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24일, JTBC 뉴스룸의 단독 보도로 시작된 최순실-박근혜 게이트 정국이 어느덧 한 달째를 맞고 있습니다. 하루하루 쏟아지는 상식을 벗어난 사실들 속에서 대한민국 국민들은 황당함, 좌절감 그리고 분노 속에서 지난 한 달을 보내오고 있습니다. 추운 날씨에도 광화문 광장을 가득 메운 백만 명의 시민들의 모습은 국민의 분노가 얼마나 큰지, 그리고 잘못된 현실을 바꾸어 내기를 얼마나 간절히 원하는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들의 마음속에 숨길 수 없는 감정 중 하나는 한 달여가 지난 지금에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현실에 대한 좌절감과 초조함일 것입니다. 뉴스에서는 매일같이 새로운 의혹과 사실들을 쏟아내고 있지만, 현실은 그대로인 듯합니다. 신뢰할 수 없는 검찰에게 수사를 맡겨야 하고 무능한 야당에게 정국을 맡겨야 하는 이 현실 속에서, 우리 국민들이 얼마나 오래동안 지금 가진 분노와 변화의 열망을 지켜낼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러다가 다시 팍팍한 생계에 묻혀 일상으로 돌아가게 되지는 않을지, 아무 일이 없었다는 듯 다시 사그라지지는 않을지 모두 초조해하고 있는 듯합니다.
오늘의 현실 속에서 ‘정의는 쉽게 오지 않고 세상은 단숨에 바뀌지 않는다.’ 라는 어른들의 말에 공감하게 됩니다. 좀 더 길게 이 정국을 바라보게 되고 장기적으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고민하게 됩니다. 그리고 과거 이와 비슷한 일들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워낙 유래없는 초유의 일이라 비슷한 일을 찾기도 힘들지만), 그 이후 어떻게 세상이 바뀌었는지를 되돌아보게 됩니다.
오늘 여러분들과 3년 전에 있었던 에드워드 스노든의 폭로 사건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 싶은 이유입니다. 미국국가안보국 (NSA)의 무차별 감시 프로그램을 폭로했던 에드워드 스노든 사건. 이 사건을 되돌아보면서 현재 최순실-박근혜 게이트를 좀더 긴 호흡으로 바라보고 우리가 무엇을 경계하고 준비해야 할지 이야기해 보고자 합니다.
2013년 6월 5일, 영국의 일간지 가디언(The Guardian)은 아침 조간을 통해 충격적인 사실을 폭로합니다. 미국국가안보국이 그동안 통신사업자 Verizon의 가입자 1억 2천만 명의 통화정보를 수집, 감시해왔다는 사실입니다. 국가기관이 민간통신사업자의 고객정보뿐만이 아니라 통화정보를 수집했다는 사실은 미국국민들에게 매우 충격적인 내용이었습니다. 최순실 씨가 개인 태블릿에 대통령의 연설문과 국가기밀문서를 보관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JTBC가 처음 보도한 수준에 맞먹는 충격이었으리라 생각됩니다.
청와대가 그랬듯, 미 국가안보국은 즉시 이를 부인하고 모든 감청은 정해진 법에 따라 특정 용의자들에 한해 이루어졌다고 반박합니다. 하지만 진짜 폭로는 다음 날 이어집니다. 가디언과 워싱턴포스트(Washington post)가 미 국가안보국이 미국 시민들의 사용하고 있는 이메일, SNS, 인터넷 포털 등의 모든 서비스를 감시할 수 있는 PRISM이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해왔다는 사실이 폭로합니다.
페이스북, 야후, 스카이프, 유튜브, 애플 등 미국 주요 IT기업의 서버 컴퓨터에 미 국가안보국이 접속해서 사용자들의 사용내역은 물론 이메일 내용, 사용자위치까지 감시해왔다는 폭로내용은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었죠. 미 국가안보국은 이러한 감시를 위해 9개의 미국 인터넷 기업의 서버를 사실상 해킹했으며 해저광케이블의 전자신호까지 가로채는 방법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미국 시민들의 충격이 높아지는 가운데, 독일의 일간지 슈피겔(The Spiegel)은 미 국가안보국의 감시가 미국 시민뿐만이 아닌 전 세계를 대상으로 행해졌다는 폭로를 합니다. 유럽연합의 주요 외교관들의 이메일, 통화내용이 감청되었으며 유엔본부에 대해서도 광범위한 감시가 이루어졌다고 보도합니다. 특히 2009년 영국 런던에서 있었던 G-20 회의에서 미 국가안보국과 영국정보부가 외교관들을 감청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폭로의 파장은 다른 나라로 옮겨가게 됩니다.
