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정보의 홍수’, ‘정보의 바다’라는 표현을 참 좋아한다. 보통은 이걸 긍정적 의미로 쓰고 있겠지만 내 경우는 반대다. 홍수와 바다의 공통점이라면 잘못해서 휩쓸렸다간 죽기 좋다는 것이다. 홍수는 휩쓸리는 순간 인생은 그걸로 끝이 난다. 바다는 도처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으며 크고 깊고 무서운 곳이다.
고약한 발상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실제로 그러하다. 정보가 많아지면 그중에 무엇이 가치가 있는 정보이고 무엇이 가치가 없는 정보인지 구분하기가 어려워진다. 그리고 실제로는 가치가 없는 정보를 리처드 번스타인은 ‘소음’이라고 정의 내리고 있다. 그러나 이 소음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많은 사람들이 정보와 소음을 구분하지 못하며 이 소음 때문에 잘못된 판단을 내리기 쉽기 때문이다. 고사에도 ‘증삼살인’이라고 아들이 효로 이름난 증삼의 어머니도 증삼이 사람을 죽였다는 말을 세 사람이 하자 그것을 믿고 담을 넘어 도망갔다는 얘기가 있지 않은가?
오늘 소개할 리처드 번스타인의 <소음과 투자>는 이처럼 넘쳐나는 정보 중에서 소음을 줄이는 투자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이 대부분 좋아하는 ‘나는 몇 배를 벌었다’, ‘단기간에 고수익’ 등의 자극적인 표현과는 거리가 먼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실망할 것 없다. 저 ‘몇 배를 벌었다’, ‘고수익’과 같은 것은 이 책에 따르면 완벽한 소음이니까 말이다.
수많은 개인투자자들이 자신이 어디에 투자해서 돈 좀 벌었다고 자신 있게 이야기하고 다닌다. 기간이 짧고 수익률이 높을수록 목에는 힘이 더 들어간다.
그런데 한번 장기로 따져보자. 그렇게 벌었다는 사람이 5년 후에도 여전히 벌고 있을까? 운 좋게 단기간 내에 큰 수익을 낼 수는 있다. 그러나 장기로 보게 되면 그렇게 번 사람들의 대부분은 그렇게 벌어들인 수익을 다 토해낼뿐더러 손실을 입는 경우도 많다. 그것은 이러한 투자를 하는 사람의 대부분은 소음에 의해 투자를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투자 기간은 극히 짧으며 기업과 주식에 대해 분석을 하기보다는 과거의 흐름과 추세 등을 보며 남들이 사니까 사는 케이스인데 이런 식의 투자가 대체 얼마나 갈 것 같은가?
1. 소음이 망치는 분산투자와 장기투자
최고의 투자는 ‘잃지 않는 투자’이며 여기에선 분산투자와 장기투자가 최선의 방법이다. 그러나 수많은 소음과 정보들은 투자자로 하여금 분산투자와 장기투자를 시시한 것으로 만들고 거들떠보지도 않게 만든다.
위에서 내가 얘기했잖은가. 세상에서 가장 잘 먹히는 얘기는 ‘단기간에 고수익’이다. 몇 달 만에 몇 배를 벌었다든가 혹은 1년 동안 투자해서 몇 배를 벌었다든가 모두가 이런 이야기를 영웅담처럼 쏟아내고 있으며 모두가 이런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대부분의 투자 게시판들이 이런 식이다. 이런 걸 계속 보게 된다면 분산투자와 장기투자를 할 수 있을 것 같은가?
5장은 소음과 분산투자에 대해서 다루고 있는데, 여기에서 리처드 번스타인은 분산투자의 최대 장점을 명확하게 밝혀두고 있다. 수익이 다소 줄어들긴 하지만 리스크는 크게 줄이는 것이다. 세상 대부분의 자산은 HRHR(High Risk, High Return)을 따르고 있기에 위험과 수익은 비례한다. 여기서 분산투자는 수익을 다소 희생하나 리스크는 그에 반해 크게 줄일 수 있기에 우월한 투자 선택이 될 수 있다 얘기한다.
여기서 번스타인이 얘기하는 분산투자는 일반적으로 얘기하는 포트폴리오 투자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총자본 투자를 이야기한다. 개인적으로 내가 옛날부터 생각해왔던 내용이라 읽으면서 연신 고개를 끄덕였던 부분이다.
