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2주를 기다린 이유
새누리당에서 탄핵 이야기가 나오니까 기다렸다는 듯이 “민주당이 골든타임을 놓쳤다”, “민주당이 우물쭈물하다가 비박들한테 당하게 생겼다”, “민주당 하는 게 대체 뭐냐” 이런 목소리가 나온다.
사건의 전개과정이 생략된 반응들이다. 나는 차라리 이런 사람들이 정치에 관심을 거두어 주었으면 싶다. 정치에 대해서 ‘알못’에 가까운 반응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지금 정국은 더불어민주당이 주도하고 있다. 바둑으로 치면 새누리당은 지금 더불어민주당이 두는 대로 손따라 두고 있다. 새누리당 스스로 판을 주도할 힘이 없다. 초반에는 대마의 그림자가 희미했지만, 중반을 지나면서 대마가 보이기 시작했고, 그래도 괜찮겠지 했는데 지금은 진짜 대마가 잡히게 생긴 상황이다. 그래서 더불어민주당이 선수를 잡고 두는 데로 꼼짝없이 딸려오고 있는 상황이다.
사건 초기부터 탄핵이니 하야니 하는 주장이 나왔다. 생각해보라. 더민주당이 초반 JTBC의 태블릿PC 보도로 인해 연설문 고쳐준 사실이 나오고, 그 이튿날 박근혜가 직접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한 그 시점에서 탄핵이니 하야니를 떠들었다면 정국이 어떻게 전개되었을까? 아마 국민이 흔쾌히 동의해주지 않았을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잘한다고 했을 것 같나? 박근혜를 지지했던 51.6%가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야권을 어떻게 바라보았을까?
더불어민주당은 2주가 넘는 시간 동안 박근혜를 지지했던 유권자들의 마음을 돌려세우기 위해 인내심을 발휘했다. 승산을 잡은 교만한 승리자의 모습이 아니라, 51.6%의 전부는 아닐지언정 일부의 마음이라도 붙잡기 위해 기다려온 것이다. 그 인내의 결과 새누리당 지지층이 붕괴하였음이 확인되고 있고, 새누리당 입에서 ‘탄핵’과 ‘하야’가 나오고 있는 것이었다.
더불어민주당은 헌법과 법률 안에서 의회가 할 수 있는 수단을 동원했다. 무엇보다 이미 지난 9월 국정감사를 준비하면서 8월부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조사했고, 9~10월 국정감사 기간 동안 의혹을 제기했다. 정유라 이화여대 부정입학, 승마협회 비리 등도 모두 더민주 작품이다. 새누리당 의원들의 ‘정치공세’라는 한 마디로 묻혀버렸던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들의 노력은 JTBC의 태블릿PC 한 방으로 모두 되살아났다. 그 이후에도 최순실과 관련된 의혹들을 조사해서 여론을 만들어왔다. 이는 태세를 전환한 언론의 보도 덕분이기도 했다.
새누리당은 지금 대마가 잡힐 위기다. 그들이 선택 가능한 수는 별로 없다. 비박 안에서도 하야와 탄핵을 놓고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설령 새누리당이 탄핵하자고 하면 더불어민주당이 이걸 받을 것 같나?
더민주의 2가지 조건
더불어민주당이 그간 줄곧 주장한 두 가지 조건이 있다.
1. 박근혜는 내치 외치 모두 손을 떼고 거국중립내각에 맡기고 2선 퇴진하라
이건 공개적으로 ‘하야’를 표현하지 않았을 뿐 사실상 하야를 요구하는 주장이다. 박근혜 스스로 물러날 가능성도 없고, 현실적으로 끌어낼 방법도 없다. 그 현실에서 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수준의 요구다. 조선시대로 치면 아무런 권한 없이 상왕으로 물러나라는 의미다. 새누리당이 탄핵을 외쳐도 야 3당이 안 받으면 그만이다. 또한 거국중립내각 출범 후 탄핵을 해도 상관없다. 더불어민주당은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 다양하다.
2. 별도의 특검과 국정조사 추진
새누리당 비박이 지금 탄핵, 하야를 주장한 이상 그 진정성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특검과 국정조사에 응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것 역시 더불어민주당이 선수를 두어놓은 것이다. 새누리당 선택지는 별로 없다. 즉 그들 스스로 이 수를 피해갈 방법은 없다는 뜻이다. 무조건 반응해야 한다. 새누리당이 이 조건을 받든 안 받든 더불어민주당은 그에 상응하여 더 강력한 다음 수를 구사할 수 있는 상황이다.
다시 말하지만 지금 판은 더불어민주당이 선수를 잡고 판을 주도하면서도, 성급하게 판을 끝내려 덤비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그들은 인내심을 갖고 대마를 잡으러 가고 있다. 그 마지막 한 수가 무엇인지는 답을 정해놓을 수도 없다.
바둑 둬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여기가 마지막 한 수가 될 수도, 저기가 마지막 한 수가 될 수도 있다. 이건 대마를 쫓는 자의 즐거움이다. 몰린 자는 선택지가 별로 없다. 그저 쫓겨서 판을 이끄는 사람이 두는 데로 따라 두는 것 말고는.
골든타임은 놓치지 않았다. 새누리당에게도 말려들지 않는다. 새누리당에서 하야니 탄핵이니 나온다고 해서 겁에 질리고 패배감에 젖어 들지는 말자. 지금은 눈앞에 나타난 더민주의 새로운 국면을 기다려야 할 때다.
원문 : Soon Wook Kwon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