특히 10월 4일 가디언지와 워싱턴포스트는 미 국가안보국이 최소 35개국의 정상들의 통화를 도청해왔다는 사실을 폭로합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를 비롯해 엔리케 페냐니에토 멕시코 대통령, 지우마 호세프 브라질 대통령, 심지어 반기문 유엔사무총장까지 이 모든 감시의 대상이었다는 폭로는 외교갈등을 촉발시키며 미 국가안보국과 오바마 대통령의 위치를 뒤흔들 지경에 이릅니다.
외교갈등은 이 감시의 대상에 중국이 포함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최고조로 치닫습니다. 중국의 민간통신사업자들의 서버 뿐만 아니라 홍콩대학교, 칭와대학교 등 민간 서버에도 침투했으며 아시아의 통신케이블 업체의 서버를 통해 사실상 아시아 지역의 인터넷을 감청해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중국과의 관계 또한 급속도로 냉각되었습니다.
예정되었던 중국과의 외교회담은 취소되고 경제교류도 중단됩니다. 수십억 달러에 이르는 기업거래는 취소되고 특히 중국 내에서 클라우드 서비스를 전략적으로 확장해나가던 구글, 시스코 등 미국 주요 IT기업의 기업활동이 사실상 중단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미 국가안보국의 무차별적인 감시 프로그램에 대한 충격이 전 세계로 퍼지게 된 것에는 이 프로그램에 미국뿐만 아니라 호주, 캐나다, 영국, 뉴질랜드의 국가정보국이 함께 관여하였으며, Five Eyes라고 불리우는 이 다섯 개 나라의 정보국이 서로 이 정보를 주고받고 심지어 거래했다는 사실이 큰 기여를 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각국의 행정부는 국민과 의회의 사실 해명을 요구에 대응하느라 진땀을 흘리게 되었죠. 특히 영국 정부는 민간 통신사업자와 협력하여 유럽으로 통하는 해저광케이블을 감청했다는 사실에 대해 청문회에서 행정부 퇴진요구까지 받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전 세계적인 파장을 불러일으킨 미 국가안보국의 무차별 감시프로그램. 이 프로그램의 실체가 밝혀지게 된 것은 사실 용기 있는 한 명의 폭로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바로 전 미 정보국 직원이자 미 국가안보국 계약 업체의 직원이었던 에드워드 스노든(Edward Snowden)입니다.
스노든은 폭로 당시 29살의 나이로 미 국가안보국의 계약업체인 부즈알렌해밀턴(Booz Allen Hamilton)의 직원으로 하와이에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미 국가안보국의 감시프로그램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해서 일을 해오던 스노든은 이 프로그램이 상식적으로 용납되는 범위를 벗어났다고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미국 시민을 테러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함이라는 명분에서 시작된 이 감시프로그램이 테러예방의 목적을 벗어나 개인의 사생활을 아무런 규제 없이 들여다볼 뿐만 아니라 정치적 목적에 의해 악용될 수 있는 괴물로 커가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스노든은 오바마가 대통령이 이를 바로잡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지만, 오히려 오바마 대통령 취임 이후 감시체계가 더 확대되는 것을 보며 큰 실망을 했다고 합니다. 미 국가안보국과 미 정보당국의 개인 감시가 통제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느끼며 죄책감과 좌절을 느껴오던 스노든, 그는 미 정보국 국장인 제임스 클래퍼가 의회에서 “미 정보국이 시민들의 통화내용을 감시할 수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No”라고 거짓 답변을 하는 모습을 보고 폭로를 결심하게 됩니다.
그는 미 국가안보국의 감시프로그램을 입증할 수 있는 증거들을 비밀리에 다운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2013년 5월 20일, 스노든은 직장에 병가를 내고 미국에 돌아가겠다고 보고한 뒤 모든 증거를 들고 하와이를 떠납니다. 하와이를 떠난 스노든, 10시간의 비행 후 그가 도착 한 곳은 미국이 아닌 홍콩이었습니다. 스노든은 홍콩에 도착하자마자 호텔 방에 틀어박혀 한 달간 이 충격적인 사실을 전 세계에 폭로하기 위한 준비를 했습니다.