나는 주변인들에게 농담조로 “사내결혼은 회사가 위험해질 때 둘 중에 하나는 퇴직을 강요받는, 재무적 관점으로 보면 불안정한 결합이므로 가급적 다른 업종의 사람과 결혼하는 게 소득원의 분산 측면에서 낫다”라고 한 적이 있었다. 물론 사람이 조건만 보고 만나는 것은 아니므로 이건 아주 진지하게 얘기한 건 아니지만 소득 다변화나 분산 측면에서는 최대한 다 흩어놓는 것이 좋은 게 사실이다.
일단 자사주는 분산 입장에서는 회사와 동조성을 높이는 것이기에 분산 측면에서 썩 좋지 않은 선택이고 내가 일하는 업종에 투자하는 것도 따지고 보자면 중복 투자에 해당한다. 이러한 총자본의 중복투자로 인해 닥칠 수 있는 최대의 위험은 로저 로웬스타인이 쓴 <복지전쟁>을 읽어보면 잘 알 수 있다.
해당 책에서는 디트로이트 자동차 빅3 노동자들의 퇴직연금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근로+과도한 퇴직연금 요구+자사주가 더해진 결과 회사와 산업이 침체되면서 노동자들의 자산도 무너졌을 뿐만 아니라 지역 자체가 침체되었다. 그 동네가 바로 지난 미국 대선에서 향방을 가른 러스트벨트다.
이러한 동반 몰락으로 자산이 손실되는 것을 최대한 줄이려면 주식 포트폴리오의 개념에서 더 나아간, 총자본 포트폴리오의 분산이 반드시 필요하다.
7장은 투자자가 왜 장기투자를 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챕터다. 단기간에는 각 전략이 기대수익률과 위험이 비례하는 형태인데 장기투자로 갈수록 위험이 감소하다 못해 10년이 넘을 경우 손실률은 0에 이르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왜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일까?
이렇게 되는 이유를 개인적으로는 분산투자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본다. 개별 종목의 소음을 줄이는 법은 다양한 자산에 분산투자를 하는 것임은 투자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사항이다. 이렇게 분산투자를 할 경우 개별 종목의 소음은 제거되어 마켓 리스크만 남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분산투자의 장점이다.
여기에서 투자 기간을 아주 길게 잡아버릴 경우 그 마켓 리스크 마저 시간에 흩어져버리고 만다. 즉, 장기투자는 시간에 대한 분산투자라고 보면 된다. 그렇기에 장기투자로 갈 경우엔 마켓리스크도 그 영향이 극히 미미해지는 것이다. 이거야말로 모두가 원하는 ‘지지 않는 투자’가 아니겠나.
수많은 데이트레이더들이 손실을 입고 나가떨어지는 것 또한 이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데이트레이더들은 소음으로 투자하는 트레이더들이며 극도로 짧은 시간 동안에 많은 회전을 일으킨다. 그러나 투자 기간이 짧을수록 손실 가능성이 높으니 그 와중에 반드시 큰 손실을 입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더군다나 거래비용까지 감안할 경우 그 손실의 규모는 더욱 커진다.
이처럼 분산투자와 장기투자는 그 어떤 것보다도 확실한 실적을 거두게 하는 투자 방법이지만 소음은 이러한 선택을 방해하게 한다. 왜 사람들이 이렇게 쉽게 소음에 흔들리는 것일까?
이것은 보통 그들이 감당할 수 있는 이상의 리스크를 지고 있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즉, 자산 자체의 위험보다 투자자가 자산의 위험에 대해서 확신하지 못하기 때문에 들고 있으면서 불안에 떨며 소음에 쉽게 흔들린다는 얘기다. <집중투자>에 나온 투자자들이 흔들림 없이 장기간 동안 집중투자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자산이 가진 위험성을 정확히 파악하고 투자자들이 가진 확신 또한 굳건했기 때문임을 생각해보자.
