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씨의 전남편 정윤회의 인터뷰를 읽었다. 나는 간신과 충신이라는 단어가 유독 눈에 거슬렸는데 그 이유중 하나는 요즘 신문 방송을 보다보면 이런 식의 발언이 꽤 나오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새누리당 대표 이정현은 박근혜의 충신이다라는 식의 발언이다.
‘신하’는 사소한 비유인가?
간신과 충신이라는 단어는 그 것을 읽는 사람에게 일종의 최면상태와 착시를 만들어 낸다. 그것은 우리가 아직도 왕조시대, 전근대시절을 살고 있다는 착시다. 예를 들어 ‘최순실은 간신이다’라는 말을 들으면 우리는 자연스레 그 문장을 긍정하거나 부정하려고 한다. 비록 우리가 신하라는 말이 왕조시대에나 쓰이던 것을 의식적으로는 알고 있어도 우리는 그것은 그저 사소한 비유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간신과 충신을 비롯한 전근대 시절의 단어를 쓰다보면 우리는 자연스레 그 단어의 밑에 깔린 비민주적인 하나의 가정을 받아들인다. 예를 들어 신하라는 말은 왕이나 주군을 전제하는 것이고 왕과 일반 백성 혹은 주군과 주군외의 다른 사람들을 구분하는 것을 기본에 깔고 쓰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신하같은 말을 쓰게 되면 왠지 조선팔도를 다 불태우는 한이 있어도 주군에 대한 의리를 저버리면 안될 것처럼 느끼게 된다. 그래서 실제로 이정현처럼 공인으로서 대한민국의 시민들에 대한 의무가 있는 사람이 개인적 친분에 의해 국민전체를 저버리는 행위를 해도 멋진 사람, 의리를 아는 사람으로 보이게 되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국민들에게 월급을 받는 공무원이나 경찰이나 검찰이 대통령이 잘못된 줄 알아도 그 명령을 듣게 된다. 박근혜나 최순실이나 물대포 맞아서 돌아가신 백남기나 세월호 사고 때 죽은 고등학생들이나 모두 평등한 시민이라는 사실이 보이지 않게 된다.
그것은 전근대적 언어다
살인범을 숨겨주고 도와서 다른 사람을 죽게 만들어도 그런 것을 의리라고 할 수 있는가? 그것은 범죄다. 그것이 범죄라는 사실을 극단적으로 흐리게 만드는 장치가 바로 전근대적인 언어들을 쓰는 것이다. 왜냐면 인간이 평등하지 않은 사회에서는 그것이 범죄가 아니기 때문이다. 왕이나 양반이 노비를 죽이는 것이 죄가 되질 않는다. 여종을 강간하거나 인간을 돼지나 말과 바꿔서 팔아먹어도 죄가 안된다. 전근대적 시대의 단어들은 그런 사회를 기본으로 깔고 쓰는 것인데 어떤 사람들은 마치 자신들이 귀족이고 왕족인 것처럼 그 단어들을 쓰곤 한다.
나는 애초에 현시국의 바탕에 깔린 가장 기본적 문제가 전근대적 사고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박정희가 우리 국민들을 볼 때 그들은 독립적 사고가 불가능하여 독재를 당해도 싼 사람들로 본 것이고 그 이후 그의 권력을 계승받고 그 최면을 유지해서 호의호식해온 사람들이 의식적으로 무의식적으로 이어온 것이 바로 이 전근대적 사고 방식이다. 그리고 보수 신문을 포함하는 친여당적인 사람들은 지금도 널리 이런 단어들을 쓰고 있다.
그리고 전근대적 사고방식
이 전근대적 사고방식의 근본적 문제점은 국가는 평등한 인간들의 공동체라는 발상이 무시되며 국가는 왕 혹은 지도자로 불리는 특정 인물의 사적인 소유물로 여겨진다는 점이다. 정윤회의 인터뷰를 찬찬히 읽어보면 이같은 점이 잘 들어난다. 그의 인터뷰는 오만방자하기 짝이 없는데, 그것은 지금 국민이 분노하고 있는 비리들이 정윤회가 권력을 가지고 있었을 때도 다 저질러졌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그는 자기가 있었을 때는 이런 문제가 없었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그가 말하는 문제란 지금 밝혀지고 있는 비리들이 드러나게 된 것이 문제이며, 지나치게 해먹어서 국민적 공분을 일으킨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정윤회같은 사람의 두뇌는 세상은 어차피 불평등하고 어차피 법과 현실은 다르다는 것이 너무나 강하게 인식되어져 있기 때문에 모두가 비리를 저지르고 있으니 공격당하는 것은 재수가 없거나 정치적인 이유로 공격당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뿐, 불평등한 일처리에 대해 반성하는 것은 전혀 없다. 실제 그의 인터뷰를 보면 이런 국민적 분노속에서도 국민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은 하나도 없고 (그가 ‘그 분’이라고 칭하는) 박근혜가 마음이 참 괴롭겠다는 말뿐이다. 이런 말도 안 되는 태도를 정당화하는 기본 장치가 바로, 군주와 신하의 관계를 말하는 충신과 간신의 정서다.
그들은 국가의 적이다
민주공화국이란 우리가 모두 한국이라고 부르는 단일한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모두 적이 아니라 서로 돕고 살아야 하는 ‘동지’다.
그런데 충신이니 간신이니 하는 조폭적 단어들은 암묵적으로 한국 사회의 대부분의 사람들을 무슨 천연자원이나 개돼지같은 가축처럼 보이게 만든다. 그런 단어가 가정하는 세상은 아주 작은 공동체를 전제한다. 보스와 부하, 주군과 신하로 이뤄진 이 작은 패거리는 다른 모든 사람들을 이용하고 속이고 착취해서 자기들만 잘 먹고 잘 사려고 한다. 그런 윤리관에서 나쁜 인간이란, 오직 조직을 배신하는 자 뿐이다. 대량학살을 하는 것보다 조직이나 주군에 대한 배신자가 더 나쁜 것처럼 보인다.
초등학생은 우리가 이런 세상을 살고 있지는 않다고 배운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다 큰 사람들이, 아니 특히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 배울만큼 배웠다고 사회적 지도자 운운하며 기관의 장을 맡기도 하는 사람들이, 우리가 여전히 조선시대 이전의 세상을 살고 있음에 틀림없다고 믿고, 그렇게 행동하며, 그런 자신의 언행에 부끄러움이 없다. 그것이 바로 다수의 국민들을 배신하는 행위이고 그들에게 사기를 치는 일이라는 자각이 없다.
지금 많은 국민들이, 특히 많은 청소년들이 분노하고 억울해 하고 있다. 그건 무엇보다도 자기의 행동이 뭐가 잘못된 것인지 알아채리는 기색도 없는 이런 사람들의 언행 때문일 것이다. 우리나라가 살려면 애국심이 필요하다. 애국심이란 박근혜에 대한 충성심이나 다른 특정 인물 혹은 정당, 특정 회사에 대한 충성심이 아니다. 대한민국이라는 평등한 개인들이 모인 공동체를 사랑하는 마음이다. 백만의 시민들이 희생적으로 거리에 나와도 저것들은 전부 돈받고 나왔거나 조종당했을 거라고 믿는 사람들은 이런 말들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지만 말이다.
그래도 희망이 있는 사람들은 촛불집회에 나가서 열린 마음을 가지고 보면 알 수 있다. 애국심이 뭔지, 민주공화국이 뭔지. 그걸 느낀 사람들은 간신이니 충신 운운하는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면서도 그들에 대해 분노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들은 국가의 적이다.
원문: 나를 지키는 공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