스노든이 선택한 가장 효과적인 폭로방법은 언론을 통해 이 사실을 단계적으로 알리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이 가진 기밀자료를 인터넷에 모두 올리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었지만, 스노든은 이 방법이 효과적이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과거 줄리안 아산지의 ‘위키리크스’ 사례를 통해 알고 있었습니다. 일반 시민들은 수많은 기밀문서들의 내용을 이해할 만큼 똑똑하지 않고, 언론은 그러한 기밀문서를 분석해서 독자들에게 전달할 만큼 부지런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만약 JTBC가 최순실 씨의 태블릿PC에 들어있던 모든 자료를 한 번에 다 보도했었더라면, 아마 국민들은 폭로 자체에만 관심을 가졌을 것이고, 다른 언론들은 태블릿PC의 입수 과정을 집중적으로 보도했을 것이라 생각할 수 있는 것과 같은 맥락이지요. 손석희 앵커가 그러했던 것처럼 스노든은 수십만 개의 파일을 하나하나 정리해가며 하나씩 순차적으로 시민과 언론이 이 이슈를 깨달아 갈 수 있게 폭로할 준비를 해나갔습니다.
스노든은 그동안 미국 정부의 과도한 감시체계에 대해 꾸준히 문제를 제기해온 믿을 수 있는 두 명의 언론인을 접촉해서 자신이 준비한 내용을 보도하게끔 합니다. 가디언지의 기자인 글렌 그린월드(Glenn Greewald)와 다큐멘터리 감독 로라 포트라스(Laura Poitras) 가 바로 그 두 명의 언론인입니다.
스노든이 어떻게 이 두 명과 처음 접촉하게 되었고 이후 보도를 준비하게 되었는지는 한 편의 첩보영화를 방불케 합니다. 당시 내용은 <Citizen four>라는 제목의 영화로까지 제작되어 2015년 아카데미 시상식 장편 다큐멘터리상을 수상하기에 이릅니다. 스노든이 폭로를 결심하고 하와이를 떠난 지 한 달 후, 글렌 그린월드는 가디언 지를 통해 이 모든 거대한 사실을 하나씩 세상에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전 세계를 충격과 분노로 휩싸이게 만든 그리고 무차별 감시프로그램을 주도한 미국과 서방국가들을 정의의 심판에 세운 스노든의 용기 있는 폭로. 그 이후 무엇이 바뀌었을까요?
스노든은 폭로 직후 미국법무부에 의해 ‘간첩 법’과 정부재산 절도 혐의로 기소되어 사실상 반역자로 수배되었습니다. 스노든은 미국 정부의 수배를 피해 제3국으로 망명을 시도했지만, 미국 정부의 압력에 의해 대부분 나라가 스노든의 망명을 거부했습니다. 미국과 적대적 관계에 있는 남미의 에콰도르가 스노든의 망명을 허가했지만, 에콰도르로 가기 위해 홍콩을 떠나 모스크바에서 환승하려던 스노든은 미 국무부가 스노든의 미국 여권을 강제취소하면서 모스크바 공항 환승 구역에서 국적 없이 한 달간 생활하게 됩니다.
미국은 스노든의 망명을 막고 그를 체포하기 위해서 모든 수단을 총동원합니다. 러시아에서 회의를 마치고 돌아오는 볼리비아의 대통령의 비행기에 스노든이 몰래 타고 있을지 모른다며 이 비행기를 강제 착륙시키는 유례없는 조치까지 취합니다. 결국 러시아가 스노든에게 망명허가를 내주어 현재 스노든은 러시아에 머물며 망명자로서의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모국으로부터 반역자의 낙인을 받고 러시아에서는 망명자로서의 불안한 삶을 살고 있는 스노든. 그의 용기 있는 폭로 이후 사회는 어떻게 바뀌었을까요? 그가 원했던 만큼 개인에 대한 무차별한 감시가 중단되고 이를 주도한 사람들은 처벌되었을까요?