이를 해소하기 위해선 자신의 위험 수용도에 대한 명확한 판단이 필요하다. 6장은 위험 수용도에 관한 이야기로 개인적으로는 가장 흥미롭게 읽은 파트다. 위험 수용도야 우리가 펀드를 투자할 때에 작성하는 투자성향 확인 설문지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는데 문제는 이것이 불명확하다는 점이다. 이는 사람들이 인지하는 위험이란 수치화 된 것이 아닌 이상에야 개별적으로 다르게 인지하기 때문이다. 또 이러한 평가 기준은 동료집단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중개인과 투자자가 위험 수용도에 따라서 자산을 선택할 때 서로 생각하는 ‘받아들일 수 있는 위험’에 대한 인식이 달라서 맞지 않는 자산에 투자하게 된다. 왜 이런 경우 흔히들 있지 않은가? 누구 말 믿고 투자했는데 그 주식이 떨어지니까 불안해서 밤잠을 못 자는 경험 말이다.
나도 이런 일을 막기 위해서 누군가가 개별 주식을 물어보면 무조건 답을 회피하고 인덱스를 투자하라고 한다. 그런데 그렇지 않고 자신이 파악하지 못하는 위험에 투자를 감행하니 불안해서 소음에 이리 흔들리고 저리 흔들리게 되는 것이다.
번스타인은 이에 대해 ‘밤잠을 못 자면 과도한 위험을 지고 있는 것이니 방어적으로 포트폴리오를 재구성하라’라고 제안했지만 과연 이렇게 자신의 위험 수용도를 모르고 투자하는 사람들이 방어적으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할까?
난 매우 부정적이다. 방어적으로 바꿨다가 갑자기 시장이 좋아질 경우 이러한 사람들은 대부분 방어적으로 바꾸라고 권한 사람에게 심한 클레임을 걸기 때문이다. 이거 당해보면 진짜 골치 아프다. 물론 번스타인도 그걸 잘 알고 있기에 ‘안타깝지만 사람들의 건망증과 얇은 귀는 고칠 방법이 없다’라고 덧붙이고 있다. 내가 괜히 인덱스를 권하는 게 아니다.
2. 소음을 거스르는 투자
자, 이제 그러면 소음이 투자의 방해 요소임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투자에 있어서 이 소음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살펴볼 차례다.
3장에서는 이익 예상 라이프사이클을 소개하고 있는데 번스타인은 이 사이클을 소음과 연관 지어 설명하고 있다. 이 내용이 책의 끝까지 계속 다뤄질뿐더러 이 부분이 책의 핵심 중 하나라 반드시 정독하는 게 좋다. 이 내용은 하이먼 민스키가 금융불안정성을 이야기할 때 사용한 붐-버스트 모델과 비슷하다. 다만 민스키의 붐-버스트 모델은 부채에 대한 경제주체들의 태도에 의해 결정된다면 번스타인의 이익예상 라이프사이클은 정보에 대한 태도로 결정된다는 것이 차이일 것이다.
내용은 심플하다. 아무도 보지 않던 주식이 이익과 실적이 개선되면서 어닝 서프라이즈가 터지고 목표치가 수정되면서 점점 사람들이 여기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그로 인해 뉴스와 정보도 늘어나는데 그것이 늘어남에 따라 가격도 오르고 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며 긍정적인 전망을 해대니 이러한 기대 때문에 주식의 가격은 계속 상승한다. 그렇게 이 주식이 만들어내는 정보의 양이 최대가 되었을 때 기대가 어긋나면서 주식의 가격은 하락하고 이 주식은 추락한다.
부정적 어닝 서프라이즈가 터지고 실적치는 계속 하향을 하게 되며 결국 그렇게 끝없이 하락하고 버려지면서 더 이상 아무도 돌보지 않아 뉴스와 정보가 발생하지 않는 단계까지 간다. 이렇게 순환을 한다는 것이 바로 이익예상 라이프 사이클이다.
즉 이것이 의미하는 바를 설명하자면, 붐 과정에서는 자산 가격에 대한 긍정적 소음이 많이 발생하며 버스트 과정에서는 반대로 부정적 소음이 많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성장투자자들은 파는 타이밍을 못 잡아서 긍정적 소음이 많은 시기에 팔지 못하다가 버스트 타이밍에 팔아버리는 경우가 많고 반대로 가치투자자들은 진입 타이밍을 못잡아서 부정적 소음이 가득한 시점에 매입을 하므로 지나치게 오래 소유한다.
