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현 대표가 박근혜 대통령을 끝까지 지키는 것을 보고, ‘그래도 의리는 있다’며 고 평가하는 경우를 가끔 본다.
먼저 현재의 박근혜 대통령이 어떤 사람인가. 권력 사유화의 몸통으로 기업의 돈을 뜯어냈고, 헌법 유린과 유체이탈성 발언으로 지지율 5%를 기록하며 매 주말 수십만의 국민들을 거리로 나오게 만든 대통령이다. 검찰 수사를 받겠다는 국민과의 약속도 어겼고, 여당에서도 다수의 의원들이 탄핵에 앞장서겠다는 의견을 밝힐 정도다. 단순한 개인의 실패가 아니라 국가적 실패, 정치의 실패를 초래한 대통령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리를 지키는 게 옳은 자세인가? 정치인은 사인이기 전에 공인이다. 공인이라면 개인적인 감정이나 인연을 떠나 공공을 위한 선택을 내려야 한다. 인간적으로 배신하라는 말이 아니다. 제대로 된 측근이라면 대통령이 진정한 사과와 퇴진을 하도록 설득하고, 인간적으로는 곁에 남아 위로하면 된다.
그러나 국민들의 공분을 외면하고, 그 어떤 사과나 책임 조치도 하지 않은 채 여당 대표라는 실제 권력을 놓지 않는 것은 의리가 아니라 몰염치다. 설령 의리라 하더라도 정치인의 본분을 저버린, 시정잡배나 필부들의 의리다.
민주가 어떻고, 자유가 어떻고, 근대화가 어떻고 주구장창 떠들던 사람들이 이러한 전근대적 의리, 마치 조직폭력배가 보스에게 충성하는 듯한 의리를 칭송하는 모습을 보면 한 편의 부조리극을 감상하는 기분이다. 더구나 이정현 대표가 어거지로 자리를 보전하는 것은 개인과 정파의 이득이 걸려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가오는 예산안 심사에서 당 대표의 권력으로 지역 예산을 많이 따내겠다는 욕심이 전혀 없을까? 예산 폭탄이라는 슬로건으로 순천에서 당선된 사람이?
정파적으로도 친박계는 폐족 직전에 몰렸다. 지금 당장 비박에게 당권을 내주고, 대통령 탄핵과 동시에 새누리당이 재창당 수순에 들어가면 친박계는 정치적 시한부를 선고받게 된다. 그렇기에 이들은 어떻게든 새누리당 간판을 유지하며 시간을 끌어야 한다. 지루한 대치가 계속되면 바닥을 찍은 대통령 지지율이 회복되고, 그러면 친박계가 다시 숨을 쉴 수 있다는 계산을 마쳤기 때문이다.
이정현 대표와 친박계는 대한민국 보수 세력이 살고 죽는 것보다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억지로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다. 공인과 사인의 처신을 망각하고, 자신들의 정치적 노림수 때문에 대표실 앞에서 10일 넘게 단식하는 위원장들을 외면하는 모습이 의리라면, 그냥 어디 촌동네에서 조폭 한 명 데려다가 대통령이든 장관이든 대표든 시키는 게 낫다.
최순실-박근혜 게이트는 공과 사의 구분이 무너졌기 때문에 터진 사건이다. 대통령에게 주어진 공적인 권력을 대통령 본인과 비선들이 사적으로 이용한 것이 최순실 게이트의 본질이다. 그로 인해 보수당에게 뼈 아픈 겨울이 찾아왔음에도 이정현 대표와 지도부, 그리고 의리를 부르짖는 지지자들은 전혀 반성을 모르고 있다. 지금 이정현 대표는 공적인 직위를 이용해 철저하게 사적인 인연과 이익을 수호하고 있을 뿐이다. 공보다 사가 중요한 사람들은 공인이 아닌 사인으로 남아야 한다.
이정현 대표와 친박 지도부는 사인으로 돌아가 순천이나 어딘가에서 박사모라는 이름의 조직을 만드는 게 낫겠다. 두툼한 팔뚝에 ‘배신은 죽음’이나 ‘차카게 살자’와 같은 문신을 새겨도 잘 어울릴 것 같다.
공공성이 생명인 정치권에서 시정잡배의 의리를 추앙하는 이들도 이참에 직업을 조폭으로 바꾸면 어떨까?
원문 : 장예찬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