스노든의 폭로는 미 정보당국의 무차별한 개인정보 침해에 대해 제동을 거는 효과를 거두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현 미국 정보당국의 시민감시에 대한 모든 법률과 프로그램에 대한 조사 및 검토를 지시하였습니다. 2015년 7월 27일, 미 국가안보국은 국장 명의의 성명을 발표하며 그동안 테러조사과정에서 수집해온 통화기록을 더는 사용하지 않고 폐기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합니다. 그동안 미 국가안보국의 무차별한 감시를 뒷받침해왔던 법인 ‘애국법’은 효력이 만료되었고, 더욱 엄격해진 ‘자유법’이 발효되면서 민간인 감시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었습니다. 이에 미 국가안보국은 테러리즘 수사와 관련이 있어서 전화통화기록을 수집할 때에도 조건을 엄격하게 하고 영장을 발부하는 법원의 정보를 공개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에 대해 많은 전문가들은 매우 부정적입니다. 여전히 국가기관의 시민감시에 대한 기준도 명확지 않고 정보기관이 필요하다고 판단할 경우 무차별한 감시가 이루어질 방법이 여전히 열려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스노든이 폭로했던 감시 프로그램들에 대한 제대로 된 조사는 이루어지지도 않았으며, 그 프로그램들이 폐지되었는지, 수정되었는지, 하물며 여전히 존재하는지에 대한 부분도 국가안보가 달렸다는 이유로 알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모든 것들을 주도해왔던 사람들에 대한 처벌은 단 한 건도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의회에 나가 미국 시민들에 대한 통화내용 감청이 불가능하다고 거짓 증언을 했던 미 정보국 국장조차 처벌받지 않았으며, 범죄행위로 명확하게 규정할 수 있는 감시행위에 대해서도 ‘국가안보’라는 명분하에 그 책임자와 행위자 모두 처벌받지 않았습니다.
지금 현재 상황만을 보자면, 스노든의 폭로는 기대했던 만큼의 결과를 가져오지 못한 것 같습니다. 스노든의 폭로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인 ‘무차별 국민 감시프로그램의 위법성’에 대해서 더이상 이야기 하고 있는 언론은 많지 않습니다. 폭로 3년이 지난 지금, 많은 사람들은 “스노든은 영웅인가 반역자인가”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폭로 초기, 미 국가안보국의 감시프로그램에 대해 열심히 보도하던 언론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스노든의 행위의 정당성 여부에 대한 보도로 초점을 옮겨가고 있습니다. 심지어 언론보도의 초점이 스노든 개인의 사생활과 그의 과거 행적으로 옮겨갔습니다. 불법적인 감시프로그램으로 처벌받아야 하는 사람들 마저 언론에 떳떳이 나와 스노든을 공격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미 연방하원 정보위원회 위원장인 마이크로저스는 NBC 인터뷰에서 스노든이 러시아 스파이였을 가능성이 높다며 미국민들을 선동하고 있고, 스노든의 기밀정보 취득과정과 폭로 과정의 정당성에 대해 처벌해야 한다는 정부관계자들의 주장이 힘을 받고 있습니다. 심지어 미국민들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마저 54%의 국민들이 그의 행위가 옳지 않았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최순실-박근혜 정국이 장기화되고 있는 지금, 여러분들은 에드워드 스노든 사건을 통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스노든의 폭로 이후 3년, 언론의 지면 속에 그리고 사람들의 머리속에 남아있는 것은 영웅일 수도, 그리고 반역자일 수도 있는 스노든이라는 인물 자체입니다. 정작 폭로의 핵심이었던 ‘국민을 대상으로 한 초법적인 무차별 감시프로그램의 정당성’ 그리고 ‘무차별 감시프로그램의 인권침해 여부’를 이야기 하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스노든은 그의 용기 있는 폭로 이후 그는 노벨상 평화상 부문 후보로 올라갈 만큼 많은 찬사를 받았지만, 그가 영웅시되는 것은 결코 스노든이 원하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는 사람들이 문제의 핵심보다 자신을 더 이야기하는 상황을 폭로 초기부터 경계해 왔습니다. 2014년 TED 강연회에 출연한 스노든은 “당신은 영웅입니까 반역자입니까?”라는 질문에 대해 아래와 같이 대답합니다
이 질문에 대해 고민하는 분들이 저에 대해 그리고 저의 성품에 대해 이야기 하십니다. 하지만 제가 이 질문에 대해 생각해볼때, 우리가 그렇게 고민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어떤 사람인지는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제가 세상에서 가장 나쁜 사람이라면, 여러분들은 저를 미워하시면 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제가 아니라 이슈 자체 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떤 정부를 원하는지, 어떤 인터넷 세상을 원하는지, 그리고 사람과 사회와의 어떤 관계를 원하는지에 대한 것입니다.