그렇기에 번스타인의 이익예상 라이프사이클과 소음에 따르자면 부정적 소음이 가득할 때 매입을 하는 게 아니라 소음 자체가 끊긴 시점에 매수를 해야 하고 긍정적 소음이 절정에 이른 시점에서 매도를 하면 성공한 투자자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한마디로 얘기해서 ‘소음을 거스르는 투자’를 해야 한다는 말이다.
소음을 거스르는 투자는 어떻게 할 것인가? 그것은 바로 8장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좋은 회사의 주식을 매입하여 장기보유하라고 한다. 좋은 회사는 전망도 좋을 테니 오래 보유할 만 하다.
그런데 이 책 <소음과 투자>는 정반대의 얘기를 하고 있다. 좋은 회사의 주식을 사지 말고 좋은 주식을 사라고 한다. 처음에 들으면 이게 뭔 소린가 싶을 텐데 요는 간단하다. 내가 보기에 좋은 회사란 누가 봐도 좋은 회사이고 모두가 좋게 평가하고 좋은 전망을 하는 회사라는 것이다. 이러한 회사의 주식이 저렴할 리 없다. 또한 이렇게 좋은 회사는 소음이 득시글하다. 3장에서 언급된 이익예상 라이프사이클로 보자면 순환단계에서 긍정적 소음이 급격히 증가하는 단계다.
좋은 주식이란 아무도 거들떠보지도 않아서 소음 자체가 끊겨버린 주식을 얘기한다. 물론 좋은 주식이니만큼 곧 상폐당할 종목은 아니고 그저 라이프사이클상 부침을 겪어서 사람들에게 외면당한, 그러나 장기 전망은 나쁘지 않을 종목이다. 이러한 주식의 경우 지금 당장은 여러 가지 이유로 좋은 회사가 아니지만 향후에 수익을 내기 시작하면 좋은 회사로 탈바꿈하기에 좋은 주식이라 할 수 있다. 이런 회사에 투자를 해야 한다.
소음은 그렇다 치고 그러면 수많은 소음 중에서 정보를 걸러내 투자를 선택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것은 마지막 12장에서 다루고 있다.
어떤 일을 할 때에 체크리스트 작성과 체크는 오류를 줄여주는 중요한 작업 중의 하나다. 이 장에서는 12가지 문제로 소음을 걸러내고 이 투자가 정말 옳은지를 판별하게 해준다. 어떤 투자를 하기 전에 이 12가지 질문을 던져보는 것만으로도 소음에 휩쓸린 투자를 크게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3. 개인적인 감상과 정리
이 책은 직접적인 투자법을 알려주는 책이 아니다. 그래서 그런 것을 기대한 사람은 실망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정도 투자 공부를 한 상태에서 본다면, 아니 공부를 할 때 반드시 봐야 할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투자법을 몰라서 투자에 실패하는 게 아니다. 많은 기법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요동치는 시장에서 이성을 잃고 야성적 충동에 휩쓸려 잘못된 결정을 내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러한 야성적 충동에 휩쓸리지 않으면 최대한 소음이 나의 투자에 개입할 여지를 줄이는 것이 좋다. 이 책은 그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개인적으로 번역본이 나오기를 매우 기다렸던 책인데 이제라도 나와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번역 또한 매우 깔끔하게 잘 되어 있어 잘 읽히지만, 개인적으로 이 책 자체에 아쉬운 점은 내용이 확실히 카테고라이징이 안 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 내용을 여기에서 설명하고 저기에서 또 다루는 식으로 쪼개어져 있다는 느낌이 드는데 예를 들어 ‘이 내용은 나중에 뒤에도 얘기할 거지만’이란 식이 되어 있다 보니 집중도가 다소 분산되는 점이 있다. 이것이 유일한 아쉬움이라면 아쉬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용은 ‘역시나 리처드 번스타인이구나’를 말할 정도로 충실하다. 내가 위에서 설명하고 요약하고 의견을 더한 내용들은 책의 일부분에 불과하고 진짜 알짜배기들은 아직 많이 남아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투자자라면 꼭 읽어봐야 할 책이라 생각한다. 소음에 흔들릴수록 시장에서 살아남기란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 <소음과 투자>는 투자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가이드북이라 할 수 있겠다.
원문 : Second Com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