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최초의 상용 컴퓨터인 퐁(Pong)이 아타리사에서 만들어진 이후부터 지금까지, 아이들은 컴퓨터 게임에 열광해 왔고 부모와 교사들은 그런 아이들을 보며 걱정해왔다. 하지만 그렇게 열광하던 아이들이 어른이 되고도 남은 지금에 와서도 게임 하는 아이들에 대한 걱정은 식을 줄을 모른다.
때는 어느덧 21세기가 되어 인터넷이 확산되면서 부모들은 온라인 게임이라는 새로운 유형의 게임에 열광하는 아이들을 발견하게 된다. 그런데 부모나 교사들은 이전에 그들이 열광하고 우려해왔던 게임과 인터넷을 통해서 플레이하는 게임은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는 것을 간과하는 것 같다. 어떤 차이가 있는지 간단히 정리해보자.
싱글 플레이 게임: ‘혹시 게임하다 친구들과 잘 지내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혼자서 게임에만 빠져있다보면 친구들과 잘 지내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하는 걱정은 인베이더, 겔러그, 보글보글, 테트리스 같은 전통적인 컴퓨터 게임들에 대해서나 어울린다. 이런 게임들을 싱글 플레이 게임이라고 부른다. 요즘도 이런 싱글플레이 게임들이 많이 나온다. 하지만 어떤 한가지 게임만 계속 하는 아이들은 거의 없다. 아이들에게 싱글플레이 게임은 일종의 살아 움직이는 만화책이나 모니터 속의 장난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오래 갖고 놀다 보면 싫증이 난다.
그리고 컴퓨터를 상대하는 싱글플레이 게임에서는 자기 마음대로 충동적으로 행동하고 결과에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이런 행동패턴이 게임 밖 현실에서도 나타나지 않을까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다. 물론 이런 걱정은 좀 지나치다. 인간이 가진 기본적인 지능 중에 하나는 자기가 처한 상황에 맞게 행동할 줄 아는 능력이다. 어떤 아이가 게임 속에서 하듯이 현실세계에서도 마구잡이로 행동한다면, 그 아이는 집에서 하는 행동과 학교에서 하는 행동이 어떻게 달라야 하는지도 모르는 아이일 것이다.
멀티플레이 게임: ‘혹시 게임하다 너무 공격적으로 되는 것은 아닐까?’
인터넷을 통해서 하는 온라인 게임 중의 대표적인 유형이 멀티플레이 게임이라는 것이다. 멀티플레이 게임이라고 해서 상당히 새로운 게임인 것 같지만, 사실 이 멀티플레이 게임이야말로 인류가 오래전부터 즐겨온 게임의 원형이다. 바둑이나 장기, 트럼프나 화투도 전형적인 멀티플레이 게임이니까 말이다. 단지 이제는 인터넷을 통해서 상대와 겨룬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래서 대표적인 멀티플레이 컴퓨터 게임인 <스타크래프트>는 ‘사이버 시대의 장기’라고도 불린다.
이렇게 실제 상대 게이머와 승패를 다투는 멀티플레이 게임을 하다 보면 어떤 아이들은 자신 이외의 모든 사람을 싸움 상대로만 여기는 듯 호전적인 태도를 보이거나 게임 속에서 지면 엄청나게 스트레스를 받고 화를 내서 부모를 놀래킨다. 하지만 놀라지 마시길, 그런 모습은 그 아이가 승부욕이 강하고 도전적이라서 어른이 되어서도 저돌적으로 자기 할 일을 해낼 가능성을 의미하기도 한다.
보통 우리는 게임은 게임일 뿐이라고 말하고, 놀다가 생긴 일은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상대방이 장난감이거나 컴퓨터일 경우에나 맞는 말이다. 진짜 사람을 상대로 게임을 할때는 언제나 규칙을 지키고 상대를 존중할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이 공공질서의 시작이다. 문제는 실제 사람을 상대로 플레이하는 멀티플레이게임을 마치 컴퓨터를 상대로 하는 싱글플레이 게임 하듯이 하려는 경우이다.
어떤 아이들은 게임 속에서 남을 부당하게 공격하거나 절도, 사기등을 저지르고도 별로 문제의식을 느끼지 않는다. 게임은 게임일 뿐이고 게임 속에서 일어난 일은 모두 장난에 불과하다고 변명한다. 사실 어린 시절의 모험심과 규칙을 위반하고 싶은 욕구는 일맥상통한다. 하지만 그것이 잘못된 게임 윤리의식과 결합되면 게임 밖에서도 삐뚤어진 태도로 연결될 수 있다. 따지고 보면 멀티플레이 게임에서 룰과 예의를 지켜야 하는 이유가 현실 세계에서 룰과 예의를 지켜야 하는 이유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게임 속에서 그것을 깼다면, 현실 세계에서도 깰 수 있다. 따라서 게임 속에서, 특히 실제 사람을 상대하는 멀티플레이 게임 속에서 삐뚤어진 행동은 놀이나 장난으로 넘어가 줄 것이 아니다. 오히려 멀티플레이 게임은 규칙의 중요성을 깨우치게 하고 나쁜 사람과 좋은 사람을 구별하는 지혜를 배우는 산교육 장소로 여겨야 할지도 모른다.
