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럴드 포드는 미국의 제38대 대통령이다. 원래 공화당 하원 원내대표였는데, 닉슨 대통령의 부통령이었던 스피로 애그뉴라는 작자가 뇌물수수로 날아가는 바람에 부통령으로 지명되었다. 이후 닉슨이 워터게이트로 날아간 바람에 대통령으로 승계되었다. 이런 대통령이 있었나 할 정도로 지금은 존재감이 없는 대통령인데, 전임은 닉슨, 후임은 지미 카터였다.
두 가지 면에서 기록이 있다. 국민의 선거를 거치지 않은 채 부통령도 하고 대통령도 했다는 점과, 역대 대통령들 중에서 최장수 기록을 세우고 돌아가셨다는 것. (2006년 93세로 사망)
임기도 닉슨의 잔여임기를 채우는 것이었으니 2년 165일간만 대통령직을 수행하였다. 이후 로널드 레이건이랑 당내경선을 붙어서 이겨 선거에 나갔지만 카터에게 패배하여 재선은 실패하였다.
이 분이 미국 역사에서 영 존재감이 없는 이유는 정말정말 인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공화당 사상 가장 인기 없었던 닉슨의 승계 대통령이라는 점도 있는 데다가 더 심각한 것은 포드가 취임하자마자 닉슨을 사면해 버렸기 때문이다. 당시 오일 쇼크로 경제는 엉망진창이었는데, 정치적으로는 닉슨 사면까지 해 놨으니, 얼마나 미국 국민들이 싫어했겠는가?
그런데, 포드 대통령은 닉슨 사면하면 국민들이 좋아할 줄 알고 했겠는가? 전국민들에게 오만 개쌍욕을 얻어먹고 있는 닉슨을 사면하면 그 욕은 자기에게 돌아온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걸 모르는 바보는 없다. 그 결정으로 인해 포드 대통령 개인에게 돌아오는 정치적 이점은 정말 하나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점은커녕 어마어마한 불이익이 확실했던 결정이었다.
그런데도 포드는 닉슨을 사면했다. 서로 친해서? 닉슨한테 돈 꾼 게 있어서? 닉슨이 무서워서? 전혀 아니었다. (물론 친하기는 했다고 한다. 친했으니 부통령으로 지명했겠지)
미국사회가 워터게이트의 추문으로부터 다시 일어서 통합되어야 한다는 소신 때문이었다. 다시금 닉슨을 법정에 올려 미국을 들끓게 만들 수 없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는 양당 모두에게 ‘양식 있는(decent)’ 인물이라고 불렸다. 탁월한 웅변을 하는 이는 아니었지만, 성실하고 솔직한 인물로 평가받았다. 신임 대통령으로 처음 한 일은 원내흑인의원단 모임을 백악관에 초청한 일이었고, 미국노동조합 간부들을 초청했고, 남녀평등 헌법 수정 지지자들을 초청했다. 야당인 민주당이 환영할 만한 인사를 부통령으로 지명했다.
이런 통합적인 행보로 그는 닉슨의 그림자를 백악관으로부터 싹 씻어냈다는 평가를 받았고, 닉슨의 후임이었지만 무려 71%의 지지를 얻은 인기 만점의 신임대통령이 되고 있었다. 딱 임기 31일까지만…
그리고 임기 32일째, 닉슨의 사면을 발표하고 나서는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 되어 버렸다. 31일간 얻었던 인기는 한순간에 사라지고, “포드를 감옥으로”라는 구호가 터져 나왔고, 언론은 똘똘 뭉쳐 적대적이 되었고, 지지율은 40%대로 폭락했다.
그러나 포드의 이 결단은 시간이 지날수록 다른 평가를 받았다. 미국이 닉슨의 그림자에 질척거리는 상황을 가장 빠르고도 단호한 방식으로 벗어날 수 있었다는 평가이다.
증오를 없애고, 치유를 시작해야 한다
이 구호. 당시에는 아무도 듣지 않았지만, 이후로 대다수가 동의했던 바로 그 구호. 훗날, 포드는 자신이 그리 훌륭한 대통령이 아니지 않았냐는 기자의 질문에 “저는 포드이지, 링컨이 아닙니다.”라는 답변을 한다. 프리미엄 브랜드인 ‘링컨’이 아니라, 대중 브랜드인 ‘포드’라는 자기의 이름을 빗댄 고급 유머였다.
그러나 링컨 같은 단호한 리더쉽이 필요할 때와 포드와 같은 고통스러운 리더쉽이 필요할 때가 있을 것이며, 당시 포드의 리더쉽은 훗날 자신을 엄청나게 비난했던 언론인으로부터 이런 말을 듣게 만든다.
존경과 감사를 드립니다. 대통령님.
내가 미국이라는 나라를 정말 좋아하는 여러 이유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공화당의 빛나는 정치인으로 나는 포드를 꼽는다. 아무런 정치적 업적도 남기지 못했던 그 평범한 대통령.
원문 : 하승주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