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답한 시국, 돌아가는 길
요즘 시국에 답답해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대통령은 백만이 모인 촛불집회를 보고도 나는 자진 사임할 생각이 없다고 합니다. 소위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를 포함한 진박이라고 불리는 정치인들은 나라야 망하건 말건 대통령만 지키겠다고 야단입니다. 헌정을 유린한 그들은 바로 그 헌법이나 절차를 이용해서 버티면서 국민들과 정치인들을 분열시켜서 살아남고야 말겠다고 합니다.
그들이 살아남아서 정당화되는 미래를 생각하면 정말 암담하지만, 당장 딱히 박근혜를 제거할 묘수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여러 사람들이 스트레스를 받고 있습니다.
시국이 이렇다 보니 사람들에게서는 야당이나 문재인 안철수 같은 차기 대선 주자들이 딱히 뾰족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비판하는 소리가 나옵니다. 하지만 비판하는 TV방송들이나 사람들도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총탄으로 문제를 해결한 김재규가 그립다는 말까지 나오는 판입니다. 다 답답함이 극에 달하여 나오는 말이겠지요. 사드 배치나 일본과의 군사정보 교환 협정같은 것이 나라가 무정부상태인 상황에서 급진전 되는 것을 보고 있으면 그 답답함이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급하다고 해서 만들어 내는 답일수록 답이 아닌 법입니다. 예를 들어, 왜 총탄이 답이 아니겠습니까? 그것은 단순히 대통령을 살해하는 한 사람이 살인죄를 저지르게 되기 때문이 아닙니다. 현 시국에서는 오히려 그것은 작은 것입니다. 총탄으로 박근혜를 살해한다면 당장 다음 대선으로 대통령을 뽑을 수 있겠지만, 그것이야말로 한국의 정치를 극단적으로 망가뜨리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방법에 의존하기 시작하여 다음번에 대통령이 마음에 안 들면 또 쏴 죽일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이야말로 한국을 총살하는 일이지요.
훨씬 덜 극적인 방법입니다만 검찰이 현직 대통령을 구속 수사 내지 강제 구인 수사할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도 비슷합니다. 이번의 경우만 보자면 저는 구속하고 무기징역을 주고 싶은 마음이 가득합니다만, 검찰이 어떤 부패를 이유로 대통령을 강제구인한다는 예를 쉽게 만들면 다음번에는 다른 대통령이 별 이유 같지 않은 이유로 구속당할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이미 정말 이유 같지 않은 이유로 탄핵되어 직무정지까지 간 노무현 대통령의 예를 알고 있습니다.
죄질로 보자면 박근혜는 이미 탄핵되어 사라져도 한참전에 사라져야 하지요. 하지만 정작 기자들에게 질문조차 받지 않는 박근혜의 경우 탄핵은 쉽지 않다고들 말합니다. 그렇다고 탄핵을 쉽게 하게 만들면 오히려 훗날 국민의 편인 대통령만 쉽게 탄핵될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니 답이 아닌 것이죠. 적어도 답의 전부가 될 수는 없습니다.
저는 현재 답의 핵심적으로 중요한 부분이 충분히 강조되고 있지 못하고 있으며 이 때문에 답이 아닌 것이 답으로 강조되거나 답은 없다고 말해지는 일이 흔히 일어난다고 믿습니다. 답의 핵심적 부분은 대통령을 고립시키는 것이고 이를 위해 꾸준히 국민적 압박을 가하는 것입니다. 이 일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공동체 질서로의 포섭활동이기 때문입니다.
박근혜가 버틸 수 있는 이유는 사실 박근혜의 고집도 아니고 법적인 절차도 아닙니다. 아직도 그녀를 돕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물론 나름의 고집이 있겠지만 고립되어서 그녀에 대한 정보가 한정 없이 나온다면 그런 압력은 한 인간으로 참아내기 힘듭니다.
탄핵이 시작되었을 때 노무현은 즉각 외로운 처지가 되었지만 박근혜는 여전히 돕는 사람이 많습니다. 진박세력이라는 새누리당의 주류가 박근혜 편입니다. 비박도 여러모로 얽혀서 전력을 다해 박근혜를 공격하는 분위기가 아닙니다. 여야합의로 만들어진 특검법도 국회 법사위를 넘지 못하고 논란이 일고 있는 판이라더군요. 검찰이 지금 국민 편이라고 믿는 사람은 소수입니다. 박근혜와 유착한 재벌이 반드시 ‘반 박근혜’라고 할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최순실이나 박근혜의 범죄를 목격한 무수한 수의 일반시민들도 아직 전부 나서지 않고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그들의 범죄는 반드시 어딘가에서 은밀히 행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만난 사람도 그들을 목격한 사람도 엄청나게 많습니다. 그들은 전방위적으로 압력을 행사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별로 치밀하고 은밀하게 했던 것도 아니며 청와대에서 일했던 사람도 한둘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진정으로 최순실과 박근혜의 권력이 다했다고 믿는다면 증거는 더 많이 나와야 하고 나올 수 있습니다.