MMORPG: ‘혹시 친구 사귀려고 억지로 게임을 하는 건 아닐까?’
마지막은 MMORPG라고 불리는 다중사용자 온라인 게임이다. 이런 MMORPG에서는 여러명의 게이머들이 집단으로 사냥이나 전투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게임 내에서 위계질서나 신뢰, 의리와 충성심, 자기의 명예나 불명예 같은 것이 중요한 가치로 부각 된다. 게임 속에서 실력이 뛰어나다고 남들에게 인정을 받는 것은 마치 현실사회에서 성적이 좋아서 상장을 받는 것과 같은 경험이 된다. 이런 게임에서 남들에게 인정을 받으려는 욕구가 생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이런 것이 지나치면 다른 사람이 나에게 내리는 평가에 지나치게 의존하거나, 자기가 원치 않으면서도 다른 사람들에게 의존하는 등의 병적인 사회관계도 나타날 수 있다. 자기는 원하지도 않는데 친구들 때문에 억지로 게임을 한다거나, 게임 속에서 의도하지 않았던 범죄를 저지르는 등의 문제가 생길 수도 있는 것이다. 이것이 MMORPG만의 문제인 것처럼 놀라실 필요는 없다. 우리 인간들이 사회생활을 하는 곳에서는 언제나 발견되는 문제였으니까 말이다.
모바일 게임: 소셜 네트워크 자체가 이미 게임의 일부가 되었다
스마트폰을 포함한 모바일 플랫폼을 바탕으로 플레이하는 모바일 게임에는 위의 세 게임 유형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특히 모바일 게임의 가장 큰 특징은 그것이 앞서 언급한 모바일 SNS와 연계된다는 점이다. 그런 면에서 게임분야에서는 모바일 게임의 대부분을 SNG (Social Network Game)라는 새로운 유형의 게임으로 접근한다.
한국 내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애니팡>이나 <캔디크러쉬>, <쿠키런> 같은 이들 SNG의 형식 자체는 대개 혼자서 하는 스탠드 얼론 게임이다. 그러나 게임의 결과는 SNS와 연결되어 다른 친구들과 비교되며, 또한 친구들끼리 서로에게 도움을 주거나 도전을 하는 등의 상호작용이 가능하다. 즉, 모바일 플랫폼의 컨텐츠들의 공통적인 특성인 휴대성과 단속성의 한계에 어울리는 ‘짧은 시간에 할 수 있는 캐쥬얼 게임’을 유지하되, 이를 SNS의 사회적 연결성에 결합함으로써 혼자서 하되 남들과 연결되어 있는 상태를 유지하는 새로운 형태의 게임이 만들어진 것이다.
단순한 스탠드얼론 게임의 피드백 구조는 쉽게 질려버린다. 즉, 게임 자체가 제공하는 경험이 지극히 얕고 보상체계도 복잡할 수 없기 때문에 게임을 하려는 동기 자체를 오래 지속하기 어렵다. 반면에 SNS에서는 친구들과 함께 공유할 경험을 끊임없이 요구한다. SNS사용자들이 셀피를 비롯한 온갖 사진을 올리고 여기저기서 찾아낸 기존 내용을 자발적으로 네트워크에 공유하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친구와 결과를 공유하고 서로 비교하거나 교류할 수 있는 게임은 매우 적절한 공유 자료의 공급원이 된다. 이제 SNG의 사용자들은 게임 자체에 대한 동기보다는 소셜 네트워크에서 제공되는 사회적 동기로 게임에 참여한다. 그렇기 때문에 갈수록 SNS의 컨텐츠와 SNG를 명확히 구분하기도 어려워진다. 소셜 네트워크 자체가 이미 게임의 일부가 되었으며, 그 속에서 모바일 게임은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활발히 유통되는 컨텐츠로 융합되었다.
인터넷 시대에 게임은 이전과 다르다
정리하자면, 인터넷 시대에 게임은 이전의 게임과 다르다. 혼자 틀어박히는 싱글플레이 게임이 주류이던 시절에도 아이들은 친구들과 사귀기 위해서 친구들과 함께 놀기 위해서 게임을 해 왔지만, 지금은 더더욱 그렇다. 미니 홈피 하나 없거나 유행하는 온라인 게임 캐릭터 하나 없는 아이는 친구들을 사귈 수가 없다. 모두들 그것을 하기 때문이다.
부모의 입장에서 아이들이 자기 방에서 컴퓨터 모니터를 향해 비명을 질러대는 모습을 봐주기는 쉽지 않지만, 아이들은 예전부터 그렇게 해왔다. 단지 예전에는 부모의 눈에 띄지 않는 학교 운동장이나 동네 뒷골목에서 그랬던 아이들이 이제는 자기집 자기방에서 같은 일을 하고 있을 뿐이다. 인터넷에 접속하는 순간, 그 방은 더 이상 공부방이 아니라 학교 운동장도 되고 놀이터도 되는 것이다.
무조건 게임을 못하게 할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하는 게임이 어떤 종류인지, 그 속에서 무엇을 하는지 알아보려는 노력을 할 때다. 그것이 아이들의 세계를 이해하는 첫걸음이다.
원문: 싸이코짱가의 쪽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