가능한 산업으로 육성하자는 취지다. 그 혁신이라는 것은 새로운 기발한 아이디어가 아니라, 이미 기존에 추진하고 있는 정책을 재정비하고 효율성을 높이는 방식이다.
그러나 그 성과는 아직 별로인 듯하다. 안희정 스스로 성과라고 서술하고 있는 내용은 ‘로컬푸드시스템’이다. 지역 농수산물을 지역에 연고를 둔 기업이나 학교의 단체급식용으로 공급하는 것인 것, 이 부분은 안희정 표현대로 시장논리를 민주주의로 뛰어넘는 것이 맞는 듯하다. 실제로 안희정은 농어업 문제의 해결책으로 민주주의를 내세운다. 시장 논리로만 풀 수 없다면서 정부가 나서서 민주주의 원리로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런 방식으로 한국의 전체 농어업을 살릴 수 있을까? 충남도에 국한하면 어느 정도 해결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과연 충남도에 국한했을 경우에도 로컬푸드시스템과 같은 자잘한 제도 도입으로 구조적인 해결이 가능할까? 우리나라 전체 농수산물의 수요와 공급, 그리고 물가, 수출과 수입 문제 등을 모두 펼쳐놓았을 때에도 민주주의라는 방식이 해결책이 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농촌이 잘 살아야 선진국이라는 명제에는 토를 달고 싶은 생각이 없다. 누구라도 그렇게 되기를 바랄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한국 농어업에 있어서 아주 오래된 만악의 근원인 농협 문제가 전혀 언급되지 않은 부분은 아쉽다.
안희정은 대안으로 농업 인프라 확충도 이야기하고 있다. 다만 그 전제로 우리나라 농촌 인구의 변화, 농업형태의 변화(소규모 농경에서 대규모 농경) 등에 대한 모색이 전혀 없는 점도 지나치게 충남도라는 자치단체라는 우물에 시야가 갇혀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었다.
9. 외교✕안보
이 주제는 사실 국민의정부와 참여정부 노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이야기들이다. 철학적으로는 평화의 가치를, 정책적으로는 대화를 통한 해결방식을 말하고 있다. 한 가지 눈에 띄는 대목은 내포신도시로 충남도청을 이전한 것에 대해 의미를 부여한 대목이다. 안희정은 오랜 고민 끝에 이렇게 깨달았다고 한다.
충청남도는 대한민국 서해안에 연접한 해양이고, 내포신도시 이전은 대한민국이 서해안 시대에 접어들어 이에 부응하기 위한 것이구나.
– p301
이 깨달음을 통해 안희정은 ‘해양건도’라는 목표를 세우고 환황해시대를 준비했다고 한다. 아시아경제 시대를 주도하고, 서해안이 공동 번영의 바다가 되어야 함을 역설하고 있다.
이 챕터에서는 ‘8.15는 승전일이다’는 문제의 인식이 다시 소개되고 있다. 물론 신선하기는 하다. 광복군이라는 존재를 감안하여 승전국이라는 자부심을 갖자는 이야기로 들린다. 그러나 나는 이 대목에서 안희정의 과도한 애국심, 과도한 사명감, 과도한 의욕, 과도한 자부심에 대한 우려가 생긴다. 이러한 안희정의 역사 인식은 그야말로 국뽕이 가득하다. 필요한 국뽕이야 마다할 이유가 없지만, 36년간 독립전쟁을 벌이고 마침내 제국주의와 싸워 승리했다는 안희정의 역사평가는 객관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실’인가?
10. 안희정의 제언
안희정은 책 말미에 8p에 거쳐 제언을 한다. ‘시대를 교체하자’고.
20세기와 완전히 결별하자고 한다. 이념대결을 뛰어넘자고 한다. 권위주의와 결별하자고 한다. 진영논리와 흑백논리를 뛰어넘자고 한다. 지도자는 헌법 정신을 지켜야 함을 강조한다. 정의롭고 공정한 법치국가를 만들자고 한다. 정부와 개인, 시장의 영역이 조화를 이루는 지도력을 발휘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공직사회를 효과적으로 재편하자고 한다. 시장경제의 활력을 높이자고 한다. 과학입국을 이끌어내자고 한다. 선진 복지국가를 지향하자고, 문화강국을 만들자고, 아시아 평화체제를 선도하자고 한다. 그러면서 ‘새로운 시대를 꿈꾸고 있다’고 말한다.
대통령 선거에 도전하게 된다면 그것은 개인이나 정파의 집권이라는 차원을 넘어서 새로운 정당정치의 시작이 되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민주당의 가치를 품어 안희정의 승리가 민주당의 승리가 되도록 하겠다고 선언한다.
11. 총평 : 오래된 미래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노뼈’다. 아닌 말로 노무현과 관련된 책은 거의 다 읽었다. 노무현의 연설문을 다 읽었고, 참여정부가 했던 일도 대부분 기억하고 있다.
그런 내게 안희정의 책은 새로움이 없었다. ‘노무현 아바타’였다. 한 권의 책에서 많은 걸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더구나 충남도지사로서 겪었던 일을 중심으로 서술하기로 한 이상 ‘충남이라는 우물의 한계’를 벗어나기는 힘들 것이다.
그럼에도 노무현과 비교해서 새로울 것 없는 이야기들로 ‘시대교체를 꿈꾼다’는 선언은 어떻게 해석할지 난처하다. 노무현을 계승하겠다는 표현이 없으니 알 수가 없다. 오히려 노무현을 뛰어넘고 싶어 하는 마음이 보인다. 안희정뿐만 아니라 문재인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면 노무현을 뛰어넘기 위한 그 어떤 새로운 설계도면을 제시해야 하지 않을까? ‘시대교체’라는 레토릭은 화려하지만 이 책에서 나는 새로운 설계도면을 찾아볼 수 없었다. 따로 준비하고 있을 것으로 본다. 그렇다면 ‘콜라보네이션’은 그냥 맛뵈기 정도로 이해하면 좋을 듯하다. 아직 본편은 나오지 않은 일종의 예고편 정도로 받아들인다면 이해가 된다.
안희정의 제언도 새로운 이야기가 없다. 오히려 일부 대목에서는 모욕감이 느껴졌다. 이념 갈등, 진영논리와 이분법적 대립을 뛰어넘겠다는 부분이 그렇다. 이념 갈등을 조장한 사람과 진영논리로 공격한 사람이 누군지 알 수 없다. 오히려 이념갈등으로 공격받고 희생당한 사람들도 갈등의 당사자로 지목될 수 있는 여지를 남기고, 진영논리로 공격당한 자의 자기방어 행위도 도매급으로 취급당하는 건 아닌지. 그 경계를 무너뜨려 양쪽 모두를 비난하는 것으로 읽힐 수도 있다. 노무현이 못다 한 꿈을 이어받아서 지역, 이념, 세대 갈등을 넘어보겠다는 취지라면 이해할 수 있다.
이번 책은 맛뵈기였으니 본격적으로 안희정이 그리고 있는, 그야말로 ‘시대를 교체하는 안희정이 꿈꾸는 나라의 설계도면’을 볼 수 있기를 바란다.
원문 : Soon Wook Kwon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