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적이며 쓰레기 같은 마인드
얼마 전 트윗에서 유명하신 한 오픈리 게이 인사께서 커밍아웃에 관해 이야기한 것을 보고 확 열이 받았어요. 그는 아버지에게 커밍아웃하지 않은 한 활동가를 공격했죠. 그것에 대해 제가 ‘커밍아웃은 개인이 알아서 할 일이다, 가족도 생각해야 한다’고 하자 이런 답변이 돌아왔어요. 그리고 그와 그의 추종자는 저를 ‘유교적 마인드’ 혹은 ‘쓰레기 같은 마인드’라 하더라구요.
“그냥 ‘개인’이 아닌, 역할모델이 되는 인권운동가입니다. 십여 년간 온전히 커밍아웃하지 않고 버티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정신 차리시기 바랍니다.”
단 몇 줄의 제 생각을 쓰레기라 칭한 건 그의 인간됨 때문이니 논외로 하구요 (쓰레기 발언은 그의 추종자입니다), 전 사실 부모님께서 뒷목 잡고 쓰러지실까 봐 (가능성 농후해요) 혹은 제 머리 박박 밀고 가두어버릴까 봐 (가능성 농후해요) ‘안’하고 있답니다. 이 생각이 과연 유교적인 마인드고 쓰레기 같은 생각일까요? 커밍아웃이란 무엇일까요?
가이드라인의 부재
구글링을 했어요. 한글로 했어요. ‘커밍아웃’ 쓰잘데기 없는 지식인이나 편견에 쌓인 기사들이 검색되었어요. 영어로 했어요. ‘coming out’ LGBT를 위한 커밍아웃 가이드가 주욱 검색되더군요. 커밍아웃, 커밍아웃 이야기하지만 우린 아직 커밍아웃에 대해 제대로 이야기하지도 않았어요. 정리도 제대로 안돼있어요. 정리된 것을 알리기 위한 활동도 잘 하지 못하고 있어요. 활동가들 빠듯하고 바쁘거든요. ‘ㅅ’
뭐 그건 그렇고, 그럼 제 생각이 과연 ‘유교적 마인드’일지 영문 가이드를 살펴봤어요. 거의 모든 가이드들은 대충 이러한 형식으로 구성되어요.
커밍아웃의 의미
커밍아웃의 과정
커밍아웃의 방법
결론
문서에 따라서는 역사가 나오기도 하고 클로짓과 오픈리에 대한 이야기들, 미디어에서 다루는 방식 등등 곁다리를 이야기하기도 해요. 하나씩 살펴볼까요?
커밍아웃의 의미와 고려해야 할 점들
커밍아웃의 의미는 진정한 ‘나’로 살기 위해서에요. 커밍아웃의 과정에서 첫번째는 스스로에게 커밍아웃하는 거에요. 둘은 연결되어 있죠. 이들은 스스로를 인정하는 것도 커밍아웃으로 봐요. 그것이 첫번째 과정이죠
This preliminary stage, which involves soul-searching or a personal epiphany, is often called “coming out to oneself” and constitutes the start of self-acceptance. (위키피디아)
이후로 커밍아웃의 의미를 블라블라 설명해요. 그러나 대부분 문서에서 커밍아웃의 역사를 다룰 때에나 사회적인 의미를 분석하지 나머지는 모두 ‘개인적인 의미’랍니다.
그리고 커밍아웃을 잘하기 위한 과정과 방법을 이야기해요. 커밍아웃을할 때 고려해야 할 것들을 알려주기도 하죠. (일리노이 대학 카운슬링 센터)
Think about what you want to say and choose the time and place carefully.
무엇을 말할지 생각하고 시간과 장소를 신중하게 생각하라.
Be aware of what the other person is going through. The best time for you might not be the best time for someone else.
그에게 어떤 일이 있는지 살펴라. 너에게 알맞은 시간이 꼭 타인에게 알맞은 건 아니다.
Present yourself honestly and remind the other person that you are the same individual you were yesterday.
자신에 대해 솔직히 설명하고 내가 어제의 나와 같은 사람임을 타인에게 주지시켜라.
Be prepared for an initially negative reaction from some people. Do not forget that it took time for you to come to terms with your sexuality, and that it is important to give others the time they need.
부정적인 리엑션을 보일 때 어떻게 할지 준비하라. 당신의 섹슈얼리티를 이해시키는 건 시간이 오래 걸린다. 타인에게 시간을 주어라.
Have friends lined up to talk with you later about what happened.
커밍아웃 후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말해줄 친구를 만들어라.
Don’t give up hope if you don’t initially get the reaction you wanted. Due to inculcated societal prejudices mentioned earlier, some people need more time than others to come to terms with what they have heard.
