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다시 말하지만, 끌어내릴 방법은 없다
현실적으로 박근혜를 끌어내릴 방법은 없다. 이게 냉정한 현실이다. 청와대는 심지어 “대통령은 헌법 부여한 책임을 목숨 내놓고라도 지킬 것”이라는 입장까지 내놨다. 이게 민주적 절차에 따른 투표의 힘이다.
스스로 물러나는 하야의 경우 이미 청와대가 명확하게 의사가 없음을 확인했다. 국회가 추천하는 총리를 임명하겠다는 입장이 최후통첩인 셈이다. 그러나 이는 야권과 시민들이 요구하는 내용과는 거리가 멀다.
2. 박근혜를 실질적으로 압박하는 것은 철저한 진상규명
국민들과 야권의 공조를 통한 압박은 그야말로 압박일 뿐이지, 당사자가 압박으로 느끼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지금 박근혜와 청와대의 정신세계와 정무감각으로는 전혀 압박으로 느끼지 않을 것 같다. 이건 집회 무용론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힘을 모아 촛불을 들되, 당장 어떤 결과가 나오지 않더라도 실망하지 말라는 이야기다.
문재인 전 대표가 15일 길거리 투쟁을 선언했다. 전국을 순회할 가능성도 있다. 문재인은 현역 국회의원이 아니기 때문에 투쟁의 방법이 이것 말고는 없다. 그래서 존중한다. 시민들의 에너지를 모아나가는 과정으로 이해하면 된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정의당이 길거리 투쟁에 나서는 것은 여전히 반대한다. 물론 주말에 함께 하는 정도는 좋다. 그러나 지금 국회가 할 일은 국회 안에서 특검법을 통과시키고, 청문회와 국정조사를 전방위적으로 실시하는 것이다. 의회에서 할 일이 많다. 시민들은 자꾸 국회의원들 길거리에 나오라고 요구해서는 안 된다. 길거리는 시민들이 지켜야 할 전선이고, 국회의원들의 최전선은 국회다.
진상을 낱낱이 규명하는 것만큼 박근혜를 압박하는 수단은 없다고 본다. 그 진상규명을 통해 박근혜 퇴진의 근거를 계속 축적하고, 집회의 동력을 계속 살려 나가야 한다. 이를 에너지 삼아 정치적 협상력을 발휘해 하야를 이끌어내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생각한다.
3. 끌어내릴 수 없다면 일단 직무부터 정지시키자
이 모든 것이 결국 ‘시간’이다. “지금 당장 물러나라”고 외치고는 있지만 방법은 없고, 앞에서 언급한 정치적 협상을 통한 하야도 진상규명 절차를 거쳐서 실질적으로 압박으로 작용해야 가능하다.
남은 것은 탄핵이다. 이는 헌법과 법률이 정해놓은 절차다. 나는 줄곧 탄핵에 부정적인 입장이었다. 우선 정략적으로(하도 정략적이라는 표현을 부정적으로만 사용해서 아예 정략적이라고 밝히기로 했다) 시기의 문제가 염려되었다. 단순히 역풍의 문제가 아니다. 박근혜를 지지했던 유권자들의 상실감, 허탈감, 분노라는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것으로 봤다. 그들도 마음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고 본다.
이제는 어느 정도 되었다고 본다. 그것은 여론조사가 말해준다. 즉 박근혜를 찍었던 사람들도 이제는 기꺼이 탄핵에 찬성할 수 있을 정도는 됐다는 이야기다.
탄핵이 실제로 성사될 가능성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탄핵안이 가결되든 부결되든 그 자체로도 역사적 의미는 있다고 판단한다. (이렇게 판단하게 된 것은 탄핵에 대해 여러 가지 근거를 들어 설명해주신 많은 분들 덕분이다)
무엇보다도 탄핵안이 국회에서 가결되는 순간 ‘박근혜는 대통령 직무를 정지해야 한다’는 점이 가장 장점이다. 이 상태로 임기까지 버틸 생각을 하고 있는 박근혜다. 그렇다면 일단 대통령 직무를 정지시키는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황교안이 대통령 직무대행을 하겠지만, 현재 상황에서는 가장 최악의 시나리오가 가동되더라도 과거 소련 공산당이 친위 쿠데타를 일으켰다가 보리스 옐친에게 진압당하고 완전히 폭망의 길로 갔던 그 수준 이상은 안 될 것으로 판단한다.
4. 지금부터는 풀 코트 프레싱으로
지금 청와대가 노리는 것은 ‘교착상태’를 만드는 것이다. 지금 이미 그 입구에 들어섰다는 게 내 판단이다. 교착상태가 노리는 것은 집회의 피로감, 야권의 분열, 더 나아가 국민들의 분열이다.
농구 경기에서 보면 주로 4쿼터 정도 되면 풀 코트 프레싱 작전이 구사되고는 한다. 전방위적인 압박작전이다.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 할 시기가 아닌가 한다.
- 문재인 등 현역 국회의원이 아닌 정치인들은 전국적인 집회에 시민과 함께한다.
- 시민들은 동절기로 접어드는 점을 감안하여 운동이 되는 집회를 조직한다(감동근 아주대 교수님이 ‘촛불 둘레길’ 아이디어를 제안하셨음)
-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정의당 현역 국회의원들은 자신의 권한, 그리고 국회가 할 수 있는 모든 권한을 활용하여 철저한 진상규명에 돌입한다(별도의 특검법 통과, 청문회, 국정조사)
- 특검법이 통과될 경우 특검은 수사에 정통한 사람으로 임명해 현 검찰도 모조리 압수수색할 수 있을 만큼 강도 높은 수사를 진행해야 한다. 현 검찰은 공범이라는 판단이고, 검찰 캐비닛을 모두 뒤져야 한다.
- 국회는 즉시 탄핵절차에 돌입한다. 현재까지 나온 의혹 중에 사실로 확인된 것만 추려서 탄핵 이유로 기재하면 된다. 노무현 탄핵 근거는 뭐 대단한 게 있었나. 비박계가 탄핵안 발의부터 참여할 가능성도 있고, 탄핵안 가결에 필요한 200명도 가능하다는 판단이다. 가결이 안 되면 그것대로 정치적으로 심판받을 가능성이 높으니까 무의미하지 않다.
5. 언론보도가 전부 사실은 아니다
지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한 단독 보도가 그야말로 홍수다. 수많은 단독 보도 가운데 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이 허위인지 알 길이 없는 상황이다. 그 모든 보도를 사실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제아무리 끌어내려야 할 대통령이지만 우리는 사실 여부도 따지지 않고 흥분에 휩싸여 ‘올 단두대’를 외치는 마녀사냥에 나서서는 안 된다.
그 비극의 마녀는 누구도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가급적 언론기사를 공유하지 않는 이유다. 어차피 다소간의 시간이 걸리더라도 사실은 드러나게 마련이다. 최종적으로 확인된 사실을 토대로 분노하든, 주먹을 치켜세우든, 그런 인내하고 절제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민주주의는 인내심을 요구하는 제도다. ‘대화와 타협’이라는 단어에 함축된 것은 ‘시간’이다. 시간을 견뎌내는 것이 민주주의고, 민주주의를 외치기 위해서는 그 시간을 견뎌낼 인내심과 자제력이 있어야 한다.
원문 : Soon Wook Kwon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