아직도 어떤 사람들은 눈치를 보고 있습니다. 과연 국민들의 의사가 단호한 것인지 말입니다. 국민들의 의사가 단호하며 구체적이라면 그들도 얼마 지나지 않아 국민들의 편을 들 것입니다. 결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임기가 1년 반도 안 남은 박근혜가 뭐가 좋아서 계속 편을 들겠습니까. 이럴 때 어려운 결심을 했는데 국민 정서가 흐지부지되면 자기만 손해 보기 때문입니다. 우리 국민은 위대합니다만 박근혜나 이명박을 대통령으로 뽑는 사람들이기도 한 것이 사실이지 않습니까.
만약 정말 국민들의 분노가 가라앉지 않고 이 상태로 다음 선거에 들어간다면, 국민들은 극한의 수단으로 그들을 괴롭게 한 사람들을 처벌하려고 할 것입니다. 그 처벌에 말려들어 가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사람들은 지금도 이게 제발 꿈이면 좋겠다면서 괴롭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버티는 박근혜를 보면서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광화문에 백만이 모여도 대통령이 무시하면 그만 아니냐 그런 건 소용없다고 하거나 평화시위가 무슨 소용 있느냐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 건 무시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행동과 국민감정의 표현 속에서 우리는 차분히 대통령을 고립시켜 가야 합니다. 그럴 때 더 많은 범죄의 증거가 나오게 되고 검찰이나 재벌도 이래서는 안 되겠으며 자신들도 최소한의 책임은 져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될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이 일은 어느 정도는 시간이 걸리는 과정입니다. 이 과정이 행해지지 않으면 우리가 택하는 답이 정치적 타협이든 법적인 절차든 심지어 민란과 쿠데타든 그 효과가 별로 없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부분을 망각하고 당장 어떤 신기한 아이디어를 내놓아서 현 시국을 돌파하라고 누군가에게 주문하는 것은 답이 될 수가 없는 것이죠.
이 머나먼 여정이 향하는 곳은
게다가 이 과정이란 게 결국 박근혜가 망친 대한민국을 재건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박근혜가 망친 대한민국의 핵심은 국민은 이 나라 안에서 기본적으로 평등하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작은 귀족세력을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온 국민을 위해 사용되어야 할 자원을 맘대로 낭비하고 휘둘렀습니다. 그렇게 되는 것에는 박근혜가 가장 큰 책임이 있겠지만, 그녀에게 가담한 사람들의 책임도 있습니다.
그들도 분명 처벌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들도 다시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에 포섭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싸움은 한정 없이 죽고 죽이는 싸움이 되어 한국은 망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포섭의 기본은 이쪽의 단합과 결의가 확실하다는 것을 보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핵심적 주장을 분명히 하는 것이죠. 이쪽이 법률지식이 있다거나 어떤 리더가 강력하다거나 하는 것이 핵심일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제2의 박정희가 되어서 제2의 ‘5.16쿠데타’를 하고 제2의 독재국가를 만들려고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진정한 국민의 나라를 살리고자 합니다. 뭐가 그런 나라를 위한 것인가를 고민하고 정치게임은 그다음으로 미뤄야 합니다.
나라를 구하기 위한 촛불집회는 단순히 박근혜를 사임시키기 위한 것을 넘어서 국가 공동체를 복원하고 치유하기 위한 것입니다. 치유에는 시간이 걸리니까 참을성도 필요하지요. 참을성 없는 섣부른 수술은 대한민국을 확실히 죽음의 길로 가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따지고 보면 지금의 악몽은 박정희가 총탄에 맞아 죽은 것에 상당 부분 그 이유가 있습니다. 그는 민중에 의해 끌어내려져서 그 가면이 벗겨져야 했습니다. 갑자기 죽어서 패배하지 않은 폭군으로 역사에 남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같은 잘못을 또 저지를 수는 없기에 많은 사람들이 고민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답답해도 꾸준하고 차분히 계속 참아나가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할 때 박근혜는 고집을 부리는 대가로 점점 추한 모습이 될 것이고 더욱 확실하게 ‘박정희, 육영수 신화’와 함께 몰락할 것입니다. 추한 권력이 추한 세상을 만들고 있습니다.
원문 : 나를 지키는 공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