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야 요구를 가장 먼저 했던 대선주자가 이재명. 그 다음 박원순, 안철수 순이다. 문재인은 아직 못하고 있다. 현재 지지율과 역순인 것이 흥미롭다.
최순실 사태는 탈정치적인 문제이며 국민 전체의 문제이다. 이번 사태로 야당이 반사적인 이익을 얻겠고 문제를 알면서도 쉬쉬해온 새누리당은 불리해졌지만 그것은 부수효과일 뿐이며 국민 전체 vs. 박근혜 대통령의 대결이 현재 문제의 본질이다. 보수와 진보 할 것없이 모두가 동의하는 것은 “대통령을 잘못 뽑았다. 대통령은 우리를 대표하고 지배할 권력을 가질 능력이 없다”는 것이며 바로 이 대표의 실패(representation failure)가 본질이다.
민주당이 하야 요구를 하지 못하는 이유는 아마 이 두 가지 때문일 것이다.
- 하야 요구가 받아들여지기 어렵다는 것
- 하야 이후의 불확정성
그래서 당장은 총리임명철회와 검찰수사에의 협조만을 요구하고 있고, 이 두 가지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에만 퇴진을 요구한다고 하고 있다.
새로운 총리가 임명되는 것으로 국민들이 느끼는 자괴감이 치유될 수 있을까? 또 사건의 성격을 볼 때 검찰수사로 지금까지 밝혀진 것들이 더 명쾌하게 밝혀질까?
우선 새로운 총리가 누가 되었든 그가 권한 이양을 얼마나 받든,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모시고 있어야 하고 그 총리는 국회의원들이 뽑는 총리 즉 내각제 하의 총리와 유사한 정치적 위상을 갖게 된다. 내각제 개헌을 위한 좋은 연습이 될 수는 있겠지만, 대통령을 잘못 뽑은 패착을 보정 받고 싶어 하는 국민에게는 부족하다.
또 언젠가부터 법치주의가 자리잡히면서 우리에게는 검찰은 커다란 ‘타자’였다. 무언가 불의가 발생하면 검찰수사에 이은 형사처벌이 있어야만 정의가 바로 잡혔다고 생각하는 관습에 길들어 왔다. 돈을 빌려주고 못 받아도, 욕설을 들어도, 최소한 검찰이 상대를 괴롭히게 하거나 검찰의 입에서 ‘기소’라는 말이 나와서 재판을 받게 해야 정의가 세워진다는 편견을 갖게 되었다. 물론 검찰의 강제수사능력을 빌려야 진상이 밝혀지는 사안들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언론이 적어도 대통령과 최순실의 관계와 최순실의 악행에 대해서는 밝힐 만큼 밝혔다. 가장 중요한 점은 대통령이 지금까지 언론에 밝혀진 바를 부인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자세한 상황은 수사를 이유로 밝히지 않겠다’면서도 부인하고 싶은 것은 부인했는데 그것은 굿과 사이비 교단 연루설뿐이었다. 연설문 포함 최순실이 국정에 관여했다는 여러 보도 중 어느 하나 부인하지 않았다. 심지어 최순실이 사익을 취하려 했다는 점까지도 인정했다.
이것만으로도 국민 95%가 동의하는 것은 ‘대통령을 잘못 뽑았다’는 것이고, 이 동의가 검찰수사를 통해 바뀔 가능성은 전무하다. 특히 이 동의는 대통령을 처벌하자는 것이 아니라 대표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기 때문에 무죄 추정의 원칙이나 이에 따른 정교한 증거법의 잣대로 재단할 필요 없이 유효한 것이다.
결국 민주당이 내건 두 가지 요구 다 본질과는 비켜나 있다. 국민이 말하고 싶은 것은 이런 내용이다.
“너무 창피하다. 너는 내 대통령이 아니다. 나는 너라는 대통령을 모른다.”
즉 부인(denial)을 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단순히 지지율이 문제가 아니다. 김영삼 때도 국민은 대통령을 부인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주최 측 추산 전국 100만이 모였었다는 광우병 시위도 있었지만, 지금처럼 모두가 한 입으로 퇴진을 요구하지는 않았다.
물론 법적으로는, 선거가 적법하게 치러진 이상 대통령의 범죄가 법정(예를 들어 탄핵절차에서의 헌법재판소 또는 최소한 검찰수사)에서 밝혀지지 않는 이상 대통령은 자리를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법에 따라서 자신의 입장을 정립해야 한다는 것이야말로 법치과잉적인 입장이다. 대통령을 잘못 뽑았다는 이유만으로 국민은 주권자로서 바로 지금 대통령을 거부할 수 있어야 한다. 대통령의 범죄가 형사소송법의 증거절차에 따라 정교하게 입증되지 않더라도 거부할 수 있어야 한다. 박근혜가 형사처벌을 받는 것은 부차적인 문제이다.
민주당이 걱정하듯 하야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도 있고, 하야 이후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 하지만 어떤 정치적 고려도 지금 우리의 대표를 부인해서 나라의 기강을 바로 세우겠다는 주권자의 의사보다 더 우리나라 민주주의에 중요한 것은 없다.
당장의 하야가 정권교체에 도움이 될지, 세월호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지, 국정교과서, 위안부합의, 싸드배치 등등에 도움이 될지, 세법 안 바꾸고도 세금을 악착같이 거둬 증세를 실현한 이 정부의 세무기조에 어떻게 영향을 줄지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잘 모르겠는 사안들에 대해서 옳으려고 하기 전에, 우리가 확실히 아는 사안에 대해 옳을 수 있음을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잘 모르겠는 사안에 대해서도 부끄럼 없이 서로에게 책임 있는 의견을 물을 수 있다. 그게 인간이 공동체로서 살아남아 왔던 방식이다.
원문 : 박경신의 페이스북