스노든은 자신이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를 경계했습니다. 스노든은 사람들이 자신이 아닌 자신이 이야기하는 이슈에 집중해주기를 원했습니다.
그는 처음 가디언지에 폭로를 하면서부터 자신의 신분을 감출 경우 사람들의 관심이 폭로자가 누구인지에 집중할 것을 우려해, 스스로의 신분을 위험을 감수하며 노출시켰습니다. 하지만 그의 바람과는 달리, 이 사건을 바라보는 언론의 프레임은 ‘이슈’에서 ‘사람’으로 옮겨갔습니다. 국가에 의한 무차별 개인 감시 프로그램에 대한 정당성 그리고 인권침해 여부라는 이슈보다 스노든이라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로 옮겨 갔습니다.
스노든의 사건을 떠올리며 지금의 최순실-박근혜 정국을 바라보는 저의 걱정이 이것입니다. 이 정국이 장기화될수록 처벌받아야 마땅할 사람들은 우리의 관심을 ‘이슈’에서 ‘사람’으로 몰아갈 수 있습니다. 의도적으로 스노든을 영웅으로 추켜세움으로써 사람의 관심을 몰아갔던 미국의 보수언론들이 그랬듯, 대한민국의 언론들도 그럴 수 있습니다.
JTBC와 손석희 앵커. 대한민국의 추악한 권력-정치-언론-기업의 유착관계를 드러내 준 그들에게 우리는 너무나 큰 빚을 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넘치고 넘쳐 그들을 우리의 영웅으로 치켜세우는 데에도 저는 망설임이 없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우리가 지금 집중해야 할 이슈보다 손석희 앵커라는 사람에게 관심이 더욱 쏠릴까 봐 걱정이 됩니다. ‘이슈’를 이해하고 판단하기 위한 ‘이성’은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합니다. 하지만 ‘사람’에 대한 ‘감정’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이슈보다는 사람에, 이성보다는 감정에 관심을 기울이게 됩니다. 이 정국이 한 달, 두 달을 지나 장기화 될수록 사람들의 관심은 자연스레 ‘이슈’에서 ‘사람’으로 옮겨가게 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번 정국이 진정으로 바람직한 방향으로 끝맺음 되기 위해서는 잠시 그들을 잊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이야기하는 ‘이슈’에 대해 귀 기울이고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 씨, 그리고 이에 공모하여 국가의 체계를 무너뜨리고 개인의 이익을 취득한 자들의 정확한 혐의가 무엇인지, 어떻게 그러한 행위가 가능했었는지, 이를 방조하고 협력한 자들이 누구인지, 어떻게 이들을 처벌하고 앞으로의 정국을 꾸릴 것인지, 앞으로 이러한 일이 발생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시스템을 구축해야 하는지 등이 바로 우리가 지금 관심 가져야 할 내용입니다.
이러한 관심이 앞으로 계속될 때, 광화문의 백만 촛불도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사그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자기는 아닌 척 방조하고 이득을 취했던 자들을 심판대로 끌어낼 힘을 유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보수언론들은 시간이 갈수록 이번 사태의 이슈보다는 이 사건을 둘러싼 사람들에 대해 우리의 관심을 돌리려 할 것입니다. 인간 손석희의 개인사부터 시작해서 그의 정치적 잠재력, 심지어 잠재적 대권후보라며 치켜세울지도 모릅니다. 한 명의 영웅을 치켜세우고 사람들의 관심이 거기에 몰려있을 때, 이번 사태의 본질을 몰래 묻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에드워드 스노든. 그의 용기 있는 폭로 이후 3년이 지난 지금 아쉽게도 그는 사람들의 머릿속에 그가 말하고자 했던 메시지보다 더 강력히 남아있습니다. 손석희 앵커와 JTBC. 우리는 그들을 물론 영웅으로 기억하겠지만, 그들이 제기한 이슈는 더욱 오래 기억해야겠습니다. 아니, 이번 사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는 그 날까지 이슈를 파고드는 이성에 대한 끈을 놓아서는 안 됩니다.
그것이 바로 언론으로서 그들이 국민에게 바라는 점이라 생각합니다.
원문 : 세상을 풀어보는 두루마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