당신이 원치 않았던 리엑션을 보이더라도 포기하지 말라. 어떤 사람들은 사회적 편견이 더 강하기 때문에 시간이 더 필요하다.
거의 모든 이야기는 ‘타인을 배려하고 포기하지 말라’는 거에요. 타인을 배려하는 건 그냥 당연한 거랍니다. 절대 쉽지 않아요. 그렇게 막 남 등떠밀 수 있는 과정이 아니랍니다. 본인이 성공했다 해서 남들을 종용할 수 없어요.
‘그’의 문제는 이것만이 아니에요. 그는 ‘여기까지’만 이야기하죠. 여기 더 중요한 문제이면서 빼먹으면 안 되는 항목들이 있어요.
강요하지 마라
이러한 가이드 거의 모두에는 꼭 이런 이야기가 써 있어요. 커밍아웃은 철저히 개인적인 일이다.
The coming out process is very personal. This process happens in different ways and occurs at different ages for different people.
커밍아웃의 과정은 매우 개인적이다. 방법과 시기 모두 사람마다 다르다. (일리노이 대학)
Don’t let anyone pressure you into ‘coming out’. It’s your life; it’s your decision; it’s your choice. You don’t have to come out.
누구라도 당신에게 커밍아웃을 강요하지 못하게 하라. 당신의 인생이고 당신의 결정이고 당신의 선택이다. 커밍아웃을 꼭 해야 할 필요는 없다. (UC버클리 성평등 리소스 센터)
Most gay people are “out” to some of their family members, friends, and acquaintances, but usually not to all of them. Even after accepting one’s homosexuality (and thus coming out to oneself), the decision to come out to others remains a vital question that usually has to be answered on an individual basis.
많은 게이가 가족과 친구, 지인들에게 커밍아웃한다. 그러나 모두 그런 것은 아니다. 정체성을 확립한 후라도 커밍아웃을 결정하는 건 지극히 개인적 층위의 질문과 답변이다.(GLBTQ 백과사전)
위험성
게다가 커밍아웃이 야기할 수 있는 위험도 설명하죠.
If you are young and live with your parents and they pay for you to live (e.g. food, clothes, schooling) and you think they might “kick you out” of the home or reject you.
당신의 나이가 어리고 부모님께서 음식, 옷, 교육 등을 위한 지급을 한다면 커밍아웃 후 집에서 쫓겨날 가능성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UC버클리)
Loss of employment or housing are also possibilities that some LGBT people face.
일부 LGBT들은 직업이나 거주 공간을 잃게 될 수도 있다. (일리노이 대학)
Not everyone will be understanding or accepting.
모두가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Family, friends and co-workers may be shocked, confused or even hostile.
가족, 친구, 직장동료가 충격을 받고 혼란스러워할 수 있다. 어쩌면 당신을 적대시할 수도 있다.
Some relationships may permanently change.
일부 인간관계는 영원히 바뀔 것이다.
You may experience harassment, discrimination or violence.
희롱과 편견과 범죄를 각오하라.
You may lose your job.
일자리를 잃게 될 수도 있다.
(Human Right Campaign 의 트랜스젠더의 커밍아웃 중)
사실 어떤 문화권에선 죽을 수도 있다는 문서도 있었는데, 편향적이고 예외적이고 섬뜩해서 뺐어요. 하여간 이런 위험에 대해 대부분의 문서는 경찰 신고를 하거나 사회단체에 이야기해서 자신의 권리를 찾으라 조언해요. 우왕 좋겠다. 그런 권리도 법적으로 보장되다니요! -_-;
위선과 꼰대질
섬세한 접근, 상대를 배려하는 태도 등은 나의 정체성이 부끄러워서도 아니고 유교적인 마인드도 아니에요. 오히려 개인적인 것이고, 타인도 나와 똑같이 존엄한 개인으로 존중하기 때문이죠. 커밍아웃을 권하는 건 좋아요. 그러나 그렇게 하려면 밝은 면만을 이야기해서는 안 돼요. 어떤 위험이 있을 수 있는가도 이야기 해야 해요. 그리고 남 등 떠미는 짓거리는 하면 안 돼요. 자기가 좋다고 남들에게도 좋을 것이라고 믿고 종용하는 것은 꼰대질이죠. 장밋빛 환상만을 심어주고 강요하는 건 위선이에요. 잘못되면 ‘악’이 될 수도 있어요.
나와 네가 다르다는 사실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성소수자 아닌가요? 전 커밍아웃 이슈를 가장 많이 언급하는 저명인으로써 그가 많은 성소수자에게 지침이 될 수 있는 가이드 문서를 만들어 주셨으면 좋겠어요. 트윗으로 책임지지도 못하실 남의 인생 비평은 그만하시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